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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sion 2020 實踐運動을 中心으로 한 韓國 軍宣敎의 宣敎學的 分析 : 入隊 前 信仰人으로 2000年 以後 陸軍에 服務한 司兵들을 對象으로

        남송현 總神大學校 牧會神學專門大學院 2007 국내박사

        RANK : 247758

        한국 군대의 진중에서 예배가 시작된 지 약 년이 되어가는 60 지금 한국의 군선교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1995년 태동된 비전 2020 실천운동과 그 운동을 중심으로 한 한국 기독교 군선교 연합회의 사역이 10년의 결실을 수확하였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미래 한국 교회의 소망이자 세계 선교의 소망인 젊은 청년들을 향한 선교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해 한국기독교 군선교연합회와 마음을 같이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0년 간 매년 평균 16만 명이 넘는 젊은 청년들에게 세례를 베푼 것은 세계 선교사에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동안 한국기독교 군선교연합회는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제자가 되었고, 설사 당장은 믿지 않더라도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될 것이라고 한국 교회에 보고해 왔다. 그렇게 세례를 받은 청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면 훈련소를 중심으로 집단 세례를 베푸는 것은 분명 전략적인 선교로서 가장 탁월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본 연구자는 13년 동안 현장에서 사역을 진행해 오면서 집단세례의 결과가 보고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세례를 받은 대다수의 형제들이 세례의 의미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고, 체계적인 세례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사병들이 통제된 사회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여러 가지 다른 목적들을 가지고 참석하여 세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비전 2020 실천운동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군선교에 대해 선교학적으로 접근하여 분석하는 시도가 없었다. 집단 세례를 중심으로 한 군선교에 대한 분석은 세례의 신학적 측면을 다루는 선교신학과 군대를 선교지로 이해하는 선교문화인류학과 집단세례의 전략적 측면을 다루는 선교전략의 분야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 모든 측면을 다루기 위한 선교학적 분석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전 2020 실천운동의 훈련소의 집단 세례식에 대한 선교학적 분석을 사회학적 연구방법을 통해 진행했다 먼저 훈련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집단 세례식과 선교전략에 대한 바른판단을 할 수 있는 연구대상을 설정했다. 비전 2020 실천운동이 정상궤도에 오른 2000년 이후에 육군에 복무한 사병들 중 입대하기 전부터 1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한 184명을 최종 연구대상으로 선별했다. 연구도구로 설문지를 만들어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함으로써 객관적이고 가치 있는 연구 결과를 도출해 내었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된 연구 결과는 지난 10년 간 진행되어 온 비전 2020 실천운동의 이제까지의 보고와는 달리 선교의 동기로부터 전략적 목표와 방법에 이르기까지 전면 수정 및 보완되어야 함을 보여주었다. 훈련소에서 실시되는 집단 세례는 회개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성례로 인식되지 않고 있고, 군선교 사역자와 기관에 의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도 않고 있으며, 2년 간 군생활을 통해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경우도 거의 찾아볼 수 없음이 확인되었다. 육군에 복무한 사병들은 군선교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선교사로서 사역자의 전문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자대 교회들에서 장병들에게 맞는 말씀이 선포되고 체계적인 양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본 논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바른 군선교가 진행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연구 성과물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완성은 아니다. 군선교를 선교학적으로 분석해 본 처음 시도라고 하는 것이 옳다. 아직도 학문적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으며, 그 연구들을 통해 얻어진 현실 상황에 근거한 성과물들을 가지고 체계적인 분석과 종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한국 교회와 한국기독교 군선교연합회와 선교현장에서 헌신하는 모든 사역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선교학적 논의를 진행하여야 한다. Almost 60 years after Christian worship began in the South Korean military, the ministry stands at a crucial turning point. The Vision 2020 Movement and military ministry centered around it have now reaped 10 years' harvest. Throughout this time, the Korean Church, recognizing the importance of young people's ministry, provided generous support. It is a wonderful unprecedented event even in the history of world missions to have over 160 thousand young people being baptized annually for the last 10 years. And it has been reported to the Korean Church that those young people baptized in the military became Christ's disciples through faith, and even if a few of them did not accept Christ immediately, they would at some point because of the baptism they had received. If this report were true, mass baptism in military training centers around Korea would be a strategically excellent way of evangelism. However, the author of this paper, having ministered in the military for 13 years, recognized that the result of mass baptism is completely different from what has been reported. The large majority of those baptized did not even understand the meaning of baptism, did not receive systematic pre-baptismal teaching, and eventually failed to know Christ's saving grace. Despite this being the actually situation, there has been no study of military ministry centered around Vision 2020 that analyzes it from a missions perspective. Military ministry centered around mass baptism is closely related to mission theology which deals with the theological aspect of the baptism, to mission cultural anthropology which helps define military ministry as missions, and to mission strategy which deals with baptism's strategic aspect. A study analyzing all these aspects from a mission perspective is clearly in need. In response, this paper offers an analysis from a missions perspective regarding mass baptism currently being practiced in the Korean military by the Vision 2020 Movement. The study uses social science research methods. It asked 184 young people who had been Christians for over 10 years before serving in the Korean Army after the year 2000 when the Movement became fully active. Based on the survey data collected and analyzed, the results confirm that the Vision 2020 Movement which began 10 years ago needs a complete revision, in areas ranging from mission motive to strategic objective and method. Currently, mass baptism in the military is not being perceived as a holy practice for those who have repented and accepted Christ. There is no systematic Christian education being offered by military chaplains, and it is hard to find those who became Christian from receiving baptism during their 2 years' time in the military. Based on the feedback from enlisted soldiers, it is clear that chaplains who are specialized as missionaries are needed, and that preaching needs to be more targeted toward the audience's needs, and that systematic teaching and care is needed. This paper's findings are important for military ministry to be more pleasing to God. It is arguably the first study to analyze military ministry from a missions perspective. Yet this study's findings are only the starting point for many more areas to be researched. Above all, this paper calls the Korean Church and those serving as military chaplains to begin a sincere discussion about the necessity for a missionary approach to military ministry.

