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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풍토의 선행요인과 안전성과와의 관계

        이계열 嶺南大學校 2014 국내석사

        RANK : 247631

        기업 조직에서 어떠한 분야이든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겠지만, 근로자의 입장에서 산업재해는 본인으로나 기업, 국가적으로 모두 불행한 일이고 비용의 측면에서도 엄청나기 때문에 전국가적 손실이 된다. 그럼 점에서 산업재해는 최소화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궁극적인 목표는 산업재해를 지속적으로 줄여가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래야 근로자, 기업, 국가 모두에게 바람직한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는 1990년대 중반 까지 선진국의 거의 10배에 해당하는 높은 재해율을 유지했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재해 방지 정책이 시행된 1995년 경을 전후하여 줄어들기 시작하고 1998년 0.68%까지 하락한 바 있다(매일경제, 2008년 7월 1일자). 노동부가 산업재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64년 이후 2006년까지의 결과에 의하면 40여 년간 재해를 입은 근로자는 모두 376만 명으로 부산광역시 전체 인구에 맞먹는 규모다. 이 중 7만 770명이 사망했다. 2000년 대 이후 산업재해와 경제적 손실을 보면 2009년 재해율이 0.72%에 그쳐 2000년대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최근 0.5%에 근접하고 있고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안전의식과 재해가 조금씩 줄고는 있으나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높다. 그리고 이는 일선 현장에서 산업안전의식의 변화가 적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를 시간으로 재구성하면 매일 근로자 240여 명이 부상을 입고 이 중 7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은 셈이다. 2007년의 경우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은 16조 2,000억 여 원으로 노사분규로 인한 생산차질액(3조원)의 5배가 넘는다. 우리나라 산업재해는 대부분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는데다 추락․협착․전도 등 재래형 재해가 절반을 넘고 있는 점도 문제이다. 또 근골격계질환, 뇌심혈관질환 등 직업병이 늘어나고 있어 근로자 건강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위와 같이 산업재해는 아직도 기업현장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특성상 재해가 없을 수는 없으나 지속적으로 선진형으로 축소되고 최소화하려는 노력일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기업 현장에서 안전관리와 산업재해에 감소를 위한 연구가 절실함에도 산업안전관리나 안전재해에 관한 연구는 그렇게 많지는 않고 연구 수준도 높지 않다. 본 연구는 산업재해 예방과 안전관리 강화를 위한 전제로 안전관리 풍토와 안전관리 성과에 초점을 맞추어 산업재해 관리에 안전관리 강화를 위한 전략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원래 경영학 분야의 산업재해 연구는 산업재해의 주체이고 피해자인 행위자의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원인도 대부분 인재(human error)에 초점이 맞추어 지고 있다. 그러나 산업재해와 안전관리의 문제는 기업 전반에 관한 접근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관점에서 안전문화나 안전풍토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특히 1979년 미국 드리마일 사건, 1984년 인도 보팔사건,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 폭발 사고 등으로 세계적으로 안전과 재해에 대한 문화적 관점으로 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1980년 Zohar에 의해 안전풍토에 관한 논문이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개제되고 이후 안전관리에 대한 경영학적 접근이 조직의 관점에서 연구되기 시작한다. 본 연구는 안전풍토의 연구를 살펴보고 안전풍토의 요인을 중심으로 조직의 안전성과에 기여하는 변수들을 찾고 이를 통해 기업이 안전관리를 잘 실천할 수 있는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연구의 과제이자 목표다. 추후 제시하겠지만 안전풍토 연구는 1980년대 초부터 거의 35년에 가까이 되고 있으나 연구의 다양성이 매우 크고 아직도 활발하게 다양성을 확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안전관리와 재해 자체의 특성으로 인한 점이 크게 작용한다. 산업마다 상황적 특성이 다르고 기업규모나 매출액, 환경, 법적규제 등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연구를 위한 변수 추출과 구성도 매우 넓게 크게 구성개념을 구성하는가 하면 매우 좁고 집약된 변수로의 구성 등 변수의 조작이 자유롭고 다양하다. 본 연구는 비교적 최근 연구된 Vinodkumar & Bhasi(2009)의 안전풍토 구성요인과 측정도구를 중심으로 하고 다양한 성과변수를 채택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안전풍토 요인구성과 측정도구는 너무나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보편성 있고 주도적인 연구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1980년 발표된 Zohar의 안전풍토도 개념구성이 추후에 요인분석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연구자의 관점에서 최선의 안전풍토의 구성요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점은 출발부터 안고 있다. 재해연구의 본질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 1930년대 후반기 소설의 자아의식 연구 : 이상·최명익·허준 소설을 중심으로

