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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즈메리 류터의 하느님 이해

        한진경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0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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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즈메리 류터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임과 동시에 자유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 가운데에서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며 살도록 격려받았다. 또한 그녀는 유대인 숙부를 통하여,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을 통하여, 유대인과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관심의 눈을 떳다. 그후 학부시절 그녀의 비판적, 지적, 실천적 사고 속에서의 교회 역사의 연구는 그녀로 하여금 기독교의 진실성에 대하여 회의를 품으며 지적 사고의 전환 시기를 맞이했다. 민권운동, 베트남 전쟁,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페미니즘의 부활이 태동한 시기인 1960년대부터 그녀는 시민 운동가로 활약했다. 1965년부터 워싱턴의 하워드 대학교 신학교인 흑인 신학교의 경험을 통하여 그녀는 또한 신학적 사고와 사회적 실천과의 상호적인 관계를 접합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그녀의 신학적 관심은 반유대주의, 성차별, 계급주의, 생태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나타나지고 있다. 16세기 종교개혁기의 개혁은 그다지 급진적이지는 않았지만, 급진적 종교개혁의 교회들은 강압된 종교개혁의 교회들과 구별되면서 독특한 교회론과 인간론을 제시한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타락한 역사적 본성에서가 아니라 본래의 창조된 본성에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세속적 사회에 대립한 새로운 몸의 모임으로서 세속적 도시를 떠나 실존의 대립된 원칙에 의해서 사는 새로운 공동체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개방되어 나타날 새 하늘과 새 땅의 메시아적 공동체를 인수할 교두보로서 현재 안에 내재해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묵시문학적 전통의 내적인 흐름은 재세례파가 재구성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자와의 본질적 유사성을 지니게 창조하였다. 인간이 비록 죄 가운데로 타락하였을지라도 그이 진정한 본성으로 남아있는 하느님과의 유사성은 상실치 않고 보존하고 있다. 하느님 앞에 자유한 인간의 영혼은 도래할 하느님 나라를 기대하며 이 땅에서의 순례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최후의 심판에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와 이 땅의 죄인들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 은 창조자이며 동시에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였다. 르네상스에서 18세기 후기와 19세기에 있었던 자유주의 혁명에 이르는 기간 동안은 민주적, 세속적, 과학적 기반으로 그리스도교가 대체되는 기간이었다. 이 시기에 하느님의 자기계시는 자연의 법칙과 질서 속에서 보다 분명하게 보여졌다. 하느님은 더 이상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하느님은 우주의 원형인 최고의 존재로서 질서와 합리성의 관계에서만 증명될 수 있을 뿐이었다. 합리주의 사상에 기초해 18세기에 점진적으로 출현했던 것들은 천년 왕국의 새로운 세속적 표현으로 그 천년 왕국이 역사 안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하느님의 은총 또한 모든 인간과 모든 실체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역사 안에서 일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신칸트주의 신학에서는 지상의 도덕적 왕국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해석하는 것이 새로운 자유주의적 정통주의 가운데 세워졌다. 로즈메리 류터는 19세기대륙의 자유주의 신학에서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의 제안자로 로베르트 라멘나를 언급하고 있다. 라멘나는 개량된 사회를 창조론과 하느님의 부성과 인간의 형제애의 기초 위에서 발견하였으며, 그러한 것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수립하는 역사를 지배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보았다. 그리스도교 사회이론은 호레이스 부쉬넬과 월터 라우센부쉬 등에 의해서 미국의 부흥주의 그리스도가 사회윤리에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것은 교회와 세상 사이의 옛 구분을 지우고, 성령이 단순히 교회 안에서만 역사하는 분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인간을 위한 투쟁 가운데서 역사하는 분으로 이해했다. 하느님은 역사 안에서 일하시는, 역사를 최종적 목적에로 인도하시는 내재적인 성령으로 이해되었다. 제 1차 세계 대전 후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위기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 등으로 알려진 바르트가 꼽힌다. 바르트는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계시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계시는 인간이 신에게 이르는 길이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이르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신정통주의는 1920년대 후반기에 미국의 사상계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에 있어서 대표적인 학자로는 라인홀드 니버를 들 수 있다. 그는 복음의 자율성을 옹호하면 서 또한 정치의 자율성도 생각하면서, 신정통주의가 정치적 행동주의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려고 하였다. 인간은 은총을 통해서 그 자신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을 초월할 수 있는 새로운 삶에로 구원 받을 수 있는데, 이러한 은총의 근거는 역사를 넘어서는 절대적 초월자에게 있다. 인간이 하느님만을 믿고 신앙 안에서 살 수 있을때, 인간이 진정한 역사적 존재에로, 새로운 미래로 향한 영원한 개방성에로 구원될 수 있다고 보았다. 제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이후 사람들은 폭탄과 집단살해로 전체적인 삶과 가치가 파괴되는 대파국을 초래했던 현실에 대하여 비판할 만한 어떤 가치도 전혀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기에서 류터는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의 다양한 광기의 형태를 직접 바라보려고 하였던 알베르 까뮈를 언급한다. 까뮈는 초월적인 신과 거룩한 미래의 희망에 대한 신앙의 도약과 함께 자살 역시도 우리가 지닌 모순의 딜레마의 실체를 회피하는 것으로 본다. 그는 결합에 대한 인간의 요구와 현실이 부적당성 사이의 갈등 속에서 인간은 그 자신의 본성 안에 내재하는 가치를 확인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기 긍정을 통한 모순에 대한 반항적 인간에 관한 연구 속에서 모든 생명의 가치를 포함하는 차원에서 개인의 삶의 가치에 관한 질문을 야기시킨다. 억압에 대항하는 개인의 반항운동에 들어있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주장은 모든 인간의 공동의 인간성을 구상한다. 이런 인간 공동체에 의해서 반항자가 자신에 대한 존경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모든 인간이 서 있는 공동의 인간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항은 인간 사이의 침묵을 파괴시킨다. 즉, 까뮈의 판단은 하늘에 대한 반항은 정의와 질서의 이름으로 불공정한 우주를 만들어낸 창조자를 거부하는 것이다. 형이상학적 반항자는 하느님에 대한 무신론자라기보다는 하나의 모독자이다. 형이상학적 반항자는 정의의 이름으로 불공정한 창조자를 비난하고, 악과 파국과 무분별한 학살을 행하는 우주의 창조자를 심판한다. 까뮈는 인간의 선과 아름다움이 초월에 대한 반항에서 나온다고 선언한다. 