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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鎌倉時代의 ‘武威’에 관한 논의에 붙여서 ―鎌倉時代 ‘武威’論의 현황과 쟁점

        남기학 일본사학회 2022 일본역사연구 Vol.58 No.-

        이 글은 鎌倉時代의 ‘武威’에 관한 논의를 정치의식과 국가의식의 측면에서 살펴보려는 것이다. 鎌倉幕府를 東國國家(王權)로서 간주하는 시각과 국가를 守護하는 軍事權門으로 이해하는 시각에 따라 정치의식으로서 ‘武威’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 전자가 지역의 자립성을 주목한다면, 후자는 왕조국가로부터의 위임을 강조한다. 한편, 군사권문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동국의 武士政權으로서 일정한 자립성과 독자성을 가진 권력으로서 막부의 ‘무위’를 파악하는 절충적인 이해도 있다. 鎌倉時代의 ‘무위’에 대해서 近世의 ‘무위’와의 격절을 강조하는 시각과 양자의 연결을 찾으려는 시각이 있다. 전자는 鎌倉時代의 국가의식을 ‘神國’의식을 중심으로 파악하고 ‘무위’를 낮게 평가하는 반면, 후자는 ‘무위’를 국가의식으로 적극 평가하고 ‘신국’과 ‘무위’의 결부를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는 鎌倉時代 무사와 무사정권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차가 가로놓여 있다.

      • KCI등재후보

        몽골의 일본 침략 : 연구사적 고찰과 교과서 비판

        남기학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2011 한림일본학 Vol.0 No.19

        本稿は、13世紀末の蒙古襲来という歴史的事件についての日本と韓国での主要な研究動向を考察し、日本の現行中学校歴史教科書に記述されている関連内容を批判的に検討したものである。日本における研究は戦後一時中断されたが、おおよそ1960年頃から再び活発になり始めた。東アジア史的視角から日本史を照明しようとする歴史学界の新しい潮流と、鎌倉後期の日本の歴史を総体的に捉えようとする試みが現れた。最近、蒙古襲来研究の主な特徴は、東アジアの中で日本を眺める見方が一層多様かつ細密になったことである。広い意味での文化交流史の深化、斬新な13ㆍ4世紀アジア歴史像の提示、新資料の発見による国際情勢のダイナミックな把握がなされている。一方、韓国では、蒙古襲来を基本的に高麗ㆍ元関係史の枠組の中で捉えてきたが、最近、この事件を日本史の立場から取り上げた専論が現れつつある。また、韓日関係史における蒙古襲来の位置づけ、倭冦との歴史的関連性、三別抄の軍事的ㆍ外交的動き、九州地域の動向などの研究が行なわれている。日本の中学校歴史教科書は東アジア史的視角の研究成果を取り入れようとしたものと、戦前の主流だった戦争史的な見方に近寄っているもの、2種を比較分析した。前者は、その試みをある程度評価できるが、もう少し、国際関係について詳しく叙述する必要がある。後者は、かつて軍国主義時代に通用された虚構の武士像、「神風」と結び付いた神秘主義的な神国思想、そして、北条時宗に対する戦争英雄史観が窺われる。 The study examines the major trends of the historical research into the Mogol invasion on Japan(which happened in the late 13th century) conducted by Japan and Korea, and takes a critical look at its relevant contents in the existing middle school textbooks in Japan. Though interrupted for a while after World War Ⅱ, the Japanese research on the invasion became active again in about 1960. There appeared two trends;one was to view the Japanese history from a perspective of East Asian history; the other tried to grasp the Japanese history of the late Kamakura era in its entirety.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recent research on the invasion is that the approach to Japan is getting more wide and detailed as it places itself in the history of East Asia. For example, there have appeared the deepening of the history of cultural exchange in a wide sense, the novel historical presentation of Asia in the 13th and 14th century, and the more dynamic understanding of international situation thanks to the discovery of new data. Meanwhile, Korea has considered the Mongol invasion on Japan basically from the perspective of the relational history of Goryeo(高麗) and Yuan(元) for a long while, but there has recently appeared a self-contained study where the invasion is dealt with from an angle of the Japanese history. And various approaches are now underway; the study on the significance of the invasion in the relational history of Korean and Japan, and on its historical relation with Japanese pirates(倭寇); the research into the military and diplomatic actions of Sambyeolcho(三別抄) and into the conditions and movement in Kyushu. The study takes two Japanese textbooks as object of comparison and analysis; one is a textbook which tries to incorporate the results obtained through the perspective of East Asian history, and the other is one whose 몽골의 일본 침략 33viewpoint comes close to that of the history of war, which was a main stream before World War Ⅱ. The former can be considered relatively valuable, but it needs more detailed information about the international relati... 본 논문은 13세기말 몽고의 일본침략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하여 한국과 일본에서 이루어진 기존의 주요 연구동향을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행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기술 관련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 분야의 연구가 전후 한 때 중단된 적도 있으나, 1960년경부터 다시 활발한 기조를 보인다. 특히,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일본사를 조명하고자 하는 일본 역사학계의 새로운 기조와 가마쿠라 후기의 일본 역사를 단면적이 아닌 총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가 등장하였다. 최근 이루어진 일본의 몽고침략에 대한 연구의 주요한 특징은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일본을 바라보고자 하는 시각이 한층 다양하고 세밀해진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문화교류사의 심화 또는 참신한 13ㆍ4세기 아시아역사상의 제시라고 할 수 있으며, 새로운 자료의 발견에 의해 국제정세의 다이나믹한 파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국내에서는 기본적으로 일본의 몽고침략에 대해 고려와 원의 관계사라는 틀에서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최근 일본사의 입장에서 다루는 논문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한일관계사에서 몽고의 일본침략의 위상과 왜관과의 역사적인 관련성, 그리고 삼별초의 군사 및 외교적 움직임과 큐슈 지역의 동향 등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동아시아사적인 시각의 연구성과를 반영하려고 하는 부류와 2차 세계대전 전에 주류를 이루던 전쟁사적인 견해에 가까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교과서의 2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의 시도는 어느 정도 평가를 할 수 있다고는 하나 아직 국제관계에 대한 상세한 서술이 갖추어질 필요가 있다. 후자는 아직도 군국주의시대에 적용되었던 무사상에 대한 허구로서의 “신풍”과 연결 지으며 신비주의적인 신국사상과 호조토키무네에 대한 정쟁영웅사관이 그대로 엿보인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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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吾妻鏡』에 보이는 ‘武威’의 諸相