        이계열 淑明女子大學校 1998 국내박사

        RANK : 247631

        이 논문은 이상, 최명익, 허준 소설을 대상으로, 1930년대 후반기 소설에 나타난 주인공의 자아의식을 구명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이러한 논의는 이들의 全 작품을 발표 순차에 따라 조망해 볼 때, 주인공들의 자아의식이 지속적으로 일관된 세계를 지향하고 또 질적 변화를 보인다는 입장 아래 진행되었다. Ⅱ장에서는 이상, 최명익, 허준 소설에 나타난 주인공들의 자아의식이 각기 사상을 모색하는 데 조응하는 집착관념을 지니고 있는 바, 고유한 집착관념을 들추어내어 이에 기반한 사상 모색 도정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Ⅲ장에서는 주인공의 자아의식의 소외현상의 양식화 방법으로서 이별 모티프에 주목해보았다. 이상, 최명익, 허준 소설에서 반복 출현하면서 동시에 각 작품의 주제에 관여하는 이별 모티프는 사상의 결성(privatio)개념인 소외현상을 드러내기에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상, 최명익, 허준 소설에서 이 이별은 각기 다른 의미층을 내포한다. Ⅳ장에서는 작품 창작의 주체인 작가의 욕망체계를 밝힘으로써 주인공의 자아의식의 형성 과정을 탐색해 보았다. 이러한 1930년대 후반기 소설이 한국소설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 보았다.

      • 삼육대학 생활에 관한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태도 및 습관 연구

        이계열 삼육대학교 1994 국내석사

        RANK : 247631

        본 연구의 목적은 앞날의 교회 지도자 또는 사회 각층의 지도자로서 교육을 받고 있는 삼육대학교의 학생들이 어떠한 신앙상태와 심리적 상태에 있는지를 조사 분석하여 보다 현실에 타당한 신앙 지도의 개선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대학의 교육이념, 특히 성서에 기초한 대학 본래의 교육적 사명을 제고하고 앞날의 견실한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재림교회 신앙자와 비신앙 학생들의 특성을 올바르게 이해하여 보다 적극적인 기독교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삼육대학교와 교수들 그리고 학생들을 돕고자 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본 연구는 종교활동에 대한 행동과 태도, 학교의 수업활동에 대한 행동과 태도, 교수-학생간의 유대관계, 학교생활에 대한 적응도 속에서 비교 대조된다. 이 연구는 이 두 부류의 심리적 특성을 설문지로 비교하는 것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다음 연구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다. 삼육대학교 학생들의 학교생활 중 선택된 몇 가지 행동 특성에 있어서 재림교회 신앙인과 비신앙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본 연구를 위한 하위 질문은: 1. 종교활동에 대한 태도 및 습관에 있어서 성별, 종교별, 학년별 차이는 있는가? 2. 학교의 수업활동에 대한 태도 및 습관에 있어서 성별, 종교별, 학년별 차이는 있는가? 3. 교수-학생간의 유대관계에 있어서 성별, 종교별, 학년별 차이는 있는가? 4. 학교생활 적응도에 있어서 성별, 종교별, 학년별 차이는 있는가? 5. 종교활동에 대한 태도 및 습관, 학교의 수업활동에 대한 태도 및 습관, 교수-학생간의 유대관계, 학교생활 적응도에 있어서 종교별 차이는 있는가? 제한된 표본에 기초한 연구의 결과는 다음의 결론을 유도한다. 1. 종교활동에 대한 태도 및 습관에 있어서 성별, 종교별간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학년별로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평균을 보면 모두 3점 이하로 부정적 반응을 보였으며, 남학생(M=2.46)이 여학생(M=2.13)보다 높으며, 신앙인(M=2.76)가 비신앙인(M=1.61)보다 더 높았다. 그러나 학년별 비교에서는 3학년 (M=2.31), 1학년 (M=2.25), 4학년 (M=2.27), 2학년 (M=2.14)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학년별 유의도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 학교의 수업활동에 대한 태도 및 습관에 있어서 성별, 종교별간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학년별로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평균(M)을 보면 대체로 3점에 가까운 보통이며, 성별 비교에서는 남자 (M=3.05),여자 (M=2.92)가 더 높으며, 신앙인-비신앙인의 비교에서는 신앙인(M=3.06), 비신앙인 (M=2.92)가, 학년별 비교에서는 1학년 (M=2.98)과 3학년 (M=2.98)이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이 3학년(M=2.97), 2학년 (M=2.88)의 순으로 나타났다. 3. 교수-학생간의 유대관계에 있어서 성별, 종교별간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평균(M)을 보면 남학생(M=2.84)이 여학생 (M=2.7)보다 더 긍정적이며 신앙인(M=2.82)가 비신앙인(M=2.64)에 비해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학년별 비교에서는 1학년 (M=2.82), 2학년 (M=2.77), 4학년 (M=2.70), 3학년(M=2.65) 순으로 긍정적 반응을 보였으나 차이에 있어서 유의도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4. 학교생활 적응도에 있어서 성별, 종교별간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평균 (M)에 있어서는 여학생 (M==2.8)보다는 남학생 (M=3)이 비신앙인 (M=2.73) 보다는 신앙인(M=2.97)이 더 잘 적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년별로는 4학년 (M=2.92), 3학년 (M=2.91), 1학년 (M=2.88), 2학년 (M=2.77)의 순으로 나타났으나, 유의도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5. 종교활동에 대한 태도 및 습관, 학교의 수업활동에 대한 태도 및 습관, 교수-학생간의 유대관계, 학교생활 적응도에 있어서 종교별간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 이상의 연구결과에 따라 본 연구에서 제시한 가설 중 모든 항목에 있어서 성별, 종교별간에는 유의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학년별 비교에 있어서 유의도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따. 학년별 비교에서 차이가 없다는 말은 삼육교육이 제대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뜻도 되며, 설문조상 따르면 침례는 받았으나 재림교인은 아니라고 표시하는 학생들도 나타났다.

