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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한국생태환경사학회 2021 생태환경과역사 Vol.- No.7
지난 밀레니엄의 기후변동에서 11세기 동아시아의 기후변동은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을까? 이 글에서는 한・중・일 3국의 11세기 기후변동연구를 중심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몇 가지 논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에서 11세기 기후변동에 대한 인식은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기후학자 쭈커쩐(竺可楨)이 1000~1200년을 제3차 한랭기로 규정한 이래로, 그의 관점은 이후의 기후변동연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쭈커쩐은 중국에서는 유럽과 같은 중세온난기(대체로 900~1300)가 존재하지 않았고, 대신에 수당온난기(600~1000)가 존재했음이 주요한 특성이라고 했다. 1990년대 만쯔민(滿志敏)은 쭈커쩐의 이런 관점에 의문을 품고, 다양한 문헌 증거들을 수집하여, 11~13세기가 온난했음을 밝혔다. 이를 통해서 중국에도 중세온난기가 존재했음을 증명했다. 이것을 계기로 쭈커쩐의 관점은 새로운 보완과 수정이 이루어졌다. 둘째, 중세온난기(MWP)와 지구온난화(GWP)를 둘러싼 논쟁이다. 11세기 기후변동의 중요성은, 원하던 그렇지 않던, 이것이 오늘날의 지구온난화 논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2001년 IPCC 제3차 보고서에서 마이클 만(Michael Mann)의 ‘하키 스틱(Hickey Stick)’ 그래프를 지난 밀레니엄의 기후변동으로 채택한 이후에, 중세온난기의 존재는 다시 문제가 되었다. 많은 연구를 거쳐, 중국학자들은 대체로 밀레니엄 동안 중세온난기, 소빙기, 20세기 온난기라는 전형적인 기후변동이 존재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한다. 중세온난기 동안 일부지역은 오늘날보다 더 온난했다고 보기도 한다. 11세기는 그 논쟁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다. 셋째, 동아시아의 11세기 기후변동에 대한 평가이다. 중국과 달리, 문헌자료와 대체자료가 부족한 한국과 일본에서 역사시대 기후변동연구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최근의 연구를 보면, 11세기가 온난했다는 데에 대해서는 같은 의견을 보인다. 수재・한재와 같은 자연재해도 빈번했지만, 다른 시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태였다고 평가된다. 이런 사실은 동아시아에도 ‘중세온난기’가 존재했으며, 한랭했던 시기보다 훨씬 안정된 상태였음을 말해 준다.
김문기 한국기술교육대학교 2003 論文集 Vol.10 No.1
The major concern in reducing the total machining time of a sculptured surface is to reduce the machining time of the rough cutting process.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develop the strategy of tool path generation and to find the optimal tool path pattern with the proper tool sizes in rough cutting operations. Three machining processes such as primary cutting, intermediate cutting and trim cutting are suggested and tool path patterns are developed for each process. Then, the methods to find the optimal tool path patterns with the proper tool sizes are developed to reduce the production time. The effectiveness of the proposed method is demonstrated through simulation study.
Ph. J. Spener의 설교를 통한 17세기 독일 루터교회의 개혁
김문기 국제기독교언어문화연구원 1999 기독교언어문화논집 Vol.3 No.-
Dr, Moon Kee. Kim. 1999. A Renewal of German Lutheran Church through Ph. J. Spener's Preaching. Collected Papers on Christian Language Culture. Since the Reformation, the history of preaching has had a great meaning on Church history and the history of theology. In the 16th century, through Luther's Reformation, the German Lutheran Church was in the process of transitioning from a "sacraments centered church" to a "preaching centered church". In the "preaching centered church," preaching plays the most important role in Protestant worship services. The preaching mediates between God's language and man's language. From the beginning, the Christian Church communicated the Word of God through human languages. With this in mind, it seems that the Reformation has a correct understanding of the importance of language in the Church history. Also, the Pietism movement, which arose in the 17th century from the German Lutheran Church, gave preaching an important position in the worship service. Following the tradition of the Reformation, Philipp Jakob Spener(1635-1705) founded German Pietism in order to renew the Church with Biblical preaching. His preaching was based on the form of the preaching of Lutheran Orthodoxy: exordium, interpretation of text, and dogmatics. Contrary to Lutheran Orthodox preaching, Spener avoided the theological controversies that existed among the Lutheran theologians. The words of his preaching were not pedantic and difficult, but simple Biblical words. In his representative work, Pia Desideria (1675), Spener proposed the renewal of the Church through the Word of God. His proposal agreed with the spirit of the Reformation. Specter recognized that the renewal of the Church could be continued by the Word of God preached only by the Biblical words. (Professor of Pyongtaek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