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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울의 선교사역에 있어서 회심의 중요성에 관한연구

        정관용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47807

        Ⅰ. 성서적 회심 본 논문에서 말하는 성서적 회심을 A.정의, B.성경에 나타난 회심, C.교회사에 나타난 회심등의 순서로 살펴보았다. 먼저 회심의 정의는 (1)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으로서 회심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시며,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 되시는" 바른 신관을 정립하게 된다. 회심을 통해서 하나님은 기독교의 신앙의 대상자로서, 창조주이시요 생명의 주이심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또 그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2)이제까지의 죄를 뉘우치시고 "후회"하는 것으로 멀리 하나님을 떠났던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철저한 방향 전환이며, 그것은 새로운 방향 곧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정하는 방향 전환이다. (3)선교의 목표이다. 선교의 시작에도 회심은 목표이지만 최후의 선교 목표도 회심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회심은 언제든지 선교의 목표이다. 선교란 사람들의 마음 중심에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 분을 믿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복음전도는 회심자가 복음으로 변화된 구체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회심자는 생명을 얻은 자이며, 나아가 그는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신28;12, 요10:10). 다음으로 성경에 나타난 회심을 살펴보면, 구약에는 회심의 의미로서 shubh(□□□)와 Nacham(□□□)등이며, 신약에는 에피스트레포(ε`πιστρε`πω)와 메타노이아(μετα`υοια)등이다. 이러한 단어들의 공통된 의미는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자가 다시 뉘우치며, "후회"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Ⅱ. 바울의 회심과 선교 사역 1. 깨달음 깨달음은 회심을 촉진시킨다. 깨달음이 없으면 진정한 회심이 일어날 수 없다. 깨달음의 속도가 완만하든 급작스럽든 관계없다 또한 진리를 찾기 위해 사실들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깨닫게 되었든 번뜩이는 창조적 직관으로 깨닫게 되었든 역시 문제가 안 된다. 회심을 재촉하는 요인이 내부 심리에 있든 외부환경에 기인하든 상관없다. 사람을 밀어붙이는 죄책감이든 또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마주침이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깨달으려면 돌아섬이라는 기폭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회심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신의 상태를 아는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이런 깨달음이 없으면 변화의 동기조차 없다. 깨달음의 첫 걸음일 뿐이다. 바울이 자신의 모습을 알고도 여전히 깨달음을 거부한 채 바리새인의 대표로서 기독교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재촉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 말로 '가정'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와 예수님을 만나게 했던 신묘막측한 힘을 생각해 볼 때 깨달음을 거부하기란 도저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의 순간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면, 깨달음 자체를 무시할 수도 있다. 심리치료사들은 환자들이 자신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도 일주일 후면 그 사실을 부인하거나 억압한다고 말한다. 회심이 일어나려면 두 번째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깨달음 뒤에는 결단이 있어야한다. 2.돌아섬 바울은 돌아섰다. 율법으로부터 그리스도로, 핍박으로부터 사도됨으로,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들을 죽이는 일로부터 이방인들을 기도교인으로 만드는 일로 말이다. '회심' 이 지닌 중심 의미가 여기에 있다. 회심은 돌아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로부터' 와 ' ~으로' 가 있다. 옛것은 철폐되고 (옛 것으로부터 돌아서고)새 것은 포용된다(새것으로 돌아선다).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의 형상을 입는다. 반역자이며 사기꾼이라고 여겼던 그리스도를 메시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바라보게 되었다. 다른 면을 보면 돌아섬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중심축 에 서 계신다. 한 축에는 흠과 티가 가득해 하나님의 소원과는 거리가 먼 옛 생활이 있다. 다른 한 축은 용서와 섬김을 바탕으로 한 하나님 백성의 새로운 공동체, 성장하는 새로운 삶(성화)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예수님께서 계신다. 옛 삶의 실체를 폭로하고 새로운 삶에 초점을 맞춰 방향을 설정하고 사명을 위임하는 분이시다. 바울의 눈을 당신 자신께 향하게 하심으로써 그의 옛 삶에 새로운 관점과 비전을 심어준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바울을 그리로 돌이키고 나아가게 하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바울의 회심을 둘러싼 중심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독교 회심에서 두 번째 단계는 돌아섬이 분명하다. 이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음으로서 얻는 깨달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회심은 단지 옛 것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일만은 아니다. 회심은 예수님께로 돌아섬이다. 어떤 만남이든 예수님을 만나지 않거나 그분에게 돌이키지 않고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심을 경험할 수 없다. 돌아섬은 열두 제자의 경험을 분석할 때도 두 번째로 다루어야 할 요소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은 어떻게 변했는가? 예수님께로 돌아섰는가? 예수님께서 그들 신앙의 중심이 되셨는가? 3.변화 그러면 바울의 회심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특징 있는 기본 유형은 무엇인가? 이것 없이는 기독교의 경험이 아니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형식 요소는 무엇인가? 어떤 면에서 바울의 회심에는 세 가지 운동 방향 또는 태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1단계는 깨달음이다. 그는 '하나님을 이해' 하고, '하나님과 관계 맺는' 가운데 자신의 진면목을 봤다. 2단계는 돌아섬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 복종했다. 3단계는 변화다. 그의 헌신은 새로운 생활로 이어졌다. 그 경험 안에는 색다른 외면적 생활양식과 부르심이 있을뿐더러 새로운 역동성이 있었다. 한편 깨달음, 돌아섬, 변화라는 요소들은 각 단계 안에서도 발견된다. 1단계의 중심 주제는 자신과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러나 돌아섬도 있다. 