인간의 희망은 신의 부재에 대한 견고한 신앙 위에, 그리고 이 세계를 초월해 있는 신적 세계와 신성에 대한 야망에 있다. 은총은 인간의 업적을 상대화시키고 인간의 가변성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절대자는 인간 한계의 보장자로서 작용한다. 구원받은 인간이란 자신의 존재를 어떤 절대자와도 일치시키지 않으면서 피조된 현실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역사의 흐름 속의 하느님은 종교개혁기를 거치면서 묵시사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을 부여하시며 하늘로부터 내려와 이 땅의 죄인들을 정결케 하시고, 모든 악을 타파하며 심판자로 오실 하느님을 볼 수 있다. 르네상스에서 자유주의 혁명에 이르는 기간에서는 민주적, 세속적, 과학적 기반 속에서 하느님은 자연의 법칙과 질서 속에서 자기계시를 하시는 분으로 이해되어진다. 하느님은 우주의 원형인 최고의 존재인 것이다. 합리주의사상에 기초해 천년 왕국은 역사 안에서 발생하기 시작했고, 하느님의 은총 또한 역사 안에서 일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에서 역시 궁극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수립하는 역사를 지배하는 하느님의 능력을 본다. 그것은 하느님의 영이 단순히 교회 안에서만 역사하는 분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역시 역사하는 분이 되신다. 하느님은 역사를 최종적 목적에로 인도하시는 내재적인 성령으로 이해된다. 1차 세계 대전 후 그러한 자유주의 신학은 비판을 받고 하느님은 역사를 넘어서는 절대적 초월자로 이해되어진다. 2차 세계대전후 하느님은 절대적 초월자로 이해되어지지만 거기에서의 절대자는 인간 한계의 보장자로 작용한다. 결국 절대자는 인간의 신이 되려는 욕망을 파괴하고 인간을 그의 유한성에로 되돌려 보낸다. 서구 기독교의 문화들이 남성적이고 유일신론적인 하느님의 개념과 하느님을 우주의 창조자로 해석하는 방법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가 사회적 그리고 상징적 지구에 대한 지배에 중요한 연결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또한 이런 지배는 가부장적 문화 안에서 남성을 하늘, 지성 그리고 초월적 영과 연결시키고, 여성은 지구, 물질 그리고 자연과 연결 시키는 경향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로즈메리 류터는 이것에 있어서 신화 속에 나타난 하느님(절대자)의 이해를 통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우주와 신들의 근원인 최초의 어머니로 시작하는 수메르 세계의 초기 이야기들에 기초해 있는 바빌로니아 창조 이야기는 처음에 우주의 몸에서 최초의 모체인 하늘과 땅이 나타나며, 그 다음 최초의 우주적 힘인 물, 공기, 식물 그리고 도시 국가의 지배 계급을 대표하는 인격화된 신과 여신들이 나타난다. 고대의 어머니 여신 티아맷과 마르둑의 이야기에서 티아맷은 마르둑에게 폐한다. 결국 마르둑의 아버지인 에아의 발생 안에서, 종속적인 남성 배우자들을 지닌 여성 지배적인 세계는 종속적인 여성 배우자들을 거느린 남성 지배적 권력 세계로 대체되었다. 마르둑은 유한한 인간 피조물을 강제로 노예화 시키는 반면에, 신들을 자유롭게 쉬게한다. 그는 인간으로 하여금 신들에게 봉사할 책임이 있게 만들어서, 이로 인하여 편하게된 신들은 성전과 궁전에 거하는 한가한 귀족 사회의 불멸의 구성원들이 되어, 들판과 작업장에서 땀 흘리는 농노들의 노동 생산물을 몰수한다. 몰수된 노동에 기초해 있는 여가는 농노와 노예들의 하층 계급으로부터 귀족 계급을 분리시켜서 신과 동일시했다. 헤브루 창조 이야기 안에서 창조자는 우주의 최초의 물질과 공존하면서 그 과정을 조용히 관리한다. 창조자와 최초의 어머니 사이의 갈등이 제거되고, 대신에 어머니는 형상은 없지만 창조자의 명령에 즉시 반응하는 유순한 물질이 되었다. 헤브루 창조 이야기에서 창조자는 6일 동안 빛과 어둠, 하늘과 궁창, 식물, 별, 달, 물고기와 새, 동물과 인간 등 우주를 형성시킨다. 또한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에게 고기, 새 그리고 육지 동물을 포함하는 지구에 사는 모든 동물에 대한 지배권이 주어진다. 이야기의 본문들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남성과 여성의 평등의 여지를 열어 놓지만, 하느님과 아담을 지칭하는 대명사의 남성적 호칭은 남성이 이런 하나님을 집단적으로 적절하게 대표하며, 여성은 이런 집단적인 인간 주권의 혜택을 함께 나누지만 동시에 남성 가장(家長)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의 창조이야기인 티마이오스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사고의 영역과 보이는 유형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이 두 영역 사이에 창조자는 우주의 장인이었다. 이 이야기의 데미우르고스 역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making) 창조한다. 그는 공간을 근원적 요소들인 불, 공기, 물 그리고 흙으로 형성하고 이것들로 우주와 더불어 세상의 영역, 세계 영혼을 만든다. 그런 후에 데미우르고스는 약간 희석된 형태의 요소들로써 인간 영혼을 만든다. 인간의 영혼들은 영원한 본질 안에서 하늘의 교육을 받게 되고, 그들이 하늘의 진리를 받으면 남성의 몸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나 몸과 그 감각에 대한 통제에 실패 하면, 그 영혼은 다시 육체의 모습을 갖고 다시 태어나 여자가 된다. 여기서 플라톤은 실재를 마음과 몸으로 구분했다. 여기서 마음은 근원적이고 영원하고 선하며, 몸은 이차적이고 파생적이며 악의 근원으로 정신(마음)에 의해 지배되어진다.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이런 계층구조(hierarchy)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인간의 동물에 대한 그리고 지배자의 노동자에 대한 계급 계층 구조 안에서 되풀이된다. 서구 기독교는 하느님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형성시킨 창세기 1장의 설명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고대근동, 헤브루, 그리스와 기독교의 개념들을 종합하였다. 기독교 신학은 하느님이 최초의 물질로 우주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이 최초의 물질을 창조하는 분으로 이해했다. 또한 기독교 견해에 있어서 하느님은 완전히 별개의 스스로 있는 영원한 존재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신과 우주의 연결 고리로서 창조를 하느님의 존재로부터 발생하여 그 존재가 실존 안에 거하는 것으로 본다. 기독교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에 대한 관점은 남성을 합리적 영혼으로, 여성을 몸과 열정으로 보고 있지만 각 영혼에 있어서 신성함과 구원에 대한 동일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하느님에 의해 독특하게 창조된 것으로 본다. 신화 속에서 이해된 하느님은 모권사회에서 부권사회로의 이동, 지배와 종속 관계에 있어서의 지배자로 이해된다. 또한 그 속에서의 하느님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지배구조에 대한 정당함을 뒷받침하려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참 이스라엘의 회개와 순종은 하느님의 은총의 수혜자가 되도록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순종에 대한 요구,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에 상응하는 삶을 살지 못했을 때 백성들의 재난은 그들의 배반과 그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의 표시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이 남은 자들을 근본으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이 새롭고 정화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교회와 이스라엘 사이에 단절을 초래했던 것은 바로 파기적인 계약원칙으로서의 메시아 예수에 대한 신앙을 고양시킨 것이었다. 육적 이스라엘에 대한 기독교의 이 입장은, 유대교의 가정된 정체성이었던 하느님의 현존으로서, 예수에 대한 신앙을 마지못해 하나의 지속적인 이스라엘의 계약 안에 두려고 했던 기독교의 입장을 구체화시키는 것이었다. 베드로 교회는 첫 번째 미드라쉬가 하느님은 이방인들 속에서 한 백성을 스스로 조성해 내고 있었다는 개념을 포괄하기 위하여 부연되었다. 바울 역시 한 비밀(롬11:25)을 발견했다고 선포함으로써 유대인들의 불신앙에 대한 그러한 종교적 의미와 또한 자신의 백성을 최종적으로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계속적인 관심을 시인할 수 있는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있다. 이 비밀에 의하면 유대 종교 공동체는 완악해졌고, 이방인들은 그 결과로써 구원받게 되었다. 