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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금산사의 역사적 전개와 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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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172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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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금산사의 조선시대 역사와 사격에 대하여 살펴본 연구이다. 그간 금산사의 조선 전기의 역사는 알려진 바 거의 없었는데 본고에서 나름대로 복원 시도하여 사찰의 역사 흐름을 가름...

      본고는 금산사의 조선시대 역사와 사격에 대하여 살펴본 연구이다. 그간 금산사의 조선 전기의 역사는 알려진 바 거의 없었는데 본고에서 나름대로 복원 시도하여 사찰의 역사 흐름을 가름하여 보았다. 본 연구의 성과는 다음과 같다.
      태조대 무렵 양가도승통 종림이 금산사 장로로 있었다. 조선 태종 대 금산사의 주지도징이 비행을 하였다는 죄목을 씌워 사원전과 노비를 환수받는 등 탄압을 당하였다. 그 후 세조에 의해 금산사의 5층 석탑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성종대 세조의 서자 덕원군 이서가 인근 승도 사장들과 더불어 탑을 중수하였다.
      중종대 호남 유생들은 금산사에 회합하여 문묘 배향을 논의하였던 사실이 찾아지며, 임진 난이 발발하면서 금산사는 의승군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금산사에서 출가한 청허 휴정의 문도 뇌묵처영과, 최초의 의승군 봉기를 하였던 기허영규와도 조우하여 금산사를 중심으로 의승군 전투에 참여하였다. 영규와 조헌의 금산전투와 영규의 행주 대첩 등은 왜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되어 정유재란시 왜군의 보복으로 금산사는 금강문, 노주 등을 제외한 전각이 전소 되었다.
      전란이 끝난 지 3년이 지난 직후 금산사의 고승 수문과 천택 등에 의하여 무려 35년간의 중창불사가 이루어 졌으나 대사구만 복원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하지만 금산사는 호남 일대의 명찰로서 미륵전과 장육존상은 조선후기에도 국중의 으뜸이었다고 회자되었다. 임란후 금산사를 이끌어간 주요고승은 청허휴정과 부휴선수의 문도였는데 그 가운데 백곡처능을 제외하고는 청허휴정의 문손, 특히 편양파의 법손인 소요태능이나 중관해안, 환성지안, 남악태우 등이었다.
      따라서 금산사는 조선초 이래 선종계 사찰이었지만 지안을 통해 볼 수 있는 바와같이 선종과 더불어 화엄이 아우러진 종풍을 지니면서 본래의 유가의 전통이 기저에 잠재되어 왔으며, 일제강점기 금강문에 편액에 미륵본부 도량이라고 했듯이 유가종풍이 강한 도량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금산사는 미륵의 장육존상의 도량이라는 자부심은 더욱 강조되어 조선말기에 한국의 삼보사찰 가운데 불보사찰이라는 설도 제기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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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dissertation is for the study to look over Geumsan Temples history in the Joseon Dynasty. So I tried to restore its story and define the temples historical flow by tracing the history of Geumsan Temple of Joseon Dynasty. In this study, the result...

      This dissertation is for the study to look over Geumsan Temples history in the Joseon Dynasty. So I tried to restore its story and define the temples historical flow by tracing the history of Geumsan Temple of Joseon Dynasty. In this study, the result is like the below. Around the time of King Taejo, the top officer who managed monks lists, Jongrim was the elder of Geumsan Temple. At the time of Taejong in the Joseon Dynasty, the abbot of Geumsan Temple, Dojing was laid on criminal sin, so he was repressed. At the time of Sejo, it was done for the re-establishment of a five-story stone pagoda at Geumsan Temple under the protection of the world of Buddhism in the Joseon Dynasty, at the time of Seongjong, a child of concubine, Deokwon-gun, Lee Seo reconstructed pagodas with the monks in the nearby area.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Geumsan Temple came to the center for the military of monks to fight against Japanese. Noemuk Cheoyoung, a disciple of Cheongheo Hyujeong, who became a monk at Gemsan Temple, and Giheo Younggyu who rose up the first military of monks also joined together and participated into the combat by the monks military with this temple as the center. Geumsan Combat with Younggyu and Joheon, Seige of Haengju by Younggyu etc gave a big blow to Japanese military, so they revenged Koreans in Jeongyujaeran, all the houses, except for Geumgangmun, Noju, were fired in Geumsan Temple. Passing 3 years after finishing the war, the re-establishment of temple had been done for over 35 years by the high priests, Sumun and Cheontaek, at Geumsa Temple, but only the reconstruction of Daesagu was accomplished. However, it still kept its fame as the most famous temple in the region of Honam, it has been said that Mitreya Hall and Maitreyas big statue were the best national treasures also in the late Joseon Dynasty. Afte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 high priests who led Geumsan Temple were disciples of Cheongheo Hyujeong and Buhyu Seonsu, among those, except for Baekgok Cheoneung, most of them were disciples of Cheongheo Hyujeong, especially the dharma disciples of Pyeonyang faction. For example, Soyo Taeneung or Junggwan Haean, Hwanseong Jian, Namyak Taewoo etc, they were representative high priests of Geumsan Temple in the late Joseon Dynasty. So Geumsan Temple had been a temple in the sect of Dhyana school since the early Joseon Dynasty, but for the example of Jian, it had a strong tendency of the Yuga“ca”ra as the writing on the framed picture on Geumgangmun in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with the harmony of Dhyana school and Hwayeom based on the original tradition of the Yuga“ca”ra. In this aspect, Geumsan Temple more emphasized its proud as the house of Maitreyas big statue, in the late Joseon Dynasty, some people said that it was the temple of Buddhist treasure among the Koreas three treasure tem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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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한글요약〉
      • Ⅰ. 머리말
      • Ⅱ. 조선 전ㆍ 중기 금산사의 중창과 사격
      • Ⅲ. 조선후기 금산사의 화엄법회와 불보종찰
      • Ⅳ. 맺음말
      • 〈한글요약〉
      • Ⅰ. 머리말
      • Ⅱ. 조선 전ㆍ 중기 금산사의 중창과 사격
      • Ⅲ. 조선후기 금산사의 화엄법회와 불보종찰
      • Ⅳ.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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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황인규, "懶庵普雨와 조선 불교계의 고승" 보조사상연구원 24 (24): 201-246, 2005

