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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cess Algebra를 이용한 Lamport의 Byzantine Agreement의 명세 및 부분 검증에 대하여

        박찬국(Chan-Kook Park),최진영(Jin-Young Choi) 한국정보과학회 1998 한국정보과학회 학술발표논문집 Vol.25 No.2Ⅰ

        본 논문에서는 정형기법의 일종인 Process Algebra (ACSR-VP)를 이용하여 Distributed Algorithm 중 하나인 Byzantine Agreement의 명세를 작성하고 검증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Lamport가 제시한 Algorithm에 따라 요구명세와 과정명세를 설계하였으며 주어진 Property를 만족시키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앞으로 많은 분산 알고리즘과 프로토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KCI등재
      • 목적론적 입장에서 본 행복

        박찬국(Park Chan-Kook)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2011 동서사상 Vol.11 No.-

        이 연구는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헤겔에 이르는 서양철학의 고전적 전통을 지배했던 목적론에 입각하여 행복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고찰하려고 한다. 이러한 목적론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자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져 있는 본질적인 형상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한다고 보는 본질실현의 목적론이다. 이러한 본질실현의 목적론은 근대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자기보존의 목적론과는 달리 모든 존재자들은 단순한 자기보존이나 종족번식을 넘어서 자신에게 부여된 본질적인 형상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한다고 본다. 본 연구는 인간의 행복은 이러한 본질실현의 목적론을 전제로 할 경우에만 제대로 구명될 수 있다고 보면서, 이러한 사실을 본질실현의 목적론에 입각하여 인간을 파악했던 가장 대표적인 사상가인 아리스토텔레스와 에리히 프롬의 행복관을 고찰함으로써 입증하고자 했다. This research aims to inquire into the issue of happiness on the basis of the teleology that dominated the history of the Western philosophy from Plato to Hegel. According to this teleology, all beings try to realize their essential forms given by the nature. I think that the happiness of the human beings can be brought to light well only if we presuppose the teleology. This research sought to prove this thought by considering the most representative thinkers, Aristotle and Erich Fromm that investigated the human beings on the basis of teleology.

      • KCI등재

        현대기술문명에 대한 하이데거와 프롬의 사상

        박찬국(Chan Kook Park) 철학연구회 1999 哲學硏究 Vol.47 No.-

        이 글은 기술문명에 대한 하이데거와 프롬의 사상의 비교고찰을 통하여 양자의 생산적인 대화를 매개하는 것을 목표한다. 기술문명의 본질에 대한 하이데거와 프롬의 분석에는 놀랄만한 정도의 유사성이 존재한다. 어떤 의미에서 프롬의 분석은 기술문명에 대한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분석을 정신분석학적인 차원에서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 하이데거와 프롬 양자는 기술문명의 본질을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독자적인 생명을 박탈하면서 기술적으로 처리가능한 죽은 부품으로 만드는 의지에의 의지 내지 네크로필리아의 지배에서 찾고 있다. 양자 간에 보이는 유사성은 기술문명의 본질에 대한 분석에서 뿐 아니라, 기술문명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양자가 내세우는 정신혁명에서도 나타난다. 하이데거가 내세우는 내맡김(Gelassenheit)라는 태도는 프롬이 주창하는 사랑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치에도 불구하고 양자 사이에는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는 주로 양자가 배경으로 갖는 사상적 계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하이데거가 의식적으로 근대적인 계몽주의적인 철학으로부터 거리를 취하는 반면에, 프롬은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와 같은 계몽주의적인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마르크스주의는 프롬으로 하여금 사회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한다. 프롬은 사회구조의 변혁이 수반되지 않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정신변혁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본다. 본인은 하이데거가 기독교와 계몽주의의 이념을 철저하게 실현하고자 하는 프롬으로부터 기독교와 근대계몽주의에 대한 이해와 특히 사회구조의 변혁과 관련하여 많은 점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 프롬에 대한 하이데거의 공적은 하이데거는 현대인들이 자명하게 생각하는 근대적인 존재이해에 대해서 서구인들이 그리스시대에 근원적으로 경험한 자연을 드러내고자 했으며 그것이 갖는 심대한 의의를 드러낸 데 있다.