바울은 자신이 여태까지 살아온 방식을 깨달으면서 옛 삶에서 돌아서 새로운 삶을 향유한다. 예수님의 진면목을 본 후 그분에게 돌아섰다. 그런가 하면 변화도 있다. 자신이 누구이며 예수님이 누구 신지 깨닫고 새로운 삶이 있는 새 길을 발견했다. 삶의 방식도 철저히 변했다. 2단계의 중심 주제는 예수님께로 돌아섬이지만, 여기에는 깨달음도 포함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처음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리고 삶이 변했다.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물론 삶의 중심을 예수님에게 내어 드렸다. 3단계의 중심 주제는 삶의 변화다. 여기서 새로운 삶의 본질과 관련해 깨달음이 나온다. 바울은 핍박자일 때 기독교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았고 무엇을 믿는지 들었다. 회심한 그는 이러한 삶이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리라 깨닫았을 것이다. 돌아섬 또한 나온다. 이 새로운 삶을 전면적으로 포용하면서, 기독교인을 핍박하던 옛 사명을 버리고 기독교인을 만드는 새 사명으로 돌아섰다. 예수님과의 만남에서도 세 단계가 작동한다. 깨달음이 있다. 그는 예수님을 실체 그대로 본다. 돌아섬도 있다. 곧 예수님에게 돌아서서 그 분을 주님이요 구세주로 받아들인다. 변화가 있다. 이제 그는 예배와 순종을 율법이 아닌 예수님에게 바친다. 이 같은 일은 그가 속했던 유대 문화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유대주의의 결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백성으로 부르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바울의 회심은 세 단계 안에서 세 가지 방향을 갖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예수님과 연결되는지, 자기 문화 안에서 무엇을 할지' 가 그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영향을 주는 깨달음, 돌아섬, 변화가 있다. 게다가 세 단계 안에 들어 있는 이 세 가지 움직임은 모두 하나님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기독교의 회심은,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변한다는 면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변화와 다르다. 기독교의 회심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돌아섬, 하나님께 반응하는 새로운 삶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하나님의 진리의 빛 가운데서 자신을 보고, 하나님과 맺은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속에서 종으로서 그리고 모든 백성을 향한 증인으로 사는 삶이다. 회심을 세 단계로 살펴보았는데 이와 같은 방법은 현대 선교 사역에서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회심을 여러 차원으로 살펴보았다. 즉, 실존적인 회심, 그리고 체험으로서의 회심 등이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회심은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로 성령께서 인간을 재 창조 하신다는 것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회심을 통해 죄인을 새 사람으로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때에 다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다.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은 성령의 사역이며 또한 그의 선교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이로써 바울의 선교와 그의 회심은 불가분의 관계임이 입증 되었다. 4. 바울은 회심을 통해 몇 가지 선교의 동기를 갖게 되었다. 즉: 첫째는 사명의식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 선교를 위해 부르시고 그에게 직접 맡기셨다는 의식이다. 이것은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깨달았다. 특히 그는 불신앙의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를 핍박까지 했다. 그러나 그가 회심하였을 때 예수께서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시는 분임을 깨닫고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이방인에게 전하도록 강권하심을 알게 되었다. 셋째는 하나님께 순종함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해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미 모범적인 선교사가 되신 것이다. 따라서 바울도 철저하게 주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이다. 넷째는 유대주의 신봉자였던 바울이 세계주의(Universalism)로 변화된 점이다. 바울은 복음이 유대인만 위한 것일 수 없고 전 세계 만민을 위한 것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회심을 통해서 유대주의 탈을 벗고 세계주의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선교 동기는 회심을 근거해서 생겨난 그의 소명의식,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순종, 그리고 유대주의에서 세계주의로 변화된 것이 분명하다. 5. 바울의 선교전략을 살펴 본 결과 바울에게는 분명한 독자적인 스타일(style)이 있다. 그것은 곧 회심을 통한 복음 중심의 선교전략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특징들을 고찰해 보면, 첫째: 바울에게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두 다 한 형제라는 뜨거운 사랑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개종자들을 모두 다 "형제"라고 불렀다. 둘째: 그는 임의로 일을 처리하지도 서두르지도 않았으며 성령이 지시하는 대로 따랐다. 그는 그의 방법과 계획에 집착하지 않았다. 셋째: 그는 회당 중심으로 복음을 증거 했다. 이 사실은 선교와 개교회와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탈 교회적인 선교경향을 수정하기 위한 좋은 근거를 이룬다. 넷째: 도시를 집중적으로 선교했다. 비록 도시에는 악이 많을지라도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도시에는 잠재력이 있는 것이다. 평가 이미 문제 제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의 선교 사역은 성장을 위주로 일방통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이는 마치 나무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박혀있고, 영양상태는 어떠 한가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다만 열매만 따려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 서 본 논문은 선교의 동기가 되는 회심을 다루었는데, 이는 나무의 뿌리를 깊게 하고 그 뿌리를 튼튼히 하려는 작업이다. 뿌리 약한 나무에서 좋은 열매와 많은 열매를 딸 수 없듯이 회심이 결여되거나 간과된 선교는 그 열매 가 탐스럽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살펴 본 바대로 회심은 결코 임의로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즉, 내주 하시고, 재 창조 하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 되게 하시는, 그리고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살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인 것이다.

