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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개신교 "대형 교회" : 그 현상의 분석과 평가 : 박창현

        박창현 Augustana-Hochschule Neuendettelsau 1999 해외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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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한국교회의 신앙의 양태를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그 성장의 이유를 한국적인 신학의 장 (Context: 사회 문화, 종교, 정치, 경제)에서 고찰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교회의 양태와 성장의 이유로 얻어진 결과가 얼마나 "기독교"적인가?를 점검하는 시도로써 성경과의 비교를 하였다. 그 근거는 세계 기독교의 교회와 교인이 그들의 서로 다른 삶의 현장 (Context) 에서 생겨난 서로 다른 신앙의 양태는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그 공통적인 신앙의 근거는 성서 (Text)가 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여 한국이라는 삶의 마당에서 벌어진 한국 사람이 한국사람에게 맞게 이루어놓은 교회의 양태를 한편으로는 다수를 이루는 교인들의 신앙의 일상적인 모습과 그들의 경험과 필요에 따라 재 정립해보고, 또 다른 한편 그 교회의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담임목사와 그들의 사역에 가장 중점을 두는 주일예배 설교를 분석하여 정리하였다. 그래서 그 결과로 교회의 성장은 한 교회가 얼마나 교인들의 모든 시급한 문제에 얼마나 적절히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대처하느냐? 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밝혀 이것을 한국교회가 얼마나 적절하게 사람들의 "한풀이"를 하였는가?에 대한 것으로 논지를 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면으로든지 그 중심은 성서적이어야 하고, 이 말은 성서의 중심인 "예수의 사건에 관한 이야기"와 일치되어야만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있기에 성경의 전통과 비교하여 그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쉬운 비유로 말해보자: 한국교회의 이러한 "한국적 양태"를 "순 한국적 예수의 이야기"라는 하나의 강물이라고 가정을 해보자. 이때, 이 강물이 다른 강물들과 만나서 하나의 바다를 이루는 자연 현상을 연상하여 세계의 여러 나라의 서로 다른 문화적 사회적 기반에서 생겨난 조금씩 차이가 있는 기독교의 양태들이 그들 나름대로 이루어놓은 어떤 형태의 "예수의 사건에 관한 이야기" 강물이 함께 만나서 이루어놓은 바다는 함께 "기독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심으로서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서로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로 예수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전승)과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비평해 보아야 하는데, 이러한 예수의 행적에 관하여서는 복음서 중 가장 처음으로 편집된 마가복음의 신학적 중심 주제를 통하여 성서적인 측면에서 한국교회를 비평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하자는 것이다. 본인은 이러한 한국 개신교회의 현상을 마가복음의 핵심적인 신학인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신학의 빛에서 재 조명하여 봄으로서 한국교회의 지난날과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진단을 하고자 하였다. 결국 예수는 왜 예루살렘에 가서 대형교회를 만드시지 않고 십자가에 죽었는가? 와 왜 이러한 예수가 부활하여 다시 갈릴리로 간다는 말을 하였는가?라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복음의 의미를 통해 세계 교회에서의 선교 115년의 한국교회의 현재의 위치를 신학적으로 검증해보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한국교회의 새로운 천년에 대한 소망을 그려 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본문의 전개는 먼저 선교학내에서의 논문의 의미를 다루고 (개론) 이어 한국교회의 역사와 현재의 정황, 그리고 일반 성도들의 삶 중심으로 대형교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시도를 하였고 (Ⅰ편), 그리고 서로 다른 두 가지 형태로서의 한국대형교회의 표본으로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와 장로교 소망교회의 곽선희 목사를 그들의 설교를 통하여 정밀 분석하였으며 그 외에 9개의 대형교회를 성장의 이유와 함께 분석해 보았다 (Ⅱ부). 그리고 이러한 한국의 대형교회를 한풀이와 교회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마가 신학에서의 예수운동과 비교하는 작업을 하였다(Ⅲ부).

      • Prohairesis : Studien zur Trinitatstheologie und Christologie bei Eustathius von Antiochien

