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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조 군주의 불교신앙과 그 정치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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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서술된다. 1) 조선시대에 군주들의 불교 신앙이 어떤 형태로 유지되었는가를 보기 위하여 연구의 순서를 시대순서로 배열하였다. 우선 조선건국기, 조선...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서술된다.
      1) 조선시대에 군주들의 불교 신앙이 어떤 형태로 유지되었는가를 보기 위하여 연구의 순서를 시대순서로 배열하였다. 우선 조선건국기, 조선전기를 보면, 고려의 유습이 있어서 불교가 여전히 다수의 신앙을 존속했고 군주들 역시 불교 신앙을 유지했다. 태조, 세종, 세조가 그런 사례다. 특히 세종의 경우는 내불당을 궁궐안에 두면서 불교 신앙을 유지하면서 유학자 관료들과 갈등을 관계에 처하기도 했다. 세조는 불경언해 작업을 주도하였다. 한편 유학자 관료들은 군주의 불교신앙을 비판하면서 유교적 제도를 만들어갔다. 이 시기에 있어서 군주의 불교 신앙 문제에 대해 군주와 관료가 극단적인 대결의 차원으로 그 갈등이 심화되지 않았던 것은 군주가 자신의 신앙과 국가 정책을 구분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군주는 자신의 신앙을 정책에 개입시키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경향이 유교 국가 조선에서 군주들이 지속적으로 유지한 태도였다. 이 논문에서는 특히 이러한 군주의 태도의 정치적 의미를 집중적으로 조사한다. 시기적으로는 조선건국기, 조선전기를 연구자는 유교와 불교, 무교의 종교적 혼합시대로 규정하고 이 시기의 군주 정치를 불교와의 관련성에서 살펴본다.
      2) 조선 중기는 유교의 정치제도 정비되고 유교적 가치관이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군주는 과거의 전통을 유지하려고 했고 강경한 유학자 관료들은 자신들이 규정한 이단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또한 일부 군주는 이런 유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불교에 대한 억압 정책을 유지했으니 그 불교의 존재를 위협하는 차원까지 진행하지는 않았다. 이런 시기의 군주의 입장과 태도에 대해서는 군주의 억압과 묵인, 동원의 불교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한편 불교에서도 유학자 관료들과의 충돌을 피하고 나름대로 생존을 모색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부과하는 각종의 의무와 부담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며 전쟁의 시기에는 승병의 형태로 참전하였다.
      3) 조선 후기에 있어서는 이러한 유교와 불교의 갈등 관계가 실질적으로 정리된 상황이었다. 유학자들도 불교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공격하지 않았고 불교계에서도 유학자들과 대결을 원하지 않았고 국가의 정책에 순응했다. 그래서 국가적으로도 불교에 대한 억압은 심하지 않았다.이런 시기에 있어서 군주들은 소극적인 수준에서 또는 은밀하게 불교 경전의 간행을 후원했고, 사찰을 건립하면서 자신와 왕실을 위한 신앙 활동을 유지했다.
      이렇게 하면서 조선의 군주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불교 신앙에 의지했고, 그러한 종교적 우호감을 바탕으로 국가적인 필요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불교계를 동원했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일반 백성의 신앙의 형태로 존속하는 불교에 대해 방임함으로서 정치권의 개입 없이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종교적 갈등이 충족되도록 했다. 이렇게 온건하고 현실적인 군주의 종교 정책 속에서 조선에서 종교가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4)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연구자는 1) 조선 시대 군주의 현실적이고 유연한 종교인식, 2) 군주가 인식한 불교의 정치적 유용성 측면, 3) 권력의 정당성의 원천으로서의 유교와 동시에 불교를 함께 이용하였던 특징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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