이것은 뚜렷이 은혜로운 하느님의 행위다. 교부들은 유대인의 외면성을 완전히 자유스럽게 묘사해서, 유대인들이 기독교 금욕주의와 대조적으로 마치 실제로 육체의 악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처럼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모세부터 예수 시대까지 항상 성령을 훼방했던 백성이다. 그들은 한사코 하느님을 용납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의 계약은 실패로 끝났다. 그것은 마침내 하느님, 예언자들 그리고 메시아를 받아들였던 저 백성을 위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기독교의 승리와 메시아적인 회집에 대한 좌파적 사고는 유대인은 배척당하고 추방당했으며, 반유대인 전승에서 자명한 것은 유대인이 받을 형벌은 영원하며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율법은 그들이 배척당한 표시로 하느님에 의하여 폐기되었지만, 그들은 사악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법을 준수하려고 한다. 율법을 반대하는 기독교의 주장에는 모세의 율법은 폐기되었으며,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그것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그것은 또한 이미 영적으로 실현되었다는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은 참 이스라엘로서 하느님의 계약의 백성이었다. 하느님은 그들의 순종과 회개의 요구 속에서 그들에게 시련을 허락하신다. 그렇지만 기독교적, 교부들의 관점에 있어서 유대인들과 하느님의 계약은 파기되어진 것이었다. 그러한 하느님에 의해 유기된 유대인들은 그러한 관점 하에 역사 속에서도 유기되어 질 수 밖에 없음을 로즈메리 류터는 나타내고 있다. 로즈메리 류터의 하느님 이해를 정리하면서, 류터의 폭넓은 시각과 관점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단순히 개인과 관계된 나의 하느님, 우리의 하느님으로 하느님이 구속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신화, 문화와 삶 속에 존재하시며, 그 하느님이 바로 나 개인의 삶과 연계되어지는 하느님임을 본다. 그와 관련하여 류터는 하느님이 우리의 관계 속에 거하시며, 그 관계 속에서 치유를 낳는다고 한다. 그 관계는 단순히 인간들의 관계가 아닌 역사와 인류, 자연과의 전지구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속에서의 하느님 이해를 통해서 우리 삶의 사회체제를 구성하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본 논문은 기존의 로즈메리 류터의 여성생태 신학을 중심으로한 관점과는 달리 하느님 이해라는 시각으로 보았다는 점에 있어서 새로운 이해를 도우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본 논문에 있어서 폭넓고 광범위한 자료 조사에의 미흡함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느님은 역사와 사회, 문화와 온 삶 속에서 관여하고 계시며, 우리는 그 하느님을 나의 하느님의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하느님이며 나의 하느님은 어떠한 분이신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 본 회퍼의 교회론 연구

        김현동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1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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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회퍼의 교회론 연구 김 현 동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김 영 선 교수 지도 현대인들은 자연과학의 발달과 기술의 실용화로 물질적 퐁요를 향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물질만능주의의 만연 속에서 감각적 본능과 욕구 충족만을 좇는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은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고에 깊숙이 스며들어 복음화보다는 대형화된 교회의 건물이나, 신자들의 숫자에 치중하는 풍조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신자들 안에서 복음의 참뜻이 흐려지고 공동체성도 잃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한국 교회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한국 사회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으로서, 또한 사회의 부패를 막는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찾고, 또한 그 길을 올바로 걸어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교회는 ‘교회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또한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본고는 교회와 세상의 문제에 자신의 삶을 투신하면서 교회의 참된 본질과 새로운 방식의 신앙을 추구하였던 본회퍼의 사상을 통해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과제와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본고는 본회퍼의 신학사상을 3시기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다. 첫째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둘째 세상과 성별된 교회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은 교회와 세상의 관계이다. 이러한 큰 흐름 속에서 다음과 같이 논의를 전개하였다. 제Ⅱ장에서는 본회퍼의 삶과 그의 신학사상의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제Ⅲ장에서는 본회퍼의 신학적 이론 확립 시대인 신학사상 1시기에 저술된 『성도의 교제』와 『행동의 존재』를 바탕으로 그의 교회 이해의 출발점이었던 그리스도교의 인격 개념과 관계유비 그리고 교회의 본질적 구조에 대해서 다루었다. 제Ⅳ장에서는 본회퍼의 교회투쟁 시대인 신학사상 2시기에 저술된 『나를 따르라』와 『공동생활』을 바탕으로 세상 안에서 세상과 구별(성별)된 교회와 예수추종(제자됨)과 영적훈련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제Ⅴ장에서는 본회퍼의 정치투쟁 시대인 신학사상 3시기에 저술된 『윤리』와 『옥중서간』을 바탕으로 교회가 어떻게 세상과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 그리고 성숙한 세상에서 교회의 위치와 그리스도의 길(타인을 위한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 최병헌의 생애와 사상을 통한 교회일치운동 연구

        홍웅기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1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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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장 서 론 1. 문제의 제기 한국교회는 세계적으로 급성장했다가 너무나도 쉽게 정체기로 접어들었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해외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한 나라로서의 자부심도 있는 선교강국의 위치도 있지만 기독교적 문화의 영향력으로 사회를 선도하고 있지 못함도 사실이다. 21세기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지식수준은 높아졌으나 영적 기갈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여기에 한국개신교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선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가 당연히 짊어져야 할 사명이다. 교회일치 선교 개념은 ‘하나님의 선교’이다. ‘하나님의 선교’란? 개인 구원을 위한 전도개념이나 교세확장을 목표로 하는 것을 넘어서 삼위일체적으로 역사 안에서 인류의 구원역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활동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정치, 교육, 문화, 종교, 국가, 여성, 인권,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존 등도 포함된다. 