      • 선교사 멤버케어(Member Care)에 대한 선교학적 고찰 :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통전적 관점에서

        김두종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1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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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멤버케어는 점점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선교의 실천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선교학과 긴밀하게 만나지 못했으며, 그 성향에는 인간중심적 선교 방식이 다분히 드러난다. 멤버케어라는 실천과제는 선교가 무엇인가에 따라 그 방향성이 달라진다. 이것이 멤버케어가 선교학적 고찰을 통해 하나님의 선교와 잇대어져야 하는 분명한 이유이다. 멤버케어는 실천과제로 태동하고 발전했다. 때문에 그 정의에 있어서 그신학적 방향성은 불투명하다. 또한 그 필요성은 선교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선교사 중도탈락의 방지나 효과적이고 전략적인 선교에 초점이 맞추어진 경우가 많다. 멤버케어는 현재 자원을 총력하기 위해 세계화 추세이며, 선교가 부진한 곳을 먼저 지원하여 선교의 과업을 앞당기려 하는 의도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의 총력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멤버케어가 인간중심적인 과업주의에 편향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개교회주의나 교파중심적 승리주의의 도구가 될 우려가 있다. 이런 점에서 멤버케어를 위한 바른 선교관이 절실하다. 오늘날 멤버케어를 선교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기 위해 성서적 근거, 복음주의자들, 심리학, 세계화의 관계를 살필 수 있다. 멤버케어의 성서적 근거들은 주로 멤버케어와 관련된 학자들에 의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동시에 해석자의 상황이 주는 해석학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멤버케어는 복음주의자들의 관심과 영향 아래 확대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멤버케어의 신학적 색채는 복음주의의 우려인 선교의 이원론적 대립구도와 세대론적 임박한 종말론 사상이 엿보이며, 자주 전략적인 목적에서 이해된다. 멤버케어에 있어 심리학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심리학은 선교학과 상호적으로 긴밀하지 교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것은 멤버케어에 대해 선교학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필요를 말해준다. 멤버케어는 현재 세계화 추세이다. 멤버케어는 많은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 세계적 연합의 형태로 조직되면서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그 의도에는 세계선교의 팽창주의의 동기가 들어있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멤버케어가 어떤 선교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는 하나님의 선교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선교는 통전적으로 이해되고 추구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를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열쇠는 구원사 유형과 약속사 유형 사이의 긴장관계이다. 이 두 사이의 긴장관계는 선택적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병행과 상호작용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의 통전적 이해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 안에서 오늘날의 시대와 상황 그리고 선교의 실천과제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이러한 긴장관계는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사이의 통전적인 선교를 도모한다. 하나님의 선교라는 공통의 유산을 물려받은 양 진영이 양극화에 치닫게 되었다가 다시 화해하게 되면서 통전적 선교를 등장시켰다. 이를 통해 양 진영이 공동으로 깨달은 것은 ‘인간중심적인 행동주의’의 양극단이었다. 하나님의 선교는 복음주의에 대하여는 ‘복음주의적 행동주의’를, 에큐메니칼에 대하여는 ‘인도주의적 행동주의’를 내려놓도록 요청했다. 선교는 인간의 행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엄연히 하나님의 선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선교의 통전적인 방향과 선교의 실천과제들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나가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선교의 통전성은 성서, 역사, 세상, 교회와 잇대어 고찰할 때 온전해진다. 또 선교의 실천과제인 멤버케어는 그 연장선상에서 방향성이 고찰되어져야 한다. 첫째, 성서에 나타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하는 중심축이 된다. 오늘날 멤버케어는 그 성서적인 근거를 예수님의 명령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선교의 본질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더 이상 명령이 선교의 기초가 될 수 없다. 멤버케어는 사랑의 흐름을 통해 선교사를 온전하게 세우려고 수고하기 전에 이 세상을 위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선교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 기초한다. 예수님은 승리주의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겸손의 선교를 이행하셨다. 예수님은 정복주의가 아니라 한계를 정한 관계성 안에서 선교하셨다. 예수님은 단순한 회심만의 차원을 넘어 전인적인 인간회복의 선교를 행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선교의 통전성을 명확히 보여주며, 멤버케어로 하여금 어떻게 선교사를 도와야 하는지를 제시해준다.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예수님의 선교는 성령의 선교로 이어진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성령은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이다. 성령은 그 분의 현존을 강화하는 동시에 다양한 하나님 나라 활동들의 실제적 중심이시다. 성령은 선교의 영으로서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가게 하신다. 멤버케어 사역은 마땅히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의 능력을 의지하는 중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 선교의 역사는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멤버케어에 의미를 준다. 과거에 수많은 위대한 선교사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들은 위대하기 전에 연약한 인간이었다. 멤버케어가 거의 부재했던 시대에 그들은 고통을 스스로 견뎌내야만 했다. 많은 이들이 우울증으로 시달리거나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멤버케어는 축복된 과제이다. 잘못된 이기와 욕심을 위한 도구로 오용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한 인간으로서 선교사를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멤버케어가 없었던 과거의 역사에 동료들의 질시나 그와의 반대인 따뜻한 격려와 기도는 그들의 선교에 있어 각각 상반된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멤버케어는 상호책임성에 근거한 상호 돌봄의 사역으로 의무로서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 동인한 우리의 마땅한 반응이 되어야 한다. 멤버케어는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거의 선교사들의 열정과 성과는 높이 평가되지만, 그들의 가부장적이고 과업적인 열심 때문에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한 사례들이 있다. 오늘날 선교사들 가운데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사역과 삶이 괴리되거나 균형을 잃은 선교사들이 있다. 선교는 사역과 삶의 통전성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므로 멤버케어는 단순히 선교의 과업(task)만을 지원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것이 선교사의 삶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셋째, 세상을 잘 살필 때 멤버케어의 방향을 바르게 할 수 있다. 오늘날 세상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세계화라는 서로 다른 거대한 두 체계의 흐름이 작용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보다 선교사와 그 자녀가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멤버케어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선교사들에 의해 더욱 요청되고 있다. 이에 멤버케어는 무엇보다 그들의 관계적 동력을 잘 활용해 어떻게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멤버케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정적인 요소들인 소박한 쾌락주의(hedonism), 물질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멤버케어는 자국의 교회 및 신학 공동체와의 상호 교류의 기회를 제공함으로 선교사가 균형 잡힌 신학과 영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세계화 시대에 멤버케어는 팽창주의적 거대담론에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멤버케어가 자칫 선교사를 돕는다는 그 본래의 중요한 목적을 상실하고, 선교를 위한 효율적인 수단으로만 여겨지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멤버케어는 멤버케어만의 연합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세계선교의 연합과 교회의 일치의 노력들과 긴밀한 채널을 확보해나가야 할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교회의 선교구조는 멤버케어와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가 가지는 긴장관계 안에서 운동성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참여적 주체가 될 수 있다. 한국교회의 교파주의나 개교회주의의 교회중심적 선교구조는 선교사에게 과업적인 성과를 기대하게 한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 접목된 멤버케어는 그 이상의 목적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교회의 멤버케어에 있어서 시급한 문제는 갈라진 한국 선교들의 공동의 연합과 일치의 노력이다. 이러한 연합은 선교학적인 공동의 연구와 각 교회들과 연합과 일치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 멤버케어의 연합과 일치는 한국교회의 개혁과 일치의 문제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북한의 세계관과 지배 이데올로기 변용에 관한 선교학적 분석