        배길수 Augustana-Hochschule Neuendettelsau 2002 해외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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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디옥 신학의 대표자이며, 니케아공의회(325년)에서 알렉산더(Alexander von Alexandrien)교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와 함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유스타티우스(Eustathius von Antiochien, 280-337 년)의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은 매우 새롭고 재미있습니다. 그의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은 "본래 하나님은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는 요한복음 1장 18절 말씀을 토대로 전개되어집니다. 그는 힘차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 되심을. 2. 4세기 고대교회의 삼위일체론과 기독론 논쟁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참 하나님이 되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 되실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알렉산드리아의 존재론적삼위일체론(ontological trinitarianism)과 안디옥 신학의 경세론적 삼위일체론(economic trinitarianism)이 로고스-육신-기독론(Logos-Sarx-Christologie)과 안디옥의 로고스-인간-기독론(Logos-Anthropos-Christologie)을 둘러싼 교리적 논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신학적 논쟁이 니케아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플공의회(381년)에서 기독교교리의 핵심인 삼위일체교리로 종결되어집니다. 3. 삼위일체론은 기독론적 출발점을 갖습니다. 이 사실이 유스타티우스의 삼위일체론을 통하여 재확인되어집니다. 삼위일체론의 근원은 Prohairesis에 있습니다. 이 Prohairesis에 의해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 아들로서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이 삼위로 계시며 한분이심을, 또한 아버지와 성육신하신 아들의 신성이 동일본질이심이 유스타티우스의 삼위일체론을 통하여 선명히 드러납니다. a. 우선 먼저 유스타티우스는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3/4)의 헬라적 Prohairesis 이해와 그의 로고스-육신-기독론을 비판합니다. 유스타티우스에 의하면 오리게네스는 헬라적 Platon 철학의 영향아래 "영혼선재설 (Praexistenz der Seele)"을 전제로 그의 로고스-육신-기독론을 전개하며, 성서의 모든말씀을 비유적(allegorisch)으로 해석하여 구원의 진리와 성서의 말씀을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b. 오리게네스의 영혼선재설에 따른 신론과 기독론의 이해는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와 소아시아에 널리 산재해 있던 "멜기세덱파"에 의해 확산되어집니다. 이들은 오리게네스의 헬라적 신학전통을 따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무시하게되고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을 부인하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유스타티유스는 이들을 비판하며 드디어는 알렉산더 감독(Alexander von Alexandrien)에게 편지를 냅니다. c. 이 논쟁은 니케아공의회가 열리기 직전인 321년경 아리우스(Arius)와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로 공격의 화살이 돌려집니다. 왜냐하면 이들 아리우스주의자들 역시 오리게네스의 영혼선재설 영향아래 헬라적인 Prohairesis의 이해와 헬라적 로고스-육신-기독론을 굳게 고수하기 때문입니다. 유스타티우스는 이들과의 논쟁에서 아리우스주의자들의 헬라적이며 오리게네스적인 Prohairesis의 이해와 로고스-육신-기독론을 매우 강하게 배척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참 하나님이심과 참사람되심을 고백할 수 없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주되심을 희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에서- 왜 유스타티우스는 헬라적 오리게네스적인 전통과 싸워야 했고,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삼위일체론이 어떻게 발전되어 삼위-와-일체의 기독교교리로 확립되게 되었는지를 기독교 전통과 교리와 성성의 전승안에서 새롭게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이 신앙으로 고백되어지지 아니할 때 우리의 구원은 무의미해짐을 유스타티우스는 누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에대한 논쟁과 증거가 바로 유스타티우스의 Prohairesis 이해를 통한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입니다. Prohairesis가 무엇인지 알기 원하십니까? 위의 논문을 한번 읽어보십시오. 이제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니케아신조의 호모우시오스의 신학적 이해가 완전히 새로워집니다.

      • 로마서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구원 : 왜 "온 이스라엘"은 구원받게 되는가?

        서동수 Augustana-Hochschule Neuendettelsau 1999 해외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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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장의 서론에서 사도 바울은 고대 수사학을 방법론으로 채택하여, A.D 49년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로마로부터의 유대인 추방명령과 네로황제 치하의 유대인 귀환(A.D 54)으로 야기된 로마공동체의 상황변화 속에서, 현대 기독교의 의미에서 볼 때 예견되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원한 분리를 예견한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 기독교인(유대인)과 이방인 기도교인(이방인)의 분열을 방지하고 범세계적 교회의 연합을 위하여 자기가 세우지 않은 낯선 로마 교회에게 가장 긴 로마서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사도바울의 선교 원칙중 자비량의 원칙과 비간섭 원칙을 검증수단으로하여 지금까지 연구사에서 보여지는 제반 학설, 특히 호교적(교리적), 선교적, 목회적 목적을 주장하는 학자들과 논쟁하였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현저히 주장되어 온, 롬1,16-17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이신칭의)"사상이 로마서의 주제가 아니고 롬8,28-30에서 예정론, 소명(계약)론, 이신칭의, 영화론를 포괄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구원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이 로마서의 주제임을 밝히고 롬8,28-30을 중심으로 바울이 귀납적인 방법과 연역적인 수사학 방법을 동시에 사용하여 로마서를 주제를 중심으로 대칭적으로 배열하였음을 제 2 장에서 밝히고, 제 3 장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연역적 증명에 해당하는 롬 9-11을, 그에 대한 연구사와 함께 간략하게 주석하였다. 제 4 장에서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사적 불가분리의 관계를 이스라엘 개념이 등장하는 본문들을 바울 당시의 그리이스-로마 세계에 대한 사회학적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특히 이방인에 대한 이방인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유대인이 이방인을 선교해야 한다는 이스라엘의 구원사적 역할을 부각시켰다. 제 5 장은 "온 이스라엘의 구원(롬11,25-32)"을 구원사적 종말론적 비밀로 규정하고 누가 "온 이스라엘"인지, 어떻게, 언제, 왜 "온 이스라엘"이 구원 받는지, 언제 바울이 이 종말론적 비밀을 계시로 받게 되었는지 등의 문제를 위하여 할애하였다. 제 6 장은 롬11,25-32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언되는 "온 이스라엘의 구원"은 종말론적 신비로 바울이 롬11,25 이전에 강력히 주장하여 온 이신칭의 교리와 신학적 모순관계에 빠지는 것을 필자에 의하여 새로 제시된 로마서 주제의 4 요소인 예정론과 계약론, 예수 안의 칭의론들이 예시된 롬3,21-26, 롬5,1-11, 롬4,11-25 그리고 롬5,12-21의 헬라어 문법과 문장을 새롭게 분석하여 바울은 마틴 루터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신청의 교리만 주장한 신학자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과 함께 전 이방인이 둘째 부활시에 그리스도의 속죄능력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만인구원을 제창한 신학자임을 토로하고 마지막 제 7 장에서 결론으로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하지도 않고, 유대인의 축복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동등한 구원의 지분이 있음을 밝혀, 유대인과 이방인, 교회와 회당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기초석을 다지기 위한 제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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