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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기 대금산조의 형성과 변화

        박환영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5 국내박사

        RANK : 247631

        국문초록 대금산조는 소리 더늠과 시나위 더늠으로 나뉜다. 소리 더늠은 박종기가 창시하고 시나위 더늠은 강백천이 창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 소리 더늠은 세월이 지나며 여러 유파가 형성되었으나 시나위 더늠은 그 전승 정도가 거의 끊어질 정도로 미미하다. 대금산조 중에는 형태는 약간씩 다르지만 같은 듯 다른 비슷한 가락을 많이 보게 된다. 특히 대금산조는 다른 악기의 산조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그렇다면 그 연유는 무엇인가? 또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누가 언제부터 연주하기 시작한 가락인가? 또 유파마다 어떤 특징을 보이고 있는가? 본 연구는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선율의 원류를 찾고 출처를 찾아내는 것은 각 유파의 음악적 특징과 독창성을 밝히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다행히 유성기 음반에 수록된 박종기 대금산조 한바탕이 발견되면서 현행 대금산조가 박종기 대금산조로부터 비롯된 가락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본 연구는 박종기 대금산조를 토대로 하여 그의 제자 한주환 대금산조를 비롯한 5개의 소리 더늠 계열 대금산조에 존재하는 비슷한 선율들을 분석하여 박종기의 가락이 얼마만큼 수용되었으며, 또 그 원형에 비해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 그 변화양상을 연구하였다. 유파별 비교분석 방법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이 첫째 동일선율 둘째 부분유사선율 셋째 단락유사선율의 3가지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첫 번째의 동일선율에 대한 판단기준은 한 장단을 기준으로 하여 80% 정도 일치하면 동일선율로 판단하였다. 두 번째 부분유사선율 여부는 음가의 축소, 음가의 확대, 리듬변화, 박자변화, 음정의 변화 등으로 구분하고 부분유사선율1, 2, 3, 4, 5로 표기하여 대금산조의 음악적 특징에 맞게 모델 형을 제시하였다. 세 번째 단락유사선율은 특정선율이 확대되거나 축소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한 장단 기준이 아닌 여러 장단의 집합 형태로 된 유사선율은 한 장단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 단락유사선율로 분류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5개의 산조를 분석한 결과 박종기의 대금산조가 한주환 대금산조를 비롯한 여러 유파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쳐 오늘날 대금산조의 초석이 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또 이미 그 음악적 바탕이 탄탄했던 한주환은 박종기의 소리 더늠 대금산조를 전수받아 박종기 산조에는 없던 중중모리를 박종기 산조의 Okeh 30016-A 국거리 부분을 축소 및 변형시켜 중중모리로 삽입하고 또 변청을 도입하는 등 대금산조를 더욱 확대발전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범수는 박종기의 산조와 퉁소가락을 바탕으로 음양론에 기반을 둔 대금산조를 완성하였으며 박종기 산조의 호걸제 부분을 대폭 수용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또 이생강은 박종기의 가락과 스승 한주환의 가락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면서 메나리조를 도입하거나 음을 연속적으로 굴러내는 탁월한 주법 등을 개발하여 대금산조의 신기원을 열었다. 서용석은 전통적인 남도소리에 기반한 탄탄한 산조를 구성하였다. 서용석 산조 전체 분량에 비해 박종기 가락의 비중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인용부분은 비교적 가감 없이 원형대로 인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원장현 산조는 다른 유파와 달리 박종기의 가락을 단편적으로 차용하여 원전에 충실하기보다 전체 흐름만 비슷한 자기패턴으로 소화하고 있다. 이것은 한주환의 가락을 한일섭에게 구음으로 사사한 결과로 보여 지며 그는 타고난 계면성음으로 계면성음 위주의 산조를 완성하였다. 이처럼 박종기 이후 2,3세대 명인들은 각자의 개성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유파를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 연구결과 한창 대금산조가 활성화되던 시기에 유성기음반에 수록되어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박종기의 중모리나 호걸제 가락은 오늘날 대부분의 대금산조에서 인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락은 역시 인용되지 않고 있음 또한 알게 되었다. 현행 대금산조는 박종기 산조보다 오히려 한주환 산조와 더 밀접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한주환과 같이 활동을 했던 아쟁산조의 명인 한일섭이 구음으로 한주환의 산조를 가르쳤던 영향이 크다. 따라서 한주환과 한일섭이 대금산조에 끼친 영향을 밝히는 후속 연구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 Kinship in post-socialist mongolia : its revival and reinvention