      • 불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니체의 견해에 대한 비판적 고찰 -에리히 프롬과의 비교를 통해서-

        박찬국 ( Park Chan-kook ) 한국하이데거학회 2011 존재론 연구 Vol.27 No.-

        이 글은 니체가 『안티그리스도』에서 개진하고 있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견해를 프롬의 견해와 대조하면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니체의 견해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의의와 한계를 살펴보고 있다. 니체는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현실을 고통에 가득 찬 부정적인 것으로 보면서 내면으로의 도피나 피안으로의 도피를 주창하고 있다는 점에서 허무주의적이라고 보며, 또한 양자가 모두 생명력의 약화와 퇴화에서 비롯되었으면서도 생명력의 약화와 퇴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데카당스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반해서 프롬은 종교를 크게 권위주의적인 종교와 인본주의적인 종교로 대별하면서 불교를 대표적인 인본주의적인 종교로 보는 반면에 그리스 도교에는 두 가지 요소가 섞여 있다고 보고 있다. 프롬은 예수의 참된 정신과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는 인본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반면에, 이른바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제도화된 교회의 교리는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았다. 프롬이 이렇게 종교를 권위주의적 종교와 인본주의적인 종교로 구별하고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니체가 종교를 힘에의 의지를 강건하게 만드는 종교와, 그것을 약화시키고 병들게 하는 종교로 구별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니체가 어떤 종교의 좋고 나쁨은 그 종교가 실재를 얼마나 반영하느냐가 아니라 인간을 얼마나 강건한 존재로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처럼, 프롬역시 어떤 종교의 좋고 나쁨은 그 종교가 인간을 얼마나 정신적으로 성숙한 존재로 만드는지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프롬이 부처와 예수를 인류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가치를 제시하고 구현한 인류의 사표로 보는 반면에, 니체는 부처와 예수를 결국은 힘에의 의지가 약했던 데카당으로 본다는 점에서 양자는 사실상 입장을 전적으로 달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양자 간의 차이는 궁극적으로는 『안티그리스도』에서의 니체가 사해동포주의적인 사랑을 주창하는 계몽주의적인 휴머니즘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에 반해 프롬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니체가 계몽주의뿐 아니라 불교나 그리스도교에 나타나고 있는 사해동포주의적인 사랑을 힘이 약한 자들의 자기기만 정도로 보는 반면에, 프롬은 오히려 진정한 내적인 힘에서 비롯되는 사해동 포주의적인 사랑이 존재하며 그러한 정신적인 능력을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This article examines Nietzsche’s views on Buddhism and Christianity in Anti-christ critically in contrast with Erich Fromm’s view and inquire into the positive significance and limitations of Nietzsches’ view. Nietzsche regards Buddhism and Christianity as nihilistic, because he thinks that they see this world as filled with pains and advocate the escape from this world. Moreover, he regards them as decadent, because he thinks that they came into being from weakening and degeneration of life and promotes weakening and degeneration of life. On the contrary, Fromm divides the religions into authoritarian and humanistic religions largely. He sees Buddhism as a representative humanistic religion, while he thinks that in Christianity two elements are mixed. Fromm sees Buddha and Jesus as the ideal men which presented and realized the values that the mankind should realize, while Nietzsche sees them as the decadent men whose will to power was weak and tired. The difference between Nietzsche and Fromm is grounded on the fact that Fromm accepts the enlightenment humanism that advocates the cosmopolitan love, while Nietzsche is critical against it.