      • 바울 연대기에 비추어 본 바울서신의 저술시기에 관한 연구

        전경숙 서울장신대학교 201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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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소명 받은 이후,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고전 3:6). 교인들의 신앙이 성장하고, 온전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바울의 지속적인 가르침이 필요했다. 교회 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바울의 조언을 원했다. 우리 사도는 모든 교회를 직접 방문할 수 없었으므로 동역자를 보내거나 편지를 써서 그들을 도와주었다. 편지는 각 교회의 구체적(occassional)이고 실제적(practical)이고 특수한(particular) 상황과 관련이 있다. 바울과 해당 교회와의 관계, 발신·수신 도시에 관한 정보, 동역자의 행보 및 바울의 여행계획 등을 통하여 우리는 각 서신의 저술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 한편 편지는 바울의 사역과 서로 결부되어 각 서신이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즉, 개별적인 각 서신의 저술 시기뿐 아니라 서신간의 상호관련성을 파악하여야 하며, 바울의 연대기라는 틀을 통한 통시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여러 편지를 동시에 비교할 때, 이러한 접근법이 요구된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 활동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들에게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연보할 것을 부탁했다(고전 16:1; 고후 9장). 고린도전서는 51-54년 중반까지 머문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고전 16:8). 그리고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고린도후서를 적어 보낸다(고후 2:13; 9:2). 마케도니아 인들에게 아가야에서의 모금 활동이 1년 전부터 시작된 것을 자랑하는 것으로 보아 고린도전서와 후서는 일 년의 간격이 있다. 따라서 고린도후서는 55년경에 기록된 것이다(Ⅴ장 참고). 로마서 15장 25-26절에서 바울은 이제 모금 활동을 끝내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려고 계획하고 있다. 로마서는 55년 이후, 바울의 삶에서 가장 마지막 서신임을 알 수 있다. 54년부터 55년 사이 바울의 여정은 서신을 통하여 보충될 수 있다.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전해 듣고 바울은 디도를 고린도에 보내고,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나 디도는 드로아에 나타나지 않고, 마케도니아에서 재회한다(고후 2:13). 고린도후서는 55년에 마케도니아에서 저술되었다. 따라서 바울은 54년 에베소를 떠나 55년 마케도니아에 이르기 전 어느 시점에 드로아에 잠시 들렸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서신은 바울의 생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그의 삶의 여정을 함께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서신의 기록 순서와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 본 논문은 연대기와 각 서신의 저술시기를 비교, 보충하여 보다 분명한 연대기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바울의 연대기가 좀 더 세밀하고 탄탄하게 구성 되어질 것이다.

      • 바울의 선교 사역 고찰을 통한 21세기 현대선교 전략

        문영민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201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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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 선교는 급성장하여 빠르게 복음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지 선교지등에서의 미숙함과 많은 시행착오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현대선교에 대해 연구하고 적용하였지만 체계적이지 못한 여러 점에서 접근이 미비 하였다. 본고는 바울의 선교사상과 선교전략을 성경을 비롯해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현대 선교의 미흡한 점들을 분석한 후 성경적 원리에 의해 평가해 볼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평가를 근거로 현대 교회가 처한 상황과 현재 선교지의 상황을 고려해 현대선교에서 실질적으로 적용 가능한 선교 전략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2장에서는 신약과 구약을 바라보며 성경 안에서의 선교를 성경적 원리로 연구하여 다루었다. 제3장에서는 바울선교의 배경과 소명에 관하여 연구 하였는데, 그 시대의 문화와 언어 등을 연구하고 바울의 출생과 성장 등 회심과 소명을 연구하여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이끌어 가심을 느끼며 바라보았다. 제4장에서는 바울의 선교 동기와 바울의 메시지, 또한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연구하고, 5장에 들어가서는 사도바울의 선교전략을 일곱까지로 연구하여 보았다. 도시중심, 회당중심, 팀 중심의 동역자, 평신도 제자 훈련, 전략적 기지, 자비량 전문인, 교회의 설립으로서의 선교전략을 고찰 연구 하였다. 바울은 선교지에 가서 유대인이 회당을 선교의 접촉점으로 삼아 복음을 전했고, 타문화권 사람들에게는 융통성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여 지정학적으로 전략적인 도시에 그 지역을 복음화 시킬 선교 기지가 되게 할 목적으로 교회를 세웠다. 선교 현지에서 헌신적인 일꾼을 발굴하고 훈련시켜서 현지 교회의 사역자로 세우고 그들과 함께 동역 하였다. 바울의 선교 전략은 그 시대의 것이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선교전략은 세계 선교 전략의 원형으로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선교 전략의 근간이 되고 있다. 비로소 6장에 들어가 바울선교의 고찰을 통한 현대선교의 적용 점을 찾고자 전문인을 통한 선교의 모색을 연구함과 미전도종족의 선교도 바라보았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 맞는 선교전략의 필요성을 연구하여 현지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 하고 다음으로 동반자 관계로서의 협력선교를 연구하였다. 7장에서는 바울 선교를 통한 21세기 현대선교 전략으로 학원선교와 인터넷선교를 제시 하였다. 이 전략을 제시함으로 마침내 결론을 통한 본 논문의 마침 점을 찍으려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현대선교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세계 선교를 계속하겠다는 선교 비전의 수립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교 현장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에 입각하여 선교 정책을 수립하여야 하겠고, 선교사 및 선교 본부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통해서 선교사들이 장기적인 비전과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선교 사역에 임하도록 적극적인 선교 정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선교는 교파와 소속 단체를 초월하여 사도 바울의 팀(Team)사역의 전략을 모델로 삼아 실천함으로써 사역의 중복과 인원 및 재력의 낭비를 막고 현지 동역자들간의 대립과 마찰을 극복해야 한다. 여기서 횡적 사역의 단계의 기술을 개발하면서 종적 사역관계의 미를 창출하는 동역자로서의 협력선교 전략의 개발이 요구된다. 또한 물량주의적인 사고에 빠져 현지인들을 물질적으로 사로잡기보다는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복음으로 무장된 제자 훈련을 통해 자립은 물론 헌신된 일꾼을 재생산하는데 힘써야 한다. 선교에 있어서 가장 적절한 전략은 성령의 감동을 받고 또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수립된 모든 전략들이 성령에 의해 효과적으로 사용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할 때 현대선교는 안팎의 다변하는 수많은 도전들을 극복하고 마침내 맡겨진 시대적 선교사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아무리 세상이 변하여도 주님의 지상명령은 변함이 없다. 주님의 지상명령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과 같이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가지고 모든 족속에게로 가서 그들로 주님의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년여 교육과 3 훈련을 받고 마지막으로 지상명령까지 받은 제자들은 오순절날에 성령을 받았을 때에 비로소 증인들로 변화되었으며 그들의 증거를 통하여 수많은 주님의 제자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교회가 생겨났으며 이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와 땅 끝까지 이르게 되었다. 바울선교의 고찰을 통하여 현대 선교의 적용 점을 찾아볼 때 원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앞서있으며 후에 바울이 잘 적용하였다. 또한 현대선교에 그런 바울선교를 바탕으로 선교의 에너지를 집중하고 미흡한 점들을 보완하고 수정하여 세계선교에 힘써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계의 복음화에 바로 내가 앞장 서야 하며 지금까지 살펴본 바울의 선교전략을 이해하고 현대 선교에 적용해야 하겠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지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앞장서야 하겠다. 본 연구의

