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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틴 루터의 십자가 신학

        염명동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0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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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자로서 늘 느끼는 의문과 갈등은 내게 맡겨진 저 양들에게 내가 선포하는 멧세지가 과연 한치의 어긋남 없는 올바른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점이다. 행여 목회 현장의 상황과 조건들, 그리고 시대적 조류에 떠밀려서 잘못된 복음을 잘 못 되었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 태연히 강단에서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강단을 내려올 때마다 마음에 큰 그림자로 남아 있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바른 방법은 내가 외치는 설교의 내용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어야 하는 것뿐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오직 신학의 힘을 빌려야 했고, 와중에 개혁신학의 가장 깊은 뿌리를 살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됨에 자연스럽게 종교개혁자 루터로 시선이 돌려졌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잘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몰트만을 말했다. 이 정의를 루터의 표현을 빌린다면 참된 신앙은〈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럼 점에서 본다면 루터는 가장 바른 신앙의 소유자라고 말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 바른 신앙의 힘은 한낱 보잘 것 없는 무명의 구도승으로 하여금 전 세계를 정치치적으로 초월적인 위치에서 지배하고 있던 절대 권력의 로마 교황과 맞서 개혁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도록 만든 초인적인 용기와 담력을 생성토록 했으며, 같은 시대의 사조와 삶의 형태까지도 좌지우지하던 "영광의 신학"까지도 붕괴시키는 기적을 이루어 냈다. 목회자의 제일의 사명은 맡겨진 성도들에게 바른 신앙을 심어 주는데 있다면, 가장 좋은 교재는 단연코 루터의 "십자가 신학"이다. 십자가의 사역과 십자가의 능력과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하지 않고 바른 신앙, 바른 복음을 심어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루터는 조직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성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맞닥뜨린 신학적 논쟁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변증하거나 상대의 논리를 공격하는 결과로 그의 신학은 정립이 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그랬기에 루터에게서 체계적으로 자신의 신학을 저술해 간 활동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가장 루터를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가면서 그가 받은 사상적 영향, 그리고 변화되는 그의 신학의 면모를 그의 삶의 부분들과 연계해서 살펴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여 루터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청년기에 그를 괴롭혔으나 그로 하여금 위대한 신학을 탄생하도록 만든 가장 큰 동기가 된 영적 고뇌를 살펴보고, 이어서 루터로 하여금 위대한 종교개혁가로 재 탄생할 수 있도록 만든 의인론의 발견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의인론을 발견할 수 있기까지 그의 사상에 영향을 끼쳤던 중세시대의 여러 사상들을 간단하게 살펴보고, 이어서 그의 수많은 저술 속에서 나타난 십자가 신학의 편모들을 살펴본 후에 이를 종합하여 십자가 신학에 대한 정의와 평가로 끝맺음을 하였다. 여기서 나타나 루터의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자 고통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 즉 역설적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전 우주 안에 충만하도록 장엄하신 영광은 십자가에서 무참하게 받은 처형의 고통과 치욕 아래 감추어져 있으므로 하나님의 계시는 완전한 역설 그것이다. 십자가 신학은 루터의 신학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루터에게 있어서 참된 신학은 "십자가의 지혜"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모든 참된 신학적 지식을 판단하는 기준이고 하나님의 실재성, 은혜, 구원,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의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이라는 의미이다. 십자가 안에는 이런 모든 실재들이 감추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하나님을 가리우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력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력함과 비천함을 통해서 직접적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하나님의 분노 아래 숨겨져 있는 것은 그 분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은 "십자가 아래 숨겨져 있는 것이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것은 마땅히 루터가 자기 모국어로 집필한 저술들을 집대성한 교재인 이른바 바이말판 루터 총서((Weimarer Ausgabe=D. Martin Luther's Werke. Kritische Gesamtausgabe, Weimar, 1883-)나 이를 영어로 번역한 미국어 판 루터 전집 (American Edition of Luther's Works, Pheladelphia and St. Louis, 1955-)이 주 교재로 사용되어야 했으나 여러 가지 조건의 제약으로 그렇게 하지 못 한 점이다.

