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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하 李炳憲의 공자교운동의 성과와 좌절 = Lee Byung Hean's Confucian church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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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Confucian culture supported society since long time, but this old society caused big chaos because of the arrive of western civilization and the occupied by Japan. The collapse of Chosun dynasty lead to abolish the Confucian shrine and it’s scho...

      The Confucian culture supported society since long time, but this old society caused big chaos because of the arrive of western civilization and the occupied by Japan. The collapse of Chosun dynasty lead to abolish the Confucian shrine and it’s school role. This abolition means official dissolution of Cofucian rites that have been supported by dynasty.
      The typical scholars who focus on moral fidelity resisted and fought against the Japanese rule, but Korean was colonized by Japan. Japanese ruler had double standard to Confucianism. They hoped to reform traditional custom, on the other hand, they need to keep traditional Confucian morals in Korea. Therefore, Confucian shrine could worship to Confuzu during Japanese imperial period.
      Lee Byunghean(1870-1940) was shocked by Western civilization and Japanese, he realized on human right, democratic idea and accept the universalism. He thinks that traditional Confucianism needs reflection about the premodern way.
      The ideas also could find to his teacher Gwak Chongseak. But his idea was influenced by Kang Youwei’s Confucian church, Great equality and original Classics conclusively.
      His suggested that Confucian church must faith to Confuzu like Jesus and Buddha. He asks that break the old Confucianism served monarch and realize the Great equality for the human beings in the global. This idea originated from real Classics, he studied hard on the Classics for his important mission.
      Lee’s Confucian church movement failed to integrate to peoples. Nevertheless, it is very fresh and meaningful idea to reform on old Confucianism in his time. He did introspection why Confucianism was criticized as a premodern thinking way. He pointed out that old Confucianism pander to monarch and did not communicate with other civilizations.
      Even though Lee’s ideas originated from Kang Youwei in China, but in Korea he needed more effort for persuasion due to the background of deep rooted Chuzu learning country. Therefore, he studied hard on the original classics. The founder of Confucian church Kang Youwei gave unstinted praise to Lee's books.
      But, Lee’s effort was failed because of peoples did not accept the deify of Confuzu. Peoples in his time, did not accept the great equality and individual human right.
      His movement of Confucian church was a new interpretation base on the new classics studies(今文經學). These ideas were very fresh break the premodern thinking way, but he could not success as a reformer of Confucia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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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공자교 운동은 서세동점(西勢東漸) 하에서 느낀 서양문명에 경악한 유교 지식인의 위기의식이며 동도서기적(東道西器的) 대응방식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하 유교지식인인 이병헌은...

      공자교 운동은 서세동점(西勢東漸) 하에서 느낀 서양문명에 경악한 유교 지식인의 위기의식이며 동도서기적(東道西器的) 대응방식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하 유교지식인인 이병헌은 자신의 사상적 바탕은 유교였으나, 새로운 서구문화를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또한 중국의 사상가이자 공자교 운동의 선구자인 강유위에게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1919년에 발간된 그의 저술 『유교복원론(儒敎復原論)』 등을 통해 그는 공자교의 기본체계를 제시하였다. 이병헌은 그 자신의 학문의 출발이 소위 향교적 유교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고, 또 일제에 저항했던 위정척사파와 같은 보수적 유생의 입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들을 보수적인 유교에 대해 노골적으로 공격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저술에서 나타나는 ‘구파’니 ‘향교식 유교’라는 말 자체가 기존의 주자학자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는 유교의 성격을 정의하면서 “유교는 공자의 교”이며 또한 공자는 “오로지 하나이며 둘일 수 없는 소위 ‘독일무이지교주(獨一無二之敎主)’”로서 섬기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래의 유교는 공자이전의 요순 이래로부터의 성인은 물론이려니와 공자의 제자들이 모두 제례를 드리는 대상인데 비해 이병헌은 ‘오로지 공자’만이 공자교의 존숭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병헌의 공자교에 있어서 대동사상은 종래의 군주 중심의 사유를 벗어나 공자에 의한 대동(大同)의 의리와 맹자에 의한 민본의 정신 그리고 춘추의 태평세를 이상으로 하는 세계를 지향해야할 이상세계로 보았다. 춘추에서 말하는 소강시대와 『예기(禮記)』에서 말하는 승평세가 가정과 국가 간이 서로 대립되는 시대라면, 미래의 사회는 대동시대이며 태평시대인데 그것은 공자교에 의하여 구현되는 인류의 평화시대이다.
      그의 공자교운동은 기존의 보수적 주자학자들의 비호응, 그리고 민중적 기본을 확대하지 못하고 좌절되었지만. 공자교 운동의 과정속에서 그가 치열하게 연구한 성과가 『공경대의고(孔經大義考)』, 『시경삼가설고(詩經三家說考)』, 『서경금문고(書經今文考)』,『예경금문설고(禮經今文說考)』 등과 같은 고전연구의 성과로 나타났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전거들은 금문경학으로 기본의 고문경학을 비판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금문경학의 설이란 공자의 문하생들이 구전해온 설이며, 반대로 향교식 유학은 수구적인 고문경학인데 이는 유흠(劉歆)에게 의거하는 날조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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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李炳憲, "李炳憲全集(上․下)" 아세아문화사 1989

      2 홍원식, "한주학파의 공자교운동"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6 : 1999

      3 금장태, "한국근대의 유교사상" 서울대학교 출판부

      4 이상성, "진암 이병헌의 유교개혁론과 공교운동-유교복원론을 중심으로" 한국철학사연구회 4 : 1995

      5 금장태, "유교근백년" 박영사 1984

      6 "辨訂錄(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大東印刷所

      7 薛錫圭, "眞巖 李炳憲의 現實認識과 儒敎復原論" 경남문화연구원 (22) : 325-357, 2006

      8 한국경학자료시스템, "易經今文考通論"

      9 "易經今文考 필사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0 孔子敎會本部, "孔子敎會旣往及將來(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 李炳憲, "李炳憲全集(上․下)" 아세아문화사 1989

      2 홍원식, "한주학파의 공자교운동"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6 : 1999

      3 금장태, "한국근대의 유교사상" 서울대학교 출판부

      4 이상성, "진암 이병헌의 유교개혁론과 공교운동-유교복원론을 중심으로" 한국철학사연구회 4 : 1995

      5 금장태, "유교근백년" 박영사 1984

      6 "辨訂錄(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大東印刷所

      7 薛錫圭, "眞巖 李炳憲의 現實認識과 儒敎復原論" 경남문화연구원 (22) : 325-357, 2006

      8 한국경학자료시스템, "易經今文考通論"

      9 "易經今文考 필사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0 孔子敎會本部, "孔子敎會旣往及將來(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1 한국경학자료시스템, "孔子大義考-周易"

      12 "北游日記節抄 필사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3 이상익, "‘儒敎의 이중성’과 ‘近代의 이중성’" 한국철학사연구회 (21) : 7-4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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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39 0.39 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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