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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유학의 여성 인식 : 차이와 관계에 대한 유학적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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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조선 전 시기를 대상으로 하되, 초․중․후기로 나누어 연차별로 수행할 것이다. 본 연구의 시기 구분은 유학의 내용과 사회적 기능 등을 기준으로 조선시대를 구분한 기존...

      본 연구는 조선 전 시기를 대상으로 하되, 초․중․후기로 나누어 연차별로 수행할 것이다. 본 연구의 시기 구분은 유학의 내용과 사회적 기능 등을 기준으로 조선시대를 구분한 기존의 학설을 따랐다. 초기는 건국에서 16세기 전반이 이르는 150여 년간, 중기는 사림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는 16세기 후반에서 사림의 정치가 정착되는 17세기까지로, 후기는 탈주자학적 경향과 실학이 대두하는 18세기 이후로 잡았다.
      (1) 조선초기의 유학은 문물제도의 정비와 유교의례의 전파 및 풍속의 유교적 전환에 응용되었다. 이 시기의 유학은 불교배척의 논리적 모색과 개혁 사상의 면모가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유학자로 정도전(1337-1398), 권근(1352-1409), 신숙주(1417-1475)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사상적 특성은 규범적 성격이 강하고, 그 여성인식 또한 이와 연관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치적 이념과 구체적 실존, 그 틈새를 주목하는 것이 본 연구가 견지하려는 일관된 태도이기 때문에 추측과는 다른 사실과 해석이 나올 수 있음을 열어 두고자 한다. 또 유학자들의 문집 외에 이 시기의 여성 인식을 알 수 있는 자료를 넓게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의 유학은 사회 개혁사상으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 개혁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를 여성 인식의 측면에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2) 조선 중기의 유학은 성리학의 이론적 심화 및 심학의 발달, 사회개혁보다 수양의 측면이 강조된다. 이 시기의 유학은 사림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초기 관학파에 비해 오히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중기에 활동한 이황(1501-1570)과 이이(1536-1584)는 조선 유학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사림의 두 가지 길을 이들을 통해 볼 수 있다. 즉 유학자를 인격수양론자와 제도개혁론자로 나눌 때, 이황이 전자라면 이이는 후자에 해당된다. 통상적으로 수양론은 개혁론에 비해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17세기 송시열을 포함한 조선 체제의 수호자이자 철저한 보수주의자인 노론 계열이 이이의 후예라는 점, 그리고 18세기 이후 이익, 정약용 등의 실학적 개혁론자들이 이황의 사상적 후예인 기호 남인에서 나왔다는 점은 성리학적 사유의 잠재적인 여러 계기를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 따라서 조선 유학의 논쟁들과 각 개념이 함축하는 바를 여성 인식이라는 창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에 이르는 조선 중기에서 다루게 될 유학자들은 이황과 이이 외에 기대승, 송준길(1606-1672), 송시열(1607-1689), 김수항(1629-1689), 박세당(1629-1703), 박세채(1631-1695), 김창협(1651-1708) 등이다. 이들은 여성 인식에 관한 아이디어를 함축하고 있거나 여성에 관한 다양한 자료와 글을 남긴 학자들이다. 이와 함께 조선 중기 이후, 종법의 ‘통(統)’ 의식이 강화되면서 ‘억정종례(抑情從禮)’의 경향이 여성 인식의 문제와 어떤 연관을 갖는지 등을 검토할 것이다. 어떤 권력관계이건 그 관계는 필연적으로 저항의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명분론과 의리론의 득세는 그에 맞서는 현실론과 인정론을 나오게 했다는 점에서 성리학적 논변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3) 18세기의 유학은 생활세계의 유교화가 민간으로 확대되고 정착됨과 동시에 그에 대한 반동으로 탈주자학적 경향의 개혁사상으로 나타난다. 조선후기 사회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이루고자 했던 유학의 한 학풍인 실학이 그것이다. 이 시기를 통해 다루어질 유학자들은 이익(1681-1763), 이덕무(1741-1793), 박지원(1737-1805), 박제가(1750-1805), 홍대용(1731-1783), 유득공(1749-?), 정약용(1762-1836) 등이다. 사회 개혁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은 여성에 관한 인식의 문제에도 적극 개입하였다. 하지만 기존의 사고와 방법을 개혁하고자 한 정치적 학문적 취지와는 별개로 그들의 개혁론은 여성 인식의 개혁까지를 포함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검토한 바로는 실학과 여성의 연관성은 여성의 능력을 실용에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전의 유학 전통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이익의 개혁론이 남녀 역할론에서는 여전히 구습을 견지한 것을 비롯, 이덕무 역시 여성을 실용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특징적인 현상은 여성 성리학자들의 등장인데, 임윤지당(1721-1793), 강정일당(1772-1832)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조선 후기 가문 의식의 확대 속에서 가학의 전통을 통해 유학적 지식을 습득하였는데, 이들의 유학적 사고와 학문적 성과물들은 여성 유학자의 여성 인식의 한 모델을 보여준다.
      이상은 3년의 과정을 통해 연구될 개략적인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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