      • 초기그리스도교 예배일(禮拜日)에 관한 연구 : 안식일에서 주일로 전환

        김진두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0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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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현장에서 주일을 안식일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주일과 안식일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예배일이 유대인 안식일에서 그리스도교의 주일로 전환하게 된 동기를 알아보고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주일이 갖는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논문을 시작하였다. 안식일은 유대인 계명중 핵심을 이루는 계명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기를 거치면서 선지자들은 이런 환난을 하나님 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선포하게 된다. 안식일법은 세월을 거듭하게 강화되었고,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 또한 철저해졌다. 중간시대 되어서는 하나님이 안식일을 제정하신 의의는 없어지고, 세부조항과 엄격한 규칙만 늘어나 인간을 속박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예수는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태어나서 활동했다. 예수는 유대교의 사상 영역과 개념 세계안에서 살았지만, 랍비들이 율법해석 전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절대화 시켰지만 예수는 율법을 상대화 시켰다. 율법 학자들은 예수를 율법을 범한 자로 몰아가자 예수는 율법의 파괴자가 아닌 율법의 완성자라 말한다. 예수는 안식일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예수가 강조하는 것은 율법의 외형주의적 준수가 아닌 율법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뜻의 자발적인 실행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부활 사건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유대교와 다른날 모임이 필요하게 되었다.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고, 예수가 명한 주의 만찬을 하기 위해서였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날 모여 예배드리고 다 다시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병행했다. 안식일에서 주일로의 예배일 전환은 교회 외적 요소와 내적요소가 병행되어 이방지역에서부터 확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교회 외적 요인으로 A.D. 70년경 유대전쟁은 유대교가 그리스도인들을 회당에서 축출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만의 예배일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교회 내적으로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가 약해 진 것이다. 특히 바울이 중심이 된 이방지역에서 안식일이 아닌 주일 예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초기 그리스도교회에서 주일이 가지는 의미를 정리하면 여섯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주일은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는 예배일이었다. 둘째,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주일은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주의 만찬을 행하는 예배일이었다. 셋째,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주일은 죄로부터 구원받는 사람들의 ‘새 날’이었다. 넷째,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주일은 율법으로 벗어난 자유의 날이었다. 다섯째,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주일은 말씀과 기도가 있는 날이었다. 여섯째,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주일은 구제와 선교가 있는 아름다운 날 이었다.

      • 직장선교의 신학적 근거와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

        박영창 그리스도신학대학교 199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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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는 1200만명의 직장인이 있고 이들 중 약 240만 정도가 그리스도인이다. 이들중 10%정도만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고 신우회 활동에 참여한다는 통계가 있다. 학창시절에는 교회생활 잘하다가 직장에 들어오면 세속화되어 버리고, 수많은 범죄사건 뒤에 그리스도인들이 끼어있고,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 비기독교적인 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이렇게 직장속의 그리스도인들이 병들어 있는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60년대 이전의 농업중심사회, 대가족사회에 적합하였던 목회자 중심주의, 개교회(個敎會) 중심주의, 주일 중심주의 신학 이론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일터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직장선교는 더없이 중요하다. 이 논문은 직장선교를 위하여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신학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직장선교에 대한 다양한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 연구를 위하여 R. Bohren의 실천신학 연구방법을 응용하였다. 직장선교의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하여 필자가 소속한 국회기도회를 중심으로 설문지와 면접법, 관찰법을 사용하였고, 필자의 직접 체험도 활용하였다. 그리고 신약 성경과 다양한 신학자들의 견해를 들어서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이 신학적 근거와 설문지를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직장선교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였다. 먼저 Ⅱ장에서 직장선교를 "성도가 일터에서 업무에 종사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이의 필요성을 들었다. 