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래전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어떤 물질인지에 관심을 갖고 탐구해왔다. 만물의 근원적 물질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자 ...
인류는 오래전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어떤 물질인지에 관심을 갖고 탐구해왔다. 만물의 근원적 물질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던 시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한 인류 공통의 인식이다. 대표적으로 동양의 ‘오행(五行)사상’과 서양의 ‘4원소론’은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4원소론은 특히 오랜 시간동안 많은 학자들에 의해 전승되고 발전되며 연구되어 온 이론으로 의의를 갖는다. 물, 불, 공기, 흙이 만물의 기본 요소이며 만물은 이 네 종류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내용의 4원소론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가 처음 주창한 것으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심화되었고, 과학적 진실로서 가치를 잃어버린 현대에는 프랑스의 과학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등에 의해 문화적으로 고찰되었다. 이처럼 4원소론이 과거를 넘어 현대까지 그 의미를 갖고 있는 이유는 문화적, 생태학적 관점으로 재해석되어왔기 때문이며, 그 바탕에는 4원소론이 세계를 이해하고자했던 인식의 틀로서 오랫동안 인류의 머릿속에 각인되어온 관념이라는 사실이 깔려있다.
4원소론의 의미는 과거의 자연철학적 개념과 근대 이후의 문화적 개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전통적으로 4원소는 근원적 물질로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의 궁극적인 원인이자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을 갖고 있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4원소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바슐라르는 4원소의 물질성에 주목했는데, 인간의 상상력을 근본적으로 물질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물, 불, 공기, 흙으로 분류하였다. 그는 자연의 성격을 대표하는 4원소가 고유한 물질적 특징을 지니며, 이 자연 요소들이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속성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고 보았다.
이러한 4원소론의 의미와 맥락을 본 연구자는 일상의 자연현상을 통해 접근하였다. 물, 불, 공기, 흙은 인간의 삶과 아주 가까운 존재로 4원소와 관련된 자연현상을 우리는 일상에서 빈번하게 경험하며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 또한 4원소론은 인간 역시 자연의 한 요소로 보고, 물질세계뿐만 아니라 정신적 세계 역시 4원소에 기원한다는 관점을 가진다. 이러한 점에서 4원소와 관련된 일상의 자연현상을 통한 근원적, 물질적 이미지가 인간의 정신적 활동인 커뮤니케이션과 연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본 연구에서는 4원소론을 시각적 모티브로 활용하여 실험 타이포그래피의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언어적 정보 전달을 위한 표현 양식인 타이포그래피는 시대의 흐름과 매체의 다양화에 따라 그 의미와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현대의 타이포그래피는 문자라는 수단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언어적 기능에서 나아가, 문자의 조형적 기능을 통해 시각적으로 더욱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루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현대적 의미의 타이포그래피에 ‘실험’이라는 단어가 더해진 ‘실험 타이포그래피’는 한층 더 대담하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타이포그래피의 실험 진영에서는 흥미로운 시도들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양하고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디자인이 기능과 조형의 조화로움에 그치는 것이 아닌 사용자에게 차별화된 감성과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추세에, 창조적이고 감각적인 시각 표현을 더한 실험 타이포그래피 연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언어적 기능을 통한 의미 전달에 창조적 시각 표현이 더해진 실험 타이포그래피의 방법을 통하여, 4원소론이 내포하고 있는 근원적인 힘과 물질적 상상력을 시각화하고자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4원소와 관련된 자연현상을 분석하고 시각적으로 재구성하여, 물, 불, 공기, 흙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물질적 이미지와 4원소 자체의 근원적 심상을 표현한다. 자연현상은 시간적, 연속적 시퀀스를 포함하므로 이를 이용해 새로운 시각 표현을 실험하고, 각각의 감성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텍스트와 매체에 적용함으로써 실험 타이포그래피의 표현 개발 및 가능성을 연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