      • KCI등재

        목적론적 자연관에 대한 재검토

        박찬국 ( Chan Kook Park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4 시대와 철학 Vol.15 No.1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이 같릴레이나 데카르트의 철학처럼 자연을 `수학적으로 계산가능한 연장적 사물`(res extensa)로 보는 대적인 자연이해가 중세를 지배했던 고대나 중세의 목적론적인 자연이해를 대체하면서 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대가 진행되면서 데카르트적인 자연관은 세계를 `계산 가능한 에너지들의 연관체계`로 고찰하는 자연관으로 심화되었다. 그러나 자연을 조작가능한 에너지들의 작용연관체계로 보고 인간을 자연과 대립된 주체로 보는 대적인 자연지배는 인간 자신이 자연에 속하지 않을 경우에만 인간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 인간도 자연 안에서 태어나서 자연 안에서 죽어 가는 자연적인 존재자차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한, 과학적인 대상화는 결국에는 인간에게까지 미치게 죈다. 이에 따라 데카르트가 인간의 의식을 자연과 철저하게 분리시켰던 반면에 현대기술문명은 데카르트적인 자연관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면서 인간의 의식조차도 계산 가능한 에너지로 규정하게 된다. 즉 레스 코기탄스(res cogitans), 즉 인식하는 자로서의 인간은 단지 복잡한 레스 엑스텐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관주되며, 인간을 주체로 보는 고철방식은 비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간주되게 죈다. 목적론을 인간 이외의 다근 자연적인 존재자들도 일종의 주체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보는 의인관으로 비판하면서, 이러한 의인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연을 인간과 전적으로 다른 것으로 보게 뇔 때는 인간 자신의 주체성마저도 부정되고 인간도 객관적인 조건들에 의해 결정되는 수동적인 기능인자로 전락하게 되는 역설적인 결과가 빗어지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자들이 각자의 고유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는 전통적인 내재적 목적론이야말로 인간의 주체성과 아울러 자연과 인간의 공생 그리고 인간들 강호 판의 우애를 가능하게 하는 사상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바, 이러한 목적론의 정당성과 그것의 현대적인 의의를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본 연구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부분은 현대과학기술문명을 규정하고 있는 대적 자연이해의 성격과 그것의 문제점을 대문명의 대교적인 현상이차고 할 수 있는 근대과학을 중심으로 고찰하는 부분이다. 둘째 부분은 목적론적인 자연관의 핵심적인 네용과 그것의 정당성을 살펴보고 그것에 대해서 보통 제기되는 반론들을 검토하는 것과 동시에 목적론적인 인간관과 신관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는 부분이다. 세째 부분은 일종의 결론부분으로서 목적론적인 자연관이 현대기술문명에서 갖는 의의와 그것이 근대과학의 인과탐구와 어떠한 관계를 갖는지를 간단히 고찰하는 부분이다. It is broadly recognized that the modem technological civilization was made possible on the basis of the modem view of nature which understands the nature as mathematically quantifiable `res extensa`. Galilei and Descartes, the pioneers of this view of nature, thought that human beings can emancipate themselves from the status of nature`s slavery by utilizing modem science itself. Well, this view of nature can contribute to the emancipation of human beings only if they are not a part of the nature. Because human beings are born and die in the nature, sciences would end up with eventually objectifying even human beings. While Descartes strictly distinguishes human consciousness from nature, the contemporary science investigates even the human consciousness as physical and chemical energies. The modem view of nature came about as a replacement for the teleological view of nature. The teleological view dominated the ancient and the middle ages. The modem view criticized the teleological view as anthropomorphic. But the modem view denies even the subjectivity of human beings, when it distinguishes the nature from human beings in order to avoid the error of anthropomorphism. The human beings have been degraded to the passive factors that are determined by objective conditions. In this paper, I investigate the justifiability of immanent teleology and its significance for our age. I argue that immanent teleology can provide a philosophical basis for the symbiosis of nature and human beings and for the mutual respect of human beings. This paper is composed of three parts. In the first part, the modem view of the nature and its problematic are investigated. In the second part, the teleological view of the nature, its justifiability and the traditional arguments against it are investigated. In the third part, the significance of the teleological view of nature for our technological age is investigated.