직장은 전도의 황금 어장이며 훌륭한 평신도 훈련의 장이며, 직장선교는 한국교회 갱신의 지름길이자 교회연합에 기여하며 기독교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 이어서 직장선교의 현황을 알기 위하여 전국 직장선교연합회와 국회 조찬기도회·국회기도회를 들었다. 특히 국회기도회는 설문서와 기도회보를 활용하여 연혁 조직 인원 예산 중요활동 등을 조사하였다. 그리고 직장선교의 문제점으로 인적 요인, 구조적 요인, 환경적 요인을 살펴 보았다. Ⅲ장에서는 일터에서 선교를 지속적으로 굳건하게 행할 수 있도록 직장선교의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여 "일터신학"으로 명명하였다. 첫째, "선교의 주역이신 하나님"(요3:16a)을 들고 이를 다시 독생자를 세상에 주신 하나님(요3:16b)과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 예수(요17:18)와 세상 속의 제자들과 동행 하는 성령(마18:20)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둘째,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교회"에서는 먼저 부름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κκλησ?α)의 의미와 선교를 가장 중요시하는 교회의 목적을 설명하였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의 교회와, 평신도를 구비시켜 온전케 하며 은사별로 서로 짐을 나누는 교회를 설명하였다. 셋째,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성도"에서는 하나님이 특별히 불러서 일을 맡기셨다는 점을 강조한 소명과 직업을 서술하고, 하나님의 제사장과 청지기를 설명하였다. "일터 신학"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와 직장·가정·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의 조화를 강조하였고, 종래의 목회자·지역교회·주일 중심주의에서 평신도·일터·평일 중심주의로 강조점을 바꾸는 이론을 전개 하였다. 그리고 "일터신학"의 한계와 발전방향을 설명하였다. Ⅳ장에서는 신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직장선교의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였다. 자비량 선교사의 양성, 성경적 선교 전략의 수립, 신우회 조직 구조의 개편, 지역교회·일터교회 및 선교 단체와의 상호 협력을 들었다. Ⅴ장 결론에서는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고 직장 선교를 위하여 성서상의 신학적 근거와, 활성화 방안이 마련되야 함을 밝혔다. 활성화 방안으로는 특히 자비량 선교사의 양성을 통한 제자 양육과 성경상의 선교전략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의 미비점을 들고 신론과 관련된 창조론의 연구, 목회자와 평신도, 일터와 개교회와의 상호 협력 방안에 대한 연구가 계속 되어야 함을 들었다. 직장선교는 이 시대의 사명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중차대한 사업이다. 전도의 황금 어장인 직장에서 신학 이론으로 무장하고 자비량 선교사로 훈련받은 평신도들이 직장에서의 모든 날을 선교에 활용한다면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지역의 개교회와는 달리 직장신우회를 통하여 평신도 목회, 일터중심 목회, 자비량 목회, 팀(team)목회, 제자 훈련과 선교 중심의 목회를 한다면 직장의 잠자는 90%의 성도들이 깨어나고 문제점 많은 한국교회도 새롭게 변화될 것이다. 직장이 하나님 나라로 변화되고, 이 땅의 교회가 갱신된다면 이 나라에도 기독교 문화가 정착할 것이다. 직장선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만이 왕노릇"하는 나라를 만든다면 한국은 다시 한번 "동방의 등불"이 될 것이다.

      • 세례와 구원의 상관성 연구

        원영희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199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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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들은 세례가 신앙생활에 중요함에도 세례에 대한 인식은 상이한 이해를 갖고 있다. 세례와 구원과의 관계에 있어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세례를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입교 의식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막 16:16). 성경에 나타난 세례의 시기와 그 의미는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을 고백하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사죄의 세례를 받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가 사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례의 시기는 죄를 회개한 다음에 거행되는 것이며, 그 의미는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본 소고의 목적은 한국 개신교의 통일되지 않은 세례관을 성서적 관점에서 비평하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세례와 구원과의 상간관계를 살펴 봄으로써 올바른 세례관을 제시하는데 있다. 제II장에서는 세례에 대한 성경적인 고찰로서 세례의 어원과 그 의미에 대하여 살펴 보았고 구약성경에 나타난 세례에 대해 그리고 신약에 나타난 세례 요한의 세례, 예수의 세례, 초대교회의 세례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더 나아가 침수세례의 성경적 근거 및 세례의 논쟁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세례의 논쟁점에 대해서는 세례는 구원얻는 세례임을 밝혔다. 따라서 세례는 입교의식에 필요한 세례도 아니다 또한 약식세례와 유아세례는 성경적인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을 고찰하였다. 제III장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구원에 대해서, 구원의 어원과 그 의미에 대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남자와 여자 공히,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으며 하나님의 창조물의 주인공이 되었다(창 1:26, 27). 이것이 인간의 위대함이다. 이 위대한 인간이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된다. 창세기 3:6에 "나무를 본즉 먹음직하고 보암즉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그리고 요한일서 2:16는 육신의 정육,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죄의 성격을 말한다. 죄의 본성은 예수를 시험하는 사탄의 그 삼중적 유혹에서도 드러난다. 그것은 돌을 떡으로 바꾸라는 것이요(육신의 정욕), 세상에서 권세를 행하기 위하여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이요(눈의 즐거움), 성전 꼭대기에서 자신을 던지라(특별한 위치 또는 신과 같은 위치를 주장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것이다.