      • 韓國水産業의 資本制化過程에 관한 硏究

        이계열 전남대학교 대학원 1997 국내박사

        RANK : 247631

        일반적으로 資本主義란 가장 간명하게 정의하면 商品經濟이다. 그것은 모든 재화가 상품으로서 생산되어 유통될 뿐 아니라, 인간의 노동력까지도 상품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뜻에서 商品經濟인 것이다. 좀 더 부연한다면 자본주의란 노동력의 구매자인 산업자본과 그 판매자인 賃勞動者가 상품 교환의 일반적·보편적 법칙에 따라 시장을 통하여 맺어짐으로써 사회적 再生産이 이루어지고 있는 商品經濟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개념을 이렇게 규정한다면 그 개념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가 무엇인가도 뚜렷해진다. 즉 자본=산업 자본, 賃勞動者, 市場의 생성, 발전 과정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성립, 발전의 과정이다. 따라서 한국 어업의 자본 제화 과정은 어업 자본의 형성, 漁業 賃勞動者의 창출, 그리고 局地的 市場圈을 벗어난 廣域(全國)市場圈의 형성과 유통시설의 근대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視覺에서 우리 나라 어업의 자본주의 성립 과정을 漁船漁業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어업자본(어업에 있어서 산업자본)은 漁船의 動力化·大型化 鋼造化와 漁獲技術의 발전으로 標徵된다. 어선의 동력화가 갖는 의의는, 첫째, 지금까지 연안의 갯벌과 암벽에 묶어 두었던 어장을 近海 → 遠洋에로 확장시켜 漁獲의 豊度(어업 생산성)를 높이고 대량생산에 따른 판로 개척의 필요성을 제고시켜 유통과정의 近代化를 촉진시킨다. 둘째, 대형동력선은 갯벌에 정박할 수 없으므로 어항이라는 새로운 어업의 근거지를 조성케 하며, 거기에 연관산업을 誘發·集中시켜 어업근거지의 도시화를 촉진시킨다. 셋째, 動力船의 자본장비율은 小型帆船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높다. 다시 말하면 거기 승선하는 어부가 공동출연하여 공동경영자가 되기에는 벅찬 금액이다. 따라서 동력선의 선원은 아침에 出港하여 석양에는 돌아오는 小型어선의 어부와는 달리 이제 단순한 노동력의 제공자로 轉身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한 그들의 작업 공간도 마을 앞의 공동 어장에서와는 달리 職住가 분리된 곳이다. 이리하여 어선의 동력화는 어업에 있어서의 賃勞動者와 창출을 촉진케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선의 동력화는 어업의 근대화, 즉 어업의 자본제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므로 흔히 어업에 있어서의 産業革命으로 간주되고 있다. 우리나라 어업의 동력화는 1921년 한국 어민이 1척의 동력선으로 조업한 것을 효시로 하여 그 4년 후인 1925년에는 5척으로 증가하였고 다음에는 한국인 소유 동력어선이 50척, 일본 인소유 어선이 337척으로 합계 387척이 한국근해에서 조업하게 된다. 1931년에는 한국인 소유가 229척, 일본인 소유가 826척, 합계 1,055척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상과 같이 우리 나라 어업의 동력화는 192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거니와, 동시에 어업의 발달을 촉진시킨 다른 하나의 기술적 혁신이 전개된다. 그것은 산업혁명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섬유공업, 특히 綿紡織工業의 발달에 의해서 綿絲가 漁網으로 활용되어 어획능률을 크게 향상시킨 사실이다. 綿紡績業의 발달에 따라 綿絲가 대량생산되고 編綱機 등의 보급으로 漁貝材料가 혁신되어 지금까지 사용되던 葛皮綱, 藁繩綱, 麻絲網 등은 線網類로 대체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漁網과 漁具는 국내에서 생산된 것은 없고 대부분 日本에서 생산되었었다. 당시의 한국의 漁網 및 綱地의 輸入현황을 보면, 1911년 139,562斤이던것이 1919년에는 1,025263근, 1925년 1,509,838근으로 증가하고 있다. 1925년에는 1,590,838근으로 15년 사이에 1139.8%, 즉 11배로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漁網 및 綱地의 수입량의 급격한 증가 추이는 국내에서 이것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던 당시로서는 수입망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아무튼 어선과 함께 중요한 어업 생산수단의 하나인 어망이 근대화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외부로부터 유입, 혹은 도입된 자본이 자본제 부분을 독점하는 한편 地先漁民들은 마을 앞의 共同漁場을 總有라는 공동어업권 어업에 묶어 두고 있었는바 이들이야말로 한국 어민의 태반을 점하고 있어서 격심한 二重構造를 낳게 된다. 다음에는 어업 생산물의 商品化 과정의 전개에 관해서 살펴보자. 아무리 어업생산과정에서 어선이 동력화되고 대형화되어 어획능률이 향상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대량생산을 뒷받침할 유통조직의 형성과 유통시설의 근대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어업의 상품경제화는 이룩될 수 없고, 수산업은 산업활동으로서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3장에서는 근대적인 수산 도매시장의 형성과 발전, 유통 시설의 근대화 측면에서 수산물의 상품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종래 우리나라 수산물의 유통은 오랫동안 객주를 비롯한 전근대적인 유통조직에 의하여 이루어졌었다. 그 중 대표적인유통 조직인 객주는 前(先)貸를 통하여 어획물을 염가로 독점하여 매수할 뿐 아니라 어업자에게 각종의 불리한 조건을 붙이고 있었다. 어업생산에는 위험성·불안정성·불확실성 등이 수반되는 산업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前期的 客主資本은 큰 예상 손실을 고려하여 어업자에게 보다 불리한 諸條件의 수용을 강요했던 것이며, 자본과 기술이 나약한 어민은 어업생산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불리한 조건들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한편, 유통기관이 근대화되기 이전에 수산물 유통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出賈船이었다. 소규모 어업에 종사하는 어선이 생산물을 직접 육지에 운반하여 판매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出賈船에 의한 어획물 유통이 대부분이었다. 出賈船은 어획물을 확보하기 위해 어선에 대한 前貸를 통하여 어획물의 專賣權을 장악하였다. 이는 역시 유통을 통한 생산의 지배형태였다. 이처럼 수산업 유통은 상품생산 관계의 미발달로 인하여 충분한 경쟁이 일반화되지 못한 채 상호 규정적인 관계에 있는 교통 및 운수기술의 미발달에 의한 不等價 交換과 이에 조응하는 복잡다기한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전근대적 경제기구에 기생하는 상업자본의 이윤추출을 商略 및 欺瞞 등, 비합리적 수단에 의존하였으며 봉건적 지배기구와 결탁함으로써 경제 외적 강제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어업생산력을 오히려 저하시켰다. 요컨대, 조선시대 우리나라 수산물의 유통경로를 도식화해 보면 생산자 →객주 →坐賈, 行商 → 소비자의 순이었다. 이 중 객주는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의 양면에서 지배적인 구실을 하였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근대적인 유통조직이라 할 수 있는 水産會社들이 설된 것은 개항 이후의 일이었다. 즉 韓末에 이르러 나타나기 시작한 일본통어민과 그 후 일본의 한국병합은 수산물 유통기구에도 커다란 변혁을 가져왔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전근대적인 유통기구의 변질과 식민지적 성격에서나마 유통기구의 近代化를 가져오게 된다. 1889년 5월 부산에 수산회사를 설립한 일본인들은 韓海에서의 어로와 판매 및 어업이윤까지 독점하였었다. 이후 1908년까지 일본인에 의하여 설립된 주요 어시장은 전국의 주요어항과 포구에 15개에 이른다. 그후 1920년에는 전국에 30여개의 어시장을 설치하여 경영하였다. 