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영선이 국가의 주도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국가의 역할, 즉 행정관서에 대한 연구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분야 연구에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4062935
나영훈 (한국학중앙연구원)
2012
Korean
선공감 ; 감역 ; 토목 ; 건축 ; 정치제도 ; Seongonggam (繕工監) ; Gamyeok (監役) ; Public Works ; Architecture ; political system
KCI등재
학술저널
113-171(59쪽)
6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토목영선이 국가의 주도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국가의 역할, 즉 행정관서에 대한 연구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분야 연구에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토목영선이 국가의 주도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국가의 역할, 즉 행정관서에 대한 연구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분야 연구에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토목영선을 전담하였던 행정관서인 선공감의 검토를 통해 조선시대 토목영선 이해의 기반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공감의 유래와 구성, 기능을 검토하여 선공감의 운영에 관해 살펴보고, 조선 초기 선공감에 실제 재직했던 참상관원의 출신과 관력을 검토함으로써 선공감의 성격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고자 하였다.
선공감의 성립은 매우 오랜 연원을 갖고 있다. 기록상 최초로 확인되는 선공감의 연원은 중국 秦의 ‘將作少部’로 추정된다. 장작소부는 漢이 들어서며 將作大將으로 변모하였고, 이 관서가 隋ㆍ唐 시기의 ‘將作監’으로 성립된 것이었다. 唐의 3성 6부제와 9시 5감의 중앙정치제도는 율령과 함께 주변 국가에 전파되었는데, 고려 역시 당의 3성 6부제를 수용하였다. 이때 장작감 제도 역시 함께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의 장작감은 이어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고려말 변경된 명칭인 繕工監으로 수용되었다.
선공감의 인적 구성은 정3품 당하관인 正 이하 副正(종3품), 僉正(종4품), 判官(종5품), 主簿(종6품), 直長(종7품), 奉事(정8품), 副奉事(종8품), 參奉(정9품) 등 총 9명의 조관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경국대전』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조선후기까지 존속하며 대표적인 門蔭 초입사직으로 정착되었던 종9품직 ‘監役’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2장에서는 선공감의 기능을 확인하였다. 선공감은 크게 두 가지의 핵심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첫째는 토목영선이 없는 일상기간 동안 토목영선을 위한 각종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보관ㆍ관리하는 기능이었다. 선공감에서 주로 취급한 물적 재원은 재목ㆍ압도ㆍ철물ㆍ시탄ㆍ석재 등이었으며, 인적 재원은 21종의 장인이었다. 둘째는 실제 토목영선의 수행이었다. 선공감의 토목영선 수행은 몇 가지 특징적인 점이 있다. 이는 선공감이 수행한 토목영선의 대부분이 현대적 개념으로서 ‘건축’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선공감이 수행한 토목영선은 이러한 건축에서도 ‘소규모’의 것이었고, ‘대규모’의 토목영선은 도감을 설치하여 처리하였다. 또한 선공감은 지방의 토목보다 주로 한성 내의 토목을 전담하여 도맡아 수행하였다.
3장에서는 선공감의 참상관을 분석하였다. 15세기 선공감 참상관은 16세기에 비해 문과출신이 적었는데 이는 15세기말부터 증가한 문과급제자가 중앙 행정관서를 장악하며 유교적 소양을 지닌 지식 관료가 행정실무까지 전담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대적 추이에 편승하여 선공감 참상관 역시 15세기에 비해 16세기에는 전문성이 상실되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15세기에 등장했던 이른바 ‘전문토목감역관’이 16세기 이후에는 더 이상 찾아지지 않는데서 16세기 선공감은 15세기에 비해 효율적인 업무처리가 어려웠을 개연성이 있다.
이상과 같이, 본 논문에서는 선공감의 유래와 구성, 기능에 대한 검토와 선공감에 재직한 관원의 분석을 통해 토목영선을 관장하였던 營繕組織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차후 선공감과 유사한 기능을 지닌 공조나 영건도감과 선공감의 유관관계를 검토하고, 토목영선에 대한 조선시대 治者의 인식을 확인함으로써 선공감에 대한 이해를 더...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Even though Public Works was run by the state, reseach about the state's role and the related government offices is lacking, and as such, this field of study is currently limited. This study will look at the Seongonggam (繕工監) which was the gover...
Even though Public Works was run by the state, reseach about the state's role and the related government offices is lacking, and as such, this field of study is currently limited. This study will look at the Seongonggam (繕工監) which was the government office responsible for Public Works, and through this will set the foundation for understanding the Public Works of the Joseon (朝鮮) Dynasty. In order to do this, Seongonggam's origins, personnel structure, responsibilities will be examined. In addition, this article will attempt to determine the characteristics of the Seongonggam through examination of Chamsanggwan (參上官)'s chulshin (出身) and gwanryeok (官歷) of Early Joseon's Seongonggam.
The origins of Seongonggam are very old. The first confirmed mention of Seongonggam in the sources is thought to be the Qin (秦) dynasty's Jiangzuoshaobu (將作少部). The Jiangzuoshaobu was changed to the Jiangzuodajiang (將作大將) in the Han (漢) dynasty, and was changed to the Jiangzuojian (將作監) in the Sui/Tang (隋/唐) period. The Tang Dynasty's three departments and six ministries central government system spread to neighboring countries and Goryeo (高麗) adopted this system as well. It seems that the Jiangzuojian was imported at the same time. This system was inherited by Joseon from Goryeo, which had changed the name to Seongonggam late in the dynasty.