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형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인간은 모두 죽어야만 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 심판 받아 죽어 마땅한 인간들을 위해 우리를 구하시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함이었고 부활하심은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함이었다. 제IV장에서는 세례와 구원의 조건 및 구별성에서 본 논문의 핵심주제인 세례와 구원의 조건 및 구별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세례는 구원의 조건이란 주제 아래 세례와 믿음, 세례와 죄 씻음, 세례와 연합, 세례와 양자됨, 세례와 새출생, 그리고 세례와 구원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세례와 구원의 구별성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보편적으로 구원의 필수조건 속에 언제나 믿음이 항상 포함되어 있다(요 3:16; 행 16:31; 엡 2:8). 마가복음 16:16은 믿음과 세례를 연결시키고 있으며, 믿고 회개하면 구원 받는다(막 16:16). 따라서, 믿음과 세례는 구원 받는데 분리될 수 없는 동반자이다. 세례와 연합에 대해 바울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이 구절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는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세례와 양자됨에 관하여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 3:26)이 말은 믿음으로 아들이 되고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양자됨을 알 수 있다. 세례와 새 출생에 대해 요한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새 출생은 두 성분의 한 출생이지 두 출생은 아니다. 물과 성령으로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물은 곧 세례이다. 새 출생은 물과 성령으로 즉 세례 받음으로 성령을 받게 되며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례와 구원에 대해서 신약성경 많은 곳에서 세례와 구원이 동시적인 사건임을 제시하고 있다(마 28:19-20; 막 16:15-16; 요 3:3-5: 행 2:38-39; 행 22:26; 롬 6:3-4; 고전 12:13; 갈 3:26-27; 엡 5:25-27; 골 2:11-13; 딛 3:5; 벧전 3:31). 제V장의 결론에서 본 소고는 세례가 구원의 필수 조건임을 밝히고 있다. 로마서 6:4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는 것으로서, 요한복음 3:5은 물로부터 탄생을 에베소서 5:26은 물로서 씻어 정결케 되는 것으로, 골로새서 2:12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부활하는 것으로 디도서 3:5은 세례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의미로 말씀하고 있다. 신약성경의 가르침은 세례는 구원의 선행적인 필수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세례받음으로 죄사함을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되며,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 제자훈련을 통한 교회갱신

        신유근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199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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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는 분명히 양적인 성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제자도-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제자의 정신-가 절실히 필요하다. 월터 헨릭슨(Walter Henrichsen)은 제자도가 약한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제자가 되기 위한 대가를 치르기를 싫어하는 신자를 보라. 그는 그것을 거절함으로써 신앙적으로 낮은 수준의 평범한 생을 산다. 그는 머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꼬리를 택했다. 예수의 말씀을 빌리자면 그는 맛을 잃은 소금이다. 이 사람 같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이는 현대교회의 실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서는 목회사역에 제자훈련의 도입이 시급하다. 문제의 해결방안을 위해서는 교회성장이 가시적 성장에 멈추어서는 안되며, 교회론에 대한 일반적 고찰로서 신학자들과 성경적 원어의 의미를 찾아서 교회의 본질을 먼저 다루어야 한다. 마태복음 16:18에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ε'κκλησι'α)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할 때의교회에 대한 칼 바르트(Karl Barth)의 견해로는 기구로서가 아닌 인격적인 신앙의 공동체임을 주장한다. 한스 큉(Hans Ku"ng)은 예수와 신앙공동체 사이에서 일어났던 인격적인 신뢰와 교제 그리고 제자들의 헌신에 의한 유기체적 교회였다고 한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만 약 250여회가 나오는 '제자'(μαθητη'ζ)는 예수를 따르는 자를 가리킨다. 마가복음 1:17절에 보면 제자들은 모든 경우에 한 인물에 소속되어 있고, '부르심'에 있어서 예수의 주도권이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제자훈련은 예수의 정신을 갖고 예수의 삶을 배워 나가며, 성경의 진리를 적용하고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베드로전서 2:9에서 말하는 제사장직의 소명을 깨달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에서의 '제자'라는 말은 예수와 개인적인 제자를 말하기보다는 보편적인 그리스도인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16:1, 13:52, 14:20, 18:23), 이는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어도 그 분의 말씀에 거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의 제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과 제자를 같은 의미로 현대교회에 적용할 때, 제자로 부르심은 전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즉각적이고도 전적인 위탁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서 변화를 주며 그가 의도하는대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로 교회가 가득 차기를 원하신다(마 28:29).