우리는 한국선교 초기의 선교사들이 자국의 군함과 문화를 등에 없고 들어와 문화적 제국주의와 종교적 제국주의 형태의 기독교 복음을 전파한 정황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한국개신교 일부교단은 근본주의적인 보수주의로 남아있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토착화 신학자요, 기독교 변증가로 불리는 탁사 최병헌의 재발견을 통해 ‘교회일치운동 선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대형교회들의 세습 문제와 목회자와 장로들의 싸움과 분쟁, 진보와 보수의 갈등, 교회의 분열 이단시비들은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병폐로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여기에 탁사 최병헌의 나라사랑, 민족사랑, 성경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성적으로 설파하여 당시의 수많은 지성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한 업적은 오늘날 교회일치 운동의 선구자라 부르기에 적합하다. 최병헌은 자신의 유교적 학문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으로 재해석하여 출판과 신문, 대학교수로서의 교육, 시민운동, 심지어는 공무원으로 참여하여 민족을 계몽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슬람권의 사람들이 대한한국으로 유입되면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고 여전히 이 땅의 유교, 불교, 도교, 샤머니즘은 교회가 부흥되었어도 존재한다. 정치상황도 서로 일치하지 못하고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으나 너무 거대한 재벌들과 빈곤층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자연환경은 계속 오염되고 있으며, 세계 경제의 변화, 강대국들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배처럼 흔들리고 있다. 아직도 남과 북은 핵위협과 체제의 문제로 통일조국의 앞날은 멀게만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선교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필자는 탁사 최병헌을 통해 그 희망을 찾고자 한다. 2. 연구목적의 범위, 방법 1) 연구의 목적 21C는 지구촌(Global age)시대이다. 역사신학을 전공하는 신학도로서 한국교회사를 공부했다. 한국 최초의 신학자로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계몽시켜 서구 열강들과 일본의 침략을 대항하고자 자신의 유교적 학문과 문화와 종교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재해석하여 이원론적인 갈등을 극복하고 교회일치적 선교를 펼쳤던 탁사 최병헌의 상황과 생애, 사상을 통해 선교 초기의 서구선교사들이 피선교지 국민을 미개한 종족이라 여기고 야만적 문화를 가진 족속이라 무시한 배타주의적 선교 방향을 한국에서 세계로 파송되는 선교사들이 답습하지 않게 하여 선교지에서의 교회일치적 선교를 통한 하나님 나라 건설을 앞당기게 하며 국내에서도 이제는 한국적 신학의 주체성으로 세계를 구원시키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선교로 제2의 한국교회 성장을 도모하고자 기대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최병헌의 생애와 사상을 통한 교회일치적 선교를 연구하여 현대선교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데 있다. 2) 연구범위와 방법 본 연구의 범위는 역사 신학적 입장에서 탁사 최병헌의 역사적 상황과 생애와 사상을 살펴보면서 정리해보고 교회일치 운동의 선구자로서의 그의 업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존의 탁사 최병헌의 연구는 많은 편이다. 유동식의 “최병헌과 종교신학”, “한국신학의 광맥”, 송길섭의 “한국 신학 형성의 선구자 탁사 최병헌과 그의 시대”, 변선환의 “탁사 최병헌과 동양사상”, 심일섭의 “한국신학 형성의 선구-최초 ‘호교론’과 ‘변증론’을 중심으로” 한숭홍의 “최병헌의 신학사상”, 신광철의 “탁사 최병헌의 비교종교론적 기독교 변증론: 「성산명경」을 중심으로”, 박명길의 “최병헌 목사의 삶” 이덕주의 “토착화신학의 선구자 최병헌”“최병헌의 신학사상”, 이창식의 “탁사 최병헌의 생애와 문학” 등등이 있고, 「아펜젤러. 최병헌 목사의 생애와 신학」이 정동삼문출판사에서 출간 된 것이 있다. 서영석 교수님의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인물과 사상” 속에서 “구한말 개신교 인식과 수용에 있어서 탁사 최병헌의 영향력”이라는 둘째 마당이 있다. 석사 논문으로는 유승한의 “탁사 최병헌이 생애와 사상연구”(감리교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석사논문, 1985), 임재식의 “탁사 최병헌의 사

      • 존 웨슬리의 교육 신학에서 바라본 학교 패러다임 연구

        김용민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1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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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한국 교회는 신앙 교육 보다는 양적인 것에만 치중되어 신앙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조차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우쳐 실제적인 신앙 교육에 대한 부분은 교육되지 않는다. 기독교 민주 시민의 양성을 이루는 것이야 말로 기독교 교육의 목적이라 이야기 될 수 있는데, 너무나도 양적인 부흥에만 몰두 된 결과가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현재 한국교회는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고 정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웨슬리의 교육을 통해서 우리는 신앙 교육의 표본인 킹스우드 학교를 통해 지금의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하기로 한다. 웨슬리는 교육을 통하여 그 시대에 적합한 임무를 수행하려고 했고, 그 시대에 필요한 것을 용의주도하게 관찰하여 교육 이론을 만들고 실천한 인물이었다. 그러한 웨슬리의 교육 이론이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가 우리는 생각해 봄직하다. 웨슬리의 신앙 교육을 통해 경험되어진 학교를 연구함으로서 앞으로 한국 교회와 기독교 학교의 신앙교육을 모색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고찰하고, 존 웨슬리의 신앙 교육의 영향을 통한 현 시대 방향성을 고찰하는 것이다. 웨슬리에게 있어 킹스우드 학교는 어머니의 신앙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러 교육 신학을 정립해 볼 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사람은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교육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며 좌지우지 한다는 점이다. 수산나의 자녀교육을 위한 규칙으로 언제나 규칙적인 방법에 따라서 생활하게 했다. 성결하고 행복한 성품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가능한 한 어려서 약한 의지를 파괴하고 나쁜 성격을 고쳐주려고 했다. 그리고 말을 배우게 되면 곧 주의 기도를 가르쳐 잠잘 때와 깰 때에 외우게 했다. 또 성경 요절과 교리문답을 외우게 했다. 이런 교육을 통해서 웨슬리는 자신의 교육 신학을 정립하게 되고, 킹스우드 학교라는 것을 세워서 기독교 민주 시민의 양성을 이루어 나간 것이다. 웨슬리는 또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평생에 아버지를 통해서 배운 점은 성경 중심적인 삶이다. 말을 타고 가면서도 성경을 놓지 않았고, 성경의 내용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고, 영원불변하는 진리의 원천이 된다고 주장했다. 성경만이 그의 모든 사상을 지배하는 무기가 되었다. 웨슬리와 같이 성경 중심적인 신앙 교육을 실시하지 못한 결과로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학교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한국교회와 기독교 학교는 성경을 바탕으로 하여 철저한 성경 중심적인 질적인 신앙 교육을 실시해서 한국교회와 기독교 학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본다. 