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알렉세예프와 아이바조프스키: 돌과 물의 풍경화

        권정임 ( Jyoung Im Kwon )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13 슬라브연구 Vol.29 No.3

        본 논문은 19세기 전반 러시아 고전주의 풍경화와 낭만주의 풍경화를 각각 대표하는 두 화가인 알렉세예프와 아이바조프스키를 다룬다. 알렉세예프는 가장 뛰어난 러시아 도시풍경화가들 중 한 명으로서, 그의 풍경화는 인간의 건축과 자연과의 고요한 조화와 소박한 시적인 분위기를 특징으로 삼는다. 반면 아이바조프스키는 러시아 해양화가로서, 자연과의 극적인 만남을 추구하면서 하나의 화폭에 자연의 강력한 힘과 인간의 무기력함을 동시에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화가 알렉세예프의 풍경화에서는 자연의 정복과 쟁취의 결과로 이루어낸 인간의 총체적이고 강고한 문화의 상징으로서의 ``돌``의 이미지를 살펴본다. 알렉세예프의 그림에서 페테르부르크는 숙명적인 홍수와의 투쟁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한 돌의 도시로 나타나는 반면, 모스크바는 대화재이전 시대의 전통적인 흰 돌의 도시로 그려지고 있다. 이 화가는 돌의 형상을 통해 다양한 러시아 도시들의 영혼을 화폭에 드러낸다. 여타 러시아 화가들과는 달리 아이바조프스키는 소위 ``해양화``라는 드문 영역을 개척하였다. 그는 바다 자체가 가지고 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모습과 거기에 투영된 인간의 격렬한파토스를 화폭에 담으려 했다. 그의 작품세계를 관류하는 ``물``의 이미지는 매력적이고 투명한 고요함과 신비함에 닿아 있기도 하고,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과 치명적 아름다움과 혼합되기도 하며, 때론 애국심과 자부심으로 뭉쳐 있기도 하고, 원초적 자연의 근원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이 만든 단단한 돌의 문화를 파괴할 수 있는 거대한 자연력으로서의 물을 숭배한 화가가 바로 아이바조프스키였다. 돌과 물, 도시와 자연에 대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시각이 이 두 화가를 통해 오롯이 전달되고 있다. This article is devoted to two Russian landscape painters of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 F. Alekseev and I. Aivazovsky, who were representatives of the russian classical and romantic landscape painting respectively. Alekseev was one of the most prominent russian urban landscape painters, characterized by calm harmony of the human architecture with nature and modest poetic mood. And Aivazovsky was a russian marine painter, who tried to express the human powerlessness and the powerfulness of nature on a single canvas in search of a dramatic encounter with nature and passionate struggle between man and nature. In this article Alekseev` landscape painting is considered in connection with "a stone", which symbolizes human strong culture built by conquest of nature. Petersburg in Alekseev`s painting is the miraculous and victorious city of stone in the struggle with the fatal flood, while Alekseev`s Moscow is the traditional vibrant city of white-stone. This artist revealed the soul of different russian cities in the images of stone. Unlike other russian artists, Aivazovsky went down the narrow road, so-called "seascape painting". He tried to express the many seascapes and human pathos, inspired by them. The image of "water" in his works is connected with the charming and transparent silence of the mysterious sea, or a deadly beauty and overwhelming fear of the sea. Or it is connected with the pathos of patriotism and pride, or with the idea of the beginning of the mythological and primitive nature. Aivazovsky was a painter, who treated water with reverence just like the grandiose natural force, eliminating human strong culture of stone.