      • 金基東 魔鬼論의 批判的 硏究

        김연 그리스도신학대학교 199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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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은 한국 교회의 목회 현장에서 나타나는 귀신 현상에 대해 신앙인들이 건전한 비판력을 가지고 바르게 신앙 생활을 하도록 돕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동안 한국 신학계는 마귀론을 다른 신학 분야에 비해 소홀히 다루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마귀론에 대한 연구가 신학계보다는 목회 현장에서 더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의 입장과 견해를 가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중에 목회 현장에서 일어난 김기동의 마귀론이 이단 시비와 문제의 쟁점이 되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김기동의 마귀론에 대하여 객관적 입장에서 살펴보고, 그의 마귀론이 성서적, 신학적, 그리고 전통적 관점에서 볼 때 어떤 문제점을 갖는지 연구하려고 한다. 김기동 마귀론에 있어서 가장 큰 쟁점이 되는 것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불신자 사후의 영"이다. 그는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고 주장한다. 즉 불신자가 죽은 후 귀신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 "축사행위"이다. 그는 귀신이 사람속에 들어올 때 육체, 곧 신경계통에 들어온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들어온 귀신을 심하게 꾸짖는 등의 방법으로 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미혹의 영"이다. 그는 천사를 분류할 때 불가변성 천사와 가변성 천사로 나누고 있는데, 가변성 천사들(천사들, 영들, 신들, 만군)이 의를 위해 일하다가 갑자기 불의를 위해 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미혹의 영이라는 것이다. 이 가변된 미혹의 영은 언제든지 사람 주위를 배회하며 유혹하고 또 사람의 몸에 귀신이 들어갈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넷째, "질병과 재앙의 원인"이다. 그는 마가복음 9장 25절을 인용하면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자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속에 있는 귀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병든 원인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귀신이 3,4대 후손까지 옮겨가면서 침입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김기동 마귀론에 대해 비판과 평가들이 있다. 기독교대한침례회를 비롯한 각 교단에서는 이미 이단으로 규정한바 있고, 신학계에서도 연구를 통해 김기동 마귀론이 갖는 문제점을 비판 지적하였다. 김기동 마귀론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불신자 사후 영 문제에 대해 김기동은 축사행위 과정에서 생기는 "귀신의 고백"으로 자신의 귀신론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그의 주장은 귀신에게 수명이 있다고 보는 무속신앙과 기독교의 입장을 혼합한 것으로 평가 비판되고 있다. 둘째, 축사행위에 대해서는 역시 무속적 행태를 갖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김기동의 귀신 쫓는 68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가!", "나가!"라는 식의 호통소리에 귀신이 쫓겨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무속적인 축사현상이나 무속적인 정령주의(animism)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셋째, 미혹의 영은 김기동이 천사론에 대한 몇 가지 오해에 의존된 결과라고 지적을 받는다. 그는 가변성 천사들(천사들, 영들, 신들, 만군)이 미혹의 영이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성경이 가르쳐 주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근거없이 주장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김기동 마귀론은 모든 질병과 재앙의 원인이 귀신에게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질병의 원인이 귀신이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성서는 마귀나 귀신뿐만 아니라 죄, 불경건한 생활, 과로나 부주의로 말미암아,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따라서 김기동의 이같은 주장은 모든 질병을 귀신의 인체 침입으로 간주하는 무속신앙에서 기인된 것으로 비판을 받는다. 전통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김기동 마귀론은 비판을 받는다. 루터와 깔뱅의 마귀론과 김기동 마귀론의 주요한 면을 비교해 볼 때, 루터나 깔뱅은 마귀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점만을 부각시키지 않았으며, 또한 축사행위에 대해 관심하지 않았다. 특히 루터는 귀신 쫓는 행위에 있어서 주술적인 방법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하였다. 또한 루터와 깔뱅은 마귀의 기원을 천사의 타락에서 비롯되었고 귀신들은 마귀의 수하에 있는 세력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불신자 사후 영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전통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질병의 원인을 마귀에게서 찾는 것이나 축사행위나 불신자 사후 영의 문제에 대한 김기동 마귀론은 그 근거가 미약하다고 할 것이다. 김기동 마귀론은 성서적, 전통 신학적 입장에서 볼 때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와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귀론은 한국교계와 신학계가 그 동안 다른 분야보다 소홀하게 다루었던 마귀론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도 했다. 앞으로 마귀론에 대한 보다 진지하고 깊은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 한국교회 예배 갱신에 관한 연구 : 초기 기독교 예배를 중심으로

