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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석(解釋)인가, 전유(專有)인가? - 20세기 한국의 『노자』 이해와 ‘동양철학’(東洋哲學) -

        김시천 ( Kim Si-cheon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9 儒學硏究 Vol.47 No.-

        오늘날 한국에서 『노자』는 유(儒)·불(佛)·도(道)라는 ‘삼교’(三敎)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텍스트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20세기 초에 공자와 더불어 노자는, 철학사의 원류인 ‘제자백가’(諸子百家)의 가장 중요한 두 기점으로 정립되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연원하는 갖가지 텍스트와 실천들은 동아시아의 철학적, 사상적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전통’의 핵심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19세기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노자』는 명백한 ‘이단’(異端)으로서, 배척의 대상이었다는 점은 종종 잊혀지곤 한다. 이 논문은 ‘이단’으로 배척되던 『노자』가 어떻게 중요한 하나의 ‘전통’으로 변화, 긍정될 수 있었는지 살피고 있다. 유가 텍스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호한 시적 문체로 구성된 『노자』는, ‘해석’(annotation)보다 ‘전유’(appropriation)를 통해 역사 속에서 전수되어 왔다. 특히 송대(宋代) 이래 문자의 세계를 주도했던 유가 문인(文人) 사대부(士大夫)는 ‘이유해로’(以儒解老)라는 전유의 방식으로 『노자』를 통섭 또는 포용하고자 했다. 몇몇 조선 유학자들이 남긴 『노자』 주석서는 그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거치는 근대로의 전환 과정에서, 서구의 ‘철학’(philosophy)이 유입되고, 대학 제도가 도입되면서 과거의 물적 기반을 상실한 전통적 학문 체계는 ‘문명화’와 ‘자기 정체성 유지’라는 커다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전통 담론은 ‘동양철학’이라는 범주로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했다. 한편 ‘서구’라는 거대 타자의 등장은 정통과 이단으로 구분하던 내적 차이를 ‘동양’ 이라는 집단 정체성으로 포용하면서, 마침내 『노자』는 ‘이단’에서 ‘전통’으로 변화, 긍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전유의 과정은 『노자』나 『장자』와 같은 소수 전통이 과거의 사회와 역사에서 씨름하고자 했던 현실과 그 문제의식을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 『노자』를 비롯한 ‘전통’은 현실의 문제를 씨름하기보다 ‘전통’을 구성하면서 과거의 가치와 의미를 긍정하는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게 되는 한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노자』에 대한 해석과 토론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는, 이러한 20세기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The thoughts of 『Laotzu』 (老子) have been considered very significant in Korea because they are one of the core elements to consist of the ‘Three Teachings’―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Particularly, Laotzu and Confucius established two important starting points of the mainstream, all philosophers and scholars, throughout the entire philosophy history at the beginning of twentieth century. Also, the following many related texts and actions have been regarded traditional key factors because these contributed to the process of East Asian philosophical history. However, his thoughts were clarified as heresy, and Confucian scholars in Chosun were unaware of them. This research shows how importantly the thoughts of 『Laotzu』 change into positive outstanding traditions. His thoughts have been compared with Confucianism texts because of ambiguous poetical styles, and historically conveyed through not annotation but appropriation. From Song Dynasty, influential Confucian philosophers and nobility in particular integrated or embraced his thoughts in the manner of ‘an annotation of Laotzu by Confucian ideas’’(以儒解老). Some Confucian scholars’s annotation of 『Laotzu』 in Chosun is a case in point. Also, from the late nineteenth to the twentieth century, the Western philosophy appeared in the University education and this made controversial issues about civilization and self identity, which caused East Asian philosophy to spontaneously change. In fact, the influential Western philosophy embraced Eastern philosophy as the collective identity without reference to the authenticity and heresy and therefore, the latter changed into the former and has remained positive. Nonetheless, unlike the thoughts of Laotzu and Chuangtzu on the reality and its awareness, this appropriation process makes these thoughts overlooked. His thoughts and the East Asian traditional philosophy have limitations not to try to solve the reality but to passively act and affirm the values and meanings on the past in accordance with the tradition. In this way, this research emphasizes the necessity of the twenty-first century 『Laotzu』 and his thoughts and reviews the twenty century 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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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학은 어떤 인간을 말하였나?