      • KCI등재

        러시아 정교 성화의 도상학

        권정임(Kwon Jyoung Im) 한국노어노문학회 2007 노어노문학 Vol.19 No.2

        이 논문은 10-17세기 러시아 성직자 및 성화작가들에 의해 그려진 러시아 정교 성화에 대한 도상학적 분석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화는 신학적 유토피아를 묘사하거나 재현한다. 성화가 재현하는 신학적 유토피아는 삼위일체가 조화로운 천상의 세계요, 천사와 사도, 예언자, 신자들이 영원과 구원을 얻는 세상이다. 성화의 근원적 문헌들로는 성서, 종교 문헌, 연대기, 민간전승 등이 있으며, 이 중 특히 성서가 그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된다. 러시아인들은 성서의 권위가 정교 성화에 그대로 전이된다고 믿었으며, 성서의 권위가 내재된 성화 속에서 그들은 신비스러운 종교적 힘과 깊은 영성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정교 성화의 깊은 영성은 종교 텍스트와 민간전승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종교적 영성을 묘사하기 위해 성화작가들은 상징과 알레고리라는 미적 장치를 사용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십자가,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붉은 보혈 등이 상징의 예라 하겠다. 한편 비둘기가 성령을, 노인이 성부를, 오란테 형상이 경건함을 뜻하는 알레고리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성화는 비잔틴 성화로부터 출발하여 그 유구한 역사를 통해 러시아적인 성화로 탈바꿈하게 된다. 기존의 기독교적 상징과 알레고리들이 러시아 정교 성화에서 어떠한 도상학적 변천을 겪는지에 대해 살펴보면, 이러한 러시아 성화의 장구한 변화를 ‘탈비잔틴화’, 혹은 ‘여성성의 지향’으로 정의할 수 있다. This article is devoted to iconographical analysis of russian orthodox icons, which were painted by russian monks or iconographers during 10-17th centuries. In general icons embody and depict teological utopia, where Trinity harmonically reigns, and there angels, prophets, apostles and all believers gain eternal life. Russian people strongly believed that biblical authority prevails in the orthodox icons. And they also thought that mysterious, miraculous strength and deep spirituality exist in them. By studying the old religious texts or folklore, we are able to understand secret spirituality of russian orthodox icons. In order to depict this spirituality, the iconographers used such aesthetical devices as symbols and allegories. There are some examples of these symbols: Cross is the symbol for Christ, red blood is for Christ's sacrifice, etc. And there are also instances of allegories: Dove is the allegory of the Holy Spirit, old man is of the Holy Father, orant figure is of piety etc. These instances of allegories have two subcategories: fable and personification. Russian icons, derived from byzantine icons, gradually gained national characters and specifics, which are called like ‘preference or emphasis on feminality’.

      • KCI등재

        러시아 역사화

        권정임(Kwon Jyoung-Im) 한국노어노문학회 2013 노어노문학 Vol.25 No.2

        모든 역사화는 신화, 전설, 성서, 역사 등의 소재를 빌어 각국의 역사적 순간들, 혹은 역사의 계기적 순간을 담는다. 러시아 역사화 역시 러시아 역사의 계기적 순간들을 담고 있으며, 그 역사적 순간의 상징적 · 알레고리적 의미를 부각시키거나, 구체적 사건의 사실적 묘사나 지배적 정서의 표현을 지향한다. 18세기 후반 러시아 역사화의 비조인 로센코로부터 시작되어 19세기 말 네스테로프에 이르는 시간 동안의 러시아 역사화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라는 시대를 지배하는 세계관을 통해 다양한 역사적 이데올로기와 지배적인 주인공들의 변천을 보여주었다. 미술아카데미는 특히 러시아 역사화의 성립과 발전 과정에서 주요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리스적 중세 러시아에서 라틴적 근대 유럽으로 러시아 역사발전의 벡터를 옮기던 시기, 미술아카데미는 문화예술의 정체성과 이데올로기 확립을 주도하였다. 미술아카데미는 회화 장르에서 역사화의 지위를 확고히 하면서, 러시아 제국의 확장과 통합, 번영에 관한 정치적 · 사회적 서사를 역사화의 소재로 선호하였다. 역사화에서 가치의 위계와 정전을 정하는 구성자로서 러시아 제국은 그 이데올로기의 발현체로서 역사화를 십분 활용하였던 것이다. 미술아카데미의 영향력이 쇠퇴해감과 동시에, 러시아 사회에 태동한 새로운 역사이데올로기들은 역사화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초반 러시아 역사학과 문헌학, 고고학의 발달로 자국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정립이 있은 후, 19세기 후반 촉발된 슬라브파와 서구파간의 역사논쟁은 러시아 역사화의 미학적 회고주의와 정치윤리적 진보주의라는 사뭇 다른 경향성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 역사화의 발전단계에서 역사의 주체, 혹은 역사의 생산자에 대한 인식도 변화를 보였다. 역사의 구성자로서 국가, 제국, 지배자, 영웅 등이 역사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던 시기가 있었던 반면, 역사의 객체이자 소비자에 머물러 있던 민중들에 대한 복권(復權)이 이루어지던 시기도 도래하였다. 민중에 대한 형상 역시 처음에는 태생적 환난과 역경에 처한 ‘고통의 민중상’을 거쳐, 러시아땅의 웅비와 잠재력, 생명력을 통한 ‘구원의 민중상’으로 완성되어간다.

