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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준 한국박물관학회 2012 博物館學報 Vol.- No.23
한국박물관학회가 주최하는 제27회 박물관학 학술대회에서 기조발표를 하게 되어 영광 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기회에 문화재의 의의와 가치를 되새겨 보고 국외 소재의 문화재를 어떻게 볼 (할) 것인지의 문제에 대하여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졸견(拙見)을 밝혀보고자 합니다(안휘준, ?해외의 한국문화재?, ?한국의 미술과 문화?, 시공사, 2000, 183~195쪽 참조). 문화재의 유출과 환수의 문제는 한국이나 일부 특정 국가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수 많은 나라들과 유관한 범세계적 일이며 따라서 제가 이곳에서 언급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 에서 이해되기를 기대합니다.
안휘준 한국미술사학회 2012 美術史學硏究 Vol.274 No.274
Solgeo is the most representative painter of ancient Korea as witnessed by the brief biographical record in Samguk Sagi(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According to the record, he painted Old Pine-tree on the wall of the main hall, Hwangyong-sa Temple, Avalokitesvara at Bunhwang-sa Temple and Vimalakirti at Dansok-sa Temple, which attests that he excelled both in secular landscape painting and Buddhist fiqure painting. Of the works executed by Solgeo, the Old Pine-tree is the most well known among Koreans. The record on Solgeo in Samguk Sagi conveys that, confused of the painted pine-tree as a real one, different kinds of birds used to bump into the wall painting only to fall down. This suggests that the painting was extremely realistic, vivid, and colorful. Besides these rather vague and somewhat legendary stories, little has been clarified about his social status, active period, and artistic style of his painting. The author has attempted to pin down these issues on Solgeo as follows. First, he was not a monk painter but a secular artist. Second, he was a professional painter working at the royal academy of art, Jeonchae-seo(or Chaejeon)Third, he was most active in the eighth century, Unified Silla period Fourth, his masterpiece, the Old Pine-tree was executed in the manner of blue-and -green landscape painting firmly established by such artists as Li Ssŭ-hsűn and his son Li Chao-tao of T'ang China. Fifth, the Old Pine-tree was done on the outward surface of the eastern wall of the Central Main Hall, Hwangyoug-sa Temple, Gyeong-ju. 신라의 率居는 『三國史記』의 「列傳」에 올라있는 한국 古代의 유일한 화가이다. 그만큼 그의 비중은 크고 역사적 의의는 지대하다고 하겠다. 그는 寒微한 집안 출신으로 黃龍寺의 金堂에 老松圖를, 경주의 芬皇寺에는 觀音菩薩像을, 그리고 晋州의 斷俗寺에는 維摩像을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보면 솔거는 山水畵와 佛敎人物畵를兼長했던 화가였다고 볼 수 있다. 솔거의 작품들 중에서 老松圖는 각종 새들이 진짜 소나무인 줄 착각하고 날아들다 벽에 부딛쳐 떨어지곤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대표작으로 간주되었음이 분명하다. 그 작품이 지극히 사실적이고 氣韻生動하는 것이었음도 알 수 있다. 이러한 막연한 내용들 이외에 구체적으로 솔거가 어떤 身分의 인물이었는지, 그가 활동했던 시대가 古新羅와 統一新羅 중에서 어느 때였으며 몇 世紀였는지, 그의 화풍은 어떠했는지, 老松圖는皇龍寺의 三金堂 중에서 어느 금당의 어느 벽면에 그려졌었던 것인지 등의 문제들은 애매한 상태로남아 있다. 필자는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답변을 이 논문에서 제시하고자 시도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다. ⓛ 솔거는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畵僧이 아닌 俗人 화가로 신라의 도화기구였던 典彩署(혹은彩典)의 畵員이었다. ② 그는 古新羅가 아닌 統一新羅時代의 景德王代(742~765)인 8세기 중엽에 활약하였다. ③ 그의 대표작인 老松圖는 靑綠山水畵風으로 그려졌었다. ④ 老松圖는 皇龍寺의 中金堂 동쪽 外壁에 그려졌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안휘준,박준상,고명연 대한안면통증구강내과학회 1998 Journal of Oral Medicine and Pain Vol.23 No.1
In order to estimate the tooth-age by degree of attrition, the author has studied 605 stone models from 1996 to 1997. All of the attrition were classified and analyzed by 8 degrees. The result were as follows : 1. The degree of attrition in male was higher than that in female for same age group and especially, canine and first premolar showed the most prominent difference in sex. 2. The most severe attrition in posterior teeth was first molar followed by second molar, first premolar and second premolar in decreasing order of sequence. 3. The coefficient of correlation and relation equations by the degree of attrition were obtai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