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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월배지역 송국리문화 유입 시점 검토 = A study on the inflow point of the Songguk-ri culture in the Wolbae area, Dae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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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257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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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We reexamined chronology of the Bronze age in Daegu region by analyzing the residential sites excavated in the ruins at the Wolbae area of Daegu. In this study, we estimated time when the Songguk-ri culture of the Bronze age spreads in Daegu and analy...

      We reexamined chronology of the Bronze age in Daegu region by analyzing the residential sites excavated in the ruins at the Wolbae area of Daegu. In this study, we estimated time when the Songguk-ri culture of the Bronze age spreads in Daegu and analyzed the archaeological indicators of beginnings of the latter half.
      A total of 209 dwelling sites at the Wolbae area were examined. There were 53 sites which had no traces of a fireplace, or only one. They are squares, all of which can be scaled except for residential sites of the Huam-ri and Songguk-ri type those’re clearly known as the latter half.
      According to previous studies, the residential places with traces of a fireplace were all landmarks of the first half of the Bronze age. But this dwelling style had been observed not only in the first half, but also in the latter half of the Bronze age.
      There was no Huam-ri type dwelling site in square version, but a Songguk-ri(Dongcheon-ri) type in circular version was only found in the residential ruins in the Songguk-ri culture stage at the Wolbae area. Although the Songguk-ri culture was propagated late in the Wolbae area, Daegu area had already entered into the late society of the Bronze age when the Songguk-ri culture spread.
      The first criterion to judge the indicators of the latter half of the Bronze age is not the occurrence(propagation) of Songguk-ri culture, but the existence of the crowded residence with single fireplace. The reducing size of the dwelling sites was a phenomenon that occurs in all the remains and reflects changes in society as a whole. The Wolbae alluvial fan area’s geographical features with easy drainage would have caused dry-field farming. It is the reason why the Songguk-ri culture, which was based on a rice crop spread late in the Daegu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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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대구 월배지역에 분포하는 유적에서 조사된 주거지를 분석하여 청동기시대 편년을 재검토하였다. 그 결과를 근거로 월배지역에 송국리문화가 유입된 시점과 후기 시작의 고고학적 지표를 ...

      대구 월배지역에 분포하는 유적에서 조사된 주거지를 분석하여 청동기시대 편년을 재검토하였다. 그 결과를 근거로 월배지역에 송국리문화가 유입된 시점과 후기 시작의 고고학적 지표를 살펴보았다.
      월배지역에서 조사된 주거지는 모두 209기인데 그 중 명확하게 후기로 알려진 휴암리식·송국리식주거지를 제외하면 노지가 없거나 1개인 방형계 주거지는 83기인데 그 중 잔존상태가 양호해 규모를 파악할 수있어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53기이다. 선행연구에 의하면 노지가 있는 주거지는 모두 전기의 표지적인유구였지만, 53기의 주거지를 검토하여 이런 주거가 전기뿐만 아니라 후기에도 계속 이용되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월배지역의 송국리문화 단계에는 방형의 휴암리식주거지가 1기도 없고, 원형의 송국리식주거지만 확인된다. 월배지역은 송국리문화가 늦게 유입되었는데, 이 때는 이미 이곳이 후기사회로 진입된 이후였다.
      청동기시대 후기 시작의 제 1지표는 송국리문화의 유입(전파)이 아니라 단수의 노지를 가진 주거가 군집하는 것이다. 주거지 규모 축소는 모든 유적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사회 전반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월배선상지는 배수가 용이한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밭농사가 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수도작이 용이하지못한 지형적인 특색은 발생지에서의 거리, 이 지역 전기문화의 전통성과 함께 송국리문화가 늦게 전파된이유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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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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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김장석, "충청지역의 선송국리 물질문화와 송국리 유형" 한국상고사학회 51 (51): 43-7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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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황현진, "영남지역의 무문토기시대 지역성 연구 : 동남해안 무문토기문화를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대학원 2004

      12 나건주, "송국리유형 형성과정에 대한 검토: 경기 충청지역 자료를 중심으로" 중부고고학회 8 (8): 51-8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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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이수홍, "대구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에서의 무덤 축조 변화-월배지역 적석유구와 적석주거지를 검토하여-" 영남문화재연구원 30 :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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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日本國立歷史民俗博物館, "企劃展示 弥生ってな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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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5-03 학회명변경 한글명 : 부산고고학연구회 -> 부산고고학회
      영문명 : 미등록 -> The Pusan Archaeologic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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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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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4 0.54 0.7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 0.77 1.73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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