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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적상산사고 형지안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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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G3738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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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조선시대 사고에는 실록과 선원록을 보관하면서 형지안을 작성하였다. 형지안은 오늘날 도서관의 장서를 점검한 뒤 기록하는 장부에 해당한다. 이 형지안을 보면 조선시대 사고에서의 장서...

      조선시대 사고에는 실록과 선원록을 보관하면서 형지안을 작성하였다. 형지안은 오늘날 도서관의 장서를 점검한 뒤 기록하는 장부에 해당한다. 이 형지안을 보면 조선시대 사고에서의 장서 관리 실태를 알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17세기에 작성된 《형지안》36건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형지안》에 수록된 실록수의 변동으로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실록이 1건만 수록되어 있는 1618년본과 1625년본과 1632년본이다. 이는 묘향산사고에서 적상산사고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기적인 현상이었다. 그리고 실록 전체를 적상산사고로 완전히 옮겨 간 뒤 작성한 것이 1634년본이다. 그때까지는 실록이 묘향산과 적상산 사고 두군데 사고에 나뉘어 있었고 형지안도 별도로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1934년본 이후로는 형지안에 수록된 실록의 숫자가 왕조대가 늘어날 때 마다 하나씩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으로 형지안에 수록된 일반서책수의 변동을 살펴보면 먼저 1601년본에 96건이던 것이 1610년본에는 3건으로 대폭 줄어든 것이 있다. 1601년본 당시는 영변부에 사고가 있었는데 1610년본 당시에는 묘향산에 있었다. 그 사이에 실록은 영변부에서 묘향산으로 옮겼지만 영변부 사고에 있던 일반서책은 묘향산으로 옮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634년본 단계에서 두 서고의 서책들이 합쳐지는데 그 숫자가 1633년본에 수록된 묘향산 사고의 일반서책의 숫자 34건보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일반서책의 경우 묘향산사고에 소장되어 있던 것이 모두 옮겨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사고에 소장된 서책의 구성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면 먼저 1601년본과 1610년본의 차이이다. 실록을 영변부 사고에 있던 96건의 일반 서책은 1610년 이후의 묘향산 사고의 형지안이나 적상산 사고 형지안을 막론하고 어느 형지안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후 사고의 도서로 편입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묘향산 사고의 일반 서책은 이후 계속 추가되어 1616년본에서 1630년까지 27건으로 유지된다. 1630년본과 1633년본에서도 일반서책은 변화가 없었는데 1633년본에서 형지안 7건이 추가되었을 뿐 나머지 일반 서책에는 변함이 없었다.
      실록을 이안하면서 작성한 1634년본 형지안에 따르면 모두 30건의 일반 서책이 등재되어 있는데 이 서책들은 대부분 묘향산 사고로부터 옮겨온 것이었다. 모두 8건만 삭제되고 나머지 26건이 등재되어 있다. 통합 이전 적상산 사고에 있던 일반서책은 1636년본 형지안에 등장하는데 이 서책들은 1634년에도 적상산 사고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형지안에는 2년 뒤에 등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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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 Study on the Hyeongjian(record of a case) of the Jeoksangsan Book Warehouse during the 17th Century During the Joseon Dynasty period, Hyeongjian was drafted while preserving chronicles and Genealogy of the Royal Family in the book warehouse. Hyeon...

      A Study on the Hyeongjian(record of a case) of the Jeoksangsan Book Warehouse during the 17th Century

      During the Joseon Dynasty period, Hyeongjian was drafted while preserving chronicles and Genealogy of the Royal Family in the book warehouse. Hyeongjian as it would be interpreted today would be like a ledger where books in a book warehouse are recorded after inspection. This study targeted 36 Hyeongjian cases drafted in Jeoksangsan book warehouse during the 17th century.
      First and foremost, when the changes in the number of chronicles that are included in the 《Hyeongjian》 are examined, it is possible to witness that the number of chronicles included in each of the Hyeongjian until 1632 is rather uneven. This is a phenomenon resulted from moving the chronicles from the Myohyangsan book warehouse to the Jeoksangsan book warehouse. The 1634 version is the one that was drafted after all of the chronicles were moved to the Jeoksangsan book warehouse completely. Since then, number of chronicles included in the Hyeongjian increased one by one as each king’s reign came into being.
      Next, when the changes pertaining to the number of regular books included in the Hyeongjian are examined, regular books too manifest complexity up until 1632 just like the chronicles. In case of regular 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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