웨슬리가 행했던 삶의 모습처럼 가정 안에서 이루어진 교육 전부가 삶을 지배했던 것처럼 지금의 한국 교회가 가정과 같은 공동체 교육과 성경 중심의 교육을 통해 이제는 질적인 성장으로 더욱더 큰 영적 부흥의 역사를 경험토록 해야 한다고 본다. The Korean Church is currently not focusing on religious education, as it is focusing too much on the quantitative things rather than religious education. Religious education is also not being provided in school, at it is focusing too much on college entrance examination preparation. Although it can be said that cultivating Christian democratic citizens is the purpose of Christian education, the result of having focused too much on quantitative revival has led to the current state. Accordingly, the Korean Church is not reviving currently and being stagnated. We seek to search for the future direction of the current Korean Church through the ideal model of religious education, Kingswood School, through the education of Wesley. Wesley was someone who tried to carry out the mission appropriate to the time through education, and developed and practiced educational theory by carefully observing the things needed for the time. It is desirable for us to think about the effects of such educational theory of Wesley on this tim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earch for the religious education of the Korean Church and Christian schools by studying the school experienced through the religious education of Wesley, and examine the direction of the current time through the effects of John Wesley's religious education.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Kingswood School was developed through the religious education of his mother. When reviewing and examining various educational theologies, the person that had the biggest effect on his life was his mother Susanna Wesley. That is why home training acts most importantly and determines one's life. Susanna sought to have her son to always live according to regulated methods through the rules for her child's education. She tried to destroy his weak will and correct bad personality as much as possible in order to develop holy and happy personality. In addition, she had him memorize the Lord's Prayer when we went to bed and got out of it by teaching him the Prayer when he learned to talk. Also, she had him memorize scripture verses and catechism. Wesley ended up developing his own educational theology through such education, and cultivated Christian democractic citizens by establishing Kingswood School. Wesley was also heavily influenced by his father. What he learned from his father throughout his life is the Bible-center life. He even read the Bible when riding horse, and asserted that the contents in the Bible are the Words of living God and the source of eternally unchanging truth. Only the Bible became the weapon that governed his every thought. The Korean Church and Christian schools are in the difficult situation as the result of not having conducted the Bible-centered religious education as Wesley had done. The Korean Church and Christian school need to now start conducting the Bible-centered and qualitative religious education based on the Bible to fulfill their role. The Korean Church needs to now start allowing to experience the history of bigger spiritual revival through qualitative growth by conducting family-like community education and the Bible-centered education just as every education conducted at his home governed the life of Wesley.

      • 예레미야서의 성전설교에 나타난 신명기적 신학사상에 관한 연구

        안용민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1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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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요약 성전은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인간은 성전에 대한 거룩함과 경건함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이는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 예레미야는 성전설교(렘 7:1-15)를 통해 외적인 예배 행위에만 치중해 있는 유다인들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이러한 메시지를 지니는 예레미야의 성전설교는 계속해서 전승되어 내려오다가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성경 안에 기록‧편집되어 편성되었다. 예레미야서의 산문 형식으로 된 설교들 안에는 신명기 신학을 반영하는 언어들이 많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본고는 예레미야의 성전설교(렘 7:1-15)를 중심으로 이를 신명기 학파와의 언어‧문체적, 신학적 연관성의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특별히 본고는 본문에 나타난 신명기 학파의 편집의 흔적을 분류하는 데에 집중하였다. 그럼으로써 예레미야가 선포한 본래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았고, 신명기 학파가 성전성교를 편집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본고는 이러한 연구 목적에 부합하고자 해당 본문에 대한 주석적 접근을 시도하였는데, 연구 내용은 크게 4부분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제2장에서 신명기 역사서와 신학사상을 살펴봄으로써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시도하였다. 제3장에서는 본문 주석을 통해 예레미야의 성전설교 본문에 나타난 신명기계 색채와 신학을 띠는 히브리어구를 분류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 결과 본문은 후대의 편집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것과 신명기 신학을 반영하는 언어로 구성되었음이 밝혀졌다. 제4장에서는 성전설교 본문과 신명기 학파와의 연관성을 언어와 문체, 신학에 대한 부분으로 나누어 알아보았다. 본문을 구성하고 있는 언어와 문체는 전형적인 신명기 학파의 언어와 문체와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또한 신학사상에 있어서도, 본문의 신학사상은 신명기 학파가 강조하는 신학사상과 어느 정도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은 연구를 통해, 성전설교 본문은 신명기 신학자에 의하여 편집된 편집물임을 알 수 있었다.