Seongonggam's personnel structure consisted of nine people; Chief Officer Jeong (正), Bujeong (副正), Cheomjeong (僉正), Pangwan (判官), Jubu (注簿), Jikjang (直長), Bongsa (奉事), Bubongsa (副奉事), and Chambong (參奉). Also, although it does not appear in the Gyeonggukdaejeon (經國大典), like the above individuals, until the late Joseon dynasty the Gamyeok (監役) was included in the Seongonggam.
The second part of the article looks at the responsibilities of the Seongonggam. The Seongonggam had two primary responsibilities. One was the preparation, storage, and maintenance of the materials and workers register for public works. The materials usually kept by the Seongonggam were lumber, thatch, iron, charcoal, stone ect., and the human resources maintained in the workers register came to twenty-one artisans. The second main responsibility was the implementation of public works. This implementation of public works has several characteristics. One is that the public works implemented by the Seongonggam most often fall under what from a modern perspective would be 'architecture'. The second is within this field of 'architecture', it was primarily small scale. Large scale architecture was dealt with by the creation of a Dogam (都監). The third is that the Seongonggam's sphere of operations was primarily the capital.
The third section analyzes the Seongonggam's Chamsanggwan. The 15th century's Chamsanggwan had fewer members who had passed the civil exam than the 16th century Chamsanggwan. This reflects the fact that from the end of the 15th century, the officials who had passed the civil exam monopolized the central government offices as holders of confucian knowledge, and following this the old officials, who had pracitical knowledge, slowly left. This historical situation Seongonggam's Chamsanggwan also show a drop in the level of practical knowledge. Especially the 'Skilled Office of Public Works' which appeared in the 15th century, is not found in 16th century records. As such, the 16th century Seongonggam might not have been able to implement it's projects as effectively as it's 15th century counterpart.
참고문헌 (Reference)
1 대학토목학회, "한국토목사" 동화인쇄공사 2001
2 김동욱, "한국건축공장사연구" 기문당 1993
3 문창로, "한국 역사학의 성과와 과제" 일조각 2007
4 신영훈, "태종조 감역관 박자청고" 48 : 1989
5 문영식, "조선후기 산릉도감의궤에 나타난 장인의 조영활동에 관한 연구" 명지대학교 대학원 2010
6 김동욱, "조선후기 건축공장의 노임고" 1985
7 한충희, "조선초기 육조속아문의 행정체계에 대하여" 10 : 1983
8 한충희, "조선초기 육조속아문연구 2" 12 : 2001
9 한충희, "조선초기 육조속아문연구 1" 10 : 2001
10 한충희, "조선초기 관아연구" 국학자료원 2007
1 대학토목학회, "한국토목사" 동화인쇄공사 2001
2 김동욱, "한국건축공장사연구" 기문당 1993
3 문창로, "한국 역사학의 성과와 과제" 일조각 2007
4 신영훈, "태종조 감역관 박자청고" 48 : 1989
5 문영식, "조선후기 산릉도감의궤에 나타난 장인의 조영활동에 관한 연구" 명지대학교 대학원 2010
6 김동욱, "조선후기 건축공장의 노임고" 1985
7 한충희, "조선초기 육조속아문의 행정체계에 대하여" 10 : 1983
8 한충희, "조선초기 육조속아문연구 2" 12 : 2001
9 한충희, "조선초기 육조속아문연구 1" 10 : 2001
10 한충희, "조선초기 관아연구" 국학자료원 2007
11 한충희, "조선초기 官職과 政治" 계명대학교출판부 2008
12 박병련, "조선조 유교관료제의 준거와 기본설계의 특징" 한국행정학회 2012
13 박홍갑, "조선조 16세기 문음의 추이" 6 : 1994
14 김호동, "조선전기 경아전 「서리」에 관한 연구" (창간) : 1984
15 김동욱, "조선시대 건축의 이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16 김동욱, "조선시대 건축공사에 있어서 공장도구에 관한 연구" 1990
17 김동욱, "조선시대 17세기 궁궐 건축공사에 종사한 목수편수에 대하여" 1 : 1992
18 한영우, "조선 초기의 상급서리 ‘성중관’" 10 : 1971
19 나영훈, "조선 단종대 궁궐 경영(經營)과 그 정치사적 의미" 한국역사연구회 82 (82): 163-198, 2011
20 이장우, "조선 건국초기 한 가신적 신료에 대한 고찰-박자청의 공역활동을 중심으로" 64 : 2004
21 김용국, "서울 건설의 공로자-정도전과 박자청" 4 : 1958
22 현창호, "박자청고 1ㆍ2, 건축 4ㆍ5" 1960
23 김대식, "고려전기 중앙관제의 성립" 경인문화사 2010
24 박천식, "고려전기 寺ㆍ監 연혁고" 5 : 1981
25 김재명, "고려시대 寺ㆍ監 관사와 국가재정-태부시와 장작감을 중심으로-" 14 : 1998
26 강만길, "朝鮮前期工匠考" 12 : 1961
27 南智大, "朝鮮初期 中央政治制度 硏究" 서울大學校 大學院 1993
28 박용운, "『高麗史』백관지 역주" 신서원 2009
29 차미희, "16세기 전반기 문과 급제자의 6품직 승진" 조선시대사학회 (20) : 79-106, 2002
30 차미희, "16세기 문과 급제자 배출의 증가" 6 : 1998
16세기 對明 私貿易의 정책 방향과 굴레 - 中宗代 明의 ‘조선사행단 출입제한 조치’를 중심으로 -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199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7 | 0.87 | 0.96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97 | 0.98 | 2.253 | 0.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