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초기 한국영화사에서 ‘부산’이 지니는 의의 = The significance of “Busan” in early Korean cinema history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7844149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은 1920년대 중반까지의 ‘초기 한국영화사’에 있어 ‘부산’이 지니는 의의를 고찰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본고에서는 1900~1910년대의 활동사진 상영 및 촬영 양상, 그리고 1924년 설립...

      본 논문은 1920년대 중반까지의 ‘초기 한국영화사’에 있어 ‘부산’이 지니는 의의를 고찰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본고에서는 1900~1910년대의 활동사진 상영 및 촬영 양상, 그리고 1924년 설립된 조선키네마주식회사와 이곳에서의 영화 제작 활동이라는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관련 내용들을 둘러싼 재검토 및 해석의 작업을 시도하였다.
      먼저, 개항 이후 일본 거류민 문화가 형성된 부산에서는 인천, 목포, 마산 등 여타 지역들의 경우처럼 일본식 극장이 들어서며 활동사진의 상영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몇몇 기록영화의 제작 과정에서 로케이션 촬영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현전하는 당대의 문헌 자료들을 참조하건대, 전자와 관련해서는 늦어도 1903년 시점에 일본식 극장인 행좌(幸座)와 송정좌(松井座)가 운영 중에 있었고 1910년에는 부산 이사청령으로 흥행취체규칙이 공포되었으며 1914년부터는 욱관(旭館)을 시작으로 활동사진 상설관이 자리를 잡게 되었음이 확인된다. 또한 후자에 대해서는, 1908년 통감부의 의뢰로 요코타상회(横田商會)가 <한국관(韓国觀)>(별제:<한국일주(韓国一週)>)을 만들면서 부산항이 카메라에 담긴 바 있었고 1916년 미일 공동제작으로 기획·제작된 장편 기록영화 <해뜨는 나라(日出の國)>(총 12편) 속에 <부산 경성의 전경(釜山, 京城の全景)>(9, 10편)이 포함되었으며 1920년에는 김도산 일행에 의해 <부산 대구 전경(釜山 大邱 全景)>과 <부산 범어사(釜山 梵魚寺)>가 제작·상영되기도 하였음이 확인된다.
      다음으로, 그동안의 한국영화사에서는 1924년 부산에 세워진 조선키네마주식회사(朝鮮キネマ株式會社)가 ‘최초의 영화 제작사’로 인정을 받아 왔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1920년에는 조선활동사진주식회사(朝鮮活動寫眞株式會社)가, 1923년에는 동아문화협회(東亞文化協會)가 경성에 세워졌고 1920년대 초부터 조선총독부, 경성일보사 등의 통치 기구 내에도 활동사진반이 조직되어 영화 제작 활동을 펼치고 있었던 바, 조선키네마주식회사의 영화사적 의미에 대한 재고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한편으로, 조선키네마주식회사의 사적(史的) 가치는 그 활동의 중심이 영화 제작에 두어졌다는 점과 더불어, 특히 총 4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동안 윤백남, 안종화, 이경손, 나운규, 주인규, 남궁운 등 ‘한국인’의 역할이 컸다는 점에서 찾을 만하다. 즉, 이들 영화는 제작 및 배급, 상영 과정에서 동시기의 식민지적 특수성을 노출시키면서도, 192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인의 영화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지점에서 영화사적 의미망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thesis is the result of a study examining the significance of “Busan” in “early Korean cinema history” until the mid-1920s. In this paper, I tried to review and interpret the related contents by dividing it into two main aspects: screenin...

      This thesis is the result of a study examining the significance of “Busan” in “early Korean cinema history” until the mid-1920s. In this paper, I tried to review and interpret the related contents by dividing it into two main aspects: screening and filming of Motion pictures from the 1900s to 1910s, and the meaning of the establishment of Chosun Kinema Co., Ltd. in 1924 and film production activities there.
      In Busan, where Japanese inhabitant culture was formed after the opening of the port, Japanese-style theaters were built and screening of motion pictures were carried out as in Incheon, Mokpo, Masan and other regions. In addition, during the production of some documentary films, Busan was used as a filming location. We can know these facts through the current literature sources.
      Meanwhile, in Korean cinema history, Chosun Kinema Co., Ltd. (Joseonkinemajusighoesa) established in Busan in 1924, has been recognized as the “first film production company”. However, in the early 1920s, several film production companies and agencies were established in Gyeongseong(Seoul), so Therefore, it is required to reconsider the meaning of cinema history about Chosun Kinema Co., Ltd. On the one hand, in the process of making four movies at Chosun Kinema Co., Ltd., the role of “Koreans” played a large role, and they led film activities in colonial Joseon after the mid-1920s. At this point, we can see the cinema history value of Chosun Kinema Co., Ltd.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안종화, "한국영화측면비사" 춘추각 1962

