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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소론계 국학연구와 중화주의의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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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중화문명을 배우고 이에 우리 문화 수준을 맞추고자 한 시도들은 우리 역사 속에서 자주 보이는 통시대적 현상이었다. 당대 사람들에게 중화문명은 보편문명의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이러...

      중화문명을 배우고 이에 우리 문화 수준을 맞추고자 한 시도들은 우리 역사 속에서 자주 보이는 통시대적 현상이었다. 당대 사람들에게 중화문명은 보편문명의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중화문명을 배우고자 하는 노력들을 본 연구과제에서는 ‘중화주의’로 명명하고자 한다. 역사 속에서 중화주의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었다. 중국 자체가 시대적으로 다양하였고, 그 해석의 주체 또한 다양하였기에 이러한 현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명청교체 이후 실존적 ‘중화’가 사라진 동아시아에서 이점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본 연구는 조선후기 역사 속에서 중화주의가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를 소론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후 그들의 國學 연구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이 해석한 중화주의 세계관과 결합할 수 있었는지를 추적해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조선후기 국학연구가 갖는 다양한 사상적 층위들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소론은 노론계의 지나친 주자학 중심의 중화주의에 반대하였고, 기존 漢黨 이래 서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古學 숭상, 국가 주도의 경세학, 조선의 고유한 풍속을 존중하는 의식 등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그들의 중화주의 해석이 노론의 그것과 차이가 날 것임은 명확한 것이었다. 실제 소론의 중화주의는 國境 문제, 故土 회복의식, 북방사 관심 등 ‘부국강병적’ 의미로 상당 부분 연결되고 있었고, 당대 중화보다는 고대 중화의 순정한 문화를 추구하려는 경향성이 강했다. 이것은 현실에서 고대사 연구와 訓民正音 연구로 나타났다. 그들의 고대사 중심의 국사연구는 노론과는 다른 중화주의 해석체계에서 말미암았다. 주자학에 입각한 중화주의보다는 古學과 秦漢古文을 숭상하는 중화주의 관념은 조선의 고대문화에 관심 갖게끔 하였다. 그들은 殷나라의 遺風이 면면히 남아있는 조선의 고대 문화를 현양하고 이를 종횡으로 확장하면서 현 조선 문화의 정통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는 고대사의 강역이었던 북방지역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함께 국경 문제와 국력에 대한 사유로도 이어졌다. 이는 ‘국가’ 중심적인 소론계 경세의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17세기 서울․경기지역의 서인과 이 지역 小北系 학풍을 융합하면서 실용적이고 ‘국가’ 중심적 사유를 계승 발전시켰던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그들이 북방지역과 강역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東音 인식과 훈민정음 연구도 소론계의 중화주의 해석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오랑캐의 침입을 받아 중국 古音을 잃어버린 중국의 현재 한자음과 달리 우리 한자음 속에 중국 고대의 正音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인식이 유몽인 이래 南九萬, 李匡師, 柳得恭, 李種徽 등 소론계 지식인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는 고대사 인식과 마찬가지로 중국 고대를 중화주의의 전형으로 파악하는 소론계 중화주의와 깊은 관련성을 갖는 것이었다. 그들은 중화주의를 빌어 와 현재 조선의 문화를 현양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자국 언어를 긍정하고자 하였다. 소론계의 조선의 한자음[東音]이 중국의 고음을 상당 부분 간직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이를 정확히 표현해낼 수 있는 훈민정음 연구로 그 관심을 이동케 하였다. 그들은 훈민정음을 단순히 표음기호가 아닌 한자와 대등한 위상의 언어로까지 인식해가고 있었다. 소론계의 국사와 국어 연구는 소론계 고유의 중화주의 해석에서 말미암았지만 결국 중화주의를 넘어서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 시작은 그들이 해석한 중화주의를 완성하고 이를 심화시켜나가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중화를 넘어서 민족적 주체를 발견하는 작업이 그 내면에서 이루어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국학연구는 중화주의의 허울이 벗겨지면 그대로 자국 문화의 존중이 되어 버리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민족주의적 속성을 갖는 것이었다. 소론계 국학연구를 동아시아 사회에서 일어난 국학연구 경향과 비교해보면 그 위상과 의의가 좀더 뚜렷해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일본의 國學 운동은 본 연구의 주요 비교 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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