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耿鐵華(Geng TieHua) 한국고대사학회 2013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70
集安高句麗碑는 2012년 7월 29일 마선향 오조촌 농민 마사우빈(馬紹彬)에 의해 마선하 서쪽 강변, 옛 다리와 새 다리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집안 고구려비가 세워져 있던 자리는 원래 고구려 시대 수묘인 연호의 거주지역으로 보인다. 아마도 고구려왕릉인 천추묘의 수묘인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천추묘의 피장자는 광개토왕의 부친인 고국양왕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集安高句麗碑는 지금까지 발견된 첫 번째 규(圭)형 고구려비로서, 고구려인들이 중원 문물을 답습하여 동한(東漢) 이래 유행한 규형비 양식을 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비좌(碑座)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장부[?頭]와 맞물리는 구조를 가진 사각형으로 추측되는데, 이런 형태는 동한 이래로 유행한 비좌의 형태와 일치한다. 集安高句麗碑의 출토는 “오직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께서 모든 祖先王을 위해 능묘에 세웠다(唯國?上廣開土境好太王, 盡爲祖先王墓上立碑)”라는 廣開土王碑의 기록이 정확하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그러나 고구려에서는 광개토왕 이전에 비석을 세운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集安高句麗碑를 세울 때 고구려 國內에서 볼 수 있었던 중원인(中原人)들이 세운 관구검기공비(?丘儉紀功碑) 등을 참고하였을 것이라 추측된다. 集安高句麗碑 정면의 글자 수는 218자로, 예서체의 사육구(四六句) 문체이다. 비문에는 고구려의 기원, 건국와 왕위계승에 대한 기술, 제사에 관한 내용 등이 기술되어 있는데, 핵심은 수묘인 연호에 관한 제도 및 징벌원칙을 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비문에 보이는 ‘天道’라는 표현은 도교적 관용어가 아니라 선진(先秦) 제자(諸子) 문헌에서 많이 사용된 용어로, 비문의 해석은 “필시 천도를 부여받았다(必授天道)”로 해야한다. ‘天道’라는 용어를 도교적 관용어로 보아 도교가 고구려에 유입된 시점을 근거로 集安高句麗碑의 진실성을 부정하는 것은 고대 天道 사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集安高句麗碑는 문체가 간결하고, 내용이 풍부하며, 고구려적인 특징을 띤 어휘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이 비문의 내용은 후대에 광개토왕비 비문 찬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集安高句麗碑는 신뢰 가능할 뿐 아니라, 입비의 선례를 열었고, 법령 공포에 관한 단서를 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한편 集安高句麗碑 출토 후, 集安市 박물관은 곧바로 전문가팀을 구성해 현장 고찰과 연구에 착수했다. 이후 2012년 11월 5일, 中國 國家文物管理局과 吉林省文物管理局에서 공동으로 전문가 평가단을 구성하여 集安高句麗碑에 대한 감정을 진행하였고, 평가단은 이번에 새로 출토한 고구려비의 진실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첫째, 비석은 중요한 고구려 고분군에서 출토되었으므로 역사 유적과 주변 환경과 일치한다. 둘째, 비석의 형태는 규형인데, 東漢 이래 흔히 볼 수 있는 비석 양식으로, 이는 고구려와 중원이 문화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비문의 서체는 전형적인 예서이며, 광개토왕비보다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이다. 넷째, 비문의 내용은 광개토왕비와 서로 보완되며, 상호 입증되는 내용들이 있다. 다만 오래되어 문자 마모가 심각하다. 평가단의 최종 감정 내용은 2013년 1월 吉林大學 출판사에서 『集安高句麗碑』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