      • 하이데거의 실존적 진리개념에 대해서

        박찬국 ( Park Chan-kook ) 한국하이데거학회 2006 존재론 연구 Vol.13 No.-

        서양 전통 형이상학의 주요한 물음 중의 하나는 판단과 대상 사이의 일치, 즉 진리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물음이었다. 서양형이상학은 판단을 통해서 존재자의 진리가 발견된다고 생각하면서 판단을 그러한 물음, 즉 진리문제를 해명하는 실마리로 삼았다. 이에 대해서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자는 판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존재자들에 대한 실천적 교섭을 통해서 발견된다. 그리고 판단을 통해서 존재자를 발견하는 것은 실천적 교섭을 통해서 존재자 자체가 이미 발견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판단은 이렇게 일차적으로 존재자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진리란 무엇이며 진리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라는 물음의 실마리가 될 수는 없다. 현존재는 항상 존재자에 대한 판단적, 혹은 술어적 규정 이전에 존재자와 실천적으로 관계하면서 존재자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며, 이렇게 발견된 진리에 판단의 진리가 근거하고 있는 한 그것은 판단의 진리보다 근원적인 진리가 된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판단과 존재자가 일치하는 가능성에 대한 진리 문제를 판단이 근거하는 선술어적 진리의 가능성의 근거를 물음으로써 해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이러한 선술어적 진리를 가능하게 하는 궁극적 근거를 현존재의 ‘이해와 심정성 그리고 말’을 통해서 형성되는 현존재의 개시성(Erschlossenheit)에서 찾고 있다. 본 논문은 하이데거가 진리문제에 대한 해명에서 후설의 지향성 개념이 차지하는 의의와 한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그리고 하이데거가 후설의 지향성 개념을 어떻게 발전시키면서 진리문제의 심층에 도달하고 있는 가를 드러내려고 했다. Eine Hauptfrage der abendländischen tradionellen Metaphysik war die Frage, wie die Übereinstimmung zwischen dem Urteil und dem Gegenstand, d.h. die Wahrheit möglich ist. Die Metaphysik nahm das Urteil als den Leitfaden fur die Erörterung der Wahrheitsfrage, denn sie dachte, daß der Ort der Wahrheit das Urteil ist, während bei Heidegger das Seiende primär nicht durch das Urteil, sondern durch den Umgang mit dem Seienden entdeckt wird. Das Urteil ist fundiert auf der vorprädikative Wahrheit, die durch den Umgang mit dem Seienden entdeckt wird. Diese vorprädikative Wahrheit ist urspruglicher als die prädikative Wahrheit, die durch das Urteil entdeckt wird. Heidegger versucht also die Frage uber die Möglichkeit der Übereinstimmung zwischen dem Urteil und dem Gegenstand dadurch zu erörtern, daß er nach dem Grund der Ermöglichung der vorprädikativen Wahrheit fragt. Nach Heidegger ist der letzte Grund der Ermöglichung dieser vorprädikativen Wahrheit in der Erschlossenheit des Daseins, die durch das Verstehen, die Befindlichkeit und die Rede gebildet wird. Diese Arbeit versuchte zu zeigen, wie Heidegger den husserlschen Begriff der Intentionalität entwickelt und den tiefe Schicht des Wahrheitsproblems erreicht.

      • KCI등재

        니체의 초인은 부처인가

        박찬국 ( Chan Kook Park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1 人文論叢 Vol.66 No.-

        According to the view-point that occupies the leading position in the history of comparative research of Nietzsche`s philosophy and Buddhism so far, there are strong similarities between the two and Nietzsche`s Overman is identical with Buddha. Contrary to this view-point, this article tries to demonstrate that between Nietzsche`s philosophy and Buddhism the differences are more fundamental than the similarities, even though it is undeniable that there are certain similarities between the two. And unlike the existing researches that tried to reveal the differences between Nietzsche`s philosophy and Buddhism by taking Nietzsche`s thoughts of the eternal return of the same and the concept of the will to power as major clues for the comparison, this article will show the differences between the two and the limits of Nietzsche`s philosophy more concretely and more clearly by comparing Nietzsche`s and buddhist views on the virtues that the ideal human-beings should realize. Nietzsche finds such virtues in pride, pathos of distance, flush vigor, strong and tough spirit, while Buddhism finds such virtues in love and kindness, pity and caring, sharing the joys of all living beings, calmness. In addition, Nietzsche finds the rul- ing principle of the world in the war between all things like Heraclitus, while Buddhism thinks that all things in the world help each other. On the basis of these comparisons, we can say that Nietzsche`s philosophy was not able to overcome the spirit that sees itself as being confronted with the other people and the world.

      • KCI등재

        니체의 불교관에 대한 비판적 검토

        박찬국(Park, Chan-Kook)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9 철학사상 Vol.33 No.-