      • 바울선교사역에 근거한 필리핀선교전략에 관한 연구

        윤명근 고신대학교 선교대학원 200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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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이 그의 선교를 마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지 벌써 2000여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항상 중심의 위치를 차지하면서 지금까지 전래되어 왔다. 기독교선교 역사상 예수님이후 가장 위대한 사역의 발자취를 남긴 선교사가 바로 사도 바울이었다. 사도 바울은 헬라계 유대인으로 출생으로,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소지하였다. 그의 청년기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유대교와 조상의 유전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불렀고, 이방인의 사도로 택정 하셨다. 아라비아에서 사역자로서의 준비 기간을 거친 다음 바나바의 초청으로 그와 함께 안디옥 교회의 지도를 담당함으로서 선교사로서의 준비 기간을 끝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도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그의 선교의 메시지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구주되심을 선포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을 선교의 중심 주제로 삼았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중심의 선교는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종교 다원주의 사고 속에서 일부 사람들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며 기독교 선교를 포기할 정도로 타종교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비록 사회는 다원화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는 말씀(행4:12)이 선교 현장 속에서 분명히 적용되어져야 할 것이다. 선교지 필리핀은 비록 카톨릭신앙을 국교로 가진 만큼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대부분 명목상의 신자들이므로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게되는 구원의 복음을 선교 현장에서 선포 해야 한다. 바울 선교는 성령님의 지시에 절대 순종하는 선교 원리를 제공해 준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고 그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살게 된다. 선교사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서 선교사역이 이루어 질수있도록 성령충만을 유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 선교지에서 성령의 역할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하다.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게 되며(롬8:15, 갈4:6)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다(롬8:10).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잘 연합케 할 수 있게 해주는 접착제이시다" 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이 경험한 성령의 역사는 동일하게 오늘도 선교지 필리핀에서도 적용되고 있음을 연구의 결과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다양한 문화 속에 적절히 복음을 전하는 효과적인 선교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타문화에의 적응이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본 연구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인 선교사의 언어개발 문제는 시급히 해결하여야 과제임을 알수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의 선교 방법론은 동역자들과 팀을 이루어서 사역하는 것이다. 사역의 현장에서 항상 그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들이 나타나고 있듯이, 필리핀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역은 협력 사역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현지인들과의 동역, 같은 선교사들과의 협력 선교가 너무 중요한 사역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더나아가 사도 바울은 개인 전도를 통해서 제자들을 양육하였고, 그들을 통해서 현지의 목회 사역을 감당하게 하였다. 이와같이 다수의 군중들 속에서 구원의 열매는 개인들을 중심으로 변화시키며 그들을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구원의 열매를 육성하는 전략을 필리핀 선교사역에 더욱 발전시켜나가야만 할 것이다. 개인 전도의 활용은 선교 사역에 대하여 매우 긴요하다. 필리핀처럼 카톨릭이 사회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개인 전도를 통해서 삶과 인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개인 접촉과 제자 양육의 선교 원리 방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동서양의 문화가 복합되고 용해되어 있는 필리핀은 아직도 선교의 문이 활짝 열려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지도자들이 정부와 손을 잡고 개신교 선교사들을 추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필리핀 선교를 위한 문이 닫히기 전에 복음을 위해 부름 받은 한국 교회의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들어가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세계의 남은 영혼들을 추수하시기 위하여 한국 교회를 사용하시고자 하는 뜻이 너무나 분명하기에 복음의 많은 빚을지고 있는 한국 교회는 하나님께서 선교의 복된 기회를 주실 때 응답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필리핀의 선교사역자들은 필리핀 사람들의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변화시킬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이해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선교 전략에 있어서도 필리핀의 상황에 맞는 효과적인 방법들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며,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성경적인 온전한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여 제시할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원론(영과 육, 성과 속, 현세와 내세 등등)을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만을 주장하는 데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도 중시하면서, 창조 명령을 받들어 모든 영역에서 마귀의 것을 빼앗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필리핀에서 타락해 버린 우상 숭배의 로마 카톨릭, 회교 및 모든 이단들에 속한 영혼들을 구원하여 주님께로 이끌수 있어야 한다. 현재 전 세계에는 약 60억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세계 인구는 매일 22만씩 증가하고 있다. 세계에는 약 220개의 나라들이 있고, 선교학적 측면에서 볼 때 세계 인구는 문화, 언어가 다른 24,000개의 인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동을 포함한 아시아의 면적은 전체의 1/3을 차지하지만 인구는 전세계 인구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 사람들의 약 75%는 농촌에 살고 있지만 급격한 도시화로 2,000년대는 아시아 인구의 약 60%가 도시에 살게 될 것이다. 아시아는 세계의 6개 대륙 중 가장 비기독교적 대륙이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 제국들의 식민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왔고 세계 2차 대전 이후 독립 국가들이 되어, 서방 국가들에 대해 배타적이며 강한 국수주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을 비롯한 신흥 공업 국가들을 제외하고 극심한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아시아 대륙은 세계의 대륙 중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가장 문제가 많은 대륙이다. 아시아의 복음적인 기독교인 수는 약 7,1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7%에 해당된다. 더욱이 아시아 선교 역사를 생각할 때 서구 선교사에 의한 서구의 아시아 선교는 식민지 침략 함께 이루어진 측면이 있다. 때문에 아시인들은 기독교의 복음을 침략자의 종교로 인식하는 경향이 적지 아니한 것을 볼수 있다. 더욱이 서양 문화를 성경적인 것으로 심는 오류를 범하기 까지 한 것을 볼때 서양인들이 아시아를 선교하는 것은 한계에 부딪혔다고 보아야만 한다. 특히 영적인 수확 면에서 서구인은 아시아에서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효과적인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하여 아시아인이 나설 수밖에 없는데 그중에 인도, 인도네시아, 그리고 한국이 양적으로 기독교인이 많은 나라에 속한다. 그러나 힌두권인 인도와 회교권인 인도네시아는 자기들 국가 내에서 일하는 타문화권 선교사들(인도는 4,200명, 인도네시아는 420명)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심정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가 아시아 대륙의 선교에 가장 큰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다. 한국 교회의 인적, 물적, 영적(기도)자원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하여 월등히 풍성한 것으로 볼때 아시아 선교에 대한 한국 교회의 책임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아시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것들을 아시아를 위해 기쁨으로 내어 줄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21세기에 있어서 개신교, 특히 한국교회는 필리핀 선교를 어떻게 수 행해 나가야 할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우리는 지극히 기본적인 것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의 선교 방법으로 되돌아 가야 할 것이며, 성령이 주도해 나가시는 결실이 풍성한 선교사역이 이루어질수 있도록 사역자들의 영성강화가 시급히 이루어져 나가야 할 것이다. 바울의 선교전략의 근저에는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셨던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자리 잡고 있었듯이, 오늘날의 필리핀 선교사역도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초대교회와 같은 전도의 폭발이 일어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사도바울의 목회관 : 행 20:17-35절 중심으로

