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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무(Coix lachryma-jobivar.mayuen)種實의 登熟에 따른 成分含量의 變化

        김율호 慶北大學校 199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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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무種實의 登熱過程에 따른 成分含量의 變化를 調査分析함으로써 율무種實의 生理的 成熱期 究明 및 栽培技術 改善을 위한 基礎資料를 얻고자 早熟種인 동북종과 晩熟種인 율무 1호를 供試하여 實施한 試驗結果를 要約하면 다음과 같다. 1. 百粒重은 出穗直後부터 계속 增加하여 40日에 最高에 달하였고 水分含量를은 出穗後 25日까지는 直線的인 減少를 보이다 35日以後에 安定化되었다. 2. 登熱中 全糖含量은 出穗直後부터 15日까지 增加하였으나 그 이후부터 35日까지는 減少되었으며 澱粉含量은 登熱이 完了될 때까지 계속 增加하였다. 3. 蛋百質 含量은 威熟이 進展됨에 따라 減少하였으나 기름含量은 增加하는 傾向을 보였으며 두 品種間의 增減 傾向을 보면 蛋百質 含量에서는 다소 差異를 보였으나 기름含量은 비슷하였다. 4. 登熟에 따른 發芽率은 早生種인 동북종이 出穗後 10日부터 發芽能力을 나타내어 30日에 完全한 發芽率을 보였고 晩生種인 율무1호는 出穗後 20日부터 發芽되어 完全한 發芽率은 35日에 이루어져 早晩生品種間 差異를 보였다. 5. 登熟에 따른 成分間의 相關關係에서 澱粉含量은 百粒重, 기름含量, 알칼리 崩壞度, 發芽率과는 高度의 正의 相關을, 全糖 및 蛋百質含量과는 負의 相關關係를 나타내었다. 6. 각각의 成分含量이 最大에 달하는 時期를 2次 回歸方程式에 의해 推定한 結果 澱粉含量은 38日, 百粒量은 40日, 發芽率은 43日이었다. 따라서 율무種實의 生理的 成熟期는 出穗後 40日頃인 것으로 思料된다. The reports on the chemical composition of developing job's tears seeds is very insufficient by this time.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obtain the fundamental informations on chemical component of the developing job's tears seed, including starch, sugar, oil, protein, fatty acid, Alkali Digestibility Value (ADV), 100-grain weight, moisture content and germination percentage. Two job's tears varieties in different by maturity types were analyzed for those components from 10 days after heading to maturity, with 5-day intervals. Total sugar content in seeds followed a pattern of linear increase after heading, but it started to decrease around 15 days after heading. On the other hand, starch content continued to increase until maturity and the highest increasing occurred between 15 and 20 days after heading. The protein content of seeds was decreased, while oil content was increased through the ripening process. Starch content showed a positive correlation witH100-grain weight, ADV, oil and germination percent, but it had negative correlations between total sugar and protein contents in ripening process. Maximum starch content, 100 grain weight, and germination percent obtained by quadratic equation were attained 38 to 43 days after heading. So that the physiological maturity of job's tears seeds was considered to be 40 days after heading.