따라서 이와 같은 근대적 유통기구의 설립이란 한국어민들에게는 수탈주체가 종래의 객주로부터 일본인으로 옮겨졌다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한편, 1911년에 어업령의 發布되어 우리나라에도 어업조합 및 水産組合 制度가 생기고 어시장 제도가 수립됩으로써 수산업의 유통과정은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근대화 체제를 갖추게 된다. 처음에는 연안 각면에 설립된 어업조합에의 가입은 자유였으나 1929년에 어업령을 개정하여 어업생산자의 어업조합 가입을 의무화함으로써 한국어민을 그들의 식민지 착취기구에 강제로 포괄시킨다. 1940년 어업 조합의 共販量은 12,245만원으로, 동년 어획고 18,984만원의 64.5%을 나타내고 있어 어획물의 대부분이 공판되었음을 알 수 있는 바, 이러한 사실은 수산물의 유통과정에 있어서도 1920년대말∼30년대에 걸쳐 비록 일본인들에 의해서이기는 하지만 근대적인 유통체계가 일응 모습을 갖추게 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해방이후 수산물 유통기구의 합리화는 어떻게 하면 어업생산자에게 적정어가를 계속 유지시키고 어업생산성을 높이며 유통과정상의 중간 마아진을 최소화시킬 것인가 하는 점에서 논의되어 왔다. 해방후 어시장 및 어업조합의 공판사업은 일제 때의 去來方法과 體制로 운용되어 오다가 1951년 중앙도매시장법의 公布로 도시에는 수산물 도매시장을 설립하여 민간인으로 조직된 법인체가 운영토록 하고, 小邑面에는 "五日場"제도가 유지되었다. 한편 1962년 수산협동조합법의 公布에 따라 어업 조합의 위탁판매장을 수협이 인수하게 되었고, 1963년에는 수협의 공판장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위판량은 1958년에 51.7%, 1960년에 58.2%, 1965년에는 52% 등으로 일제시대의 64.7%에 비해 낮은 바, 이는 일제의 강제 위판제도와는 달리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자유거래가 인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어업에 있어서의 賃勞動의 창출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자. 어업에 있어선 地先의 갯벌이나 암벽에 자연적으로 번식하는 海藻類를 채취 하거나 魚貝類를 포획하는 일에서부터 망망대해에 어구를 설치하여 회유하는 어류를 포획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어업활동을 개별적인 노동으로써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바꿔말하면 다수인의 협력, 즉 공동노동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地先어장의 공동어업을 인정하는 이유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자연에 번식하는 해조류의 단순채취가 아닌 漁船漁業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일정한 능력(자본 및 노동력)을 갖춘 사람들에 의한 조합식 공동 경영(노동)으로 출발했던 것임을 많은 史實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어선원의 임금제도가 이른바, 步合制(짓가림제)라고 불리우는 어획물의 공동분배방식을 오래토록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제도에서는 흉어시엔 어선원의 보수(임금)는 없거나, 어획에 따라 감액되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어선원은 단순한 노동력만을 제공하는 임노동자가 아니라 공동경영에 노동력이라는 생산요소를 제공한 공동 경영자인 것이다. 原野의 개척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긴요한 原初的인 요소는 자본이 아니라 노동이었음을 상기할 때 저간의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업노동의 성격은 이렇게 공동경영자적인 성격이 없지 않지만 그 수는 점차 증가 일로를 걷는다. 1926년 25,842호이던 被傭者가구는 1942년에는 98.1% 증가한 51,192호에 증가하여 전어업 종사자의 25.6%를 점하게 된다. 피용자 戶口와 함께 專業漁家도 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어가의 양극분해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그만큼 자본제어업의 성장을 반영한다 하겠다. 한편, 우리나라의 어업노동의 임금제도는 전액짓가림제로부터 출발하여 오늘날에 있어서는 「고정급(혹은 최저보장급)+성과급」이 정착화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成果給이 임금의 주요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어업노동의 관리상의 특성에 연유하는 바가 적지 않지만, 아무튼 어업노동의 임금체계에 고정급이 도입된 것은 어선원의 공동경영자적 성격을 불식하고 순수한 賃勞動化하는 과정이라 이해할 수 있다. 타편, 우리나라 어업 종사자를 작업 성질별로 나누어 보면 1994년 현재 총 종사자가 197,782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경영주이면서, 동시에 노동력의 제공자라는 성격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영세어가(자연산 해조류와 패류의 체포 종사자)는 46,615명이었는바 그들을 제외한 제외한 임노동자는 총 종사자의 76.4%에 상당하는 151,167명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어업노동에서의 임노동의 창출은 1920년대의 어선의 동력화와 함께 시작되나 그것이 정착된 것은 고정급이 정착 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가 아닌가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수산업의 자본 제화는 1920년대 시작된 어선의 동력화를 기점으로 하여 이후 전개되기 시작한 시장의 확대와 함께 진전되어 1960년대 후반, 어업임금의 고정급 정착에 의해서 확립된 것이라 생각 된다. Korea's fishery shows a case of a structure with two extremities. Its fishery, especially fishing industry, in inshores and near seas is still small scaled and underdeveloped, while its ocean fishing is enjoying the monololy and large scaled production. We can find the reasons of the extremities in the characteristics of fishery itself as an indusry and the distortion of the economical structure in the course of the modernaization of the nation. Fishery is essentially a collection-based industry with its grounds limited to water areas. Fishery, accordingly, is an industry where the targets are natural resources such as marine plants and animals and the first man on the scene catches and collects them without any bidirectional relationsip. And the activities for fishery are subject very much to natural conditions. There is almost always the possibility of accidents owing to weather and physical conditions. The catches are not very predictable because marine resources as the target are migrating and liable to nature's conditions and the number of working days are largely dependent upon the weather. The migration of schools of fish makes it difficult to predict when and where may be the point of good catches, which is one of the elements conditioning the structure of production, distribution, and the overall economy. Fishing grounds, labour power, and production instruments such as boats and fishing gears are necessities for fishery to be established as