        정성진 영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0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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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고찰 해본 결과, 사도바울의 목회적인 열정과 자세들은 현대 목회자들에게 요청되어 지는 것들이다. 그의 고별 연설에 나타난 목회적인 활동들은 장로들에게 바울의 행위를 그대로 연장하기를 간절히 애원하는 부분들이다. 바울은 신앙적으로도 목회적으로도 장로들과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모범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리스도의 모범으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룬 그리스도의 산 제자이다. 첫째. 바울의 첫 번째 보여준 목회적 자세는 겸손한 목회자이다. 바울의 겸손은 밀립보서에서 보듯 사심 없는 태도를 취하는 겸손은 전적으로 인간을 위한 봉사이다. 그리스도의 겸손에 참여한 바울은 겸손은 곧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다. 둘째. 성령에 매여 있는 자이다.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움직인다. 목회 사역은 성결해야 한다. 인간의 욕심, 쾌락, 정욕, 등은 성령에 불순종하는 자의 삶이다. 바울은 성령과 일치된 삶을 살았다. 세째. 온 양떼를 위해 삼가는 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거룩해야 잘 감당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목회 사역은 전적인 헌신과 수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어 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얼마나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다하고는 하나님의 목양 사업을 할 수 없다. 넷째. 훈계하는 자 이다. 바울은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는 밤낮으로 훈계를 하였다. 훈계는 상호간에 선이 된다. 훈계를 하는 이도 받는 이도 서로가 서로를 완성해 가는 것이다. 훈계는 형제를 사랑하는 독특한 방법이다. 다섯째. 봉사하는 자이다. 바울은 공동체의 모범이었다. 바울의 길을 따라서 가면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는 생활은 그리스도가 자신을 내어 주신 것처럼 목회자들도 자신을 향기로운 예물로 내어놓는 생활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여섯째. 수고하는 자이다. 목회자는 수고하는 자이다. 주님이 값 주고 사신 양들을 잘 돌보아야 할 것이고, 아직도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많을 양들을 찾는데 우리의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도바울은 돌봄과 선교에 자기 자신의 것은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수고했다. 일곱째. 주는 자이다. 바울이 보여준 목회자의 마지막 모델은 주는 자의 삶이다. 예수님이 먼저 말씀하셨다. 주는 자가 받는 자가 보다 복이 있다고 말했다. 사도바울은 우리는 주님께 너무나 큰 것을 받았기에 우리도 아낌없이 남에게 베풀어 주어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주는 자의 삶을 살았다. 결론적으로 목회자로서 바울 사도가 보여준 모범은 목회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를 닮았기에 바울 사도의 목회 활동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그가 보여준 목회자의 강한 애정은 성령의 묶여 있었고, 초대 교회공동체에 의해서 전해진 신앙고백 안에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목회자들도 예수그리스도의 희생과 헌신으로 일치된 바울의 모습을 닮아야 할 것이다.

      •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바울의 연보 사역 연구

        이재연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201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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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의 목적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바울의 연보 사역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그것이 갖는 신학적 의미를 밝히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바울의 연보 사역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는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주석적으로 접근한다. 바울의 연보 사역의 일차적이고 표면적인 목적은 예루살렘 교회의 경제적 구제를 위함이었다(행 11:28, 고후 8:14, 갈 2:10). 그러나 바울의 연보 사역은 단순히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한 구제 행위 그 이상의 신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바울의 연보 사역은 그가 세운 이방 교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바울은 이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친밀하고 굳건한 연대를 확보함과 동시에, 유대인들을 자극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려고 했다. 또 이것은 서로를 향한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이었고, 바울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서 증명해 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바울은 연보와 관련해 다양한 신학적 의미를 내포한 개념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바울의 연보 사역의 신학적 토대와 함께 바울의 신학과 목회 및 선교 전략 등을 모두 묶어서 하나로 볼 수 있는 요약된 내용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또한 바울의 연보는 오늘날 교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연보의 원리 즉 오늘날 연보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며 어떠한 마음과 태도로 참여할 것인가 등을 제공함으로써 연보의 올바른 기능을 회복하도록 일깨워 준다. The aim of this thesis is to understand Paul's collection ministry for the Jerusalem Church overall and to clarify its theological meaning. For this, commentarial methods were approached for the biblical text which is directly related to the offering of Paul's ministry. In Paul's collection ministry the primary and superficial purpose was for the economic assistance of Jerusalem (Ac 11:28, 2Co 8:14, Gal 2:10). However, Paul's collection ministry is more than just simply helping the poor people of Jerusalem Church, it implicates a theological significance. Paul's collection ministry was accomplished centering the foreign churches that he founded, and through this as well as confirming an intimate and firm regiment between the Jews and gentiles, Paul tried stimulating the Jews to reach salvation. Also this was a concrete expression of love towards each other and important evidence that Paul proved himself as an Apostle of the Gentiles. Paul uses various theological concepts and implicit ideas that relates with collection.. As well as this being a theological underpinning for Paul's collection ministry, the pastoral theology and mission strategy which is tied together so one can see, is summarized and presented. In addition, Paul's collection restores and awakens us on the principle of collection and supplies how to prepare your mind and attitude to participate in any such offering, which can be applied in the churches today.