        오정호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 2013 국내석사

        RANK : 247711

        국 문 초 록 본고는 북한의 세계관과 지배 이데올로기 변용이라는 사회과학적 접근과 이론분석을 선교학적 관점에서 담아내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가 북한을 바라 볼 때, 동일한 민족 정체성의 공유보다는 소위, ‘타문화권 선교적 관점’을 투영해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소통 단절이라는 현실 조건을 반영한다. 북한이 하나의 국가체제로서 불가해한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근원은 바로 고도로 일원화된 정치사상 중심의 세계관과 이를 실제화하기 위해 지배 이데올로기 변용 과정을 거쳐 대중에게 내면화시키는 정치 사회화 과정에 기인한다. 따라서 선교학적 관점에서,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 접근은 북한 세계관의 기원과 실제를 역사적 고찰을 통해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동시에 지배 이데올로기의 변용 과정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통해 북한 체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실정치에서 작동해왔는가를 함께 파악해야 할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상기한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북한의 세계관과 지배 이데올로기 변용과정에 관한 연구를 통해 북한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 현실과 감추어진 사회구조의 내적 모순을 실제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북한의 세계관과 지배이데올로기 변용에 관한 분석은 궁극적으로 북한 사회를 압도적인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선교학적 연구로서의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특히, 사회과학적 영역의 연구로서 시작되는 북한의 세계관과 지배 이데올로기 변용에 대한 선교학적 이해와 대안모색은 북한체제처럼 정치사상이 유일사상으로 종교화되고 재생산되는 폐쇄적 사회에 대한 분석의 도구로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본 논문의 주된 관점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북한이 주체사상을 체제정당화의 중심 세계관으로 투사projection하고 사회적으로 제도화한 역사적 과정부터 시작하여, 우리식 사회주의, 붉은 기 사상, 강성대국론, 선군사상, 최근의 실리 사회주의 도입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변용 과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담아내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정치사상 중심적 세계관과 지배 이데올로기의 변용을 통한 현실왜곡은 북한사회의 폐쇄성으로 누적된 사회경제적 갈등요소의 잠재성과 맞물려 복음의 수용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 이는 동시에 한반도의 ’복음적 평화통일’을 가능케 하는 역설적인 동인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 동반자 선교에 관한 선교학적·구약신학적 연구 : 인도네시아 까반자헤에서의 의료선교를 중심으로

