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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하대 도당유학 출신의 지방관 부임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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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98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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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신라 하대에는 도당유학생이 증가하여 唐에서 出身의 기회를 얻은 인물도 있었다. 도당유학생의 出身 방법은 대체로 국자감을 졸업한 다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에 응시하는 것이었...

      신라 하대에는 도당유학생이 증가하여 唐에서 出身의 기회를 얻은 인물도 있었다. 도당유학생의 出身 방법은 대체로 국자감을 졸업한 다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에 응시하는 것이었고, 일부는 唐 국자감에서 유학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받거나 황제를 수행하여 벼슬을 얻었다.
      이러한 도당유학 출신은 신라에 귀국한 다음 중앙의 문한직이나 지방관으로 진출하였다. 기존 연구에서 도당유학 출신이 문한직에 제수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들이 장기간의 유학생활을 통해 익힌 漢文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도당유학 출신이 지방관에 제수된 이유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가 미비한 실정이었다.
      이에 본고는 도당유학 출신이 지방관에 제수되었던 맥락을 살펴보고자, 이들이 지방관으로 관할했던 지역을 검토하여 부임지의 공통점을 구명해보았다. 그 결과 도당유학 출신의 지방관 부임지는 대체로 해상 교류가 활발했던 서해안 교통로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도당유학 출신으로서 사료에서 처음으로 지방관에 제수된 것으로 전해지는 子玉은 唐 사신이 신라에 내항했을 때 경주로 가는 교통의 요지에 小守로 부임하였다.
      이후 도당유학 출신은 唐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국제성이 고조되었던 서해안 지역에 주로 부임하였다. 이는 경주와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에 도당유학 출신을 보내는 일종의 차별적 조치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입사 경쟁이 치열했던 下代였으므로 지방관에 제수되었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의의에 주목해볼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신라 조정이 도당유학 출신을 지방관에 기용하고, 특히 서해안 지역에 부임시켰던 것에는 도당유학 출신만의 고유한 능력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도당유학 출신은 국학이나 독서삼품과 출신에 비하여 국내 사정 이해에는 불리할 수 있었지만, 唐語구사 능력은 도당유학 출신만이 가졌던 특기였다. 唐과의 외교가 활발했던 下代에는 唐사신의 내항에 대해 적절하게 응대하는 업무가 요구되었다. 또한 여러 국적의 다양한 성격을 가진 비공식적 해안 내착도 종종 발생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장기간의 유학으로 국제성과 唐語 구사 능력을 가졌던 도당유학 출신이 서해안 지역의 지방관에 제수되었던 것으로 추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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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e late period of Silla, Korean students studied in Tang for get chances to become officials. The most common way to become an official was to pass the imperial examination(科擧) in Tang. But there were also some students who became officials in...

      In the late period of Silla, Korean students studied in Tang for get chances to become officials. The most common way to become an official was to pass the imperial examination(科擧) in Tang. But there were also some students who became officials in recognition of the fact that he had studied in Tang, or served the emperor well enough.
      Those who studied in Tang could become Silla officials of the Academy(翰林臺) or the local governors. It was pointed out earlier that the reason why those who studied in Tang could work in the Academy. It was because they were recognized for their ability to read and write Chinese through long-term international studies. However, the reason why Silla students studied abroad in Tang could become local governors was not discussed in earnest.
      In order to examine the context why Silla students studied in Tang could became the local governors, it was need to try to analyze the areas under their jurisdiction as the local governors and to find the common ground. As a result, it was shown that the locations of the local governors who studied in Tang were mostly concentrated on the transportation site of the waterway, where exchanges with Tang were active. Ja’ok(子玉), who is said to have been first ordained to a local governor as a student studied in Tang, was appointed to a Sosu(小守) at the gist of the waterway to Gyeongju when Tang envoys sailed to Silla.
      Later, Silla local governors who studied in Tang were appointed to the West Coast of Korean Peninsula, where internationalism was heightened due to active exchanges and communications. This can be understood as a kind of discriminatory policy to send them to regions far from Gyeongju(慶州). However, since it was a time of fierce competition for employment, it was also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the significance of becoming the local governors.
      The Silla government appointed those who studied in Tang especially in the West Coast region, because it recognized the unique ability of them. Although studying abroad in Tang could have been disadvantageous to understanding domestic circumstances compared to those who studied in Guk’hak(國學) or passed Dokseosampumgwa(讀書三品科), the ability to speak Tang language(唐語) was a specialty that only those who studied abroad in Tang had. In the Late period of Silla, when diplomacy with Tang was active, the task of responding appropriately to the Tang envoy was required. In addition, private merchants often landed on the West Coast. Against this backdrop, those who had international achievements and a command of the Tang language through long-term study, could become the local governors in the West Coast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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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하대의 입사 경쟁과 도당유학의 유행
      • Ⅲ. 도당유학 출신 지방관의 부임지와 역할
      • Ⅳ. 맺음말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하대의 입사 경쟁과 도당유학의 유행
      • Ⅲ. 도당유학 출신 지방관의 부임지와 역할
      • Ⅳ.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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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전덕재, "한국사 시민강좌 46" 일조각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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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주보돈, "통일기 신라 지방통치체제의 정비와 촌락구조의 변화" 대구사학회 37 : 1989

      5 장일규, "최치원의 귀국 후 활동과 은둔" 한국사학회 (76) : 57-83, 2004

      6 조범환, "중세로 가는 길목 신라 하대사" 새문사 2018

      7 이기백, "전해종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 일조각 1979

      8 정구복,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 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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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윤명철, "신라하대의 해양활동연구-해양환경 및 대외항로를 중심으로-" 국사편찬위원회 91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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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정구복,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 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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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祖堂集"

      43 "玉龍寺洞眞大師碑銘"

      44 "玉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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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정순일, "『속일본후기』 所收 신라국 집사성첩에 보이는 ‘島嶼之人’" 일본사학회 (37) : 119-15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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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 0.5 0.4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1 0.58 0.981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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