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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의 學者」와 「溫故知新」

        細野浩二 조선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 1999 전통문화연구 Vol.6 No.-

        작가인 오목관지는 「신간『인생의 목적』인터뷰」에서 명치유신 때부터 천황제나 국가주의를 잔존시키면서 서구문명을 받아들였던 ‘화혼양재’가 2차대전 후 ‘무혼양재’가 되었습니다. 이 전후의 자본주의 혹은 시장이 폭주한 결과가 버블경제의 파탄이기 때문에 역시 ‘혼 없는 재’는 잘못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화혼양재’가 ‘야랑자대’의 ‘대화혼’으로 일탈하여 붕괴한 것, 패전 후의 ‘경제대국’이 ‘야랑자대’에 빠져 붕괴한 것 등에 대해서는 이미 역사의 문법으로서의 전통에서 언급한 바 있다.

      • 歷史의 文法으로서의 傳統 : 傳統文化硏究所講演會原稿

        細野浩二 조선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 1997 전통문화연구 Vol.5 No.-

        그러나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그 이전에 전근대에 있어서도 중국 조선을 향하여, 또한 패전 후에 있어서도 ‘선진국’ 등으로 하여금 그 ‘야랑자대’화가 간헐적으로 현상하고 있는 데에서, 또 그것이 대외적 열등의식의 ‘피상토골’이라고 하는 도착적인 일득자족적 해방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에서, 나아가 그것이 성덕태자가 ‘십칠조헌법’에 ‘지혜가 자신보다 나을 때에는 곧 기뻐하지 않고, 재능이 자기보다 우수할 때는 즉 질투하는’(십사조) 본능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일본의 국민성에서 배양된 통폐라는 사실에서, 그러한 ‘자기들 자신’의 ‘국민성’의 개조를 최우선의 해결과제로서 직시하는 것이 요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 福澤諭吉도 ‘그 교제에 해가 되는 것은 원망보다 큰 것은 없다’고 하여 해결해야 할 일본인의 과제로 삼은 것은, ‘불선 가운데 불선한 것은 원망이라는 한 조항’이었던 것이다. 그 ‘원망은 마치 중악의 모태와 같아 인간의 악사가 여기서 말미암아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의시 질투 공포 비겁 따위는 모두 원망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그 내형에 보이는 바는 사어 밀어 내담 비계 외형으로 파열하는 바는 도당 암살 일규 내란으로 추호도 국가에 보탬이 되는 것이 없는’ 것으로 그것은 ‘비유하면 타인의 행과 나의 불행을 비교하여 나에게 부족한 바가 있으면 나의 상태를 개선하여 만족하는 법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타인을 불행에 빠뜨려 타인의 상태를 악화시켜 그것으로 피아의 평균을 이루려고 바라는 것과 같다. 소위 이 악으로 그 사를 바란다고 하는 것은 이것을 말한다’고 일본인의 고질적인 해소(방식)를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경종을 기록한 『학문의 권유』에 ‘明治 7년 1월 1일의 이야기’로서 ‘지금 일본의 상태를 보면 문명의 형은 진전되는 듯하지만, 문명의 정신인 인민의 기력은 나날이 퇴보로 향하고 있다. ……인민에게 독립의 기력이 없으면 문명의 형을 만들 뿐으로 무용의 장물일 뿐만 아니라 도리어 민심을 퇴축시키는 도구가 될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일본의 상태’와 다르지 않고 더구나 다름 아닌 ‘문명의 정신’이 ‘원망’에 조체되어 미확립의 ‘상태’로 정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명을 길러내야 할 임무를 밑은 학자로서 그 정신이 나날이 쇠퇴하는 것을 방관하여 이를 근심하는 자가 없는 것은 실로 장탄식해야 하며 도한 통곡해야 한다’고 福澤諭吉이 고발하고 있는 것도 현재 ‘일본의 상태’에 해당하며 그것도 ‘학자’의 위치에 있는 자에게 ‘독립의 기력’이 없고 ‘원망’에 사로잡혀 ‘문명의 정신’의 ‘퇴보’의 주역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원망’이 ‘인간의 언로를 막고 인간의 업작을 방해하는 등과 같이 인류천연의 움직임을 궁하게 하는 것’ 즉 ‘오직 궁한 일사’에 그 ‘원인’이 있음을 찾았던 福澤諭吉에게는 ‘언로를 막고 업작을 방해하는 일은 오직 정부만의 병이 아니다’고 하여 이미 이로부터 생기는 ‘원망질투’는 ‘전국의 인민 사이에 유행하는 것으로서 학자라고 해도 이를 면하기 어렵다’고 간파하였던 것이다. 거기에서 예를 들면 中嶋嶺雄이 ‘지금은 전전의 파시즘의 시대는 아니다. 학문의 자유가 손상될 염려는 없다. 오히려 이질적인 것을 배제하는 당파성이 문제이다’라고 하는데 그 ‘당파성’이란 ‘문아’에 무지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학문봉환’을 할 수밖에 없는 ‘범용’한 ‘도당’의 ‘원망질투’에 의한 대학 내 ‘파시즘’이며 그러한 ‘당파성’이 일상적으로 ‘학문의 자유’를 자손하고 있는 것으로 ‘전전의 파시즘’은 이러한 ‘당파성’을 단지 자기의 ‘학문봉환’의 기화로 삼아 정치적으로 유도한 것에 지나지 않았음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자기들 자신’의 ‘국민성’의 자기개조라고 하는 과제 해결을 방치하고 정신의 자유가 획득되는 일은 있을 수 없음이 명백하며 다라서 실현되어야 할 학문의 함수식도, 나아가서는 전통의 함수식에 대한 해명도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을 해결할 때까지는 ‘피상상골’식으로 흘러갈 수밖에 (단지 취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福澤諭吉의 ‘인민에게 독립의 기력이 없으면 문명의 형을 만들 뿐으로 무용의 장물일 뿐만 아니라 도리어 민심을 퇴축시키는 도구가 될 것이다’라는 몹시도 중요한 지적에 보이듯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렵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할 것도 없이 그 해방에 의해 비로소 ‘역사창조의 문법’으로서의 일본인의 의지(魂)의 회복이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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