        곽명근 주안대학원대학교 2022 국내박사

        RANK : 247695

        처음부터 동반자 선교로 시작한 PCK의 인도네시아 선교는 2021년을 기점으로 50년을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동반자 선교는 신학교 사역과 교회사역에 집중하면서 인도네시아 선교의 고무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이제는 인도네시아 동반자 선교는 기존의 신학교 사역과 교회 사역과 더불어 의료선교를 통하여 다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에 동반자 선교가 선교학적 그리고 성서학적 근거를 둔 선교라는 것을 규명하며 동시에 까반자헤에서 수행되고 있는 동반자 의료선교를 검토함으로써 의료선교를 통한 동반자 선교의 다변화 추구를 제시하도록 하겠다. 동반자 선교를 선교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먼저 동반자 선교의 개념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반자 선교는 협력 선교와 유사 개념으로 사용하지만 상이하다. 협력 선교가 목적 지향적이라면 동반자 선교는 관계 중심적이다. 따라서 협력 선교는 동반자의 역할과 기능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동반자 선교는 동역자 사이의 관계 형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동반자 선교의 핵심은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동반자 선교의 특징과 선교학은 세계선교대회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동반자 선교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대회는 암스테르담 WCC(1948)부터이다. 이후 빌링겐 IMC(1952)에서 논의된 하나님의 선교를 모델로 동반자 선교는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동반자 선교의 선교학적 정립은 에반스톤 WCC(1954)에 이르러 구체화 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선교대회가 거듭될수록 동반자 선교는 사회적 책임에 동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자각하면서, 선교의 범위를 교회를 넘어 사회로 확장했다. 동반자 선교가 사회적 참여에 동참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는 샬롬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동반자 선교가 성서학적 근거를 둔 선교라는 것을 규명하기 위해 구약의 언약신학에 관해 살펴보았다. 언약신학 용어 중 베리트(tyrIB.)의 다양한 의미를 분석함으로써 베리트의 관계적 특성인 언약 맺기와 동반자 선교의 관계 맺기가 일맥상통한 것을 발견하였다. 무엇보다도 베리트의 관계적 특성은 샬롬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이는 동반자 선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샬롬 공동체 형성과 맥을 같이한다. 까반자헤 동반자 의료선교는 단기의료선교의 문제점과 한계점을 극복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까반자헤에는 의사의 수 부족에 의한 이중 근무 시스템, 의사의 역량 부족, 의약품 부족에 의한 전원과 역전원의 과정 반복, 인도네시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의료보험 등등의 한계점이 있다. 특히, 무당 치료사인 두꾼(Dukun)은 마을의 영적 지도자로 샤머니즘을 통해 골절된 다리를 약초로 치료하고 눈속임으로 환자의 입에서 암덩어리를 제거하는 등의 불법 의료행위를 시행함으로 여러 부작용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에 까반자헤 동반자 의료선교는 한국 교회와 병원 그리고 인도네시아 교회와 병원이 연합한 단기의료선교의 결합체로서 까반자헤 지역 주민이 겪고 있는 육체적·영적 문제 해결에 일조함으로써 온전한 건강회복을 통한 샬롬 공동체 형성을 지향한다. 이와 같이 의료선교를 통한 동반자 선교는 인도네시아 선교에 적합함 으로 동반자 의료선교가 인도네시아 지역에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발흥요인과 선교학적 영향 고찰

        이희곡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 2019 국내석사

        RANK : 247695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발흥요인과 선교학적 영향 고찰 본 논문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발흥요인과 선교학적 영향에 대한 연구이다. 본 연구는 선교학적 관점에서 1907년 평양부흥운동의 부흥을 촉발한 요인들이 무엇인지 시대적 요인과 영적 요인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것이다. 시대적 요인은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적 요인 중심으로, 영적 요인은 말씀, 죄의 고백과 통성 기도 그리고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 볼 것이다. 또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배경과 발단이 되는 성경연구 및 새벽 기도회, 선교사 하디의 회심과 원산의 기도회 그리고, 평양장대현교회 순서로 살펴볼 것이다. 또한 평양대부흥운동 확산과정을 평양 장대현교회 동기 사경회를 시작으로 하여 각 지역 학교로의 확산 그리고, 길선주 목사를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평양대부흥운동의 선교학적 영향에 대해 토착 교회의 형성 및 한국교회의 성장 그리고, 사회개혁에서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가 어떻게 되어졌는지 알아보고자한다. 마지막으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현시대적인 적용방안을 적용해봄으로서 시대적인 흐름부터 적용까지 중요한 연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논문 연구를 준비하면서 평야대부흥운동은 단순히 평양 한 지역에서 일어난 지역 부흥의 운동이 아니라, 장구한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였음을 알게 되었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이 역사는 한국의 아주 침울하고, 한 많은 세월의 한 시점에서 출발을 했다. 외국인 선교사 하디의 회개로 인하여, 원산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고, 그리하여 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회개의 역사는 백만인 구령운동이라는 대역사까지 이어졌다.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특별히 느끼게 된 것은 이제 우리도 이 회개와 말씀 운동을 통해서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는 시대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문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선교학적 고찰

