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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초기 노비 상속과 균분의 실상 = Real Aspects of Succession to and Equal Division of Servants in the Early Chos?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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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8254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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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연구는 균분 상속이 철저하게 실시되었던 조선 초기 노비 분재의 방식과 실상을 분석한 것이다. 균분 상속은 제사나 결혼의 풍습과 맞물린 조선의 독특한 사회적 관행이었다. 현존하는 15...

      이 연구는 균분 상속이 철저하게 실시되었던 조선 초기 노비 분재의 방식과 실상을 분석한 것이다. 균분 상속은 제사나 결혼의 풍습과 맞물린 조선의 독특한 사회적 관행이었다. 현존하는 15세기의 분재기에서도 적극적으로 균분을 추구하려고 했던 당시인들의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인 노비를 기계적으로 동일하게 나눈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였다.
      분재기 상에서 자녀들이 상속받은 노비 수는 균분이라는 개념에 막연하게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 실제로 동질적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몇 가지 변수들을 제외하면 수적 균분에 접근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나는 부분은 노비의 연령을 고려한 질적 균분의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녀들이 상속받은 노비의 연령 분포를 구체적으로 비교해 보면 더 철저한 균분이 실현될 여지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균분이란 의식은 물론 그 실현 의지를 제약했던 다양한 조건들이 동시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노비의 연령 분포가 고르지 않아 자녀들이 상속받은 노비의 연령대에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었다. 이러한 불균형은 노비 가족을 완전하게 해체하여 균분을 실현하지 않고 그들의 결합 상속을 일부 용인함으로써 발생하기도 하였다.
      또한 상속 과정에서 재주인 부모의 의지가 작용할 수 있었고, 일부 분재기에서는 자녀들 간에 합의에 의한 선택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상속 노비의 성비나 거주지의 불균형이 그 한 예이다. 이는 분재 방식이 ‘제비뽑기’와 같은 기계적인 균분만을 추구하지는 않았음을 보여 준다. 균분 의식은 철저하였고 이를 실현하려는 노력도 뒤따랐지만 균분이라는 전제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질적 균분을 일정 부분 제약했던 다양한 조건들이 존재하였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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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analyzed the methods and real aspects of servant equal-division in the early Chos?n dynasty in which equal succession was thoroughly conducted. Equal division succession was a peculiar social practice of the Chos?n dynasty which was lin...

      This study analyzed the methods and real aspects of servant equal-division in the early Chos?n dynasty in which equal succession was thoroughly conducted. Equal division succession was a peculiar social practice of the Chos?n dynasty which was linked to ancestral rites and a marriage. Reviewing the heritage document in the 15th century, you will also find the will of the then current people who positively tried to pursue equal division. However, it was basically impossible to mechanically and equally divide servants which are living and moving creatures.
      The number of servants inherited to children was a level, vaguely similar with but actually not equal to the concept of equal division. Of course, except for several variables, it can be understood that the servants are equally divided in number and unavoidably a few differences occurred in the process of qualitative equal division in consideration of the age of servants. But, concretely comparing age distribution of servants inherited to children shows that there was a little room for realization of more thorough equal division.
      Here, we can know that there existed consciousness of equal division and various conditions that restricted such will for realization. Above all, the age distribution of servants was not equal, so that imbalance could be brought in a range of age. Such imbalance used to also occur not by realizing equal division through complete dissolution of a servant family but by partly accepting their combination succession.
      Also, a possibility exists that the will of parents, an owner of servants, could apply to the process of inheritance, and some inheritance documents imply that a possibility of selection by agreement between children being performed. For example, the ratio of gender of inherited servants or imbalance of residential places seeming to have been highly intentional can be given. This shows that a method of dividing property did not pursue mechanical equal division such as ‘deciding by lot’. The consciousness of equal division was thorough and the efforts for realizing such consciousness was made, but it is not deniable that various conditions existed that partly restricted qualitative equal division within the range in which a premise of equal division was not dama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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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 초록〉
      • 1. 머리말
      • 2. 노비 상속과 균분의 추구
      • 3. 질적 균분의 제약 조건
      • 4. 맺음말
      • 〈국문 초록〉
      • 1. 머리말
      • 2. 노비 상속과 균분의 추구
      • 3. 질적 균분의 제약 조건
      • 4. 맺음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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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마르티나 도이힐러,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 아카넷 2003

      2 안승준, "조선전기 재산상속문서의 典型 1452년의 李遇陽 分財記" 4 : 1998

      3 文叔子, "조선시대 재산상속과 가족" 경인문화사 2004

      4 노명호, "韓國古代中世古文書硏究(上)(下)"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5 창간호, "金務의 分財記 에 관한 硏究" 1991

      6 "載寧李氏 寧海派 家門의 分財記 分析" 1992

      7 "朝鮮時代 均分相續制에 관한 一硏究 그 變化要因의 歷史的 性格을 中心으로" 1983

      8 "朝鮮前期의 社會活動과 相續制度" 1991

      9 "朝鮮前期 均分意識과 '執籌'" 25 : 2004

      10 李鍾書, "朝鮮前期 '和會'의 語義와 均分의 실현방식 '執籌'" 110 : 2000

      1 마르티나 도이힐러,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 아카넷 2003

      2 안승준, "조선전기 재산상속문서의 典型 1452년의 李遇陽 分財記" 4 : 1998

      3 文叔子, "조선시대 재산상속과 가족" 경인문화사 2004

      4 노명호, "韓國古代中世古文書硏究(上)(下)"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5 창간호, "金務의 分財記 에 관한 硏究" 1991

      6 "載寧李氏 寧海派 家門의 分財記 分析" 1992

      7 "朝鮮時代 均分相續制에 관한 一硏究 그 變化要因의 歷史的 性格을 中心으로" 1983

      8 "朝鮮前期의 社會活動과 相續制度" 1991

      9 "朝鮮前期 均分意識과 '執籌'" 25 : 2004

      10 李鍾書, "朝鮮前期 '和會'의 語義와 均分의 실현방식 '執籌'" 110 : 2000

      11 "朝鮮 初期 奴婢相續과 贈與에 관한 一硏究" 1991

      12 "古文書를 통해 본 朝鮮前期 奴婢의 經濟的 性格" 1987

      13 이수건, "16세기 한국 고문서 연구" 아카넷 2004

      14 "1466년 寧海 英陽南氏家의 奴婢衿給立案 分析" 13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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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2-0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9-2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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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28 1.28 1.1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89 2.254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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