      •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에 관한 연구

        고한율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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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사도행전과 바울서신(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에 관하여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신학적 중요성을 파악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한다.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는 바울의 신학과 선교, 목회 사역을 모두 하나로 묶어서 볼 수 있는 하나의 주제이며, 바울 자신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내용을 제공해 준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는 바울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연구되고 논의되어 왔다.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는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본 논문은 먼저 사도행전에서의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를 살펴보고, 그 다음에 바울서신에서 연구하였다. 이 두 부분에 나타나는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에 관한 내용은 역사적으로 동일한 사건을 다른 두 관점에서 기술하였기 때문에 큰 틀에서 통일성을 가지지만, 또한 그 통일성 안에서 다양한 특징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와 관련이 있는 사도행전의 본문은 11:27-30과 15장, 24:17이다. 사도행전 11:27-30은 “안디옥 교회의 연보”를 묘사한 부분으로 그 자체로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에 대한 내용은 아니지만,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에 관한 원형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편 사도행전 15장의 사도회의는 연보 합의(참고, 갈 2:10)의 역사적 배경을 보여준다. 사도회의는 “바울의 연보”에 기원이 되는 사건이기 때문에 그 배경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가 갖는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 교회 간의 일치를 도모하는 성격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도행전 24:17은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에 관한 아주 짧은 진술에 불과하지만,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바울의 연보가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바울서신에서 언급하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 역사적 중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바울서신 중에서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와 관련을 갖고 있는 서신들은 갈라디아서 2:1-10(특히, 2:10), 고린도전서 16:1-4, 고린도후서 8-9장, 로마서 15:25-29, 31 이다. 각 서신들은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에 대해 제각기 기여하는 바가 있다. 갈라디아서 2:1-10(특히, 갈 2:10)은 사도행전 15장과 같이 사도회의에 관해 말해 주는데, 특별히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의 역사적 기원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 안에 내포된 바울 자신의 사도성과 관련된 의미와 교회론적 의미 등을 보여준다. 고린도전서 16:1-4에서는 특별히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가 어떻게 교회 내에서 모금되었는가에 대해 보여주는 데, 이것은 고린도전서의 독특한 기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모금 방식 외에도 연보의 전달 방식과 연보의 자발성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고린도후서 8-9장은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에 관한 가장 풍성한 내용을 전해 주는데, 연보가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며, 또한 어떤 원리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연보 사역이 가진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매우 폭넓게 기술한다. 로마서 15:25-29, 31은 임박한 연보 전달 계획과 연보의 신학적 근거, 연보의 구원 역사적 가치 등을 보여준다. 특히 연보의 구원 역사적 가치는 로마서만이 보여주는 “바울의 예루살렘 연보”에 관한 독특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해 “바울의 연보”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1) “바울의 연보”의 기원은 사도행전 15장과 갈라디아서 2:1-10에 나타난 사도회의이다. (2) “바울의 연보”는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교회 간의 친밀한 교제의 표시이며, 관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3) “바울의 연보”는 자발적인 행위로서, 유대교의 성전세와 같은 개념과 비교할 수 없다. 이러한 자발성은 연보가 그리스도의 은혜에 그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4) “바울의 연보”는 가난한 자를 도울 뿐만 아니라, 바울의 사도성을 확증하고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교회를 인정하도록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다. (5) 바울은 연보를 통하여 로마서 9-11장에서 말한 것처럼 유대인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받는 일이 촉발되기를 기대했다. 이것은 바울이 갖는 연보에 관한 종말론적인 기대이며, 연보가 가지는 구속 역사적 가치이다. 본 논문은 “바울의 연보”가 바울과 초대교회에 있어 매우 중요한 주제였음을 확인해 준다. “바울의 연보”는 단지 자선의 차원을 넘어, 보다 큰 역사적, 신학적 의미를 담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바울의 연보”에 관한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또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초대교회의 역사에 대해 한층 더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될 것이며, 뿐만 아니라 바울의 신학과 선교, 목회를 이해함에 있어 보다 깊은 통찰력을 제공받게 될 것이다.