        문영주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 2017 국내석사

        RANK : 247695

        국문초록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선교학적 고찰 문 영 주 지도교수 김 희 백 평양대부흥운동이 발흥한 1907년은 한국교회로는 ‘대 부흥의 시기’이였지만 한국 민족 역사로는 일제식민통치가 실질적으로 시작되었던 ‘굴욕의 해’였다. 암울한 시대상황에서도 미래와 희망의 등불을 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역사 가운데 민족의 교회와 성도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였다. 지금의 기독교 내의 침체와 장래의 한국교회 부정적인 측면을 대비하기 위해 평양대부흥운동의 발흥과 결과를 재고할 필요성을 느꼈으며 개인과 가정 그리고 섬기는 교회와 민족의 교회 위해 거룩한 영적 부흥이 있길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선교학적 고찰(考察)에 관해 연구하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부흥의 성경적 고찰을 통해 부흥의 의미와 구약과 신약에서 나타난 부흥운동의 역사 가운데 부흥운동의 실제적인 사례들을 연구한다. 구약에서 부흥의 사례들은 개인적인 회개와 가정공동체의 회개 그리고 민족적인 회개를 통한 하나님의 언약공동체로서 말씀과 기도, 찬양을 통한 부흥운동을 볼 수 있다. 신약에서는 복음증거와 말씀선포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통한 회개, 교회의 설립, 유대인과 이방인을 향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와 사도들의 활동을 통한 성령의 일하심 가운데 부흥운동의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근현대교회사에 나타난 부흥운동의 역사에서는 정통주의 신앙과 합리주의 신앙에 반하여 18세기 독일의 경건주의, 영국의 복음주의 부흥운동을 다룬다. 19세의 미국의 1차와 2차의 대각성 부흥운동을 다루었다. 한국선교의 영향을 끼친 부분에서 무디(D. L. Moody)의 부흥집회로 은혜를 받은 대학생들이 세계복음화에 헌신하였으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대학생들이 해외선교에 밑거름이 되었다. 1904-1905년간 웨일즈의 부흥운동은 20세기 초 강력한 부흥운동이었다. 웨일즈 부흥운동은 전 세계에 파장을 미쳐 1910년까지 인도, 한국, 미국,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부흥의 진원지 역할을 하게 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발흥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조선의 정치적 위기 속에서 민족의 교회가 시대적 사명감을 감당해야 때에 놓여졌다. 영적 부흥을 경험한 미국의 젊은 선교사들이 입국하였고 그들에게 일제침략기는 하나님이 이 땅을 향한 부흥의 때를 통해 회복하실 것에 대한 신앙적 기대감을 갖게 했다. 선교사들의 자립, 자치, 자전의 네비우스 선교정책으로 한국교회가 세워져 갔고 하디 선교사의 회심과 원산부흥운동은 한국 전역에 새로운 부흥의 불길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원산부흥운동을 시점으로 해서 여러 곳에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으며 선교사와 한국교회 지도자는 전국 교회가 사경회가 부흥회를 연합으로 드리는 영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1907년 평안남도 도사경회가 1월 2일에서 15일까지 장대현교회에서 있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길선주 장로의 회개와 함께 성령의 강력한 회개의 역사가 임하게 되었다. 평양장대현교회의 부흥운동은 전국교회와 교육기관 그리고 민족의 울타리를 뛰어 넘어 만주와 중국의 부흥운동을 일으키는데 동력이 되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선교학적 고찰을 통해 볼 때 첫째, 성령의 역사와 회개이다.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 가운데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 개인적으로, 교회적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성화의 삶을 살게 한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둘째, 사회 개혁과 도덕성 회복이다.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의 새로운 변화의 삶이 교회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일반 사회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했다. 셋째, 말씀(사경회)과 기도운동이다. 사경회를 통해 성경공부와 기도운동 그리고 복음전도운동이 펼쳐졌다. 말씀부흥운동은 예배의 현장에서 성령의 역사로 회개와 도덕적, 신앙적 실천적 삶을 이어가게 했다. 넷째, 사경회와 부흥회를 통해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고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전도의 현장으로 나갔다.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선교를 받았던 한국교회가 전도인과 선교사를 보내는 선교적 교회로 거듭나는 축복을 누렸다. 선교사와 한국교계 지도자들은 1909년 백만인 구령운동을 발족하고 전국교회가 민족복음화를 위해 혼신을 다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주는 큰 의미는 아무리 시대가 절망적이고 암담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겸비하여 기도하면 이 땅을 치료하시고 부흥의 때를 주신다는 신앙적 확신을 준다.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현장에서 성령의 역사와 회개의 변화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개인의 거룩함과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영혼구원을 위해 복음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였다는 것을 볼 때 민족교회는 현재와 장래가 꼭 암담하지만은 않는 것이 연구의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타문화권 교회 설립에 관한 선교학적 고찰 : 1913년부터 1957년까지 중국 산동(山東)과 만주국(滿洲國)를 중심으로