      2 이영일, "한국영화주조사" 영화진흥공사 1988

      3 이영일, "한국영화전사" 소도 2004

      4 함충범, "한국영화의 출발 기점에 관한 재고찰 : 영화사에서의 ‘1919년론’을 중심으로" 아세아문제연구원 62 (62): 143-174, 2019

      5 복환모, "한국영화사 초기에 있어서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의 영화이용에 관한 연구" 한국영화학회 (28) : 251-276, 2006

      6 이효인, "한국근대영화사-1892년에서 1945년까지-" 돌베개 2019

      7 김려실, "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 삼인 2006

      8 문관규, "조선키네마 주식회사의 설립 배경과 몇 가지 논쟁점에 대한 고찰" 한국영화학회 (58) : 153-176, 2013

      9 한상언, "조선영화의 탄생" 박이정 2018

      10 임다함, "잡지 『조선공론』 영화란의 탄생과 재조선 일본인 영화문화의 태동" 한국비교문학회 (65) : 323-353, 2015

      1 안종화, "한국영화측면비사" 춘추각 1962

      2 이영일, "한국영화주조사" 영화진흥공사 1988

      3 이영일, "한국영화전사" 소도 2004

      4 함충범, "한국영화의 출발 기점에 관한 재고찰 : 영화사에서의 ‘1919년론’을 중심으로" 아세아문제연구원 62 (62): 143-174, 2019

      5 복환모, "한국영화사 초기에 있어서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의 영화이용에 관한 연구" 한국영화학회 (28) : 251-276, 2006

      6 이효인, "한국근대영화사-1892년에서 1945년까지-" 돌베개 2019

      7 김려실, "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 삼인 2006

      8 문관규, "조선키네마 주식회사의 설립 배경과 몇 가지 논쟁점에 대한 고찰" 한국영화학회 (58) : 153-176, 2013

      9 한상언, "조선영화의 탄생" 박이정 2018

      10 임다함, "잡지 『조선공론』 영화란의 탄생과 재조선 일본인 영화문화의 태동" 한국비교문학회 (65) : 323-353, 2015

      11 조희문, "일제강점기 시대 '조선키네마'설립과 영화제작 활동에 관한 연구" 한국영화학회 (29) : 321-346, 2006

      12 김종원, "우리 영화 100년" 현암사 2001

      13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

      14 김남석, "영화상설관 ‘행관(幸館)’의 신축과 운영으로 살펴 본 ‘부산 극장가(劇場街)’의 변전과 그 의미 연구"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38) : 325-362, 2019

      15 "영상물등급위원회 홈페이지"

      16 김남석, "부산의 지역 극장 소화관(昭和館)의 역사적 전개에 관한 연구- 1931년 설립부터 1968년 폐업까지 운영 상황을 중심으로 -"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40) : 403-440, 2020

      17 김남석, "부산의 지역 극장 상생관(相生舘)의 역사적 전개와 운영상 특질에 관한 연구"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36) : 167-212, 2018

      18 김남석, "부산의 극장 부산좌(釜山座) 연구- 1907년에서 1930년 1차 재건 시점까지 -"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35) : 303-349, 2018

      19 정봉석, "부산영화사" 14 : 1997

      20 홍영철, "부산근대영화사-영화상영자료(1915~1944)-" 산지니 2009

      21 김남석, "부산 초량의 ‘중앙극장-대생좌’에 관한 연구" 한국어문학연구소 (35) : 103-125, 2019

      22 "동아일보"

      23 홍선영, "경성의 일본인 극장 변천사 ―식민지도시의 문화와 ‘극장’―" 한국일본문화학회 (43) : 281-306, 2009

      24 "경성대학교 홈페이지"

      25 田中純一郎, "日本映画史発掘" 冬樹社 1980

      26 佐藤忠男, "日本映画史 第1券" 岩波書店 1995

      27 "キネマ旬報"

      28 水野直樹, "<암광=신의 장(粧)>(1925년)의 영화사적 의미" 한국영화학회 (83) : 5-41, 2020

      29 김정민, "1920년대 초반 조선총독부의 활동사진에 대한 인식과 활용에 대하여 - 영화의 적극적 이용 정책의 성립과정을 중심으로 -" 인문과학연구소 27 : 145-172, 2009

      30 함충범, "1920년대 중반 식민지 조선에서의 일본인 영화 배우에 관한 연구" 동아연구소 34 (34): 67-101, 2015

      31 이지현, "1920년대 부산과 경성 극장가의 식민성 연구" 한국일어일문학회 105 (105): 211-228, 2018

      32 김남석, "1910년대 부산의 지역 극장 변천좌(辨天座) 연구 :변천좌의 설립과 무대연극장으로서의 활용 사례를 중심으로" 전통문화연구소 (23) : 47-73, 2019

      33 한상언, "1910년대 경성의 일본영화인 연구" 한국영화학회 (40) : 239-262, 2009

      34 Hoshino Yuko, "'경성인'의 형성과 근대 영화산업 전개의 상호 연관성 연구 :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에 나타난 영화 담론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2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2 0.22 0.3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 0 1.444 0.25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