      • KCI등재

        러시아 유라시아주의

        권정임(Kwon Jyoung Im) 한국노어노문학회 2005 노어노문학 Vol.17 No.1

        Russian eurasianism has begun among the russian emigration groups in 1920-s. G. Vernadskii, N. Trubetckoi, L. Gumilyov were the members of this new philosophical school. They reconsidered the influence of Mongol on russian society during 13-15 cc. They reversed stand-firm opinions on the mongolian reign, which had been considered without exception as negative, shameful and loathful period in the russian history. Against all these traditional views, eurasianists thought that Rus of Moscow period, having actively accepted mongolian systems of governing nations, army, tax etc., tried to obtain all the territory, conquered by mongolian empire. According to the eurasian theory, Moscow Rus, being officially the last and the only successor of Constantinople, at the same time have goaled to the eurasian superpower. Eurasianism revealed the very asian sources in the russian ideas and soul, which had always persisted to belong to the european world. Therefore Eurasia had been regarded at first as the imaginary geography, and then later as the real one to russians. In the past eurasian territory had been considered for russians as alien, unfamiliar and pagan world. Russian every time has been tried to belong to the european world, hence she has despised the asian sources and eurasian world. But as time goes by, Russia stood as eurasian power both territorially and spiritually, though she officially and deliberately had orientation toward Europe. Eurasianism revealed the asian sources, hidden in the very europeanized russian mind and ideas.