        김교철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대학원 2018 국내박사

        RANK : 247679

        ABSTRACT A Missiological Study on the Cross-Cultural Church Planting of Early Korean Presbyterian Church in Shandong China and Manchukuo from 1913 to 1957 Kim Gyo-chul Th. M. & Ph. D. in Intercultural Studies The Graduate School, Asia United Theological University This study aims to propose a suggested direction for the established cross-cultural church in Korea. To achieve this goal, it has researched the purpose and process of establishing a cross-cultural church in Shandong China and in Manchukuo respectively. It examined various church establishment theories and what the results of these methods were. The period of this study is limited from between 1913 and 1957 and to the regions of Shandong and Manchu provinces in China. The writer conducted this study in responses to the serious of repeated mistakes of the Korean Church and disconnected with the historic experience of the early Korean Presbyterian Church. Existing research highlights that early Korean Presbyterian missionaries were more successful than American missionaries. However, this study refutes this research. In early 1912,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decided to send a cross-cultural missionary to China. Starting in 1913, this man was sent as a missionary to Shandong province in China. Beginning in 1937, he was also sent as a missionary to the Manchu people living in Manchukuo. Since 1916, the Shandong missionaries from Shandong have been appointed by the Shandong presbytery. Thus this first missionary was able to act as a Chinese presbytery member. Shandong missionaries have organized missions to promote missions. Early Korean Presbyterian missionaries conducted missions typical of the Chosun era and were called Nevius Method which was unsuccessful for the Shandong missionaries. The ‘new way’, although not entirely new, was the method that early Korean Presbyterian missionaries applied in the Shandong mission field. This was because there was an independent church movement within the Chinese church. The missionaries of Shandong and Manchukuo were used together in the early Korean Presbyterian missionary missions. In order to reiterate this point, the paper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hurch and the missionaries of Shandong and Manchukuo. The early Korean Presbyterian Church missionaries founded in Shandong, in 1933, had a large number of unorganized and non-religious institutions. The early Korean Presbyterian missionaries served in 22 Chinese churches. Only two Chinese ministers worked together with the Korean missionaries at this time. The missionaries in Shandong and Manchuria emphasized self-supporting, and self-propagating. The Shandong mission, in particular emphasized these three things. However, from 1923 to 1953, Chinese ministers and evangelist maintained ongoing support for this practice. As such, this resulted in blocking any possibility for self-reliance and self-government within the Chinese church. From the beginning of the Sino-Japanese War, in 1937, to the defeat of Japan in 1945, the Japanese Occupation Forces influenced the Shandong missionaries. During this time, the Japanese military and Japanese Christian leaders worked on integrating Christianity in Japan. In the end, the Japanese Occupation modified and reorganized Chinese Christianity. Shandong and Manchukuo missionaries adhered to Japanese policies. The early Korean Presbyterian Church mission was put in place between 1937 and 1942. This mission also strove to establish local, independent churches for the Manchus. Choi Hyeok Joo, a missionary in Manchukuo, promoted active church planting in the ShuangYang area of Manchuria. However, they were supported by the Concordia Association and followed their religious policies. Missionaries sent by the early Korean Presbyterian Church to Shandong and Manchuria, China strived for the establishment of local self-reliant, and self-supporting local churches. However, in cooperation with Japanese invasion religious policies, the contextualization failed. Chinese Shandong and Manchukuo missionaries emphasized the Chosun-style missions; thus making it difficult to root the unchanging Biblical truth into the soil of Chinese. The attempt to transplant the early Korean Presbyterian Church system to the Chinese church was also not the right way from a missiologically stance. Early Korean Presbyterian Church missionaries served and shepherd Chinese churches directly in Shandong and Manchuria. Furthermore, he established a Bible school and fostered church workers. But he could not nor attempted to nurture Chinese ministers. Missionaries are not qualified to train Chinese seminary students. Shandong and Manchukuo missionaries remain focused on the establishment and development of local independent churches. However, the training of Chinese Church leaders and the transfer of leadership was not successful. Through this study, the author confirms that there is a need to nurture local church leadership and biblical indigenization. Furthermore, the author learned the necessity of contextualizing work to find out the constant truth in a changing situation. In addition, the author found the importance of establishing one’s own studies. This study on the establishment of the Shandong and Manchukuo churches by the early Korean Presbyterian Church, which have never been studied before, will contribute to the Korean church. However, it is the limitation of this study is the result of limited research on individual local independence of the churches established in Shandong and Manchukuo that cannot be discussed.

