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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禰氏 一族의 백제 이주와 성장 = Ye Family’s Immigration to Baekje and their 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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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518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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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d the Ye Family, immigrants to Baekje through epitaphs. This study examined the Ye Family’s origin and genealogy and immigration to Baekje and reviewed the Ye Family’s power base and emergence along with the domestic and over...

      This study investigated the Ye Family, immigrants to Baekje through epitaphs. This study examined the Ye Family’s origin and genealogy and immigration to Baekje and reviewed the Ye Family’s power base and emergence along with the domestic and overseas situations of Baekje. The Ye Family was Chinese immigrants, who settled themselves in Ungcheon according to the Baekje center’s necessity. The period to which attention is paid is the early-to-mid-fifth century, and at the time, China was in a confusing situation, due to the conflict between the North Wei and Sung Dynasties, etc. This corresponds to the information in the epitaphs of the Ye Family. It was found that Baekje, too, utilized provincial powers or Chinese immigrants as Goguryeo moved south. Then, this study focused on the Ungcheon region as the Ye Family’s power base and attempted an archaeological review of the mid-to-upstream of the Geumgang River in order to concretize this. As a reason for its emergence, during the reigns of King Wideok and King Mu, along with active negotiations with China, showed diplomatic and military prominence This was confirmed through the fact that Ye Sikjin’s father, Ye Seon was active in the Raeju region during the Sui Dynasty and that during the period of Baekje’s fall, Ye Sik-jin successively served as Ungjin Bangryeong, and Ye Gun served as Ungjin Dodokbu Sama. Along with this, Mul Bu-sun’s daughter and Heukchi Sang-chi’s grandson-in-law seen in Mul Bu-sun Gongdeokgi was read as Ye Eui. This attracts attention as a material that can be associated with Baekje bureaucrats, including Heukchi, Mulbu, and Ye, who went to 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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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은 묘지명을 통해서 백제 유민 예씨 일족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예씨 일족의 출자와 가계, 백제로의 이주에 대해 살펴보고 백제의 국내외 상황과 함께 예씨 일족의 세력기반과 부상에 ...

      이 글은 묘지명을 통해서 백제 유민 예씨 일족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예씨 일족의 출자와 가계, 백제로의 이주에 대해 살펴보고 백제의 국내외 상황과 함께 예씨 일족의 세력기반과 부상에 대해 검토했다.
      예씨 일족은 중국계 이주민으로서, 백제 중앙의 필요에 의해 웅천에 정착하였다. 주목되는 시기는 5세기 초·중엽으로, 당시 중국 내부는 북위와 송의 대립 등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는 예씨 묘지명의 내용과도 부합되고 있다. 백제 내부에서도 고구려의 남하에 따라 지방세력이나 중국계 이주인물을 활용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후 예씨 일족의 세력기반으로 웅천지역에 주목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금강 중상류지역의 고고학적 검토도 시도하였다. 부상요인으로는 위덕왕·무왕대 중국과의 활발한 교섭과 함께 외교·군사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것으로 살펴보았다. 이는 수나라대 예식진의 부친 예선이 래주지역에서 활동하고, 백제멸망기 예식진은 웅진 방령, 예군은 웅진도독부 사마를 역임하는 것을 통해 확인하였다. 더불어 물부순공덕기에 보이는 물부순의 딸이자, 흑치상지의 손녀 사위를 禰儀로 판독하였다. 이는 흑치씨와 물부씨, 그리고 예씨까지 당으로 들어간 백제 관료들과 연관 지어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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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盧重國, "歷史의 再照明" 1995

      2 성정용, "횡혈식석실분의 수용과 고구려사회의 변화" 동북아역사재단 2009

      3 양종국, "한국고대사와 백제 고고학" 2018

      4 권인하, "한국고대 문자자료연구 백제(하)-주제별-" 주류성 2015

      5 조범환, "중국인 유이민의 백제 귀화와 정착 과정에 대한 검토-「陳法子墓誌銘」을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탐구학회 (19) : 7-36, 2015

      6 拜根興, "중국 학계의 백제 유민 禰氏 家門 墓誌銘 검토" 한국사연구회 (165) : 329-341, 2014

      7 윤용구, "중국 출토의 한국고대 유민자료 몇 가지" 한국고대사학회 32 : 293-326, 2003

      8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중국 출토 百濟人 墓誌 集成"

      9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중국 소재 한국 고대 금석문"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5

      10 조은하, "송원리고분군 출토 백제토기 연구" 한국고대학회 (33) : 301-34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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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朴淳發, "백제의 왕권은 어떻게 강화되었나 -한성백제의 중앙과 지방" 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2014

      13 윤용구, "백제의 대외교섭"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07

      14 강종원, "백제와 금강" 서경문화사 2007

      15 양종국, "백제실록 의자왕" 백제실록 의자왕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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