      • 몰트만의 생태신학적 창조론 연구

        김율호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199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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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자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이 인간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인간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작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은 인간 생명의 모반이기 때문이다. 땅과 바다와 공기 그리고 이 안에서 생존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생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모두는 뗄 수 없는 상호 의존의 관계성 속에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와 파괴로 인해서 생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생명공동체의 유기체적인 관계성이 파괴되는 생태학적인 위기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몰트만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가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위기의 심각성을 통찰하고 그의 신학적 '창조론'에서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생태학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볼트만은 생태신학에 있어서 성령론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 장에서는 몰트만의 창조론을 중심으로 다루어온 내용들을 간략히 요약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과 평화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창조의 미래를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함으로써 결론을 맺고자 한다. 2장에서 우리는 인간에 의한 무모한 자연 지배가 창조세계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르는 위기의 상황을 초래하였다는 사실에 관해서 논의하였다. 인간과 자연을 주체와 객체로 분리시킨 근대 이후의 철학 사상과 잘못 이해된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은 힘을 통한 인간의 자연지배와 정복을 밑받침하고 또한 정당화하였다. 그 결과 인간에 의하여 이루어진 현대의 산업화와 과학 기술 문명은 그들의 무서운 힘을 통해 자연을 마음껏 착취하고 훼손시킴으로써 창조 전체를 재난을 향해 몰아가고 있다. 3장에서는 이와 같은 창조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하나님의 선한 창조라고 말 할 수 있는 신학적인 근거에 관해 논의하였다. 하나님은 세계를 '무로부터 창조'하셨다. 이것은 창조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와 결단을 통해서 이루어 졌음을 말해 준다. 또한 그것은 창조가 하나님의 자기 전달의 사랑임을 증언한다. 창조가 하나님의 자유한 사랑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창조는 목적 없는 완결된 체계가 아니라 그를 창조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종말의 새 창조의 영광을 향해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서로를 향해 개방되어지고 미래를 향해 열려진 체계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연 파괴와 사회의 부정의를 통해서 열려진 창조의 체계를 폐쇄시키는 것은 무서운 죄악이요 불신앙이다. 4장에서는 창조세계를 훼손시키고 있는 인간의 본래적인 본분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의 형상' 이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계약의 상대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말씀에 응답하고 그를 사랑하며 살아야할 전체로서의 인간이다. 그리고 동료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도 사랑의 사귐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할 존재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는 인간의 본분이다. 특히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의 자연 지배는 자연을 정원사와 관리인처럼 잘 가꾸고 돌보아야할 책임 이상의 것이 아님을 살펴보았다. 5장에서는 모든 창조는 운명의 공동체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창조는 현재의 고난 속에서 함께 탄식하는 고난의 공동체이다. 또한 그 고난의 공동적인 인식을 통해 미래의 영광을 희망하는 영광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휴식을 통한 창조의 완성과 면류관으로서의 안식일 축제에 모든 피조물은 함께 초청 받은 축제의 공동체이다. 여기에서 특히 몰트만이 안식일을 그의 창조론의 중심에 놓고 그 의미를 새롭게 부각시키고 있는 점은 안식일 과 부활절의 공동적인 축제 분위기가 상실되어가고 있는 현대의 그리스도교 교회들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준다고 하겠다. 이런 전제하에서 이제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평화를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인간 중심적인 사고의 시급한 전환이다.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을 인간주체와 자연객체로 분리시킬 수 없다. 또한 힘의 의지를 통해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자연은 '인간을 위한 자연'이 아니라 독자성을 가진 주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오히려 인간이 객체이며 자연의 한 산물이라는 사고와 인식이 산업화된 현대의 인간들에게 요청된다. 이러한 사고는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 속에서 '고향'의 안락함과 쉼을 얻게 할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평화적 공존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둘째 구조의 개선이다. 