        박환영 University of Cambridge 1997 해외박사

        RANK : 247615

        본 논문은 사회주의 체제 붕괴후 현대 몽골에서 친족 관계가 사회 모든 측면에서 중요하게 재생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들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국가(State)가 이전의 전통적인 (공산혁명이전) 시대에서 친족 관계나 친족 네트워크의 영역이었던 주택(housing), 취직, 자녀교육, 사회복지, 경제적 도움 등의 기능들을 수행했었다. 지금은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졌고 친족이 다시 예전과 같이 사회 전반에서 여러 가지 기능들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친족은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후 결여된 사회적인 공백을 메꾸고 있는 셈이다. 본 논문은 세가지 측면에서 이러한 상황들을 설명하고 잇다. 즉 옛 전통들의 장려 (제1장), 친족어의 역사적 연구 (제2장), 몽골사회, 경제 그리고 상징적 (Conceptual) 생활에서의 친족의 중요성들을 분석하고 있다. (제3,4 그리고 5장). 제1장에서는 몽골인들이 옛 전통과 기억들을 통하여 친족을 재생하려는 한 근원적인 방편으로 선택한 과거(past)를 바라보는 여러 측면들을 요약하였다. 친족어의 통시적 (18세기부터 현대까지) 분석인 제2장에서는 이론적인(theoretical) 입장에서 친족어에 반영된 사회의 여러 변화들을 살펴보았다. 실제적인(practical) 측면에서의 친족은 세부분으로 분석하였는데, 즉 친족 관계와 네트워크 (제3장), 친족과 경제적 관계 (제4장) 그리고 친족의 상징 및 은유들(metaphors) (제5장) 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본 연구를 통하여 네가지 주요한 주제들(themes)이 도출되었다. 첫째, 고유민간 의식(ritual) 이 지금 다시 재생되고 있다. 둘째, 친족 관계 사이에는 상호의무성(mutuality of obligation)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경제적인 이익이나 고려에 근거한 비친족 관계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셋째, 비록 친족과 비친족 사이에는 상대적으로 명확한 경계선이 있지만 외부인들(outsiders)이 어느 한 친족 집단 속에서 신뢰를 얻게 되면 내부인(insiders)이 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 이러한 경우 한 친족 집단으로부터 받아들여지는 관계 정도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가장 흥미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인위적(fictive ; hurrai) 친족이며 이것은 단지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인위적인 친족이 오늘날 몽골사회에서 아주 중요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러한 형태의 친족이 친족의 사회적인 장점들 뿐만 아니라 비친족의 경제적인 장점들을 모두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친족 연계가 무시되고 "brotherhood"나 comradeship" 같은 Preseudo- 친족관계가 훨씬 더 사회적으로 유용하였기 때문에 친족의 형태는 존재하였지만 일반적인 사회생활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날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에서 상부상조의 근원으로써 그리고 국가적인 영웅 징기스칸(Chinghis Khan)과의 혈연적인 연계를 포함해서 어떻게 오늘날 몽골인을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한 방편으로써 친족의 형태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친족과 옛 전통의 재구 과정에서 지식인들(intellectuals)의 참여는 사회주의 체제 붕괴후 현대 몽골사회에서 긍정적이고도 부정적인 암시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도 하지만 문제성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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