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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8세기 조선의 화폐 유통과 은 = The Circulation of Currency and Silver in Joseon Dynasty During 17-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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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7세기 동아시아 국제 관계의 재정립을 거치며 일본 은이 조선으로 본격 유입되었다. 일본 은은 조선과 중국 사이의 무역에서 국제 화폐로 사용되었고 국내 상거래에서도 화폐로 활용되었다...

      17세기 동아시아 국제 관계의 재정립을 거치며 일본 은이 조선으로 본격 유입되었다. 일본 은은 조선과 중국 사이의 무역에서 국제 화폐로 사용되었고 국내 상거래에서도 화폐로 활용되었다. 조선 내부에서는 지역과 계층에 따라 포목, 미곡, 동전, 은으로 구성된 다층적 화폐 시스템이 운영되었고, 이 가운데 동전과 은은 상품 화폐의 영역을 잠식하면서 상평통보의 주전으로 이어졌다. 상평통보의 전면적 주조와 보급은 다층적 화폐 구조를 동전 중심으로 일원화하려는 시도에 따른 것이었다. 동전이 중심 화폐로 부상하고 일본에서 은의 유입이 감소하면서 화폐로서 은의 기능은 점차 위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은 동전의 확산에 기여하였으며 동전의 가치를 규정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 하지만 은의 상대적 가치가 계속 상승하고 국내에서의 유통량이 감소하면서 동전의 가치를 은으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었다. 18세기 전반 일본 은의 유입 감소가 지속되면서 이를 보완한 것은 국내산 은이었다. 문제는 조선에서 중국으로 은의 유출이라는 원심력이 구심력보다 항상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조선 내부에서는 청나라에 대한 반감과 경제적 피해론을 명분으로 조선 은의 중국 유출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였다. 더욱이 은의 유출 파장이 동전의 부족 현상과도 연결되자 조선 왕조는 국내산 은의 유출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국내 고액 거래에서 은의 화폐 기능을 회복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대청 외교와 무역에서 은을 대체할 상품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국내산 은의 유출 규제는 실효를 거두기가 어려웠다. 또한 국가 공인의 규격화된 은화 발행 시도도 은의 유입과 생산 감소, 은의 지속적 유출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현실화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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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17th century, by reestablishment of international relations in East Asia, Japanese silver had been brought into Joseon. Japanese silver was used as international monetary between Joseon and China and also for domestic business transaction. Within J...

      In 17th century, by reestablishment of international relations in East Asia, Japanese silver had been brought into Joseon. Japanese silver was used as international monetary between Joseon and China and also for domestic business transaction. Within Joseon, multi-layered monetary system was operated by being composed of linen and cotton, rice, coin, silver differentiated by areas and classes. Among them, coin and silver encroached the area of money used for merchandise, which were led to the main monetary of Sangpyeong Tongbo. The creation and distribution of Sangpyeong Tongbo were due to the attempt of standardizing the monetary structure into coin. As coins rise as the major monetary and as the inflow of Japanese silver was decreased, the function of silver was also weakened. Even so, silver contributed to the distribution of coin and was also used as the standard for deciding the value of coin. However, as the relative value of silver was increased and amount of circulation was decreased, it had become meaningless to decide the value of coin by silver. During the first part of 18th century, as the inflow of Japanese silver was decreased, it was domestic silver that supplemented the lack of supply. The problem was that outflow of silver from Joseon to China. Within Joseon, the hostility and economic damage by Qing dynasty were spread in the country and most of the official opposed the outflow of silver from Joseon to China. Even more, when outflow of silver was led to the lack of coins, the Joseon dynasty strictly regulated the outflow of domestic silver and attempted to restore the function of silver as monetary means. But since it was difficult to find other products to replace silver for diplomacy and trade with Qing, the actual effect of regulating outflow of silver was minimal. In addition, the attempt of circulating nationally certified silver coins was not realized because of reduced production and inflow of silver, and concerns on consistent outflow of si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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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국사편찬위원회, "화폐와 경제 활동의 이중주" 두산동아 2006

      2 黑田明伸, "화폐시스템의 세계사 -‘비대칭성’을 읽는다" 논형 2005

      3 정수환, "조선후기 화폐유통과 경제생활" 경인문화사 2013

      4 원유한, "조선후기 화폐사" 혜안 2008

      5 유승주, "조선후기 중국과의 무역사" 경인문화사 2002

      6 유현재, "조선후기 鑄錢정책과 財政활용"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4

      7 이정수, "조선의 화폐와 화폐량" 경북대학교출판부 2006

      8 장수비, "조선시대 상평통보의 성분 조성과 미세조직을 통한 재료학적 특성 연구"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31 (31): 319-330, 2015

      9 이헌창, "조선시대 銀 유통과 소비문화" 명청사학회 (36) : 99-139, 2011

      10 강준식, "우리는 코레아의 광대였다" 웅진출판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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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강준식, "우리는 코레아의 광대였다" 웅진출판 1995

      11 권내현, "숙종대 지방통치론의 전개와 정책 운영" 한국역사연구회 25 : 1997

      12 이욱, "숙종대 상업정책의 추이와 성격" 한국역사연구회 25 : 1997

      13 Frank, Andre Gunder, "리오리엔트" 이산 2003

      14 田代和生, "近世日朝通交貿易史の硏究" 創文社 1981

      15 "訓局謄錄"

      16 "萬機要覽"

      17 "續大典"

      18 "燕巖集"

      19 "櫟翁遺稿"

      20 元裕漢, "李朝後期 淸錢의 輸入 流通에 대하여" 한국사학회 21 : 1969

      21 "朝鮮王朝實錄"

      22 宋賛植, "朝鮮後期 社會經濟史의 硏究" 一潮閣 1997

      23 "星湖僿說"

      24 "日省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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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度支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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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5-03-17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Korean Cultural Studies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6-18 학회명변경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Culture -> Research Institute of Korean Studies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10-18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민족문화연구 29호 -> 민족문화연구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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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7 0.77 0.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1 0.7 1.385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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