        김창인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199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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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에서 예배란 "예(禮)를 다하여 절한다"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예배는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와 보답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 그만큼 예배는 기독교에 있어 중요한 것이다. 또한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은 예배를 통하여 영광의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돌려 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영적 생명력은 예배에 의해 지속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생활 중 최우선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예배가 한국 교회에서는 많은 문제점들을 수반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는 예배의 발전 과정에서 예배 신학의 부재, 설교 중심적인 예배로 인한 감정적 예배가 확산됨으로 인해 예배의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불균형의 예배는 반드시 갱신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예배 신학의 정립, 말씀과 성만찬의 균형잡힌 예배, 생활로서의 예배로 갱신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 논문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 예배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 교회의 문제점과 그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신약성경에는 예배에 관한 자세한 기록들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단지 예배를 드린 모습과 예배의 요소들이 단편적으로 이곳 저곳에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기록들을 통하여 초기 기독교 예배를 조명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먼저 초기 기독교 공동체 예배의 배경은 성전예배와 회당예배에서 찾을 수 있으며, 초기 기독교 예배가 유대적 제도 속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성전에서 모이기도 했지만 가정집에서도 모였고 유대교와 구별하기 위해 한 날을 택하여 예배를 드렸는데 그 날이 바로 주님의 날이다. 초기 기독교 예배는 유대인 중심의 예배로 시작하여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이방인, 속사도들의 예배로 점차로 발전하여 갔다. 그들의 예배는 찬양과 기도가 있었고, 말씀의 사역이 있었으며, 가르침과 성찬이 항상 행하여 졌다. 또한 교인들간의 교제인 공동식사가 있었고, 사랑의 섬김, 즉 헌신과 전도가 있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로서 말씀과 성찬이 항상 조화 있게 드려지는 예배 공동체였다. 그러나 이에 비해 한국 교회는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먼저 예배 신학의 부재로 인하여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다. 성직자 중심의 예배로 드려지고 있으며, 제사적 예배로 회귀하고 있고, 인간 중심의 예배로 드려지고 있다. 또한 설교 중심의 예배로만 치중되어서 성찬이 격하되었다. 단지 1년에 1-2회 하는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연보 또한 제사에 쓰이는 제물이 되어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한국 교회의 예배는 목사의 축도와 성가대의 송영으로 끝나고 교인들은 새로운 각오 없이 세상으로 그냥 흩어져 버린다. 예배와 삶이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많은 문제점들로 인해 한국 교회의 예배는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예배의 본연의 전통과 권위를 찾아 참된 기독교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에서 일어나는 삶의 중요한 사건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예배 갱신이 필요한 것이다. 먼저 예배 신학의 정립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예배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면 먼저 예배 인도자의 예배 신학이 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예배에 대한 교육은 중요하다고 본다. 또한 말씀과 성만찬의 균형잡힌 예배가 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신약성경의 예배의 원형이며 초기 기독교 공동체 예배의 주된 요소였다. 이 두 가지가 조화될 때 예배는 더욱 온전하여 질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중심의 예배로 갱신되어야 하며, 축제로서의 예배로 전화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개인주의에서 탈피하여 공동체로서의 예배로 회복되어야 하고, 생활로서의 예배로 갱신되어야 한다.