an industry. Fishing grounds, on which the production activites are being or to be done, must have natrual geographical features such as the depth and the temperature of water, tides, and weather which are favorable. They must be places where useful plants or animals live or migrate to, places where the catch or collection of the resources is economically profitable, and where the catch or cultivation is technologically possible. Korea is endowed with all basic conditions for fishery. The Korean peninsular, which is surrounded by seas at three sides, has 3,350 islands, a 260,000 km long coast, 1,570,000 km inshore areas. It has tidelands of 50,000 km areas and broad continental shelves with good fishing grounds. The economical utilization of the fishing grounds presupposes the establishment of the ownership of them. In fudal Chosun Dynatsy period, the fishing grounds were owned by the government and utilized by the local governments or powerful local fmilies. Sinc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monopoly and exclusive exploitation have been given to a small number of priviliged people and this distorted structure was one of the main reasons for the low productivity of inshore fishing of the nation. The Fishing Right System has been to serve for the maintenance of the order in the fishing grounds by protecting inshore fishery under the underdeveloped structure as is the basic policy of the government. The monopolistic or exclusive owneship given through the Fishing Right System has been the major obstacle to the promotion of poductivity and capitalization of fishery. The system prevented the free flow of capital, cutting out the introdution of capital from outside, modernized fishery technology and large scaled management. Production instruments is a key to the development of fishery. Since fishing grounds are water areas, fishing boats are absolutely necessary for the transportation to and from the fishing grounds and the activities such as catching and cultivating. The size, speed, and cruising power of a fishing boat very often determines the elements of the fishing ground. The development of fihery, in a sense, depends upon the development of fishing instruments. Marine products are not durable and have many limitations in production and distribution. Without some ways and facilities to keep them fresh, the distribution would become impossible and thus the production would be of no use. Fishing would be done in inshore areas without any connection to the markets and near-sea and ocean fishing would be impossible. The economocal structure of Korea's fishery is multi-leveled one. The kind of labour power should vary according to the kind of fish, instruments and fishing method. The management structure, relfecting this aspect, varies from a large scaled capital-based ones to a very small ones. The development of Korea's fishery has not been by the continum of internal power, but, as is in the developemnt of its capitalism, by discontinuous foreign capitals, resulting from dependendency and grafting. Fishing grounds in the fudal period were owned by the government and there were discrimination and exploitation by the brutal fudalism, but no promotion of productivity. In Japanese colonial period, fishing fishing grounds were exploited by Japanese immigrant fishermen and capital. Korea's fishery was from the very begining not autonomous national industry but a way of exploitation by the Japanese colonialism. Korea's fishery uner the control of Japanese imperialism only saw the extensional spread of Japan's fishery, selective exploitation, monopolistic domination of Japanese capital, and financial want of the Korean fishermen. The liberation in 1945 could be an opportunity for a new start for Korea's fishery as for the other industries. Korea's fishery was forced to have a new reproduction structure which is different from the on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days. Korea at that time, however, had no shipbuilding industry and no national capital which can manage modernized fishery. The withdrawal of Japanese immigrant fishermen, who exclusively monopolized the management, added to the stagnation of fishery. In addition, the confusion after the liberation resulted in the avoidance of investment, transportation problems, social disorder, and the loss of good fishing grounds in North Korea, causing the relative reduction of the market and the industry. As a result, the inshore fishing, which was the most backward kind of fishery in the Japanese colonial days, became dominant in the nation. The new fishery system afterwards brought the development of capitalistic fisher, but it was not of the original fiehrmen but of outsiders with political power.