      2 문화재청, 불교문화재연구소, "한국의 사찰문화재-전라북도 ․ 제주도집(자료집)" 불교문화재연구소 2003

      3 황인규, "한국 불교계 삼보사찰의 성립과 지정" 보조사상연구원 (41) : 245-284, 2014

      4 오세덕, "조선후기 중층불전(重層佛殿)에 관한 연구" 석당학술원 56 (56): 235-272, 2013

      5 황인규, "조선전기 후궁의 비구니 출가와 불교신행" 불교문화연구원 (57) : 117-143, 2011

      6 허흥식, "조선의 정유(定有)와 고려의 진혜(眞慧)- 두 시대 여대사(女大師)의 비교 -" 한국학중앙연구원 27 (27): 175-198, 2004

      7 "조선왕조실록"

      8 황인규, "조선시대 불교계 고승과 비구니" 혜안 2011

      9 金奉建, "전통 중층목조건축에 관한 연구" 서울대 1994

      10 심주완, "임진왜란 이후의 대형 소조불상에 관한 연구" 미술사학회 2002

      1 황인규, "懶庵普雨와 조선 불교계의 고승" 보조사상연구원 24 (24): 201-246, 2005

      2 문화재청, 불교문화재연구소, "한국의 사찰문화재-전라북도 ․ 제주도집(자료집)" 불교문화재연구소 2003

      3 황인규, "한국 불교계 삼보사찰의 성립과 지정" 보조사상연구원 (41) : 245-284, 2014

      4 오세덕, "조선후기 중층불전(重層佛殿)에 관한 연구" 석당학술원 56 (56): 235-272, 2013

      5 황인규, "조선전기 후궁의 비구니 출가와 불교신행" 불교문화연구원 (57) : 117-143, 2011

      6 허흥식, "조선의 정유(定有)와 고려의 진혜(眞慧)- 두 시대 여대사(女大師)의 비교 -" 한국학중앙연구원 27 (27): 175-198, 2004

      7 "조선왕조실록"

      8 황인규, "조선시대 불교계 고승과 비구니" 혜안 2011

      9 金奉建, "전통 중층목조건축에 관한 연구" 서울대 1994

      10 심주완, "임진왜란 이후의 대형 소조불상에 관한 연구" 미술사학회 2002

      11 황인규, "여말선초 유가종승과 불교계의 동향" 동국사학회 39 : 2003

      12 "승정원일기"

      13 황인규, "수선사 16국사의 위상과 추념 : 송광사의 승보종찰 설정과 관련하여 試攷함" 보조사상연구원 34 : 87-121, 2010

      14 "삼국유사"

      15 "삼국사기"

      16 금산사, "미륵도량 금산사지(본사편)" 금산사 2005

      17 정영철, "금산사의 입지 및 배치 해석에 관한 연구" 경일대 37 : 1999

      18 "국조보감"

      19 황인규, "고려후기 ․ 조선초 불교사연구" 혜안 2003

      20 "고려사절요"

      21 "고려사"

      22 황인규, "고려말 ․ 조선전기 불교계와 고승연구" 혜안 2005

      23 "頭陀草"

      24 "韓國高僧碑文總集"

      25 "靑城雜記"

      26 "陶雲遺集"

      27 "陶隱集"

      28 "重峯集"

      29 "逍遙堂集"

      30 "谿谷集"

      31 "觀音現象記"

      32 "觀復齋遺稿"

      33 "西坡集"

      34 "虛靜集"

      35 "虛靜集"

      36 "藥泉集"

      37 "艮齋集"

      38 "續雜錄"

      39 "續南遊錄"

      40 "稼亭集"

      41 "秋江集"

      42 "白江集"

      43 "玉溪集"

      44 "牧隱集"

      45 "牧民心書"

      46 "無竟集文稿"

      47 "汾厓遺稿"

      48 "楓溪集"

      49 "松桂大師文集"

      50 "東溟集"

      51 "東文選"

      52 "東師列傳"

      53 오경후, "朝鮮前期 禪雲寺의 重創과 展開" 신라문화연구소 33 (33): 153-174, 2009

      54 황인규, "朝鮮前期 佛敎界의 三和尙攷- 信眉와 두 제자 學悅·學祖 -" 한국불교학회 (37) : 225-251, 2004

      55 "明谷集"

      56 "拭疣集"

      57 "孤潭逸稿"

      58 "天鏡集"

      59 "大覺登階集"

      60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61 "南嶽集"

      62 "兜率山 禪雲寺誌"

      63 "保晩齋集"

      64 "五洲衍文長箋散稿"

      65 "中觀大師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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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6 학회명변경 영문명 : Institute for Buddhist Culture -> Buddhist Culture Research Institute KCI등재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23 학회명변경 영문명 : The Korean Buddhist Research Institute -> Institute for Buddhist Culture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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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3 0.73 0.6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3 0.55 1.313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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