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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l-free synthesis and analysis of enzymes having industrial implications
김동명 한국공업화학회 2016 한국공업화학회 연구논문 초록집 Vol.2016 No.1
While microbial cells have widely been used for the production of recombinant enzymes, the use of living cells sets intrinsic limitations in numerous dimensions including the throughput of process and choice of assay substrates. In addition, intracellullar conditions are often incompatible with proper expression and folding of target proteins. These limitations associated with cell-based expression can be effectively overcome by employing cell-free protein synthesis as an alternative expression platform. Not being subject to the constraints of maintaining cell viability and intact cell membranes, cell-free protein synthesis offers greater flexibility in designing expression and screening procedures. In this study, we will discuss different approaches to harness the advantages of cell-free synthesis for efficient production of enzymes that have industrial implications in different sectors of industrial biotechnology.
김동명 국민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2003 社會科學硏究 Vol.16 No.-
본고는 제1차 세계대전 종결 후 파리강화회의를 거쳐 워싱턴회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동북아의 새로운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을 분석하여 그 역사적 성격을 규명했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를 위해 열린 파리강화회의에서 다루어진 동북아문제를 검토하고, 다음에 새로이 동북아질서로 자리 잡는 워싱턴체제의 구축 과정과 그 내용을 분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편된 동북아국제질서의 특징과 한계를 밝힘으로써 그 역사적 성격을 명확히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의 팽창에 의한 식민지 쟁탈전으로서 총력전의 양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전쟁 종결 후 재편되는 국제질서는 식민지·반식민지 문제를 해결하고 제국주의 세력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파리강화회의는 세계적 규모에서 이러한 과제를 처리하지 못하고 동북아에서의 질서의 재편은 워싱턴 회의에 넘겨졌다. 워싱턴체제에 의해 재편된 1920년대 동북아국제질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치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미국과 일본이 주로 중국에서의 권익을 둘러싸고 중국의 내셔널리즘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제국주의 열강간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성립한 것이었다. 그 결과 재편된 동북아국제질서는 양국 간의 동맹에 의한 세력범위 설정주의를 부정하고 다국 간의 국제협조체제를 수립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기존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권익은 보호되었으며 중국의 요구는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한 혁명외교를 표방한 소련이 질서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1920년대 동북아국제질서는 안정된 유지를 어렵게 하는 여러 한계를 안고 있었다. 즉, 협조체제의 위협을 타파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반이 없었으며, 중국 등 피지배지역으로부터의 내셔널리즘에 대한 배려를 결하고 있었고, 질서에서 제외된 소련이 그 내셔널리즘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며 질서에 도전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1920년대 동북아국제질서는, 실제 전개에 있어서 제국주의 국가간의 이해관계의 충돌이 생기고 내셔널리즘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결국 1931년 일본의 만주사변에 의해 질서는 붕괴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