      • 中小企業 金融支援 制度의 改善方案 : 制度金融을 中心으로

        이계열 朝鮮大學校 大學院 1982 국내석사

        RANK : 247631

        Small Business turn many away for lack of collatoral and credit in Institutional credit. Therefore, We request a government intervention to readjust this disadvantage of small business. We will make improvement of these problems clear, and analyze the present situation and problems of it in this thesis. This thesis construct a theory by; first: Introduction, second: present situation of Korean small business, third: the chief contents of financial system of that, fourth: actual condition and problem of supplement fund of small business, fifth: reform measure of that, sixth: conclusion. Generally speaking, we have the following problems in Korea: First: be slight of financial institution, taking full charge of small business loan. Second: Shortage of specialization of financial institution, taking ful charge of small business. Third: lean upon object of supporting fund. Fourth: be slight credit guarantee fund. So, We unite in a vigorous supporting policy to supply inadequacy, to get the highest state of efficiency in financing mechanism. We present the following improvement plan, First; increase public finance to small business. Second; improvement of financial mechanism in order to supply much institutional policy credit. Third; procede change of law to enlarge supplying firms. Fourth; enlarge credit supplement system. Fifth; variety of financial institution, supplying in small business. We think that finance policy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among supplemental policy. Therefore, we will have increased efficiency through linking finance policy and other policies about small business.