      • 교회개척의 실제적 방법론에 관한 연구 :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전신호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0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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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현대의 교회 개척에 대한 실제적인 방법론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해 사도행전에서 초대 그리스도의 교회가 개척된 과정을 연구해 보고 성서에서 주는 교회 개척에 대한 교훈을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하고 적용하여 보다 성서적이고 보다 실질적인 교회 개척 방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II장에서는 교회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현대에도 계속적인 교회 개척이 필요한지를 살펴보았다. III장에서는 사도행전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 그리고 바울이 개척한 교회 중에서 빌립보 교회, 고린도 교회, 에베소 교회와 마지막으로 로마 교회를 교회 개척의 표본으로 삼고, 각 교회의 환경과 개척사와 성장사를 살펴 본 후 초대의 개척교회들이 주는 교회 개척에 대한 의의들을 짚어 보았다. IV장에서는 성서의 초대교회에서 주는 교훈들을 바탕으로 현대의 교회 개척의 유형과 교회 개척에 실제적으로 필요한 준비사항들에 대해 영적인 부분과 일반적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리고 개척된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들을 다루어 보았다. V장에서는 현대 교회 개척에 대한 본 연구자의 제언을 실었다. 회피해야 할 사항들과 교회 개척과 개척된 교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점검사항들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VI장에서는 전체적인 요약 및 교회 개척에 대한 성서적인 제안을 하였다. 현대에는 무수히 교회가 개척되고 한편으로는 무수한 교회들을 사라지는 시대이다. 특별히 한국의 교회들은 그동안 교회 개척을 통해 급속한 성장을 해왔지만,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이 없이 독단적이고 모험적인 교회 개척으로 인해 많은 목회자들은 교회 개척의 실패와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는 개척되어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교회의 개척은 은혜로서 구속함을 받은 구원의 신앙공동체를 세우는 일이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가장 성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성서, 특히 사도행전은 각 지역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실제적이고 과학적인 하나님의 방법을 알려준다. 우리들은 사도행전에서 개척되어진 교회들의 모형을 통하여 보다 성서적이고, 보다 과학적이고, 보다 실제적인 교회 개척 방법론을 발견할 수 있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의 권능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교회였다. 개척부터 큰 능력으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하늘을 향한 비전과 비전을 위한 기도, 그리고 성령 충만함으로 변화된 새생활로 성장한 교회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땅끝을 향하지 못하여 결국 고난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흩어진 성도들로 말미암아 땅끝을 향한 주님의 계획은 계속 이루어져 간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의 실패의 교훈을 바탕으로 세워진 선교하는 교회였다. 선교에 대한 열정과 복음사역에 대한 협력은 안디옥 교회를 선교 교회로써 높이 세웠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교회들을 개척하였다. 유대인 회당이 없던 복음의 불모지에 세워진 빌립보 교회, 뜨겁고 활달한 영성과 신앙으로 초고속 성장한 고린도 교회, 제자화 훈련으로 안에서부터 밖으로 살아있는 믿음을 보인 에베소,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세계의 중심지 대로 마의 한 가운데 세워져서 안디옥 교회에 버금가는 선교 교회가 된 로마 교회, 초대 교회의 설립과 성장과정은 현대에도 역시 살아있는 교회 개척의 교과서이다. 성서시대의 교회 개척의 과정들은 현대의 과학적인 방법들의 단서이자 핵심자료요 실제적인 제시가 된다. 가장 먼저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이며, 성령이 진행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을 초대 그리스도의 교회의 개척사는 분명히 보여준다. 인간이 사역을 하지만, 그를 구원시키고 하나님의 공동체에 속하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함으로 복음과 교회를 확장시켜 나가시는 분은 다름 아닌 성령이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초대 교회는 현대의 교회 개척자들에게 몇 가지 자질을 요구한다. 소명의식의 중요성과 개척자가 가진 목회철학과 목회 비전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며, 기도를 통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함을 지적하면서 강하면서도 섬기는 지도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초대 교회는 현대 교회 개척에 대한 실제적인 방법들도 보여준다. 교회 개척에 있어서 지역의 선정의 중요성을 보여줌, 지원기관과 후원자가 개척교회들에 어떤 힘이 되어주는 지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개척 멤버의 구성방법과 그 위력을 알려주며 각 지역마다 특징 있는 전략과 프로그램이 필요함을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교훈해 준다. 더불어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비결도 제시해 준다. 오늘날에 세워지는 교회는 여전히 성령께서 세우시는 "그리스도의 교회"여야 한다. 초대 교회는 그 청사진을 현대의 교회 개척자들에게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초대교회와 같은 개척과 성장을 원한다면 오늘의 교회 개척자들은 먼저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 거기에서 출발점을 찾고, 거기에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현대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개척 준비에 있어서 필요한 모든 항목을 만들고 점검해야 한다. 교회의 개척은 더 이상 감정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하여 발생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을 이루어가려는 복음적인 소명과 성서적이고 실제적인 노력에 근거할 때, 성령께서는 초대교회와 같은 권능으로 현대의 개척 교회들을 부흥으로 일으켜 세워주실 것이다.

