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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y and Death in Wisdom of Solomon as Reflected in its Use of Gen 1-3
박장훈(Park, Jang Hoon)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20 신약연구 Vol.19 No.3
한국 학계에서 제2성전 유대문헌은 주로 신약본문의 이해를 위한 보조자료로 사용될 뿐, 유대문헌 자체의 집중하는 연구는 많지 않다. 하지만 유대문헌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신약을 조명하는 도구적 역할도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 목적에 기여하고자 이 논문은 유대문헌 중 신약과의 비교에 자주 사용되는 솔로몬의 지혜서에 집중하여, 신약과 연관성이 많은 주제인 인간과 죽음에 대해 살펴본다. 지혜서의 인간과 죽음에 대한 이해는 창세기 1-3장에 근거한다. 먼저 지혜서는 창세기 1-2장을 한편으로는 인류의 아버지이며 첫번째 창조된 인간인 아담의 이야기로 이해하고, 또 한편으로는 인간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비전으로 이해한다. 죽음은 아담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계획의 일부가 아니었다. 하지만 창세기 3장에 의하면, 악마의 속임을 통해 죽음이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고 그 결과 아담의 자손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타락 후” 의 세상에 살게 되었다. 아담과 인류에게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영원한 생명과 불멸은 이스라엘의 종말론적인 회복과 높아짐으로 성취된다. 지혜서에서 죽음은 모든 인간이 겪을 수 밖에 없는 흙으로의 귀환 (창세기 3:19), 즉 육체적인 죽음, 뿐 아니라, 가인과 같은 악한 이들이 저지르는 살인적인 죽음을 포함한다. 따라서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어긋하는 악한 현상이다. 이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사후에 종말적으로 발효된다. 의로운 자들은 현세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도 종말의 때에 부활과 높아짐을 통해 죽음을 극복할 것이고, 악한자들은 현세에서 고난없이 살아도 종말의 때에 하데스에 영원히 갇히게 되는 종말적인 죽음을 겪을 것이다. To meet the need to study Second Temple Jewish literature in its own right, the present article seeks to explore Wisdom of Solomon with particular attention to its view of anthropology and mortality presented in relation to Gen 1-3. Wisdom’s view of humanity is grounded in its reading of Gen 1–3. Wisdom reads Gen 1-2 as the story of Adam the father of humanity and also as the revelation of God’s vision for humanity. This vision did not include mortality, and according to Gen 3, “death” intruded into God’s created world only through the sin of Adam instigated by the “devil” (the serpent in the Garden of Eden). God’ creational purposes for humanity, however, will find ultimate fulfillment in the eschatological exaltation of Israel. A key to understanding Wisdom’s view of mortality is its use of the term, “death.” “Death,” in Wisdom, refers to both the earth-bound destiny decreed by God (Gen 3:19) and applied to all of Adam’s descendants, and the murderous deaths of the righteous by the subsequent human “devils” like Cain. “Death” then, with the “devils” behind it, is not a tolerable phenomenon but an aberration in God’s created order and a challenge to God’s justice. God’s solution for “death” consists in his eschatological readjustment of the postmortem destiny of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the righteous are restored from death through resurrection and exaltation in God’s presence whereas the wicked suffer the ultimate death of remaining bound in Hades away from God.
박장훈(Jang hoon Park)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16 신약연구 Vol.15 No.1
톰라이트에 대한 지금까지의 비판은 바울에 대한“새관점”과 이신칭의 교리에 관련된 그의 비 전통적 주장들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하지만 라이트의 바울해석 중 아주 독특하지만 아직 비판적인 조명을 받지 못한 부분은 바로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한 라이트의 로마서 9-11장 해석이다. 본 논문은 라이트의 로마서 9-11장 해석을 소개하고 이 해석에 대한 4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 라이트의 로마서 9-11장 해석의 중요한 줄기는 이스라엘의 운명이 죽음과 부활을 겪으신 메시야의 운명과 비슷한 모양과 역할을 하도록 디자인 되었다는 것이다. 즉, 메시야가 버림받으신 사건(십가가에서 죽으심)이 구원을 성취하신 것 같이, 이스라엘의 버림받음도 메시야의 구원성취에 중요한 기여를 하며, 메시야가 구원을 이루시고 부활하신 것 같이, 이스라엘도 구원적인 기여를 마치면 부활과 같은 회복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라이트에 의하면 하나님은 율법과“걍팍케 하심”을 도구삼아 이스라엘의 운명을 이렇게“메시야 적”으로 재단하신다. 라이트의 이러한 해석에는 다음의 4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라이트는 이스라엘의 실패와 버림받음이 메시야의 구원성취에 기여를 하는 방법은 바로 이스라엘의 율법어김을 통해 세상의 죄가 이스라엘 안에 모아져서 메시야가 죄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라이트의 이 주장은 이스라엘이 세상을 대표하는 기능을 지녀야만 가능한데 이스라엘이 이러한 기능을 가졌다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둘째, 라이트는 이스라엘이 율법어김을 통해 세상의 죄를 모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걍팍케”하시는 것을 동일한 현상으로 해석하는데 이는“걍팍케 하심”에 대한 로마서 9장의 묘사에 어긋난다. 셋째, 라이트에 의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운명을 메시아적 버림받음과 메시아적 회복의 패턴으로 이끄는 방법은“걍팍케 하심”을 통해서 인데, 라이트는 이“걍팍케 하심”을 그저 이스라엘의 이미 걍팍한 마음에 대한 하나님의 수동적 참으심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동적 정의는 하나님의“걍팍케하심”을 좀더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로마서 9-11장의 묘사와 맞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라이트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적인 회복의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의“걍팍케 하심”을 최후의 심판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되돌릴 수 없는 현상으로 이해하는데 이또한, “걍팍케 하심”에 대한 부정적인 정의와 더불어, 로마서 9-11이 그리는 그림에 부합하지 않는 묘사이다.
The Suffering Servant of Isaiah 53 and Christian Suffering in Mission
박장훈 ( Jang Hoon Park ) 한국대학선교학회 2020 대학과 선교 Vol.45 No.-
한 갈래의 유대전통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의 고난은 하나님의 구원적인 목적을 이루는 데에 기여하는데 그 이유는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사역을 이스라엘의 소명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고난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기 위해 이스라엘의 운명에 내재된 원리와 같이 된다. 본 논문은 이 해석과는 반대로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사역을 이스라엘의 소명으로 볼 수 없다고 논증한다. 고난받는 종의 사역은 이스라엘의 사역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사역으로서 이스라엘이 아닌 새로운 종이, 다른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여러 구원적인 역할을 홀로 한꺼번에 수행하여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독특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독특한 사역을 감당한 종이 예수그리스도임을 고려할 때, 선교에서 그리스도인이 겪는 고난이 구원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그리 스도와 연합되어서 그리스도의 독특한 고난 사역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지, 고난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내재된 원리가 되어서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구원 적으로 효과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According to one strand of Jewish tradition, the suffering servant in Isaiah 53 represents Israel, and this means that Israel has the vocation of redemptive suffering. This reading of Isaiah 53 makes suffering itself as a God-ordained means through which Israel can advance God’s redemptive purposes. Against this reading of Isaiah 53, the present articles argues that the redemptive suffering of the servant in Isaiah 53 is not the vocation of Israel but the vocation of a new servant figure who restores Israel by playing multiple redemptive roles in a way no one else can. Given that this unique servant is identified with Jesus Christ, Christians’ suffering in mission can be redemptive precisely because they are united with Christ to participate in his unique redemptive suffering rather than because of the principle of suffering itself that makes Christian suffering redemptive apart from Ch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