      •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신학적 소고

        홍미선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0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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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에서는 종교다원주의의 배경 및 형성과정과 신학에 대해 자세히 고찰하여 그 한계를 살펴봄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확실히 함과 동시에, 종교다원주의 신학이 오늘의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사(示唆)하는 바를 살핌으로 그리스도교의 자성과 변혁의 계기로 삼고 나아가 이렇듯 종교다원주의가 득세하는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길은 어떤 것인지 숙고해 보고자 한다. 종교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있어서의 유일성과 보편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회적 성육신 사건을 신화화하여 성육신은 사실이 아니라 신앙 고백적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모든 종교에 존재하는 궁극적 실재는 각 종교에 그리스도로 현현하기에 각 종교마다 각기 다른 그리스도가 존재하고 따라서 모든 종교는 동일한 구원의 길임을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성서를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성서의 규범적 권위를 부인하고, 기록자 혹은 편집자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하나의 신앙 고백적 편집 문서로 받아들인다. 성서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구원에 대한 개념, 나아가 신과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정통적인 그리스도교의 견해와 상이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종교다원주의 신학은 비그리스도교적 접근이라는 것과 사용하는 용어의 문제점 및 선교무용론의 대두, 종교적 다원성에 대한 비다원주의적 해석으로 인한 논리적 모순 등의 문제점이 있으나, 종교다원주의의 통전적, 우주적 신학 및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실천에 대한 주장은 오늘의 그리스도교와 그리스인들에게 자성과 변혁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종교다원주의에 복음에 대한 확고한 주장을 가짐과 동시에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것을 제안하는 웨슬리의 관용의 정신을 가지고 대처한다면, 이 시대 기독교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혼란시키는 종교다원주의의 주장에는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다른 종교에 속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함께 손잡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 구원 사업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초기 한국 기독교와 선교사들의 신학연구

        조새빛누리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1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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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장 서 론 한국 기독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안한 자리에서 받아 들인 것이 아니라, 민족적 일대 위기 속에서 받아들였으므로 초창기부터 그 신앙형태가 민족구원이라는 민족단위 위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구한말에는 복음이 한국 민족의 개화 에너지(Energy)로 작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제 36년 통치 기간에는 민족구원과 해방의 신앙으로 나타나면서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였다(예, 3.1운동). 그러다가 1907년의 대부흥운동으로 그동안 있어 왔던 민족구원 신앙과 대응되는 개인구원신앙 형태를 형성하게 되었다. 1907년부터 선교사들의 한국 교회 비정치화 정책의 후광을 받으면서 내세적 탈사회적 성격이 강한 개인구원의 신앙 형태는 반봉건적 사회개혁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는 민족구원신앙과 좋은 대조를 이루면서 2대 한국 기독교 신앙유형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두 흐름이 한국 기독교 100년 역사에서 때로는 상조하면서 때로는 충돌하면서 오늘까지 한국 기독교를 이끌어 가고 있다. 신학운동도 대체로 이런 신앙형태에 상응하면서 개인구원 신앙 노선은 대체로 보수주의 신학을 수립하게 되었고, 사회참여적 사회개혁 의지가 강한 민족 구원 신앙은 자유주의 신학발전에 기여하면서 전개 발전되었다. 본 연구를 통하여 1800-1900년대에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교육과정, 신학, 선발된 방법, 훈련 과정 등이 한국 기독교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제1절 문제제기와 목적 초기 선교사들은 선교의 오지인 낯선 땅 조선에 와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면서 복음 전파에 온 생애를 바치고 목숨까지 잃어가며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또한 초기선교사들은 초기 한국 기독교의 신앙과 신학 형성에서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한국 초기 선교사들은 교파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었지만 본국의 목회자들보다는 교파적인 면이 적었고, 선교열과 복음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한국 기독교, 특히 해방 이전의 기독교는 한국 초기 선교사들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으며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 수립과정에서 선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한국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한 작업의 하나로 선교사들의 신앙과 신학을 주목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초대교회의 역사는 이 땅의 기독교 신앙을 들고 온 초기 선교사들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신앙은 씨를 심은 사람들에 의해서 기본적인 틀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개신교 전래 100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도 그들의 영향력 속에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한국 교회에 잠재되어 있는 신앙의 모양, 신학적 성향, 그리고 교회 전통속에서 얼마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당시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 불꽃처럼 사라져간 선교사들이 어떤 신앙과 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형성된 한국 교회의 신학적 뿌리와 영향을 밝혀보고자 한다. 더불어 비판적인 시각과 이 시대에 나타나는 우리 신앙과 교회의 문제를 고찰하고,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발견하고자 한다. 제2절 연구범위와 방향 본 연구는 몇 가지의 큰 틀을 가지고 진행될 것이다. 하나는 미국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연구할 것이다. 물론 미국 아닌 다른 국가에서도 훌륭한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었지만 우리 민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신학을 좀 더 깊이 다루고자 한다. 다른 하나는 비판적 시각을 놓치지 않고, 접근할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큰 빚을 진 것이지만,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만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봄으로써 지금 이 시대에 나타나는 우리 교회의 문제를 고찰하고,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발견하고자 한다. 다른 하나는 시대적 정의를 1910년 이전으로 국한함을 밝힌다. 한국은 1882년 중국의 주선으로 한미통상조약 이후, 1885년 미국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을 선두로 호주, 캐나다, 등지의 선교사들을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가 선교의 문이 가장 활발하게 열렸던 시기이다. 이때부터 1907년 대 부흥이 일어나기 전까지자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기틀의 기본을 마련한 시기이기에 1910년 이전까지의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연구(그들의 신학과, 배경) 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가치관 혹은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개인적인 자료와 함게 그 사람에게 영향을 준 배경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에 본 연구는 당시 선교사들을 파송했던 국가의 역사신학적 상황을 살펴볼 것이며, 파송 교단이 어떤 신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이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또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에 굵직한 영향력을 행사한 선교사들의 신학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창조론 안에서의 하나님의 성(性) 이해

