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 다루는 공간적 범위는 창원시 동읍·대산면 및 김해시 진영읍 일원이다. 이 지역은 고대사회에 고 대산만(古大山灣)으로, 동일한 소문화권을 형성하였다. 필자는 고 대산만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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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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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대산만 ; 덕천리 유적 ; 다호리 유적 ; 수장 ; 제사장 ; Ancient Daesan Bay ; Deokcheon-ri group ; Daho-ri group ; political leader ; priest
KCI등재
학술저널
28-65(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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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다루는 공간적 범위는 창원시 동읍·대산면 및 김해시 진영읍 일원이다. 이 지역은 고대사회에 고 대산만(古大山灣)으로, 동일한 소문화권을 형성하였다. 필자는 고 대산만을 대상...
본고에서 다루는 공간적 범위는 창원시 동읍·대산면 및 김해시 진영읍 일원이다. 이 지역은 고대사회에 고 대산만(古大山灣)으로, 동일한 소문화권을 형성하였다. 필자는 고 대산만을 대상으로 덕천리 유적 등의 지석묘 축조사회와 변한(弁韓) 소국(小國)의 수장층(首長) 무덤으로 추정되는 다호리 목관묘(木棺墓) 축조집단과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찾고자 하였다. 고 대산만은 지석묘 축조를 위해 인력이 동원되는 실질적인 범위인 1-2개 읍락(邑落) 규모의 공간이고, 이 규모는 변한(弁韓)·가야(加耶)사회의 1개 소국과도 연결된다.
고 대산만에서 지석묘의 밀집도가 가장 높고 대외 교류의 거점인 봉산리·용잠리 집단이 중심 취락으로 추정되며 초대형 지석묘인 덕천리 1호의 피장자는 거점취락과 연계되어 제사를 주관한 사제(司祭)로 보았다. 즉, 봉산리·용잠리 일대의 우두머리는 정치적인 수장(首長)이고 덕천리 1호로 대표되는 피장자는 공동체의 제의를 주관하는 제사장으로 추정하였다. 봉산리·용잠리 일대의 우두머리는 집단지향적인 수장이라는 점에서 다호리 1호묘와 같은 개인지향적인 수장과는 차별성이 있다.
점토대토기(세형동검)문화가 늦게 나타난 영남 동남부지역, 특히 창원·김해 일대에 거대한 묘역을 갖춘 지석묘는 초기철기시대로 편년되고 있다. 이 시기에 지석묘를 축조했던 집단은 새로운 이질적인 문화요소와 만나게 되는데 우두머리들은 개인의 능력과 사적 소유를 강조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기보다는 종래 사회구조를 지탱했던 공동체유형을 강화하는 방향을 선택하면서 덕천리 1호와 같은 대규모 묘역식 지석묘를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즉, 고 대산만에서 종래 거점취락인 봉산리·용산리 일대 중심세력이 점토대토기문화 유입기에 덕천리에 별도의 제의공간을 만들고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다호리 집단의 주축 세력을 기원전 1세기(전반)대에 고조선 멸망 후 남하한 서북한계 유이민으로 보았다. 초기 목관묘를 조영한 집단은 이주민이겠지만 점차 토착 유력세력과의 혼인관계 등 화합을 통해 통합을 지향했으리라 본다. 덕천리 지석묘군의 늦은 단계(기원전 1세기대)의 매장주체부 및 유물과의 비교를 통하여 다호리세력과 덕천리 세력 간의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고 대산만의 거점 지석묘 집단과 다호리 세력은 모두 낙동강 수로를 통한 교역의 중심지로서 성장하였을 것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intended to find an organic link between the dolmen building society of the Deokcheon-ri Site and the Daho-ri group, which built wooden coffin graves that are presumed to be the graves of the ruling class of a small state in the Byeonhan re...
This study intended to find an organic link between the dolmen building society of the Deokcheon-ri Site and the Daho-ri group, which built wooden coffin graves that are presumed to be the graves of the ruling class of a small state in the Byeonhan region, with regard to the Daesan Bay in ancient times. Daesan Bay in ancient times is large enough to accommodate one to two Euprak(邑落), the actual number of villages from which the manpower for building a dolmen was mobilized, and this scale is similar to that of one small state in Byeonhan and Gaya society.
The Bongsan-ri and Yongjam-ri group, which has the highest concentration of dolmens in Daesan Bay and was the main place for exchange with outside, is presumed to be the central settlement, and the owner of the giant dolmen, Deokcheon-ri 1, is presumed to be the priest that supervised religious rites in connection with the main settlement.
Dolmens in the southeastern area of the Yeongnam region where the Round Clay Rim Pottery (Slender Bronze Dagger) Culture appeared later, particularly the ones that have large grave boundaries in Changwon and Gimhae, are mostly from the Early Iron Age. It is presumed that the group that built dolmens during this time faced new heterogenous cultural elements, and the leaders chose to strengthen the community system which had buttressed existing social structure rather than accepting new ideologies that emphasize individual capabilities and private ownership and constructed a huge dolmen with graveyard like Deokcheon-ri 1.
The Daho-ri group is presumed to be the wandering people from northeastern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that came to south after Gojoseon fell around (early) 1 B.C. The group that build the wooden coffin grave in the beginning must be immigrants. However, it is assumed that they aimed to gradually integrate with the aboriginal powerhouse through reconciliation such as matrimonial relationships. The comparison with the burial chambers and artifacts of the later stage (around 1 B.C.) dolmens in Deokcheon-ri indicated that the Daho-ri group and Deokcheon-ri group had excha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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