      • 崔明翊 小說 硏究 : 作中人物의 변모양상을 中心으로

        이계열 淑明女子大學校 1992 국내석사

        RANK : 247631

        柳坊 崔明翊은 1930년대 중후반, 지식인의 불안과 절망을 그리고자 한 역량있는 작가이다. 당대성과 개인의 특수한 삶의 인식 속에서, 그가 도달한 삶의 성찰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해방 전 7작품과 해방 후 『서산대사』를 미루어 볼 때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으로 넘어간 최명익의 문학세계는 일관되고 체계적인 발전을 보인다. 해방 전, 작가의 분신이라고 여겨지는 지식인 주인공들은 모두 무력증, 의식과잉자이긴 하지만 정신적 바탕을 달리한다. 「비오는 길」의 병일과 「무성격자」의 정일은 ‘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부단히 갈망하지만 주관적 관념의 칩거로 인해 삶을 그 자체로 온전히 보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역설」은 작가의 현실비판 의식이 강하게 드러나긴 하지만 문일의 자의식 또한 주관적 관념의 칩거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페어인」의 현일과 「심문」의 명일에 이르면 그 이전의 지식인들이 보인 삶의 회의를 넘어 니힐리스트적 면모를 보인다. 현일과 명일은 자신들의 비판적 거리 속에 동병상련격인 도영, 현혁을 마주하고 있다. 도영, 현혁은 주관적 관념으로서의 진리추구를 관념유희로 치부하고 그러한 진리를 거부하는 자이다. 그들은 현일과 명일의 반사체이며 현일, 명일은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주관적 관념과 시대적인 절망을 넘어설 수 있는 실천적 규준을 갖고 있지 못함을 즉 ‘사상(thought)의 부재’에 놓여 있음을 통렬히 인식하고 있다. 최명익 작품 중, 「심문」은 현실과 이상이 갈등을 빚는 최정점에 놓인 우수작이다. 마지막으로 「장삼이사」의 ‘나’에 이르면 이전에 보여주던 내부세계편향이 아닌 외부세계 그 자체를 그대로 바라보며 주관적 관념으로 삶(타인)을 대하는 자신의 허위 의식을 조소하게 된다. 해방 후 쓰여진 『서산대사』는 해방 전 최명익 문학과 연계점이 놓여진다. 그것은 해방 전 작가가 천착해왔던 삶의 딜레머가 서산대사를 통해 구현(총 결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산대사』는 서산대사를 통한 삶의 구도적 성찰로서 세계(역사) 속의 인간의 '사랑' - 민중애 - 을 보여 주고자 한다. 『서산대사』는 해방 전 「비오는 길」에서 「심문」을 거쳐 「장삼이사」에 이르는 동안 삶을 집요히 성찰한 작가적 성숙의 결과이다. 해방 전, 일관되고 체계적인 발전을 보였던 지식인들의 정신세계는 한마디로 ‘定住不在상태의 流動意識'으로 간주할 수 있다. 지식인들의 이러한 의식은 최명익 소설의 자의식세계의 양식화 방법인 ‘길’과 조화되어 훌륭한 문학적 세계를 이루고 있다. 지식인 주인공들의 ‘定住不在상태의 流動意識’, 즉 전망상실은 ‘자의식’에의 집착과 ‘비극’의 감지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당대의 시대성과 관련하여 더 구체적으로 천착해 보면 근대화에 대한 양가적 반응인 ‘근대성’에 놓여지기도 한다. Choi-myong-ic is an able writer who indicated anxiety and despair of the intellectuals in 1930's. It is very valuable that he indicated self-reflection of the life by the those days and individual life. He composed 7 works before liberation and 『saint suh-san』 after liberation. Judging from this, the feature of literature whom he indicated was consistent and systematic from moderism to realism. Before liberation, Protagonists were all incompetent but were indifferentin a mental phenomenon. Beong-il in 「raining road」 and Jong-il in 「no character」 maded efforts to find the meaning of life. But they didn't obsered life by the subjectivism. 「Paradox」 was expressd life by the realistic criticism of an writer emphatically but moon-il had subjectivism and self-consciousness. Heon-il 「lung fish person] and Myeyong-ilin [mind figure]was indicated nihilistic countenance of the intellectuals by his doubts about life. Heon-il and Myong-il were the same with Do-yong and Heon-heoc as grief is best pleased with grief's company. Do-yong and Heon-heoc considered pursuit of truth as amusements of ideal by subjectivism. And they rejected truth. besides, they shined by the reflection of Heon-il and Myng-il Heon-il and Myng-il looked into them. And they did'nt have practival criterion that got over subjectivism and period despair. That is,they severely recognized that they were absent of thought 「Mind figure」 was the best work that was existed trouble between the real and the idal. In conclusion I should like to say that 「Tom, Dick, and Harry」 was indicated by the outside world and it ridiculed false awareness which was seen people by subjectivism. 『Saint suh-san』 that was written after liberation of Choi myong-ic before liberation. It was embodied by saint suh-san that writer fell into a dilemma before liberation. 『Saint suh-san』 expressed human love and the seeking self-reflection in saint suh-san. 『Saint suh-san』 was the work as the result of full growth from 「rainning road」,「Mind finger」to 「Tom, Dick and Harry」. It was considerd as consciousness of flux that the mental world of the intellectuals which was consistent and systematic devolopment before liberation. The mental world of the intellectuals was in harmony with road that conventionalized self-consciousness of Choi meyong-ic. And it maked the world of literature. Consciousness of flux by protagonist was caused by tenacity for self-consciousness and knowing tragedy. Considering more concretely, the mental world of the intellectuals was caused by modernity.