      • 선교사 헌신에 대한 근거이론 연구 : 인도네시아 바탁족 선교사의 경험을 중심으로

        백진식 주안대학원대학교 2022 국내박사

        RANK : 247679

        바탁족 선교사들은 정치 사회적, 문화적, 교회적 차원에서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으며, 후원과 돌봄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선교사로 헌신하여 사역하고 있다. 바탁 교회와 선교 동역하고 있는 연구자는 바탁족 선교사 헌신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바탁족 선교사 헌신의 패턴, 과정, 요인, 실체이론을 도출하고, 선교학적 함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본 연구의 중심질문은 ‘바탁족 선교사는 어떻게 선교사로 헌신하는가?’이다. 본 연구는 상징적 상호작용주의의 철학적 바탕 위에서 근거이론방법을 사용하였다. 본 연구는 연구윤리를 준수하고, 기관생명윤리 위원회(IRB)로부터 연구 심의 승인을 받고 진행되었다. 본 연구를 위해 바탁족이며 자발적으로 선교사로 헌신하고, 자기 자신을 선교사로 여기며, 공식기관이나 단체로부터 파송 받았거나 인정받은 사람 30명을 연구참여자로 선정하였다. 심층면담을 통하여 약 1,300쪽 분량의 면담자료를 수집하였고, 이것을 인도네시아어로 전사한 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였다. 질적분석단계는 개념화, 범주화, 구조화, 이론화 단계로 구분하였고, 수집된 질적자료들을 지속적 비교, 분석적 메모, 가추법, 코드분석 전략 등을 선순환적으로 사용하여 분석하였다. 연구참여자들에게 분석결과를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하여 보여주고, 이들의 의견을 연구에 반영하였다. 또한 질적연구 전문가와 동료 선교사들로부터 본 연구의 분석결과에 대해 검증받았다. 본 연구는 질적자료 분석 결과로서 343개 개념과 42개 하위범주, 11개 범주, 3개 패턴을 도출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도출된 바탁족 선교사 헌신의 중심현상은 ‘떠남(outgoing)-몰입(immersion)-소통(communication)’이고, 핵심범주는 ‘안전구역 경계를 넘어가는 하나님의 이타성으로 소통하기’이다. 바탁족 선교사 헌신은 떠남 패턴, 몰입 패턴, 소통 패턴으로 구성된다. ‘떠남 패턴’의 선교사 헌신은 옛사람으로부터의 떠남, 안전구역으로부터의 떠남, 영원한 안전구역으로의 떠남이다. ‘몰입 패턴’의 선교사 헌신은 자기정체성에 몰입, 복음과 선교에 몰입, 하나님의 이타성에 몰입, 선교사 부르심에 몰입, 선교사 자기효용감에 몰입이다. ‘소통 패턴’의 선교사 헌신은 하나님과의 영적소통, 현지인과의 외적소통, 영적 공동체와의 내적소통이다. 바탁족 선교사 헌신의 과정 속에서 각 패턴에 속한 범주들은 시간 흐름에 따라 서로 연관성을 맺고 상호보완적으로 진행한다. 바탁족 선교사 헌신의 핵심요인은 ‘하나님의 이타성’이다. 하나님의 이타성은 떠남, 몰입, 소통의 범주들과 인과적 순환관계를 맺으며 상호작용한다. 또한, 떠남, 몰입, 소통의 속성이 진하게 발현될수록, 또한 상호결속 차원이 커질수록 바탁족 선교사 헌신도 견고해진다. 바탁족 선교사 헌신의 실체이론은 이론적 통합을 통해 핵심범주, 이야기윤곽, 통합모델로 제시되었다. 특히 통합모델은 바탁족 선교사 헌신의 네 가지 티핑 포인트를 중심으로 설명된다. 첫째, 옛사람을 떠나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인생의 전환점으로서 ‘영적 전환’, 둘째, 하나님의 이타성으로 타자를 지향하는 ‘이타적 전환’, 셋째, 안전구역 경계를 넘어 ‘우리모두(kita)’를 지향하는 ‘선교적 전환’, 넷째, 선교사 정체성이 ‘이미-아직’의 긴장 속에서 일상의 삶으로 채색되는 ‘생애적 전환’이다. 바탁족 선교사 헌신의 선교학적 함의는 떠남, 몰입, 소통 패턴별로 정리할 수 있다. 떠남 패턴의 네 가지 선교학적 함의는 첫째, 안전구역으로부터 나가는 떠남, 둘째, 영원한 안전구역으로 들어가는 떠남, 셋째, ‘우리끼리(kami, 까미)’로부터 ‘우리모두(kita, 끼따)’로의 떠남, 넷째, 떠남의 원심적 특성과 구심적 특성이다. 몰입 패턴의 세 가지 선교학적 함의는 첫째, 바탁족 선교사 헌신의 심장으로서 하나님의 이타성, 둘째, 바탁족 선교사 헌신의 발걸음으로서 경계 넘기, 셋째, 바탁족 선교사 헌신의 영성으로서 약함의 영성이다. 소통 패턴의 세 가지 선교학적 함의는 첫째, 하나님을 향한 선교사 헌신으로서 영적소통, 둘째, 현지인을 향한 선교사 헌신으로서 외적소통, 셋째, 영적 공동체를 향한 선교사 헌신으로서 내적소통이다. 본 연구의 시사점은 그동안 연구자료가 희귀했던 바탁족 선교사 헌신에 대한 실체이론을 도출하고, 선교학 이론과 연계하여 설명한 점이다. 또한 본 연구가 바탁 교회, 선교사 훈련 책임자, 예비 선교사, 선교 후원자, 선교동원 사역하는 선교단체에게 바탁족 선교사 헌신에 관한 심층적인 이해와 설명을 제공한 점이다. 본 연구의 제언으로는 바탁족 선교사의 자문화기술지 연구와 한국인 선교사 헌신과 바탁족 선교사 헌신을 비교하는 연구를 제안한다.