      • KCI등재

        러시아 풍경화 - 쉐드린에서 레비탄까지 : 풍경의 역사, 토포스, 내면, 정치사회학, 시선

        권정임(Kwon Jyoung Im) 한국노어노문학회 2009 노어노문학 Vol.21 No.1

        본고는 18세기 후반 - 19세기 후반에 이르는 약 백 년간의 러시아 풍경화에 대한 글이다. 서구 풍경화와 맥을 같이하지만 자국의 고유한 특성을 배태한 러시아 풍경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러시아 풍경화의 역사, 토포스, 내면, 정치사회학, 시선이라는 5개의 범주를 정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러시아 미술에서 풍경은 중세 이콘화의 일부로 처음 등장했으나 그 역할은 미미했다. 18세기 후반 페테르부르그를 그 주요 토포스로 삼은 베두타 풍경화로 정식 출발하게 되는 러시아 풍경화는 실베스트르 쉐드린의 로마와 소렌토를 토포스로 하는 이탈리아 풍경화, 이어서 등장하는 19세기 초중반 스위스를 비롯한 이국적 장소를 토포스로 하는 아카데미 화파, 그리고 19세기 후반 모국 러시아를 토포스로 하는 사실주의 화파의 시대로 이어진다. 각각의 시대는 그 시대를 증거하는 시각과 사회정치학을 지니게 된다. 베두타 화가들의 시대는 ‘지도적 시선’과 ‘제3로마로서의 페테르부르그’의 형상을 담아내고자 했으며, 베네치아노프 화파는 고국 러시아의 자연을 아름답고 조화로운 무갈등의 사회구조 속에서 보여주고 있으며, 아카데미 화파는 이국적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기 위한 ‘만화경적 시선’과 여행가적 취미를 선보이고 있다. 한편 19세기 후반 등장하는 사실주의 화파는 러시아 자연에 대한 ‘과학적 시선’으로 출발하여 종국에는 ‘철학적 시선’으로의 도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국가정체성’을 정립하는 자연풍광들이 등장함으로써 러시아 풍경화는 자신의 풍경을 획득하게 됨도 알 수 있다. 풍경이 지니는 내면적 변화 역시 시대적 흐름을 쫓아간다. 베두타 화가들이 그린 러시아 제국의 젊은 수도에는 이들 화가들이 쏟아 붓고 있는 내밀한 애정과 관심을 ‘서정적 모두스’로 읽어낼 수 있으며, 아카데미파 화가들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들에서는 ‘풍려적 모두스’를, 그리고 사실주의 화가들에 이르러서는 ‘서정적 모두스의 회복’과 더불어 ‘철학적ㆍ종교적 모두스’로의 지향을 확인할 수 있다.

      • KCI등재

        페도토프와 페로프: 러시아 풍속화의 1840년대와 1860년대

        권정임 ( Jyoung Im Kwon )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13 슬라브연구 Vol.29 No.2

        본 논문은 19세기 중반 러시아 풍속화의 대표자인 페도토프(П. Федотов)와 페로프(В. Перов)의 작품세계를 그들이 활동한 시대인 1840년대와 1860년대의 시대적 특성 속에서 살펴보기 위한 글이다. 러시아 문학계에서 푸시킨의 예브게니, 혹은 고골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와 같은 ‘작은 인간’ 부류들이 19세기 초반에 일찍부터 등장했다면, 러시아 미술계에서 이같은 부류의 인간의 출현은 상당히 늦게 이루어졌다. 페도토프와 페로프는 러시아 문학에서 시작되었던 이러한 ‘작은 인간’의 전형들을 화폭으로 옮겨오면서 러시아 풍속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840년대를 자신의 주요 활동무대로 삼은 페도토프는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띠며 자신의 화폭에서 당대의 구태와 악습을 실컷 조롱했다. 그는 자신의 많은 그림들에서 시대의 모습을 풍자한 것에 머물지 않고, 자기 자신을 희화화하며 희극배우의 기질을 여지없이 발휘하였다. 그는 시대의 미묘한 변화와 변화의 방향에 대한 도덕적 벡터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반동적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자신의 재능을 끝내 다 펼치지 못한 불운의 풍속화가였지만, 러시아의 비판적 리얼리즘 미술의 기초를 닦은 화가로서의 그의 묵직한 존재감은 러시아 미술사에 여전하다. 1860년대를 자신의 주요 활동무대로 삼은 페로프는 바자로프주의자 ? 혁명주의자로의 면모를 띠며 병든 시대를 세밀히 진단하고 그 환부를 도려내고자 메스와 채찍을 들었다. 페도토프식의 단순한 조롱과 풍자에만 머물지 않고,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가 거친 비판과 독설적인 폭로를 추구했다. 혼외자로 태어나 평생 예술적 반골의 삶을 추구한 페로프는 사회적 억압자들과 피억 압자들을 주시하며, 시대의 악에 대한 분노와 시대의 고통에 대한 슬픔을 화폭에 담아내었다. 그 가 추구한 러시아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의 시선은 곧이어 도래한 이동전람회파의 회화적 근간이 되어주었다. 시대의 병적인 징후를 포착하고 변화의 희망을 키워낸 페도토프와 페로프의 풍속화를 통해 러시아 미술은 시대의 도저한 흐름인 리얼리즘의 물꼬를 트게 되었다. 시대는 그들의 그림을 통해 새로운 눈과 의식을 얻게 되었다. This article is devoted to the representatives of the Russian genre painting of the mid 19th century - P. Fedotov and V. Perov. At that time, while in the circles of Russian literature appeared ``little man`` as Pushkin`s Evgenii or Gogol`s Akakii Akakievich, in the circles of Russian art of painting has appeared much later such a ``little man``. Fedotov and Perov, who have started to portray such people, belonging to the types of ``little man``, opened a new era of Russian genre painting. Fedotov had liberal character and laughed at old and bad customs of the his times. Fedotov, who had the temperament of the comic artist and liked self-caricature in his many paintings, was regarded as Russian Hogarth and offered moral vector in connection with delicate changes of times and direction of these changes. Although he was a victim of a reactionary times of Nikolai I and couldn`t deploy his outstanding artistic talent, he left the big trace in the history of Russian realistic genre painting. Perov had radical nature and took the whip and the lancet to make the diagnosis of social disease and cut the sick places. He not only focused on a simple mockery and satire, but also went further, seeking sharp criticism and exposure of social injustice and evil. Perov, who was born as a illegitimate son, and has lived all his life of a nihilist, watched social types of ``the oppressors`` and ``the oppressed`` and portrayed the anger against evil, sadness and suffering of times. His fundamental negative viewpoints on the Russian society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future of the russian fine art school ``the Wanderers``. Genre painting of Fedotov and Perov showed not so much the sweetness and fragrance of his times, as the bitterness and the symptoms of the times and the hope of change for a better world. Thanks to them, the pictures of Russian genre painting was able to take part in the world realistic art.