        본 연구는 니체의 불교해석과 불교비판과 관련된 국내의 연구상황에 존재하는 모순을 극복하려는 하나의 시도다. 그 동안 니체의 불교관에 대해서 행해진 국내의 연구들을 대별해 보면 니체의 해석과 비판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 내용을 정리하고 보완하는 것들이거나 아니면 니체 사상과 불교에서 서로 상통하는 부분, 특히 자아의 실체성을 부정하면서 모든 사건들의 상호연관성 내지 연기성(緣起性)을 주장하는 부분 등에 주목하면서 니체 철학과 불교의 유사성 내지 동일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 해석방향은 사실상 서로 모순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니체는 불교를 기독교보다는 우월한 종교로 평가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불교를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수동적 허무주의 내지 데카당스의 한 형태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불교에 대한 니체의 해석과 비판을 그대로 수용하는 입장은 니체와 마찬가지로 불교를 궁극적으로는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이에 대해서 니체철학과 불교의 유사성 내지 동일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해석방향이 옳다고 한다면 불교에 대한 니체의 입장은 사실상 불교를 긍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방향은 분명히 불교를 궁극적으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니체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첫 번째 해석방향과는 모순되는 것이었다. 본 논문은 고통의 문제를 중심으로 불교에 대한 니체의 해석과 비판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이렇게 서로 모순되는 해석방향들이 병존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테제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불교에 대한 니체의 해석과 비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첫째로, 부처가 우리의 생성소멸하는 삶과 현실이 고통이라고 말할 경우에 그것은 니체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성소멸하는 삶과 현실 자체가 고통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갈애와 집착에 사로잡혀 있는 일상적인 비본래적 삶만을 고통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둘째로 부처는 니체가 비판하는 것처럼 모든 종류의 고통을 부정하고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갈애와 집착에서 비롯되는 고통만을 극복하려고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부처는 우리가 이러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갈애와 집착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는 일상적인 비본래적 삶의 본질이 바로 고통이라는 사실을 꿰뚫어보는 ‘위대한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며 이와 함께 부처는 니체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고통이 갖는 긍정적인 의의와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검토를 토대로 하여 본 연구는 또한 니체와 불교 사이에 어떤 점에서 근친성이 존재하고 어떤 점에서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분명히 드러내려고 했다. If we were to make a general classification of the researches which have been done about Nietzsche’s view of Buddhism in our country up to the present, they can be broadly divided into two categories. One category accepts Nietzsche’s view ofBuddhism without criticism, and the other category tries to reveal the similarity or the identity between Nietzsche’s philosophy and Buddhism, for example, by pointing out that both sides deny the substantiality of self and assert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events. However, these two ways of interpretation are contradictory to each other. Nietzsche indeed estimates Buddhism more positively than Christianity, but he defines Buddhism as a kind of passive nihilism and decadence. Therefore, a position following Nietzsche’s view on Buddhism cannot help but estimate Buddhism negatively like Nietzsche did. Contrary to this position, a position trying to reveal the similarity or the identity between Nietzsche’s philosophy and Buddhism cannot help but insist that Nietzsche estimates Buddhism positively. This second position is, however, evidently contradictory to the first position. This research tries to overcome this contradictory situation through a critical examination of Nietzsches’ view of Buddhism by focusing on the problem of suffering.

      • KCI등재

        유식불교의 삼성설과 하이데거의 실존방식 분석의 비교

        박찬국(Park, Chan-Kook)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6 철학사상 Vol.61 No.-

        이 글은 유식불교의 삼성설과 현존재의 실존방식에 대한 초기 하이데거의 분석을 서로 비교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연구를 정은해의 「불교의 두 주요 개념인 진여와 윤회의 시간론적 해석」와 권순홍의 연구 『유식불교의 거울로 본 하이데거』와 비판적으로 대결하는 방식으로 수행했다. 필자는 변계소집성을 비본래적 실존에, 원성실성을 본래적 실존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는 정은해의 견해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정은해의 견해는 상당히 혼란스럽게 개진되고 있는 면이 있다. 필자는 정은해의 견해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서 정은해의 견해가 지향하고 있다는 생각되는 사태를 보다 분명하게 개진하는 방식으로 필자의 견해를 제시해 보았다. 권순홍은 변계소집성을 비본래적 실존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면서도 본래적인 실존에 상응하는 것을 원성실성이 아니라 의타기성으로 보고 있다. 필자는 또한 이러한 견해가 갖는 문제점을 상세히 검토하는 방식으로 필자의 견해를 개진했다. This paper aims to compare Heidegger’s Analysis of the Ways of Existence and the Trisvahāva Theory of the Yogācāra School. This study involved a critical examination of Cheong Eun-Hae’s “A Time-theoretical Interpretation of the Central Concepts of Buddhism, Tathata and Samsara” and Kwon Soon-Hong’s Heidegger Seen in the Mirror of the Yogācāra Buddhism. In principle I agree with Cheong Eun-Hae, who insists that parikalpita-svabhāva (遍計所執性) corresponds to an inauthentic existence and pariniṣpanna-svabhāva (圓成實性) corresponds to an authentic existence. However, his view is presented quite confusingly. I put forward my view by stating clearly what Cheong Eun-Hae’s view intends. Kwon Soon-Hong insists that paratantra-svabhāva (依他起性) corresponds to an authentic existence, though he sees parikalpita-svabhāva (遍計所執性) corresponding to an inauthentic existence. I have put forward my view by examining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Kwon Soon-Hong’s view in det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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