사고의 전환은 동시에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려 하는 불의한 사회 구조와 경제질서를 개선하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현대의 자본주의화된 경제 구조와 정치체제들은 인간의 욕망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점점 더 불의하고 범세계적으로 강력한 구조를 형성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하에서 인간성이 말살되고 자연은 황폐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조를 개선하여 정의로운 사회와 경제·정치 질서를 이룩하지 않고는 창조세계의 평화를 이룩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에 평화와 공존의 질서를 이룩하는 것과 인간 사회의 정의를 이루는 일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셋째 고난에 대한 공동적인 인식과 참여이다. 사고의 전환, 그리고 구조의 개선은 현재의 창조가 겪고 있는 고난에 대한 공동성의 인식과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먼저 인간은 인간 외의 피조물들의 탄식과 신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탄식이 희망을 향한 동경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불의한 구조 아래에서 신음하는 동료 인간의 울부짖음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피조물과 동료 인간들의 고통이 나에게서도 경험되고, 나의 고통으로 경험되는, 고난에 대한 공동성의 인식과 참여는 창조로 하여금 영광의 미래를 희망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고난의 공동성을 인식하는 곳에서 인간들은 창조와 함께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부르짖는 '하나님의 영'의 탄식을 듣게 될 것이며 이 하나님의 영이 창조의 '희망'을 참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희망 속에 살 때 모든 창조는 사귐 속에 들어갈 것이며 인간들의 사고의 전환과 구조의 개선도 가능해 질 것이다. 넷째 기독교의 구원 개념이 확대되어 샬롬이나 생명 또는 기쁨으로서의 구원 개념으로 연장되어야 할 것이다. 샬롬이란 범우주적인 생명을 살리는 일이며, 그 생명을 온갖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 바울서신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재물관 : 고리도전서 9장 11-18절을 중심으로

        김율호 호남신학대학교 200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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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본 연구는 재물에 관한 개념과 시대별 혹은 성경 속에 드러난 재물관의 이해를 바탕으로 바울 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재물관을 살펴보았다. 먼저 2장 재물에 대한 관점들부터 같이 요약해본다. 성경에는 여러 히브리어가 "가치 있는 동산," "돈," "은," "번창하는,""충분," "부"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부에 대한 구약성서의 입장은 한마디로 '야훼께서 만물의 창조주시며 주권자이시기에 만물은 그에게 속한다'는 단정적 선언 속에 나타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특수한 역사적 종교적 경험을 통해 이해된 것으로서 부와 재산은 하나님의 축복의 징표가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진노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축복을 받을 것인가 징벌을 받을 것인가는 이스라엘이 신실한가 불 신실한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지혜서와 예언서 등에서 한결같이 지적하는 내용은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공의로운 심판과 부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이다. 결론적으로 구약성서는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의 욕구를 다른 사람을 희생하면서까지 충족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주의에서의 재물에 관한 태도는 주로 랍비들의 사상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가난한'이란 단어는 ‘경건한'이나 ’의로운'과 뜻이 거의 같아졌다. 그리고 에세네파는 구원을 '가난하게' 되는 것 자체로 이해한다. 헬라시대 초기에 부는 고결함과 동의어로 이해되었다. '부유함'은 덕과 축복을 가져다주며, 부의 취득이나 상실은 오로지 인격화된 신들의 손에 좌우된다고 보았다. 자연철학시대를 거치면서 부는 사회적 관점에서 파악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부나 가난이 개인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거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렀을 때 부는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서, 정의에 대한 추구와 덕에 대한 헌신을 촉진시키는데 그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견유학파나 스토아학파의 부의 개념은 상당히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다. 이들은 부를 비난하면서 오히려 내적인 태도를 강조한다. 견유학파는 참된 지혜를,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적 태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부에 대한 신약성서의 태도는 구약성서의 태도와 일관성은 있지만 부의 위험들에 대한 경고가 보다 강조되어있다. 예수는 사람을 노예화하며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대한 궁극적인 신뢰를 파괴하는 재산의 음험한 힘과 싸웠다. 그는 부와 재물 또는 가난 자체를 정죄시 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것들에 얽매여 참다운 자유를 상실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삶 자체를 통해 올바른 삶의 메시지를 보냈다. 