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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세기 후반 당의 동방정책과 고구려 유민의 동향 - 유민묘지명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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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7세기 후반은 한국사와 동아시아 역사상 격동의 시기였다. 만주와 한반도에서는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고, 통일신라와 발해가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하였다. 한국사의 이러한 전환은 중국 ...

      7세기 후반은 한국사와 동아시아 역사상 격동의 시기였다. 만주와 한반도에서는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고, 통일신라와 발해가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하였다. 한국사의 이러한 전환은 중국 중심의 일원적(一元的) 국제질서를 구축하려는 당(唐)의 동방정책과 밀접한 연관 아래 이루어졌다.
      당은 만주와 한반도 전체에 기미주(羈縻州) 지배체제를 구축하려는 목표 아래 동방정책을 추진하였지만, 고구려 멸망 이후 신라의 반당정책과 고구려 유민의 부흥운동으로 인해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특히 고구려 유민의 동향은 복잡한 양상을 띠었는데, 유민묘지명에는 문헌사료에서 확인하기 힘든 고구려 유민의 동향 및 당의 동방정책과 관련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이에 본 지원자는 유민묘지명을 중심으로 7세기 후반 당의 동방정책과 고구려 유민의 동향을 다각도로 고찰하고자 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고구려 유민묘지명은 최소 18기, 최대 23기에 이른다. 종전 연구는 고구려 후기의 관등제와 지방제도, 고구려 유민의 정체성 변화, 고구려 유민의 동향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고구려 후기의 지배체제와 유민의 동향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유민묘지명에 7세기 후반 당의 동방정책과 관련한 자료가 적지 않게 확인되는데, 이를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성과는 의외로 적다. 유민묘지명에 묘사된 당의 동방정책 및 고구려 유민의 동향은 문헌사료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 이에 지원자는 금년 7월부터 내년 1월까지 中國 陝西師範大學을 방문하여 유민묘지명을 중심으로 7세기 후반 당의 동방정책과 고구려 유민의 동향을 고찰하고자 한다.
      陝西師範大學은 중국 서북지역의 거점 대학으로 당대사(唐代史) 연구성과를 많이 축적하고 있다. 특히 공동연구를 진행할 예정인 拜根興 교수는 한중관계사 전문가로서 고구려 유민묘지명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에 지원자는 拜根興 교수의 협조 아래 각급 박물관과 연구기관에 소장된 유민묘지명에 대한 1차 조사를 진행하여 연구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아울러 당의 동방정책에 깊숙이 관여한 당인(唐人) 묘지명에 대한 조사를 병행할 계획이다.
      유민묘지명에 대한 1차 조사를 바탕으로 각종 문헌사료 및 연구성과를 분석하여 고구려 유민의 동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한편, 이들의 동향이 당의 동방정책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로 고찰하고자 한다. 특히 7세기 후반 당의 동방정책은 두 차례 변화를 겪었는데, 668-679년 당의 동방정책 변화가 통일신라의 확립으로 귀결되었다면, 687-698년 당의 동방정책 변화는 발해 건국으로 귀결되었다. 두 시기 모두 고구려 유민의 동향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는데, 유민묘지명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다수 확인된다.
      <이타인묘지명>에는 고구려 멸망 직후 부여지역 유민의 동향이 담겨 있고, <고흠덕묘지명>과 <고원망묘지명>에는 유민들이 당에 협조하며 종전 세력기반을 보전하던 양상이 기술되어 있다. 또한 <천남생묘지명>과 <천헌성묘지명>에는 677-679년 당의 동방정책 변화양상이 담겨 있고, <고현묘지명>과 <고족유묘지명>에는 당이 687년 돌궐에 대응하기 위해 고구려 유민을 동원한 양상이 기술되어 있다. 특히 <고질묘지명>과 <고자묘지명>에는 발해 건국 전야 고구려 유민의 동향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상과 같이 고구려 유민묘지명에는 7세기 후반 당의 동방정책과 관련한 유민의 동향을 전하는 내용이 다수 확인된다. 이에 지원자는 고구려 유민묘지명 전문가인 拜根興 교수와 공동으로 문헌사료와 유민묘지명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7세기 후반 당의 동방정책과 고구려 유민의 동향”을 고찰하고자 한다. 특히 기존 연구성과를 섭렵하여 당의 동방정책을 체계적으로 파악한 다음, 고구려 유민의 동향이 당의 동방정책 변화에 미친 영향, 그리고 당의 동방정책 변화가 이 지역의 역사 전개에 미친 영향 등을 다각도로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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