        남기학 진단학회 2012 진단학보 Vol.- No.116

        본고에서는 종래 주목하지 않았던『吾妻鏡』의 ‘武威’에 관한 용례를 분석함으로써 鎌倉幕府의 지배이념의 하나를 파악하려고 했다.『吾妻鏡』에는 武士의 武勇을 상찬하고 있는 곳이 많다. 그것은 주로 막부에 대한 충성과 奉公을 암묵의 전제로 하여 戰士로서 무용을 떨치는 경우를 가리켰다. 御家人 무사의 무위는 때로는 윤리적․추상적으로 이상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사 개인의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위해 莊園公領制 질서를 어지럽히는 폭력행위는 朝廷과 幕府에 의해 억제되어야 할 부당한 ‘私武威’로 간주되었다.『吾妻鏡』은 領主로서 무사의 私的인 이익이나 개개의 무사 가문의 명예를 위한 무위를 부정하는 한편, 국가(조정)를 수호하는 무위의 公的 역할을 자임하고 또 그것을 강조하고 있었다.『吾妻鏡』이 무사의 무용을 상찬한 것은 무사의 무예가 무사정권의 아이덴티티를 이루는 바탕이었기 때문이다.『吾妻鏡』은 막부가 본질적으로 무력에 입각한 지배권력임을 역설하고 있는데, 이것은 무사정권으로서 막부의 자기 인식 내지 자기 주장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막부는 조정과 寺社勢力에 대해서 무위를 과시․현양하기도 했다. 나아가『吾妻鏡』은 외국(高麗)에 대해서 무사 및 무사정권의 무위를 현양한 것을 자부심을 가지고 기술하고 있다.『吾妻鏡』에 대해서는 ‘撫民’의 유교적 통치이념에만 주목해 온 경향이 있지만, ‘『吾妻鏡』 다시 읽기’를 통해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吾妻鏡』에는 막부의 北條氏의 정치사상인 ‘무민’과 함께 현실적인 지배의식인 ‘무위’가 투영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무민’과 ‘무위’는 막부의 지배이념을 지탱한 두 개의 축이었으며,『吾妻鏡』의 핵심 주제도 여기에 있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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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사학사에서 신황정통기의 위치