      • 集合建物의 再建築과 賣渡請求權에 관한 硏究

        이계열 京畿大學校 行政大學院 2004 국내석사

        RANK : 247615

        주택은 주거환경을 구성하는 기초단위로서 일상생활을 지탱하는 기능과 가정을 지키는 이용가치를 갖고 있음과 동시에, 자본가치의 척도인 재산으로서의 교환가치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택은 사유재이기도 하지만 사회재로써 국민복지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이에 집합건물의 경우는, 다수의 사람들이 공동생활 장소이며 주변지역과의 각종 교통활동을 위한 장소로서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집합건물을 이용한 일련의 행위는 도시공간 구조나 주변지역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집합건물의 경우에는 각 전유부분의 독립한 소유권 즉 구분소유권의 대상으로 되어 있고, 건물 자체가 물리적으로 일체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영향력이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1960년대 후반 이후 건설되기 시작한 아파트들이 20~30년을 넘어서면서 기능과 시설면에서 노후화에 따른 문제점이 발생하였고, 1983년 이후 시행된 합동개발사업의 영향을 받아 노후아파트에 대한 재건축에 대한 욕구가 증대되게 이르렀다. 또한 공동주택의 부실문제를 방치할 경우 대규모 단지의 슬럼화를 우려한 주거환경개선대책 요구가 나타났고, 정부의 입장에서도 주거기능이 현저히 저하되고 사고위험까지 있는 주택정비 필요성이 증대되면서 1987년 "주택건설촉진법"이 제정되어 재건축사업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집합건물은 각 구분소유권의 절대성을 고집하게 되면 건물의 노후화 등으로 재건축의 필요성이 발생하더라도 구분소유자 중 어느 한 사람이 반대하게 되면 재건축은 불가능하게 되고, 결국은 건물이 물리적으로 붕괴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경우 재건축을 반대하는 구분소유자의 권리는 보호받게 될지모르나, 다른 구분소유자의 권리 특히 대지사용권은 극히 불합리한 제한을 받게 되며, 사회 · 경제적으로도 매우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단순히 다수결에 의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재건축이 가능하도록 규정한다면 재건축에 반대하거나 재건축에 소요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소수 구분소유자의 권리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 여기서 바로 각 구분소유권 사이의 권리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즉 한편으로는 재건축에 반대하는 구분소유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집합건물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그 요건을 엄격히 하여 재건축을 원하는 다수의 구분소유자의 권리행사를 가능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분소유자 사이의 권리관계의 조정 및 재건축지역의 지정에 대한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해 주택법과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등에서 매도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즉 구분소유권 매도청구권은 대지사용권을 가지지 아니한 집합건물의 소유자가 있는 경우, 그 구분 소유자의 전유부분 철거를 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자가 구분소유자에 대하여 그 전유부분의 매도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합건물법 제7조에 의하면 대지사용권을 가지지 아니한 구분소유자가 있을 때에는 그 전유부분의 철거를 구할 권리를 가진 자는 그 구분소유자에 대하여 구분소유권을 시가로 매도할 것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것은 대지사용권자와 구분소유권자를 일치시키기 위한 것으로써, 구분소유권자는 전유부분의 철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등의 사유만으로 매도청구권을 부정할 수 있다. 그러나 매도청구권을 행사함에 있어, 건축결의의 법적효력문제, 매도청구 대상범위의 확정문제, 매도청구권의 요건 및 절차상의 문제, 재판기간의 문제, 환매청구에 관한 문제, 재건축지연에 따른 임차인 · 조합원 지위의 문제등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재건축 관련 매도청구권의 행사 절차상의 문제와 행사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건축 결의의 효력, 매도청구의 대상범위의 확대가 요구된다. 다시 말하자면, 일정한 공시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재건축대상 부동산상의 권리자 등 이해관계인에게 재건축담당자 구분소유자의 권리 의무를 대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며, 재건축 대상범위 또한 일률적인 규정을 통해 규제하는 것보다는 주변 환경을 고려한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예외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매도청구권의 최고 후 회답기간의 장기화와 재판기간의 장기화 문제를 간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이 요구된다. 또한 매도청구권 행사 이후에는 환매청구제도의 보완이 이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임차인의 지위 보장을 위해 재건축 후에 재입주 방안과 재개발과 같은 이주대책이 동반되어야 한다. 조합원의 경우는 재건축지연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혹은 개선하기 위해 시공보증제의 보완과 배상책임보험제도가 논의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재건축시 매도청구권의 행사로 인한 문제점들을 해결 · 절충함으로써 재건축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Land is the essential foundation of survival and the vital means by which man lives. The land we live In has distinct features that signify usage diversity, possibility of division, and social, economic and administrative aspects. Thus, pressure brought on by excessive population density and economic development has expanded the importance of making the most effective use of land. Our society also sees a growing number of housing units, e.g., apartments, capable of accommodating a massive number of people in concentrated areas, but has yet to address social and individual requirements related to housing. Thus, even in view of the limited land resources, measures for maximizing efficient use of existing old buildings should be worked out. In the case of complex buildings, however, ways of reconstructing and/or improving them are complicated unless they are physically collapsed. As a result, proponents of reconstruction and those against it engage in heated debates. There is a need to strike a balance between protection of private properties and improvement of housing efficiency. Therefore, measures should be established to protect the rights of 'divided owners' who oppose reconstruction. It is also necessary to strictly define corresponding requirements and enable exercising of the rights of multiple 'divided owners', in areas where it is considered irrational to maintain complex buildings. Measures should also be established to fine tune conflicting interests between participants and non-participants in reconstruction, and cope effectively with corresponding social and economic waste. In this regard Korea's current laws provide for the sale claim system. In the case of complex buildings with owners not having rights to use the land, those who have rights to request the withdrawal of properties owned by 'divided owners' can claim the sale of such properties under the sale claim system. However, such sale claim rights entail extensive discussions because they can only be exercised by addressing problems surrounding reconstruction decision, target scope, requirements, procedures, and trial period. Under these circumstances, this paper sought a purpose-oriented synthetic approach instead of a partial and one-sided analysis. The related literature, both local and foreign, as well as judicial precedents was likewise reviewed. A comprehensive empirical analysis was carried out to come up with a 6-chapter presentation as follows. Chapter 1 explains the scope of this research and the methods involved. Chapter 2 presents the basic theories and reviews the concepts of reconstruction and 'division.' This section also reviews foreign reconstruction systems and seeks a comprehensive approach instead of a partial or a one-sided strategy. Chapter 3 deals with the concept of sale claim rights and problems relating to their unconstitutionality, as well as the legal aspects pertaining to requirements, notice procedures, exercising, and effectivity of sale claim rights. Chapter 4 reviews problems surrounding procedures of sale claim rights and the aftermath of their implementation in connection with reconstruction in Korea. Chapter 5 presents measures for addressing problems indicated in Chapter 4. Finally, Chapter 6 sums up the research results and discusses the recommended research direction for enhancing reconstruction effici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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