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1962년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시작으로 정유, 비료, 석유화학, 조선 등의 국가 공업단지가 순차적으로 개발되었다. 1960년대까지 미개발상태였던 울산지역에는 국가 공업단지 개발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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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 울산대학교 일반대학원, 2015
학위논문(석사) -- 울산대학교 일반대학원 , 건축학과 도시계획 , 2016. 2
2015
한국어
울산
95 ; 26 cm
지도교수: 한삼건
I804:48009-00000222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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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1962년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시작으로 정유, 비료, 석유화학, 조선 등의 국가 공업단지가 순차적으로 개발되었다. 1960년대까지 미개발상태였던 울산지역에는 국가 공업단지 개발이 ...
울산은 1962년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시작으로 정유, 비료, 석유화학, 조선 등의 국가 공업단지가 순차적으로 개발되었다. 1960년대까지 미개발상태였던 울산지역에는 국가 공업단지 개발이 진행되면서 외부에서 많은 기업 및 노동 인구들이 유입되었고, 그 결과 울산은 대표적인 공업도시로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업지역의 개발과 함께 생겨난 소음 및 공해로 인해 주민들의 생활터전이 위협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970-80년대 공업지역 인근에서 거주하던 많은 지역주민들이 정부의 이주정책에 의해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장소로 이주하게 되었다.
본 연구는 울산공업센터 개발 이후 조성된 이주단지들을 중심으로 이주배경 및 조성과정 등을 분석하고, 이주단지 조성과 울산 도시개발과의 연관성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주단지의 현황 파악과 개발과정을 분석한 후, 이주단지 조성 전후 울산의 도시변화를 비교·분석하여 이주단지 조성이 울산의 도시공간구조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규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본 연구를 통해 도출된 결론은 국가 공업단지로 인해 발생한 이주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방안이 울산의 도시공간구조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실증적으로 규명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본격적으로 ⌜공해주민이주사업⌟이 공고·시행된 1985년을 시작으로 하여 행정적으로 사업이 완료된 1998년까지 그 연구범위로 설정하였으며, 공간적 범위는 공해주민이주사업의 이주대상지였던 삼호지구(현 무거동·옥동 일대), 태화지구(현 태화동), 다운지구(현 다운동)로 한정하였다.
울산의 이주단지는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약3여년에 걸쳐 정부 주도하에 공해지역주민의 피해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온산공단과 함께 울산지역 환경오염지구 주민 5,950세대, 2만 7,017명을 이주시키기로 결정되었는데 이 시기는 울산의 토지구획정리사업 및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었던 도시개발시기와도 일치한다. 당시 이주단지 대상지는 삼호지구, 태화지구, 다운지구 등 3개 지구로서 모두 1,929,000m²(약59만평) 규모의 이주단지를 조성하기로 계획하였다. 이 이주단지의 지리적 위치는 공해가 발생하는 공단지역과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위치한 울산 서부 외곽지역으로서 당시 신시가지와는 달리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이었다.
울산의 이주단지 조성은 환경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이었을 뿐만 도시개발사업과 함께 진행됨으로서 각종 정비시설 및 도시기반시설의 확충이 이루어지는 등 결과적으로 오늘날 울산 서부외곽지역의 도시공간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밝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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