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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주변부, 불어권 스위스 문학 -두 문학 장에 "걸친" C. F. 라뮈즈의 경우

        레날프뢰디거 ( Reynald Freudiger )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 2009 불어문화권연구 Vol.19 No.-

        파리 중심의 불문학과 비교했을 때 불어권 스위스 문학은 주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파리를 경유해야 더 넓은 불어권으로 작품이 유포될 수 있으며, 많은 불어권 스위스 작가들이 파리의 문학계에 접근하려 한다는 사실은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출판업계와 시장, 작가와 비평가 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는 자율적인 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불어권 스위스의 대표적인 작가인 샤를 페르디낭 라뮈즈의 생애는 이러한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의 주변적이면서도 자율적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불어권 내 프랑스어의 다양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재고하게 해준다. 1878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나 프랑스어 시집과 단편소설을 출간한 바 있는 라뮈즈는 파리로 건너가 1905년에 첫 장편소설인 『알린느』를 펴낸다. 스위스계 작가로 먼저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던 에두아르 로드의 도움으로 출간한 이 소설에서 라뮈즈는 스위스 농촌지역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후 약 10년에 걸쳐 그는 파리에서 5편의 소설을 출간한다. 비록 작품의 판매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파리에서 작품을 출간했다는 사실로 인해 그는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에서 크게 환영을 받는다. 1913년에 스위스로 돌아온 이후 라뮈즈는 로잔을 대안적인 문학중심지로 만들고자 했다. 많은 작품을 출간하며 불어권 스위스에서 루소에 비견되는 작가로 인정받았던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출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차 파리에서라면 펴내기 어려웠을 아방가르드적인 글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그가 스위스에서 발표한 혁신적인 작품들은 특히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언어와는 다른 스위스의 지방어로 채워져 있었고, 이러한 그의 문체를 두고 불어권 스위스의 비평가들은 프랑스어가 아닌 애매한 언어를 사용한다며 비판을 가한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불어권 스위스에서만 유포되었지만, 일부 프랑스의 아방가르드적 작가들이 그의 글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1919년에 그는 필립 수포로부터 『문학』 지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는다. 그리고 1924년에는 갈리마르 출판사와 더불어 파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그라세 출판사와 장기 계약을 맺고 1947년 사망하기까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라뮈즈는 이처럼 불어권 스위스와 파리라는 두 문학 장을 이용할 줄 알았다. 주목할만한 스위스계 작가로 파리에 소개된 그는 그곳에서의 작품 출간으로 인해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에서 중요한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를 일종의 문학적 혁신의 실험실로 활용함으로써 파리의 문학계에 재입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자율적인 불어권 스위스 문학 장의 존재를 이용할 줄 알았는데, 스위스 문학계에서 경제적 후원을 받아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었기에 그라세 출판사의 지원을 얻고 파리 문학계에 다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리에서도 역시 그의 문체를 놓고 비판이 일기 시작했고, 이에폴 클로델을 비롯한 주요 문인들이 그를 옹호함으로써 라뮈즈는 파리 문학계에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결국 그는 1929년 자신의 작품집 서문에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논쟁에 대한자신의 입장을 직접 표명한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죽은" 언어가 아닌 "살아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음을 분명히 하면서, 이러한 시도가 자신뿐 아니라 주변부 불어권 문학전체와 관련된다는 점을 밝혔다. 프랑스어의 다양성에 대한 그의 변론은 주변부 불어권 문학의 시학에 대한 최초의 정식화이자 일종의 역사적 선언이었던 셈이다. 2차 대전의 발발로 라뮈즈와 파리의 연계는 느슨해졌으며, 1947년 그의 죽음은 파리 문학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불어권 스위스에서 그의 입지는 더욱 확고해져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수록되고,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불어권 스위스에서의 라뮈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이후 다시금 파리 문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가 파리에서 첫 작품을 출간한 지 100주년이 되는 2005년에 그의 전집이 플레이야드 판으로 출간된다. 이처럼 그가 프랑스 문학의 판테온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작품이 이룬 문학적 성취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율적인 장으로서의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라뮈즈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가 보이는 주변적이면서도 자율적인 장으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라뮈즈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많은 불어권 스위스 작가들이 파리로부터 문학적 승인을 받고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 그러나 동시에 상당수의 작가들이 파리를 경유하지 않고 불어권 스위스 내부에서 자신의 문학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파리중심주의에 반대하며 자율적인 문학 장을 보존하고 다양성을 구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작가들이 있다. 오늘날 스위스를 비롯한 불어권 내에서 파리를 벗어나는 대안적인 문학 장을 구성하는 것이 많은 문학인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마르세유, 제네바, 다카르에서 파리와 대등한 자리에 서기 위한 시도들이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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