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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재발견: 공공성(the public)과 공동성(the common)의 긴장과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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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G36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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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차년도에는 고·중세 시기의 정부의 형성과정을, 그리고 2차년도에는 근대의 정부 확립과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바람직한 정부�...

      본 연구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차년도에는 고·중세 시기의 정부의 형성과정을, 그리고 2차년도에는 근대의 정부 확립과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바람직한 정부의 상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먼저 1차년도에는 고대와 중세 시기의 동서양 정부의 역사 속에서 대표적인 국가의 정부형성과 그 발전 경향을 공공성과 공동성의 관점에서 면밀히 분석하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에서 보듯이 정부의 특성 중 공동성(the common)의 측면은 시민의 정치참여와 정부운영에의 참여로 특징지어진다. 혼합정에 근거한 공화정과 제정(帝政)시기의 로마는 공동성을 대변하는 구성원들의 참여 속에서 공공성(the public)의 관념이 형성된 반면, 영토확장과 중앙집권화를 지향했던 제정시기에는 공공성이 공동성을 압도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리고 개별국가들의 난립과 중앙권력이 취약했던 신성로마독일제국의 경우,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제2제국으로 통일되기까지 개별 정부들은 공공성이 지배했고, 제국 차원에서는 공공성보다 공동성이 지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의 정부구조는 공동성을 바탕으로 하되, 궁극적으로 공공성의 영역에서는 모든 자가 참여하기보다는 소수의 자격이 있는 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정부시스템이었다. 반면에 중국의 진(秦)은 민의를 억압하고 권력의 집중과 상의하달을 통한 정치권력의 정당성 확보에 주력함으로써, 공공성의 영역을 최대한 확장하는 정부형태를 지녔다. 진을 대체하여 등장한 한(漢)왕조는 민의의 반영을 통해 공동성의 영역을 보장하는 듯 했으나, 결국 진률(秦律)을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역시 공공성 중심의 정부형태를 지향하였다. ‘궁중 안의 토론장’ 활성화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조선의 세종시대 정부는 재조언론이라 불리는 언론삼사의 발언과 상소 그리고 재야 유생들의 상소와 성균관 등과 함께 공공성이 지배하는 왕조시대 정부 속에서의 공동성을 표상하는 측면을 드러내보이고 있다.
      한편 2차년도에는 근대의 정부들을 다시금 공공성과 공동성의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영국의 경우, 공공성과 공동성의 문제는 직접적인 ‘참여’의 문제라기보다는 ‘법에 의한 지배’를 의미했다. 프랑스 절대왕정시기에는 명확한 공·사의 구분 속에서 시민들은 개인적인 것, 즉 사적인 것만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여기고, 반면에 공공성인 정치의 영역은 군주가 독점하게 되었다. 1848년의 혁명시기와 제2제국 당시까지의 독일은 공공성이 압도적인 절대군주제와 자유시민들에 의한 시민의 공동성이 갈등을 빚으면서 국민국가의 기틀을 닦아 나갔다. 미국의 경우 정부의 형태가 연방제로 정착된 것은 건국 당시 개인의 개별성과 시민의 공동성을 강조했던 반연방주의자들과, 주 정부 차원의 다양성을 하나의 통일성(unity)으로 엮어내 미국이라는 국가의 집단성(collectivity)을 확보함으로써 공공성의 의미를 강조했던 연방주의자들의 투쟁의 결과이다. 중국의 경우, 명(明) 조정은 황제의 일인지배라는 공공성을 강조하는 기존의 틀을 답습하고 있었고, 청(淸) 정부는 대부분의 정부체제를 황제독재에 의한 지배체제였던 명나라를 답습하였다. 그러나 명말청초 지식인들의 도의(道義)에 대한 강조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사회적 합의 혹은 민의(民意)의 공론(共論)의 강조는 황제 독재권력의 강화가 역설적으로 공공성(公)보다는 공동성(共)의 강화를 불러오게 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대한제국’으로 개칭하고 스스로 황제에 취임한 고종의 조선은 당시 헌법인 ‘대한국국제’에서 황제의 무한한 군권(君權)을 인정함으로써, 정부의 공공성의 측면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대한국국제와는 달리 현실적으로는 독립신문, 독립협회 등의 공론화 노력과 ‘만민공동회’ 등의 활동에 의해 공동성이 그 힘을 강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공공성과 공동성을 중심으로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각국 정부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미래의 바람직한 정부의 형태를 모색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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