      • 한국 기독교 신학언어의 고립현상과 선교신학담론의 국지화 현상에 대한 선교학적 연구

        박한나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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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한국 기독교 신학언어의 고립현상과 선교신학담론의 국지화 현상에 대해 선교학적 이론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서구기독교가 한국에 전달되었을 때, 한국에 유입된 기독교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고, 그 파급의 효과는 컸다. 그러나 기독교 대륙이었던 유럽이‘탈(脫)기독교화’가 되면서, 기독교의 중심이 비서구로 옮겨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독교는 예전에 유럽 중심의 신학을 연구하고, 서구식의 신학언어를 사용하면서 점점 사회와 격리된 채 고립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21세기의 한국 기독교가 정체되는 현상의 원인을 본 논문은‘기독교 신학언어의 고립현상과 신학연구의 국지화’에서 찾는다. 신학언어의 고립은 결국 기독교가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고, 신학연구의 국지화는 그 고립을 더욱 견고케 만들었다. 본 논문에서는 한국 기독교 신학언어의 고립현상과 신학연구의 국지화 현상을 사회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증명하고 확인하고자 하였다. 무엇보다 신학 언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매체가‘서적’이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서적의 판매부수를 살펴보았다. 그 통계조사의 결과 종합베스트셀러 부분에서 기독교 서적은 저조한 비율을 보이며 신학서적이 세상과 소통하고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더욱이 베스트셀러 서적의 저자가 일반인이거나 목회자에 편중되어 있으며, 신학자의 서적은 더욱 읽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읽히지 않는 신학자들의 저술서는 신학언어를 그대로 사용한 책들이고, 대중들이 읽고 있는 베스트셀러는 신학언어를 대중의 언어로 쉽게 번역하여 쓴 책이라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신학언어의 고립화를 해결하기 위해 선교신학자 앤드류 월스(Andrew Walls)가 제시한‘성육신신학’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성화(Incarnation) 하신 것처럼 신학의 언어를 대 사회적인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또한 세상과 소통하는 기독교를 위한 신학의 언어가 새롭게 번역(translation)되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재현이 제시한 신학의 언어 즉‘말씀’이 삶의 언어인‘말’이 되는 작업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말이 된 말씀’을 통해 세상과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신학의 가장 앞자리에서 사회와 대화해야 하는 선교학의 연구들이 국지화되어 있다는 점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사회와 소통하는 기독교가 되기 위해 기독교의 언어를 사회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과 함께, 신학의 연구는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학문들과 연계하며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방법과 내용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있어야, 사회와 소통하는 신학, 선교적인 선교학이 가능할 것이다. 그 출발점에 서서 현 신학의 문제점을 정확한 수치로 파악하고, 선교신학적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본 논문은 의미를 지닌다.

      • 이주민 선교에 대한 연구 : 나섬공동체를 중심으로

        박영민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대학원 2013 국내석사

        RANK : 247663

        나섬을 통해서 비춰본 이주민 선교의 연구이다. 세계 유일의 단일민족 국가임을 자랑했던 대한민국은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에 세계 여러 곳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하여, 공부를 하기 위하여 그리고 결혼을 하기 위하여 한국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한국으로 옴으로써 이주민에 대한 선교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주민 선교는 특수성을 띠게 된다. 일반 교회의 사역과는 달리 다문화 외국인 사역은 여러 가지로 다른점들이 많다. 일반 교회의 사역들은 순수 국내 한국인들 중점적인 사역으로써 예배, 전도, 선교, 봉사, 행정, 관리 등의 일들로 꾸려져 있다.하지만 다문화 외국인 사역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주민들을 돕고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한 사역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일반 교회의 내국인 목회 사역하고 상당한 차이가 나타난다. 하지만 일반 교회건 다문화 외국인 사역이 중점인 교회나 선교단체이건 기본적인 목적은 같다. 아 논문은 한국교회의 이주민 선교에 대한 나섬 공동체 이주민 선교에 비추어서 앞으로의 한국교회가 어떻게 이주민 선교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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