      • 불트만의 인간론

        유상훈 그리스도신학대학교 199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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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가져다주었으나 한편으로는 다방면에서 비인간화라는 병폐를 야기시켰다. 그 속에서 인간은 그 자신에 대해, 그리고 다가오는 미래 세계에 대해 낙관뿐만 아니라 비관을, 희망뿐만 아니라 불안 혹은 절망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박하 게 자신의 본질과 정체에 관하여 물음을 제기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불트만은 일찍이 현대인에게 성서의 진리를 이해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그 물음을 해결하려고 했다. 즉 현대문명과 성서 사이의 간격을 좁혀 하나님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가운데 그 실존을 찾게 했다. 본 논문은 그런 불트만의 인간론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어떻게 현대인들의 인간 실존에 대한 물음을 해결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를 위해 제 Ⅱ장에서는 그에게 영향을 미친 세 줄기의 신학적 배경을 파악하는 데부터 시작한다. 즉 19세기 자유주의 신학, 변증법 신학, 그리고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사상적 토대를 파악하였다. 제 Ⅲ장에서는 그의 두 가지 성서 해석 방법론, 즉 양식사적 방법과 실존론적 해석 방법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의 독특한 역사 이해와 비신화화론을 다루었다. 이는 인간 실존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도구가 된다. 제 Ⅳ장에서는 본 논문의 핵심인 불트만의 인간 이해를 소개한다. 이는 "비본래성으로서의 인간"과 "본래성으로서의 인간"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본래성으로서의 인간은 "신앙을 가진 인간", "종말론적 실존으로서의 인간", "하나님의 계시로 새로워진 인간"을 다룸으로써 그의 역사관, 계시론, 구원론을 파악했다. 제 Ⅴ장에서는 전체적인 요약 및 불트만 신학의 특성을 말하였다. 그리고 끝으로 그의 신학의 가치와 남은 연구 과제를 제시했다. 불트만의 인간 이해는 이렇게 성서를 해석하는 노력 가운데 복음, 즉 케리그마와의 연관성 속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하면 인간 실존은 케리그마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복종과 결단을 통하여 상실되었던 본래성을 회복하느냐? 아니면 과거의 비본래성에 머무느냐? 그 매순간 순간마다 선택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그의 독특한 역사 이해가 부가된다. 즉 그의 현재적 종말 이해를 통하여 케리그마의 의미와 함께 인간이 참 실존(본래성)을 찾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는 신앙에의 결단을 통하여 과거의 죽음을 버리고 미래에 있을 영원한 삶(새로워진 삶, 구원에 이름)을 현재적 사건으로 강조함으로 역사의 의미를 새롭게 한다. 따라서 그는 현재적 종말 상황을 말하여 매순간 신앙의 대상 자체에 대한 질문에서 tua res agitur(너 자신의 문제)의 방향으로 질문함으로써 구체적인 자기 이해의 응답을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본래적 실존에 이르는 신앙을 가진 인간이며, 바로 거기에 그의 신학적 인간론의 핵심이 있다. 불트만의 인간론은 그가 신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바와 같이 현대신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오늘날과 같이, 과학 문명의 폐해로 인한 인간소외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는, 신학이 인간의 참된 의미를 찾고, 인간 회복의 일익을 담당하는 인간학 분야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트만의 인간학적 신학, 혹은 신학적 인간학은 현시점에서 더욱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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