これまでの考察結果から次のような結論を得た。啓蒙開化期の女性誌においてはいくつかの特徴があることが分かった。 1)誌名では圧倒的に漢字語の使用が多かったのに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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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부산외국어대학교 대학원, 2010
Thesis(M.A.) -- 부산외국어대학교 대학원 , 일어일문학전공 , 2010. 2
2010
일본어
대한민국
; 26cm
지도교수 :정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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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れまでの考察結果から次のような結論を得た。啓蒙開化期の女性誌においてはいくつかの特徴があることが分かった。 1)誌名では圧倒的に漢字語の使用が多かったのに対...
これまでの考察結果から次のような結論を得た。啓蒙開化期の女性誌においてはいくつかの特徴があることが分かった。
1)誌名では圧倒的に漢字語の使用が多かったのに対し、他の文字の使用が少ないのが分かった。
2)主要な誌名は語彙の側面から従来は⌜女學⌟⌜婦人⌟⌜女子⌟⌜女性⌟の四つから出来ていると言う指摘があるが、調査した範囲では⌜婦女⌟⌜淑女⌟⌜女⌟⌜をんな⌟なども存在しているのが分かった。開化期には女性誌の誌名に「女性」の命名は一例もないのが特徴的だ。更に⌜〜世界⌟⌜〜友⌟⌜〜倶楽部⌟は他の語よリは多少多いが、一般化していたとは言えない。また⌜〜報⌟より⌜〜誌⌟の方が多く使われている誌名であることが分かる。これはおそらく當時「magazin」の日本語訳が雑誌という情報概念の伝達と言う点と意味表記を合わせ持ったところから広範に使われ出したものと考えられる。
3)語構成の面から見ると、命名の側面から中心となる語である⌜女學⌟⌜女子⌟⌜婦人⌟⌜女性⌟が先項要素としては「女學雑誌」「女子文藝」「婦人世界」があり、後項要素としては「家庭女學」「明治女子」「婦人畫報」などが見られる。
4)女性誌の意味で⌜女學⌟が使われだしたのは『日本之女学』(1887)からと言われている。これは新しい近代化の流れの中で、女性教育の時代的必要性に応じて登場したものと考えられる。その後、女性誌の誌名の主流は⌜婦人⌟や⌜女子⌟に取って代わられた。現代女性誌の呼称として一般的な⌜女性⌟の漢語が誌名に表われた事例は明治の開化期には一例も見られなかった。ここからも誌名と時代の相関関係は時代の社会的文化的影響を強く受けていると考えられるのである。また意味的な面から1889年『國之もとゐ』、1901年『國のはな』1893年『御国の母』のようなナショナリズムを高揚させる誌名を持った女性誌も現われた。
5)開化期の女性誌の誌名とその文字色に目を向けると、黒の使用が誌名の文字の色の80%の高頻度であり、誌名の文字以外の表紙文字の色でも86%と更に高い頻度を示している。黒の次は白が使われているが、誌名の文字の色17%、誌名の文字以外の表紙文字の色で0.8%しかなく、黒色主体の色彩空間の時代であったと言える。
6)開化期の前期は女性誌の誌名が表紙の顔となり、他のモチーフとして用いるものはなかった。その後1885年から女性像を用いるものが現われだした。その他のモチーフとして用いられているものは、草木、草花、風景、小鳥、額縁模様、単純模様が多用され、いかにも自然主義的で自然と共に生きる日本人と言うイメージを連想させるような構図となっているのが特徴的だ。また、1904年の女性像の洋服のように、西洋欧化の流れが現われたものや1905年の和服の女性像のような伝統的な日本を連想させるものもあるが、いずれにしてもメデイアの表に女性がイメージとして登場してきたということが開化期を象徴する具体的事例として大切なことである。
現代社会では女性の社会進出が活発に行われ続けているが、開化期Ⅲ當時は社会を構成しているシステムは男性支配の社会的基盤の上になり立っており、この流れは今も残存している。女性進出の機会のはるかに少なかった時代において、西欧化の波の中で新たな日本の女性像を造り上げていく姿は女性誌の世界にも顕著に反映していた.これからも詳細に研究していくつもりだ。
국문 초록 (Abstract)
계몽 개화기의 1868년부터 1913년의 여성잡지에 있어서의 특징에 대해 조사를 하였다. 그 고찰의 결과로부터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 지명에서는 압도적으로 한자어...
계몽 개화기의 1868년부터 1913년의 여성잡지에 있어서의 특징에 대해 조사를 하였다. 그 고찰의 결과로부터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 지명에서는 압도적으로 한자어의 사용이 많았다.
2) 어휘의 측면에서, 종래에는「女學」「婦人」「女子」「女性」 네 가지로부터 되어있다고 하는 지적이 있지만, 조사한 범위에서는「婦女」「淑女」 등도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화기에는 여성잡지의 지명에「女性」의 명명은 한 예(一例)도 없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지명을 붙임에 있어서 「~보」보다 「~지」가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당시의 「magazin」의 일본어 번역이, 잡지라고 하는 정보 개념의 전달이라는 그 목적이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3) 말의 구성의 면에서 보면 「女學」「女子」「婦人」「女性」이 선항요소로서 쓰여졌다는 것은「女學雑誌」「女子文藝」등을 보면 알수 있고, 후항 요소로서는「家庭女學」「明治女子」등을 보면 알수가 있었다. 4) 여성잡지의 의미로「女學」 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日本之女學』(1887)로부터라고 일컬어진다. 이것은 새로운 근대화의 흐름 중에서, 여성 교육의 시대적 필요성에 따라 등장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후, 여성잡지의 지명의 주류는「婦人」이나「女子」에게 교체되었다. 여기서 살펴보면, 지명과 시대의 상관관계는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또 1893년『御國の母』과 같은 내셔널리즘을 고양시키는 지명을 가진 여성잡지도 나타났다.
5) 개화기의 여성잡지의 지명과 그에 사용된 문자색을 살펴보면, 흑의 사용이 지명의 문자의 색의 80%의 고빈도를 차지하며, 흑색 주체의 색채 공간의 시대였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계속 활발하게 행해지고 있지만, 개화기 당시는 사회를 구성해 있는 시스템은 남성 지배의 사회적 기반 이어서 이 흐름은 지금도 잔존하고 있다. 여성 진출의 기회가 훨씬 적었던 시대였고, 서구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일본의 여성상을 완성시켜 가는 모습은 여성잡지의 세계에도 현저하게 반영되고 있었다.
목차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