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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대 내부의 대장경 간행

        翁連溪,이경민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8 石堂論叢 Vol.0 No.70

        한 대부터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이후 대대로 불경에 대한 번역과 수집은 이미 중국 문화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구성 요소가 되었으며, 중국 민족 공통의 정신적 유산이 되었다. 대장경은 “일체경(一切經)”으로도 불리기도 하고 약칭으로 “장경(藏經)”, “결경(契經)” 또는 “삼장(三藏)”이라고도 한다. 즉 인도와 서역에서부터 전해져 번역된 대·소승의 경(經), 율(律), 논(論)과 성현들이 집대성해 놓은 대형 총서들로 불교 경전의 총집으로, 권질이 매우 방대하고 복잡하다. 송대 이전에 대장경은 모두 손으로 베껴 쓰는 형식으로 편찬되었다가, 5대 10국 시대의 민국(?國)의 임금 왕심지(王審知)는 “금니 은니 일만 여 냥”으로 4부의 ≪금은자대장(金銀字大藏)≫을 베껴 쓰기도 했는데, 많은 재화와 오랜 시간을 들였음에도 대량 생산을 하지 못했다. 목판인쇄술이 발명된 후 대장경의 인간이 가능하게 되었다. ≪불조통기(佛祖統紀)≫ 권43의 기록에 따르면 송나라 태조 개보 4년(971)에 “고품과 장종신에게 칙서를 내려 익주로 가 대장경판을 조각하게 하였다.(”勅高品·張從信往益州雕大藏經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처음으로 대장경을 간각한 기록이다. 그 이후에 여러 조대에 대장경이 간행되었는데, 예를 들면 요대에는 거란장이, 원대에는 원관장이, 명대에는 홍무남장, 영락남장, 영락북장과 티벳어 ≪감주이≫가 간행되었다. 청대로 접어든 후 청 왕조의 내부(內府)에서도 이전 왕조의 전통을 이어 받아 강희 8년의 티벳어 금니 필사본 ≪감주이≫를 시작으로, 강희 39년의 티벳어 ≪감주이≫, 옹정 2년의 티벳어 ≪단주이≫, 강희 59년의 몽고어 ≪감주이≫, 건륭 14년의 몽고어 ≪단주이≫, 건륭 3년의 한문 대장경 ≪용장≫, 건륭 59년의 만주어 ≪대장경≫을 티벳어 대장경인 ≪감주이≫와 ≪단주이≫를 시작하여 몽고어 대장경, 한문 대장경과 만주어 대장경 등 서로 다른 언어로 된 대장경을 인간하였다. 이로써 청대는 역대 왕조 중 가장 많은 언어로 대장경을 인간한 시대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청은 역대 황제들이 티벳 불교를 숭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민족들을 통합해야 하는 정치적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티벳어, 몽고어, 만주어 대장경의 간행은 그 본연의 종교적 의미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이민족의 지배층을 통치하고 융합하고 회유하는 하나의 도구로써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청의 역대 제왕들은 다민족 언어 대장경의 간행을 매우 중요시 하였다. 佛敎自漢代傳入中國經過歷代的傳布, 飜譯匯集編次久已成爲中國文化不可缺少的組成部分, 是我國各民族共同的精神寶藏。 自北宋開寶年間, 我國第一部漢文大藏經≪開寶藏≫后, 陸續刊刻有北宋≪崇寧藏≫、 ≪毗盧藏≫、 南宋≪資福藏≫、 ≪万壽藏≫、 ≪趙城藏≫、 元代≪元官藏≫、 明代≪洪武南藏≫、 ≪永樂南藏≫、 万歷≪嘉興藏≫。 淸代中央政府內府, 繼前朝的傳統繼續編刊了多部不同文種的大藏經, 但由于對每部大藏經的刊刻人員、 時間地点、 存世情況等問題多有不同論述, 現据淸內府?案與存世大藏經的情況做進一步考證, 將對淸代內府大藏經的刊刻有較明確的認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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