      • KCI등재

        러시아 정물화: 테플로프로부터 콘찰로프스키까지 정물의 역사, 외연, 공간, 텍스트

        권정임(Kwon, Jyoung Im) 한국노어노문학회 2014 노어노문학 Vol.26 No.3

        본 논문은 18세기 초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러시아 정물화를 다룬다. 이 시기는 테플로프로부터 콘찰로프스키까지 약 2세기에 이르는 기간으로, 극단적인 자연주의에서 세잔주의로의 여정이기도 하다. 러시아 정물화를 이해하기 위해 정물의 역사, 외연, 정물의 기호학적 공간, 정물의 텍스트·콘텍스트·하부텍스트의 관계라는 큰 범주들을 통해 살펴본다. 러시아 정물화의 역사는 표트르 대제의 서유럽 화가 초빙으로 시작되어, 당대의 인식론적 파토스를 충족시키는 식물학적 정물화를 통해 ‘쿤스트카메라적 공간’을 형성한다. 이후 러시아 최초의 정물화가들이 그린 극도의 자연주의적 정물화는 ‘귀족 서재적 공간’을 형성하며, 19세기 초반 정물화가들은 ‘지주 장원의 공간’의 세분화한 부엌의 공간, 농노의 공간 등을 보여주며 당대의 소박한 일상을 드러낸다. 19세기 후반의 정물화는 독립적인 장르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고, 초상화·풍속화·풍경화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함으로써 그 외연을 확인한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러시아 정물화는 그 만개기를 맞이하여 인상주의·상징주의·회고주의·세잔주의와 같은 다양한 화파를 양산하며 각각의 회화적 강령에 걸맞은 기호학적 공간을 보여준다. 러시아 정물화는 정물 텍스트에 집중한 시기와 정물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콘텍스트가 압도한 시기, 혹은 정물에 숨어있는 상징이나 은유를 내포하고 있는 하부텍스트에 집중한 시기로 구별될 수 있다. 정물이 담지한 각각의 텍스트·콘텍스트·하부텍스트간의 상호관계를 살펴봄으로써, 러시아 정물화의 시대별·화파별 독특한 성격이 규명된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