      • 사도바울의 전도방법 연구

        김광진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199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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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심하기전의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는 자였다. 그러나 회심한 후 하나님께 쓰임 받는 바울은 주 예수를 위하여 사는 참 다운 전도자요, 목회자요, 선교사였다. 바울은 사람이어서 자기를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 라고 하였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교만해 질 수 있지만 바울은 자기자신을 낮추고 주 예수님만 높여 지기를 바랬다.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힘들고 고단한 일들이 많았지만 그는 곡에 갇혔을 때에도 감사했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자족하기를 배운 사람이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자족의 비결을 배운" 사람이었다. 사실 인간의 삶이란 기쁠 때에도 있고 슬플 때도 있는 법이다. 이 모든 환경 가운데서 자족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이든지 감사한다는 것은 목회자, 전도자, 선교사들에게 아름다운 생활모습이다. 사울의 목회방법 가운데 특히 배울 것은 인내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만 보더라도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났다. 파당이 있었고, 교인들 사이 더러운 죄에 빠진 사람도 있었고, 성적인 범죄, 우상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그는 지혜롭게 해결해 나갔다. 오늘날 전도자들이 '목회하기가 힘들다' 고 하지만 '바울처럼 힘들었을까?' 라고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님을 생각 할 수 있다. 바울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설교를 하거나 복음 선교를 하거나, 그는 에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증거는 그의 핵심내용에 속한다. 서신 속에서도 기독교의 근본사상인 에수님의 십자가와 죽으심, 부활이 자주 나온다. 오늘날 부흥사들은 인기 위주의 설교, 헌금강요, 목회자에 봉사 등 핵심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많은 서신, 편지를 보냈다. 교회에도 보냈으며, 특히 옥중에서도 그는 편지를 보낸 사실을 성경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그의 전도 방법은 설교, 전도, 서신이나 편지, 교회방문 등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사용하였다. 디모데, 디도에게 보내는 목회서신은 오늘날 우리 목회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교회를 세우고 순회 전도를 하면서도 그는 다른 동역자와 협력하여 같이하는 목회자였다. 전도구역도 서로 겹치지 않고 서로 도와주는 목회였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과 비추어 보면 얼마나 다른가? 한 동네에 둘이 있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한 건물 안에 교회가 여럿 있는 경우도 많다. 결국 이러한 모습은 바울의 선교 방법과 비추어보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기만을 바랐다. 교회 건물을 세우는 데만 주력하지 않았다. 교파를 전파하고 교단을 위해 선교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예수의 복음이 전파되고 성도들이 주안에서 은혜 가운데 생활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의 일군을 세우고, 제자를 양육하여 파송 하였다. 혼자만 하는 그런 전도, 선교방법이 아니었다. 평신도 중에서도 일군을 뽑아 일을 맡기면서 전도하였다. 혼자만 일하는 전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금전 관에 있어서도 그는 모본이 되려고 노력했으며 복음에 누가 될까봐, 또는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그는 손수 천막을 짓는 일을 해가면서 복음을 위해 노력했다. 전도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먹고사는 것이 합당하지만 그는 생계를 위해서, 사실 덕이 되기 위하여 수고했다. 21세기를 향해 가는 우리 목회자들은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복음만을 위하여 동역자들과 협력하며 복음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다.

      • 바울서신에 나타난 신앙교육에 대한 연구 : 디모데전후서, 디도서를 중심으로

        김재익 고신대학교 대학원 201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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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바울에게 있어 신학적인 부분과 그의 선교에 대한 연구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지만, 사도바울의 신앙교육적인 부분에서는 그 연구가 미흡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13개의 서신과 사도행전을 통하여서도 바울이 가르침에 대한 관심과 그의 가르침의 방법, 그리고 그의 교육적 내용을 충분히 연구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교육과 더불어 바울의 교육은 우리의 신앙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줄 것이다. 앞으로 사도 바울의 신앙교육에 대한 연구가 더욱 더 필요할 것이다. 이제야 한국교회는 지난 한국교회사를 통하여 신앙교육의 필요성과 그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그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보다 깊은 연구를 통하여 교사로서의 사도 바울의 모습이 좀 더 확연히 드러나야한다.