        남기학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2020 동아시아 문화연구 Vol.83 No.-

        I tried in this article to reveal the special character of Jinnōshōtōki as a historical book and to establish its position clearly in the history of Japanese historiography. I looked at its nature especially as compared with Gukanshō. Jinnōshōtōki and Gukanshō had appeared in the midst of a newly rising trend of Japanese historiography after the 11th century. Breaking away from the ancient convention of historiography in Chinese style of writing, these books not only provide a concrete description of the history of Japan in Kana but also suggest their own interpretation and critical perspective. Although both are based on chronology, Gukanshō incorporates the chronology into its overall unique system while Jinnōshōtōki depends entirely upon its chronological narrative form. Gukanshō leaves out the description of the Age of God as it regards its existence as self-evident, but Jinnōshōtōki gives the Age of God profound significance as the origin of Japanese history, and describes it with great care accordingly. Kitabatake Chikafusa tried to show the principles that could encompass both the Age of God and the Age of Human Emperors, aiming ultimately at absolutizing and mystifying the legitimacy and authority of the Southern dynasty. The two books also differ in their historical awareness. Jinnōshōtōki expresses optimistic confidence in the future in that it would be possible to overcome the current chaotic state and to restore the original correct state, even though Chikafusa considered his age as ‘the end of the world’. It is in stark contrast to Gukanshō, which accepts the contemporary situation as a given, so gropes for a realistic alternative. Furthermore, Jinnōshōtōki criticizes actual politics and looks at history based on a specific political ideology of Confucianism. It is quite far in attitude from Gukanshō, which seeks its guidance from empirical understanding of historical facts. Of course, it should be noted that, in Jinnōshōtōki, the Confucian ideology gets settled very firmly in the Shito system. Though placing emphasis on moral responsibility and also considering human moral behavior as very important, Chikafusa thought that such moral demand itself is ‘divine will’ and human history unfolds itself according to this mysterious ‘divine will’. 이 글에서는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의 사서로서의 성격을 규명하고 일본 사학사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를 정확히 자리매김하려고 했다. 특히 우관초(愚管抄)와의 비교를 염두에 두면서 정통기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정통기는 우관초와 더불어 11세기 이후 일본 사학사의 새로운 흐름 속에서 탄생하였다. 두 사서는 고대 이래 한문체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일본어 가나로 일본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기술하면서 독자적인 해석과 비판을 전개하고 있는 사론서이다. 정통기와 우관초는 모두 연대기를 기초로 하지만, 우관초가 전체적으로 독특한 체제 속에 연대기를 자리매김하고 있는 반면, 정통기는 연대기적 서술형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우관초는 그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여기고 신대(神代)의 기술을 생략했지만, 정통기는 신대에 일본 역사의 근원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심혈을 기울여 기술하고 있다. 기타바타케 지카후사(北畠親房)는 신대와 인황(人皇)의 시대에 통하는 원리를 제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남조(南朝)의 정통성과 권위를 절대화․신비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두 사서의 차이는 역사의식에서도 나타난다. 정통기는 지카후사 자신이 살던 시대를 ‘말세’로 인식하고 있지만, ‘말세’인 현재의 혼란한 세상을 극복하여 본래의 올바른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확신을 피력하고 있다. 우관초가 그것을 일단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정통기는 유교라는 특정한 정치이념에 입각해서 현실의 정치를 비판하고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역사사실에 대한 경험적 이해를 통해 지침을 구하려고 하는 우관초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다만 정통기에서는 유교이념이 신도(神道) 사상과 결합된 형태로 신도적 체계 안에서 수용되고 있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지카후사는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역사에서 인간의 도덕행위를 중시하고 있지만, 그러한 도덕적 요구 자체가 ‘신의 뜻’이라고 보고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역사 자체가 불가사의한 ‘신의 뜻’에 따라 전개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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