마태복음에서는 부에 대한 하나님 중심적이며 종말론적인 견해를 지지하고 있으며, 마가복음에서는 부가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듣지 못하는 장애물로 표현되어있다. 더 나아가 누가복음에서는 복음이 세상적인 질서의 완전한 역전으로 이해되어 부자들이 집단적으로 예수의 적대자로 등장한다. 동시에 재산포기의 주제에 대한 다섯 문단(눅 5:1-11; 5:27-28; 14:25-35; 18:18-30; 21:1-4)은 예수를 가난하고 궁핍한자를 옹호하는 분으로 확신시키고 있다. 디모데전서 역시 부를 탐하지 말고 의지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사도 교부들은 신약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부 자체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지만 부는 하나님의 선물로 간주한다. 클레멘트는 부의 가치란 부가 어디 사용되느냐에 의해, 부를 가진 사람들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과 영을 이분하여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물질인 재물도 악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재물도 선하다는 것이다. 다만 그 재물을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으로 알고 선하게 사용하라고 한다. 즉 재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쓰라는 것이다. 3장에서는 부와 재물에 관한 신구약 성경의 기본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고린도전서 9장 11-18절에 나타난 재물관을 살펴보았다. 로마의 지리적·정치적으로 요충지에 해당하고 상당히 부유한 도시였던 고린도에 바울이 어떻게 교회를 세웠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는 손수 천막 만드는 일에 종사하면서 복음을 증거 했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신학적인 오류가 있었는데,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신분계층에 따른 이상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사람들이 서로 잘 어울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울의 사도권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고린도전서 9장은 우상제물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8장과 10장 사이에 의도적으로 삽입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고린도전서 9장 11-18절 사이의 구절의 내용은 복음의 증거와 교회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사도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곧 고린도전서 8장에서 언급한 신앙공동체 안에서의 사랑과 자유를 직접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4장에서는 바울의 복음사역에 나타난 자비량 선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일반적인 견해로 슈라게(Wolfgang Schrage)와 ?(Ronald F. Hock)의 주장을 알아보았고 바울의 생애와 자비량 선교에 대하여 조사한 다음, 그의 자비량 선교에 나타난 재물관을 다루었다. 첫째, 노동에 대한 바울의 세계관은 부분적으로 사회계급에 의존한다. 그는 각자가 부름을 받은 곳에서 열심히 일하되 귀족계급에게 노동을 요청하거나 공격하지는 않았다. 둘째로 바울은 유대교적 영향에 의거하여 노동은 하나님에 의해서 맡겨진 임무로 여겨 일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을 보인다. 물론 동시에 부분적으로 생업에서 이루어지는 근로를 수고스럽고 노예적이며 비천한 것으로 생각하는 측면도 있으나 종말론적인 소망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일과 직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셋째, 바울은 자신의 노동을 형제사랑(살전 4:9 이하)으로 여긴다. 사랑이 노동을 위한 동기(엡 4:28)가 되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작업장은 토론을 위한 중요한 사회적 환경을 제공해준다. 넷째, 바울은 토라의 연구를 생업의 실천과 결부시킨 랍비적 이상을 계승했다. 바울의 천막 짓기는 그의 생의 주변이 아니라 실제로 그 중심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장인들의 경험 중 많은 것을 체득하였으며, 작업장 내에서 선교의 대상들을 지적으로 자족과 자유의 이념을 구현시킨 자로 만들었다. 작업장은 곧 전도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다섯째, 바울은 소유라는 것은 조건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재물은 임시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바울은 재산의 소유에 관해서 예수가 말한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소유를 근본적으로 포기하라기보다는 내부적으로는 초연하고 외부적으로는 자급하라고 주장한다. 여섯째, 바울은 세속적인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나누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회복지적인 특징, 즉 경제적인 면의 실제적 평등을 주장한 말이다. 그는 물질적 부는 사랑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라고 한다. 나눔의 1차적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가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을 갖는 것이다. 제한이 없는 사랑의 법칙을 근거로 믿지 않는 자들의 혜택을 위한 사회적 지지는 아닌 것이다. 일곱째, 그리스도는 그의 부를 그를 의지하는 자에게 주신다(롬 10:12). 한마디로 바울의 재물관은 헌신과 사랑과 자족할 줄 아는 자유인을 바탕으로 펼쳐졌다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의 자비량 선교의 근거가 되는 기본적인 생각은 재물도 선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물을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바울은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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