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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도시 운동의 발전과 국제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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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차년도 연구에서는 우선 하워드 시대에 활발히 진행되고 있던 다양한 도시 관련 논의를 분석하여 정원도시 구상을 만들어 낸 사상적 배경을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선 팩토리 타운...

      1차년도 연구에서는 우선 하워드 시대에 활발히 진행되고 있던 다양한 도시 관련 논의를 분석하여 정원도시 구상을 만들어 낸 사상적 배경을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선 팩토리 타운의 사례 가운데 영국인 로버트 오웬이 미국에 실현하려고 했던 “뉴하모니” 와 프랑스인 푸리에(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의 팔란스테레(Phalanstères), 또한 다른 영국인이자 오웬의 제자였던 제임스 버킹엄(James Silk Buckingham)이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쓴『전국적 해악과 현실적 해결책, 모범 마을 계획과 함께(National Evils and Practical Remedies, with the Plan of a Model Town)』책 등 초기 계획도시 사상들을 분석하는 것은 정원도시 이념을 더 잘 이해하게 해 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오웬이나 버킹엄 같은 주요 사상가들이 대서양 양안을 오가는 국제적인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계획안을 정교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산업화 사회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초국적 대책의 마련에 집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타국의 경험이 이들의 중요한 자료이자 실험 근거를 제공했음을 뜻한다. 이들이 차용했던 ‘미국적 요소’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당시 미국의 상황과 특성을 포착하여 이들의 여행과 답사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이 어떻게 사회주의적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답으로 귀결되는 단계적 발전을 거치게 되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하워드가 사상 형성기인 1871년부터 1876년까지 거주했던 시카고의 건축 도시로의 발전상과 그가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에드워드 벨라미(Edward Bellamy)의 미래소설 『뒤를 돌아보며(Looking Backward)』를 분석하여, 하워드의 도시계획에 어떠한 미국적 요소들이 개입했는지 분석할 것이다. 이는 하워드의 계획을 사회주의 이상향인 동시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포함한 계획도시로서 살펴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차년도 연구에서는 세계적으로 전파되는 정원도시의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그중에서도 기존 연구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던 세 지역의 예를 살펴보고, 이들 속에서 계급, 국가, 인종, 제국 등의 요소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분석할 것이다. 세 지역은 이전 식민지 지역, 즉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스비가 “네오 유럽(neo-Europe)”이라고 표현했던 국가의 도시들이다.
      첫 번째 사례는 1915년부터 1919년 사이 영국의 첫 번째 정원도시를 건설했던 주역인 레이몬드 언윈과 배리 파커가 상파울루에 진출하여 건설한 브라질 최초의 정원도시인 “자르징 아메리카(Jardim América)”이다. 독립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브라질의 “질서와 진보”라는 기치가 영국식 모델의 수용으로 나타났으며, 그 과정에서 구식민지의 특권계층을 위한 정원도시의 건설로 이어졌음을 분석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변질을 알면서도 부유층 주거단지인 정원도시 건설에 가담한 파커의 역할에 대해, 사회개혁가인 동시에 제국의 시민이라는 지위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볼 것이다.
      2차년도의 두 번째 분석 대상은 언윈의 제자인 앨버트 톰슨(Albert John Thompson)이 1921년 남아프리카에 건설한 파인랜드(Pinelands) 정원도시이다. 레치워쓰 건설을 도왔던 톰슨은 영국적 원형을 최대한 지역에 맞게 적용하려 노력했으나, 이 사업 역시 사유화와 영리 기업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결정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영국계 백인 정부에 의해 추진된 파인랜드는 계급을 넘어 평등한 삶을 추구하려는 본래의 취지와 달리 분리된 차별적 공동체(segregated community)를 건설하고 말았다.
      세 번째로 오스트레일리아가 새로운 수도로 계획도시 캔버라(Canberra)를 건설하면서 이용했던 것도 정원도시 모델이었다. 이 사례의 흥미로운 점은 설계자인 그리핀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에서는 정원도시를 표방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영국의 정원도시 주도자와 관계자들로부터 열띤 반대와 비난을 받았다는 것이다. 영국 측에 따르면, 그리핀의 설계는 정원도시의 핵심적 요소인 녹색공간이 부족하고, 각 영역들이 부자연스럽게 분리되어 있으며, 도시가 너무 펼쳐져서 비대한 형태라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이었다.
      2차년도 연구에서 살펴볼 세 국가의 사례는 사실상 영국적 모델과 미국 모델의 결합 과정에서 촉발된 갈등을 담고 있다. 자르징 아메리카, 파인랜드, 그리고 캔버라의 경우 모두 정원도시의 이름과 형식 속에 미국적 요소를 담고 있었다. 따라서 2차년도 연구에서는 각 사례의 추진 과정에서 현지의 요구가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정원도시가 어떤 외래적 요소를 품고 있었는지, 그 결과 어떠한 갈등이 표출되었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떻게 ‘국제적’ 프로젝트로 전환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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