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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이후 조선시대 對日인식의 형성경로 - 반일감정의 단초를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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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중기까지의 ‘일본=이적(夷狄)=오랑캐’라는 화이론(華夷論)적 인식과 달리 임란을 기점으로 한 17세기 이후에는 ‘일본=원수’라는 적대적 ...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중기까지의 ‘일본=이적(夷狄)=오랑캐’라는 화이론(華夷論)적 인식과 달리 임란을 기점으로 한 17세기 이후에는 ‘일본=원수’라는 적대적 대일인식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러한 적대인식은 임란의 기억과 비례하여 한일병합을 전후한 20세기 초까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가 있다. 그만큼 조선시대 적대적 대일인식은 임란의 기억과 밀접하게 연동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조선시대 적대적 대일인식 형성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하나의 요소로서 임란의 기억과 이순신(李舜臣)의 상관관계에 대해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임란과 이순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임란에 대한 기억은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유지․계승되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임란이라는 기억의 구조 속에 이순신의 존재가 가지는 영향과 비중이 막중하다면, 이는 ‘임란 기억=이순신에 대한 기억=적대적 대일인식 형성’이라는 구도가 형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 이순신에 대한 기억의 실태나 인식․평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논의가 진행되어 왔으나, 이순신과 적대적 대일인식의 상관성에 주목한 논문은 전무에 가깝다. 본고에서는 기존 연구에서 충분히 언급된 적이 없는 사료를 중심으로 주로 이순신 사후인 17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이순신이 어떻게 평가되고 기억되고 있었는지를 밝힘으로써 ‘임란 기억=적대적 대일인식’이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형성경로 중에 이순신의 존재가 가지고 있었던 의미에 대해서 검토했다.
      검토 결과, 이순신의 인망은 이미 사망을 전후한 시점에서부터 조야를 망라하는 보편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 후대에 전승된 이순신에 대한 기억은 이런 역사적 평가와 기억에 근거한 것이었으며, 이는 이순신 사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순신은 조정 관계자들에게 군사문제를 논단하는 경우에 최고의 전범으로 존중되고 있었고, 이 때문에 이순신 기억도 망각하래야 망각할 수 없는 사회적 기억으로 고착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이순신의 인망이 임란 기억․대일 군사대비책과 연동되는 구조 속에서 때로는 전범이나 제갈공명에 비견되는 장수로 비유되며 최고의 칭송을 획득하고 있었던 사실은 조선시대 이순신 기억의 ‘불멸성’을 상징적으로 반증하는 기록이라 할 것이다.
      결국, ‘이순신에 대한 기억=임란의 기억=적대적 대일인식’이라는 구도는 조선시대 일본인식의 주요한 구성요소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적대적 대일인식이 300년 넘게 지속되었던 경로 중에 이순신의 존재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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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最近の研究結果によると、高麗時代や朝鮮時代の中期までの「日本=夷狄」という華夷論的な認識とは異なり、壬辰倭亂を起点とした17世紀の以後には「日本=不俱戴天之讎」...

      最近の研究結果によると、高麗時代や朝鮮時代の中期までの「日本=夷狄」という華夷論的な認識とは異なり、壬辰倭亂を起点とした17世紀の以後には「日本=不俱戴天之讎」という敵対的な対日認識に転換されており、このような敵対認識は壬辰倭亂に対する記憶と比例しながら日韓併合の直前まで長期間にわたって続いていた事実が指摘されたことがある。朝鮮時代の敵対的な対日認識は、壬辰倭亂に対する記憶と密接に連動していた実状がうかがわれる。本稿は、このような問題意識に基づいて、朝鮮時代の敵対的な対日認識を形成する一つの要素として、壬辰倭亂と李舜臣に対する記憶のもつ相関関係について究明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
      壬辰倭亂と李舜臣は不可分の関係にあり、したがって壬辰倭亂に対する記憶は、李舜臣という人物を通じても維持され、継承されていたものと見られるからである。従来の研究によると、朝鮮時代の李舜臣に対する記憶の実態や認識、評価については、多様な角度から論議がなされてきたものの、李舜臣と敵対的な対日認識の相関性に注目した論文はほとんど見当たらない。本稿では、先行研究ではあまり触れられていない資料を中心として、おもに李舜臣の死後、すなわち17世紀から20世紀初期に至るまで李舜臣がどのように評価され、記憶されていたのかを明らかにすることによって、「壬辰倭亂の記憶=敵対的な対日認識」が長期間にわたって続かざるを得なかった形成経路のなかに李舜臣がもっていた意味合いについて検討してみた。
      検討の結果、李舜臣の人望は、すでにかれの死亡を前後とした時点から、朝野を問わぬ普遍的な評価を得ていたことがわかった。後代に伝えられた李舜臣に対する記憶は、このような歴史的な評価と記憶に基づくものであり、これが、李舜臣の死後にも長らく相変わらず続いていたのである。特に、李舜臣は、朝鮮王朝の関係者には、軍事問題を論ずる際に、最高の典範として尊重されており、これがために、李舜臣に対する記憶も忘れ去られない社会的記憶として固く根を張っていた実状がうかがわれる。なお、李舜臣が壬辰倭亂の記憶や対日軍事対策と連動する構図のなかで、ときには典範として、ときには中國の諸葛孔明に匹敵する存在としてたとえられるほどの、最高の賛辞を得ていた事実は、朝鮮時代における李舜臣に対する記憶の「不滅性」を象徴的に反証する記録と言えよう。結局のどころ、「李舜臣に対する記憶=壬辰倭亂の記憶=敵対的な対日認識」という構図は、朝鮮時代の日本認識を構成する主な要素として作用したものと思われ、敵対的な対日認識が三百年以上長らく続いた経路のなかに李舜臣の存在は、重要な役割を果たす結果を齎したと言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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