        서동신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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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우리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사회는 현재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남녀평등의 문제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남녀평등에 대한 사회운동은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고, 실제로 여권신장을 이루었다. 교회 내에서는 어떠한가?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의 활동이나 리더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며, 그 근거를 성서에서 찾기도 한다. - 1 -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기 위한 근거를 종교에서 찾았다. 가부장주의적인 개념적 구성은 전통적으로 남성중심적인 신념, 가치관, 태도 등을 형성하고, 또한 남성이 우월한 존재라는 기준과 가정을 전제하고 있으며, 따라서 남성에 대한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부장주의적인 개념적 구성에서 ‘하나님-남성-여성’이라는 상징적 위계질서(symbolic hierarchy)가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매주 드리는 예배시간 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우리의 인식 속에 강력하게 주입되는 이미지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하나님을 왕으로 생각하는 ‘율법주의적 신관(nomistic theism)’과, 하나님을 저 하늘 위에 계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초자연주의적 신관(supernatural theism)’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을 우월한 남성으로 생각하는 신관의 영향으로 여성억압과 남성의 비인간화 현상, 환경 및 생태계의 파괴, 계급주의와 인종차별 등의 부작용이 초래되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하나님 이해가 끼치는 부작용으로 인해서 사회 및 기독교 내부에서도 갱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고정적인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해에 대한 다양한 시도들을 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사실 성서 안에서의 하나님의 모습은 아버지의 모습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여성신학자 맥페이그(Sallie McFague)는 하나님을 어머니, 연인, 친구로 부를 수도 있다고 말하였다. 또한 하나님을 영(Spirit)으로 생각하는 신관을 채택해야한다는 신학자들도 등장했다. 전통적인 신학은 오늘날 많은 부작용들을 야기하였고, 이에 대한 비판과 도전들을 받아왔다. 해방신학 (Liberation theology), 여성신학(feminist theology), 흑인신학, 생태신학 (Ecology Theology), 한국의 민중신학(minjung theology)등은 전통적인 신학으로 인해 야기된 악영향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하게 된 신학이다. 그 중에서도 가부장주의적인 신관에 대해서 정면으로 도전을 주었던 신학은 여성신학이었다. 여성신학은 전통신학의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태동하였지만, 여성신학 안에 한계점도 존재한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한계점이다. 즉, 여성신학은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포괄적인 모습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다양한 영향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젠더만을 내세우는 여성신학은 인류 보편의 경험과 관점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예수 바로 믿기는 성경관과 함께 신관(神觀) 바로 세우기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관과 관련해서 하나님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근래 여성신학이 등장하기 전에 기독교인 중 하나님을 여자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하나님을 여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요, 기독교에 대한 파괴공작쯤이라 여기고 있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하나님의 모델 안에서는 남성성뿐만 아니라 여성성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여성성은 성서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이 등장하는 창조기사 안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구약의 창조기사는 역사, 종교, 지리, 문화적 배경 등의 영향을 받았다. 문화는 서로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충돌의 여파 속에서 다른 문화의 신화가 흡수된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종교가 주변국들의 종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구약성서의 창조기사도 이집트, 가나안, 바벨론과 같은 여러 고대 근동의 나라들의 창조기사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창조기사 안에서 하나님의 여성성은 창세기의 두 가지 창조이야기를 비교해봄으로써 유추해 볼 수 있다. ‘창세기 1:1-2:4a’의 창조이야기에서는 온 우주 만물을 계획적으로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남성성을 ‘창세기 2:4b-2:25’의 창조이야기에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함께 계시며 옆에서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의 여성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에서도 하나님의 여성성을 찾아볼 수 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때 하나님을 남성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무리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서 하나님을 남성으로 보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남성으로만 볼 수 없었던 고충이 여기 저기 충분히 드러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남성이면서 동시에 여성도 된다. 또 남성․여성임과 동시에 이 둘을 넘

      • 한국초기선교사들의 활동과 영향력연구

        조관근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0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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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초기 한국교회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 원인을 살펴보았다. 초기 한국기독교는 정치적인 종교적인 선택의 결과로 주체적인 복음 수용의 역사를 가졌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한 종교적으로도 길을 찾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한국은 기존의 것을 대신할 것을 찾아 야만 했다. 이런 현실적 요구가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만들었고, 한국인의 심성에 불을 붙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초기기독교는 주체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바탕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따라서 한국의 주체적인 신앙심과 그 위에 선교사들의 신앙적 신학적 요소가 더해져 한국인의 신앙 정체성을 형성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백인 문화의 문화우월적인 바탕과 각 교파의 신학적 바탕, 그리고 출신별 분파의식마저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한국기독교는 선교사들의 바탕에 내재해 있던 요소들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은 선교초기의 상황화된 선교의식에서 벗어나 조직되고 교권화된 의식을 가지게 된다. 심지어 한국인 지도자들이 선교사들보다 뛰어나서는 않된다는 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결국 한국의 신앙인들은 미국교회의 모방이 되었고 그 수준은 편협하고 비이성적인 내용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 할 점은 그렇다고 해서 선교사들의 업적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에 의한 자발적 주체적 복음수용과 전파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선교사들의 열정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한국에 복음이 깊이 뿌리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또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한국교회가 선교사들의 영향을 100% 그대로 다 물려받은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기독교만의 열매가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신학의 선구자인 최병헌과 한국의 신앙정신의 표상인 전덕기 목사와 한국의 영성가인 이용도 목사 김교신 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 안에는 선교사들이 물려준 신앙유산 뿐 아니라 주체적신 신앙정신 함께 녹아 있는 것이다. 유동식은 이와같은 주체적 신앙정신이 녹아있는 한국의 신학을 정리해 내고 이를 '한국신학의 광맥'이라 이름붙인 바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현실에서 풀어야 할 몇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필자는 지금 사회를 다원화 된 사회로 바라보고 있기에 같은 맥락에서 과제를 제시하려고 한다. 첫째는 초기교회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교회가 선교사들의 신학적인 도움을 필요로 했던 사실이지만 강제로 주입된 신학은 한국교회의 주체성을 손상시키고 말았다. 