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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의 <<카르미데스>> 편에서 절제(sōphrosynē)와 자기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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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은 플라톤의 <<카르미데스>>에서 제시되고 있는 절제(건전한 마음의 상태: sōphrosynē)와 자기 인식에 관한 논의가 ‘혼에 대한 보살핌’의 문제와 관련해 지니는 의미를...

      본 논문은 플라톤의 <<카르미데스>>에서 제시되고 있는 절제(건전한 마음의 상태: sōphrosynē)와 자기 인식에 관한 논의가 ‘혼에 대한 보살핌’의 문제와 관련해 지니는 의미를 구명하고자 하는 글이다. 이 대화편 서막에 나오는 잘모크시스의 혼에 대한 견해는 ‘절제’가 비이성적인 측면을 포함하는 혼 전체의 덕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런 해석 하에서, 필자는 우선 <<카르미데스>> 편에서 ‘절제’에 대한 논의는 앎의 측면에서만 다루어지고 있고 욕망의 억제와 같은 절제 개념의 핵심적 측면이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견해는 잘못된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자기 인식의 성격과 관련된 크리티아스의 견해는 절제 있는 사람은 자기 이익을 확보하는 데 결코 무지한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인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의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함을 지적하였다. 연구자들 간에 쟁점이 되어 온 ‘자기 자신을 아는 것’에서 ‘앎의 앎’으로의 이행의 의미를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크리티아스의 자기 인식에 대한 견해를 고려해야만 하는데, 필자는 소크라테스적인 의미에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은 크리티아스가 이해하는 방식의 ‘앎의 앎’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이런 차이는 단순한 논리적인 오류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히고자 했다. 또한 ‘앎의 앎’은 단지 어떤 것은 앎이고 다른 것은 앎이 아니라는 형식적인 사실만 알 수 있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앎이 없는 공허한 것이라는 비판은 크리티아스의 자기 인식 개념에 대한 것이지 소크라테스 자신의 이해 방식에 대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카르미데스>> 편에서도 <<라케스>>, <<프로타고라스>> 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덕은 앎이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견지되고 있으며, 절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앎’임을 밝히고자 했다. 결국 소크라테스적인 의미에서의 자기 인식만이 인간에게 참으로 좋은 것에 대한 반성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절제, 즉 건전한 마음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카르미데스> 편의 논의는 ‘혼에 대한 보살핌’의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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