      • 바울 서신들에 나타난 Pistis Christou 연구

        손학균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12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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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바울이 pi,stij Cristou/ 어구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를 탐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바울의 pi,stij Cristou/ 어구는 결코 간과될 수 없는 복음의 핵심이다. 이 어구의 번역과 해석에 따라서 구원론, 칭의론, 그리고 기독론에 대한 이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어구의 중요성은 충분히 수용될 수 있다. 그러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오늘날까지 이 어구는 천 편일률적으로 ‘대상적 속격’으로만 번역되고 해석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이 어 구의 해석과 관련하여 주체적 속격과 대상적 속격의 두 입장은 철저하게 대립적 인 태도를 견지함으로 pi,stij Cristou/ 어구의 함축적 개념을 이제까지는 충분히 살려낼 수 없었던 것이다. pi,stij Cristou/ 에 대한 연구는 그간 주로 문법적, 문 장론적 연구와 교리적 연구로 진행되어 왔으나, 본 논문에서는 ‘은유’, ‘율법’, 그 리고 ‘공동체’를 해석학적 도구로 사용하여 주석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pi,stij Cristou/ 어구를 ‘전형과 체현’으로 설정한다. 바로 여기에서 ‘믿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 스도를 본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갈라디아서에선 pi,stij Cristou/ 를 구 원의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바로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울의 이해가 암시적으로 나타난다. 그런가하면 로마서에선 pi,stij Cristou/ 를 ‘신앙 공동체의 기초’로 소개한다. 주석적 연구 결과들과 함께 서론에서 제기되었던 pi,stij Cristou/ 어구와 관련된 네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가 있는데, 첫째, pi,stij Cristou/ 어구는 ‘구원론’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전제하지 않는 한, ‘신자의 믿음’ 만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pi,stij Cristou/ 어구와 관련 하여 pi,stij 는 ‘칭의론’적 입장에서, ‘순종’으로써의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뜻하 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신자는 자신의 믿음만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획 득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pi,stij Cristou/ 어구에 나타난 ‘기독론’적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 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수 그 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화목제물’로 세우심을 받은 유일한 분이시기 때 문이다. 넷째, pi,stij Cristou/ 어구를 사용하여 바울이 그의 신앙 공동체에게 말 하고자 했던 것은 신앙 공동체 내의 모든 차별성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불편부당 하신 은혜’라 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이 신앙 공동체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송가, 아브라함 전승, 아담 유형론, 그리고 심지어 바울 자신 의 예까지 제시하며 잘못된 신앙 모범을 따르는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설득 하며 바로 잡고자 한다. 바울은 pi,stij Cristou/ 를 바른 신앙 모범으로 제시하 며, 이를 신자들의 신앙 모범으로, 신앙의 ‘전형과 체현’으로 개념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바울은 율법을 부정하고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인정하며, 율법 의 저주마저도 긍정함과 동시에 그 저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 원의 역사를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으로 pi,stij Cristou/ 어구를 소개 함으로 이를 ‘구원의 기준’으로 개념화하였다. pi,stij Cristou/ 어구는 바울이 자신의 신앙 공동체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드러내 는 특수어구이다. 즉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다양한 사회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 된 신앙 공동체에 주어진 ‘하나님의 의’가 pi,stij Cristou/ 로 말미암았음을 밝힘 으로 하나님의 불편부당하심을 논증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바울에게 pi,stij Cristou/ 어구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로 이해될 수 있는지, 예 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신앙 고백의 의미가 무엇인지, 신앙 공동체는 무엇을 기 초로 하여 형성된 것인지에 관한 신학적 사고를 함축한 개념인 것이다. pi,stij Cristou/ 는 pi,stij avnqrw,pou 와 확연히 구별되며, pi,stij qeou/ 와도 분명히 다르다. 주체적 속격이나 대상적 속격의 어느 한쪽에 치우친 일방적인 해석만으 로는, 바울이 이 어구를 사용하여 전하고자 했던 개념을 결코 충분히 담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은유, 율법, 공동체라는 해석학적 지표들을 통해 pi,stij Cristou/ 어구에 대한 양가적 해석을 시도할 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드러난 예 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 ’과 이로 인한 신자들의 믿음의 촉발, 그리고 pi,stij Cristou/ 를 통한 ‘전형과 체현’으로의 신앙 전수를 통해, 바울이 그의 종말론적 신앙 공동체를 어떻게 지켜 나가고자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 니라, pi,stij Cristou/ 가 ‘믿음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바울의 신앙 공동체의 새 로운 신앙 규범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울의 때나 오늘날이나 신앙 공동체의 기 The pur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what Paul wants to explain through the phrase of pi,stij Cristou/. Paul's phrase of pi,stij Cristou/ is very important and is the heart of His Gospel. The translation and the interpretation of this phrase show different kinds of Soteriology, Justification and Christology. There are two kinds of translation and the interpretation of this phrase of pi,stij Cristou/. One is the believing in Jesus(objective genitive) and the other is the Jesus' believing(subjective genitive). Therefore the translation of this is very important. Since the Reformation, we has translated pi,stij Cristou/ into believing Jesus(objective genitive) all the time. This study does not attempt a grammatical and doctrinal interpretation of this phrase, but attempts a hermeneutic interpretation(exegesis) with the method of a metaphor, a law and a community. According to Philipians, Paul explains this phrase of pi,stij Cristou/ as an archetype and an embodiment. We can find that believing is an Imitation of Christ. According to Galatians, he suggests pi,stij Cristou/ as a criterion of salvation. In the Romans, Paul introduce pi,stij Cristou/ as a foundation of a faith community. From introduction raised four question about pi,stij Cristou/. It comes to an conclusion like this. First, According to the concept of Soteriology, pi,stij Cristou is Jesus Christ's belief. If we don't premise Jesus Christ's belief, we cannot get salvation with believer's belief. Second, according to the concept of Justification, pi,stij Cristou/ is Jesus Christ's faithfulness. A believer cannot be justified by his faith but Jesus Christ's faithfulness. Thirdly, according to the concept of Christology, pi,stij Cristou/ shows that Jesus Christ is the son of God who has save us. He is the only one who has become a sacrifice to save us. Fourthly, according to the concept of a faith community, Paul wants to tell a faith community no difference between the jew and the gentile. pi,stij Cristou/ shows impartiality of God, because Jesus Christ's faithfulness is a groundwork of a faith community. Paul persuades and corrects the faith community which follows a false model of faith, while he gives an example of a Hymn of christ, Abraham's tradition, Typology of Adam and Paul himself. Paul suggests that pi,stij Cristou/ is the model of faith and the model of belivers. He wants to conceptualize pi,stij Cristou/ as an archetype and an embodiment. Paul doesn't deny the law and accepts it. He admits the curse of it. He confirms that Jesus fulfills the ministry of God's salvation. Paul's phrase of pi,stij Cristou/ shows what the foundation of a faith community is. The phrase of pi,stij Cristou/ is the special phrase to explain a base of a faith community. Justification of God is given to the faith community which consists of people of all social stratum. He insists that Justification of God comes from pi,stij Cristou/ and he also maintains impartiality of God. Paul's phrase of pi,stij Cristou/ is an implicative concept of theological thought. It shows how we can understand that Jesus Christ becomes the Son of God. It shows what the confession of faith(believing in Jesus) is. It also shows what the faith community is based on. pi,stij Cristou/ differ certainly from pi,stij avnqrw,pou.. pi,stij Cristou/ is surely different from pi,stij qeou/. If we give a biased interpretation (objective genitive or subjective genitive) of pi,stij Cristou/, we cannot understand sufficiently the meaning of pi,stij Cristou/. But with the hermeneutic method of a metaphor, a law and a community, when we try to interpret both sides, Jesus Christ's faithfulness appears in the death of a cross and resurrection. Believer's faith is exploded by it. A faith as an archetype and an embodiment of pi,stij Cristou/ has been passed on believers. Through it, we can make sure that how Paul protects his eschatology community. We also confirm that pi,stij Cristou/ has been suggested as a new norm of Paul's faith community to live in the day of believing. It is the law of Christ. We can ask what the foundation of a faith community in time of Paul and in this time is. It is the essential question. pi,stij Cristou/ is the foundation of a faith community. pi,stij Cristou/ has been appeared in Jesus Christ to embody impartiality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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