따라서 이제는 이식된 신앙양태를 벗어나 우리의 주체적인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나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다원화 된 사회 안에서 바로 서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분명한 존재로 섬으로 말미암아 상대에 대한 인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교회 안에는 주체적인 시각의 한국기독교역사이해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한 예로 박용규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초기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네비우스 선교) 정책이 한국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복음의 대사회적 책임, 문화변혁의 사명을 소홀하게 만드는 동인이 되었다는 평가 역시 당시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통시적이고 전반적으로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검토하고 내린 평가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박용규는 그 역시 선교사들의 정책이 가진 시대적 한계를 지적하는 데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의 정책이 오늘의 교회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기독교역사연구의 결과가 오늘의 기독교를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도움을 주려면, 과거의 역사적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현실에서 대안을 마련해 가야 한다. 그런데 박용규의 시각은 과거의 역사를 그냥 인식하는데 그치고 오늘에도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한국의 신학을 발전시키는 일이다. 선교사들이 필요했던 주된 이유는 신앙적, 신학적 도움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도움을 받지 않고도 홀로 서게 되었다. 하지만 양적으로는 오히려 세계선교에 앞장서는 위치에 올라섰지만 내용면에서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정민은 '한국신학'을 광의적 의미와 협의적 의미로 구분했다. 광의적 의미는 한국 내의 모든 신학운동을 말하고 협의적 의미는 한국적인 신학, 한국의 개성적인 신학을 말했다. 그리고 한국신학의 흐름을 광의적 의미에서 서술해 갔다. 한국 신학의 의미를 광의적인 것으로 보고 한국이라는 공간을 그 거처로, 복음수용의 이래 전래. 수용. 발전. 생성된 한국신학의 흐름을 간략히 살피려 한다. 이 전제는 한국 공간을 근거로 한 모든 신학적 내용을 다루고자 한 것인데, 공간적 의미를 벗어나 내재화 된 의미로 논할 수 있는 신학이 정립되지 않았음을 함의하고 있는 서술이다. 그는 '한국신학'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엄밀한 의미로 한국 기독교인의 고백적 의지나 경험, 그 문화적 사상체계와 접목되어 나타나는 한국 신학의 노정은 이제 겨우 시작이다'라고 하면서 '한국인의 주체적 인식과 그 문화적인 여과를 경과하지 않은 신학은 서구 신학의 모방과 답습이라는 사실에 관심하여야 겠다. 그러므로 한국의 신학을 발전시켜 한국인에게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복음운동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이해하며 협력하는 신앙태도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는 '통일'과 '하나'라는 명제 앞에 있다. '통일'이 민족적 역사적 과제라는 점에는 서로 동의하고 있지만 '하나'라는 명제 앞에서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 태도는 서론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근대이전의 사고에서 발생하는 태도다. 근대 이전의 사고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히는 데카르트 식의 '생각하는 나'를 중심에 둔 사고를 말한다. 판단의 기준에 '나'라고 하는 불변의 잣대를 전제하기 때문에 이 사고로는 서로 다른 사고의 잣대를 인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필자는 이 사고방식을 넘어 근대이후 즉 포스트모던의 사고방식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민족적 역사적 과제 앞에 선 교회가 현시대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이전까지의 분리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나 자신과 상대의 역사와 결과를 바로 이해할 때 '우리'라는 관계성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우리'라는 관계성을 발견한다면 교회가 분열을 극복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복음주의선교신학과 에큐메니칼선교신학의 비교연구 : 복음주의 진영의 로잔언약과 WCC선교신학의 비교를 중심으로

        이재원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0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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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큐메니칼 신학에서는 수평적인 복음의 차원을 중시하여 인간화가 선교의 중심 내용이요. 사회에 하나님의 샬롬을 구현함을 선교의 내용으로 하며, 또한 전도는 사회구조를 변혁시키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여긴다. 에큐메니칼 신학에서는 사회 복음을 주장하며, 이를 통한 개인 구원과 또한 사회 변화를 강조한다. 사회적 책임, 사회적 관심, 사회적 행동을 가질 것을 말하며, 믿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 마음을 가지고 정치제도, 경제제도, 사회구조 속에도 뛰어들어 직접 관여하며 이것들을 변화시켜 나갈 것들을 요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전세계적이고 모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체라 하며, 세계는 변화하나 복음은 불변하고, 크리스챤의 삶이 예수를 닳는 삶,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이 되어지는 크리스챤 라이프를 강조한다. 신학적 폭이 넓으며, 이에 따라 종교적 다원주의에 빠질 위험도 있으나 다음과 같이 인종, 교파, 국가, 민족을 초월한 교회의 일치, 연합을 강조한다. 케인은 선교를 영혼구원과 사회봉사로 해석한다. 그는 "복음주의는 선교를 전도와 동일시하여 영혼 구원은 잘하지만 다른 활동에 참여하는데 는 느린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사회봉사에서는 잘하지만, 영혼구원에는 관심이 없다. " 고 양자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복음주의자에서는 복음전도와 개인 구원을 강조하며 미래지향적, 타계 지향적 구원을 말하고, 믿음으로 인한 구원을 강조하기에 행함이 약한 일면이 있고 개교회주의적인 경향이 강하다. 또한 성령의 역동성, 능력을 경시하며, 신학의 폭이 좁은 면이 있다. 로잔 언약에서는 복음전도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 책임, 행동까지도 수용하며, 오순절 카리스마 운동에서 강조하는 성령의역동성을 인정하면서 성령이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임을 또 한 인정한다. 에큐메니칼에서의 연합이 중요성도 인정하며 교파의 장벽을 넘어서야 함도 인식한다. 로잔 언약의 정신들은 한국 교회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인식되어야 하는 것들이며 개개 신학교들 간의 교류를 통한 연합과 신학교 교수들의 자질 향상, 그리고 목사 후보생들의 소명의식과 훈련 교육 등을 통한 철저한 복음의 고수는 선행되어야 할 과제들이기도 하다. 로잔 선교 신학이 사회 참여를 주장하고 하나님나라 선포에 있어서 예언자적인 사명을 말한다고 해서 WCC계통의 선교 신학 입장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마닐라 선언문은 밝히고 있다. "우리가 사회참여를 계속하여 다짐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위 기독화된 사회와 혼돈해서는 안 된다. " 마찬가지로 전도에서 능력의 역사, 곧 표적과 기사의 동반을 말하지만 그것이 주된 사역일 수는 없다. 로잔 신학은 하나님 자신이 주된 전도자이심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 없이는 효율적인 전도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전도가 궁극적인 의미에서 악의 정사 잡은 자들과 세력과의 영적 싸움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먼저 개인구원에서 시작하여 사회적 관심, 책임, 행동을 크리스챤 자신의 삶을 통하여 나타내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에는 반드시 개인적 구원, 개인적인 예수님과의 만남이 선행되어야 한다. 선교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마음, 기독교의 본질이며, 수단이나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것이지 교회를 성장, 부흥시키기 위해 선교를 과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선교는 아니라고 본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선교의 영역은 온 세상이다. 교회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이며 교회의 사역 전체를 선교라 본다. 선교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인데 이것은 다른 말로 샬롬의 추구와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샬롬은 평화라는 뜻과 함께 온전(Wholeness)하다는 뜻이 있는데, 선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그 '온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온전 속에는 개인 영혼 구원과 사회의 구원이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개인영혼+구원사회구원)이라고 표시할 수 있다. 이런 선교활동을 수행하는 교회의 기본적인 자세는 '고난의 종'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 일체의 선교 활동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했던 주님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서 세상을 섬기는 정신으로 수행되지 아니하면 안 된다. 결국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수직적이냐 수평적이냐, 인간화냐 복음화냐를 결코 양자택일할 수가 없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그러나 이것을 보기 좋게 적당히 결합시키거나 섞어 놓아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도 확실히 하지 못한다면 둘 다 잃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신앙고백이 없는 인간화는 휴머니즘적인 활동에 불과한 것이고, 형제와의 화해가없는 복음화는 하나님 앞에서 위선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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