        김시천(Kim Si-Cheon) 예문동양사상연구원 2009 오늘의 동양사상 Vol.- No.20

        동아시아의 전통적 인간관, 특히 그 가운데 ‘몸’은 어떻게 이해되었을까? 우리는 그간 이러한 물음에 대해 주로 서구 혹은 근대적 인간 이해와 대조시키는 방식으로 논의해 왔다. 게다가 이러한 전통적 몸 이해를 구성하는 언어는 사실상 서구적 개념을 통해 논의되었다. 그래서 ‘몸’은 이성과 감성의 통일체이고, 정신과 육체가 합일된 나눌 수 없는 존재라고 이해되었다. 이것은 마치 ‘기氣’가 물질도 정신도 아니면서 물질이기도 하고 정신이기도 한 것이라고 말하는 논법과 닮았다. 이 글은 이러한 ‘몸’의 언어관에서 벗어나 전통적 용어를 다시 부활시키고자 하는 시도이다. 정신과 신체, 주관과 객관, 감성과 이성 등의 서구적 용어로부터 벗어나 문헌을 살펴보면, 그곳에는 인간을 표현하는 ‘칠규七竅’나 ‘구규九竅’와 같은 말과 만나고, 그 옆에서 우리는 ‘기’와 ‘정情’과 같은 말을 다시 살피게 된다. 유가나 도가라는 철학적 제약을 벗어나 공유되는 이러한 용어들은 우리의 몸과 우리 몸의 체험, 그리고 우리의 삶과 느낌이 담겨 있는 중요한 것들이다. 우리가 오늘날 전통적 ‘몸’ 이해를 시도한다는 것은 전통적 개념들을 근대적 용어로 번역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말들이 담아내고자 했던 그 ‘체험’과 느낌을 회복하는 것이다. 천지와 천하라는 자연적 사회적 공간 속에서 식물처럼 유비되는 인간의 몸은 일곱 개의 구멍, 아홉 개의 구멍을 지닌 존재이다. 이 구멍을 따라 왕래하는 자연의 기운은 곧 우리몸의 기운이 되어 다시 몸 밖의 세계와 감응하는데 그것은 바로 ‘정情’이 된다. 우리가 철학에서 말하는 ‘칠정’이나 한의학에서 말하는 ‘구기九氣’는 우리 몸이 세계와 감응하는 양태를 표현하는 말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기’는 우리 몸의 감응의 장에서 일어나는 ‘느낌의 언어’이며, ‘정’은 우리가 살아있음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말들은 비록 우리가 잊었으나 우리 몸은 아직 그렇게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잃어버린 언어를 우리의 몸의 느낌과 연결시키는 작업, 그것이 곧 전통적 ‘몸’ 이해로 가는 가장 손쉬운 지름길은 아닐까 하고 이 글은 조용히 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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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 노자(老子)와 제왕(帝王)의 도 -노자의 “전설”과 『노자』 텍스트에 대한 재검토-

        김시천 ( Si Cheon Kim ) 동양철학연구회 2012 東洋哲學硏究 Vol.69 No.-

        필자는 이 글에서 두 가지 논의를 담아내고자 했다. 첫째, 『노자』의 저자에 관한 기초자료로 간주되어 온 사마천의 「노자열전」에 담긴 전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노자열전」에 대한 그레이엄, 콘 등의 학자들의 치밀한 분석에 따를 때 우리는, 「노자열전」이 『노자』의 저자에 관한 사실들을 알려주기는커녕 오히려 한대의 시점을 가장 충실하게 드러낸다. 이를 통해 우리는, 『노자』가 하나의 인물이 아니라 다양한 전설들이 한데 얽혀서 하나의 ‘역사화 된’ 노자상을 만들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게다가 그 ‘역사화 된’ 노자는 한대 초기의 한 가문의 역사와 관련된다. 둘째로 필자는 그간 『노자』의 저자를 확정하려는 논의와 달리, 『노자』에 등장하는 인간에 관한 표현들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다른 제자문헌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성인(聖人), 후왕(侯王) 그리고 사(士)라는 정치적 유력자들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노자』의 화자와 청자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노자』라는 책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와 달리 보통의 백성이나 일반적인 의미의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들은 매우 부정적이고 피상적인 의미 외에는 부여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필자는 다른 어떤 문헌보다도 『노자』가 ‘호모 임페리얼리스’라는 당시 천하의 정치적, 사상적, 사회적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사람들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헌이라 제안하고자 했다. 이렇게 보면 『노자』는 물론 선진 제자백가 문헌에 대해 우리는 누가, 누구를 위해 제시한 텍스트 혹은 철학사상인가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연구 방법은 개념 중심의 연구가 놓치기 쉬운 몇 가지 지점들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데에도 일조할 것이라 생각한다. The Lao-tzu is not an easy text to read, translate, and interpret. Still, I believe that the problems with regard to the text and author of the Lao-tzu has not solved. According to the examination of Angus C. Graham, the legends of Lao-tzu in the Records of the Grand Historian reveals the complexity of the person, as an alledged author, that consists of legends originated from different sources. In this case we need to have an other approach to the Lao-tzu, the Lao-tzu text in itself, in particular, the personal pronouns. It resulted that the Lao-tzu was an text of the elite in ancient China, because the sayings of Lao-tzu normally addressed the ruling class about the issues of good government and social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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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의 형이상학과 과학

        김시천(Kim Sicheon) 한국도교문화학회 2009 道敎文化硏究 Vol.31 No.-

        이 논문은 유가와 도가를 아우르는, 기철학적 세계관에서 감정이 어떠한 의미와 위상을 점하고 있는가를 다룬다. 감정이란 인간의 바른 심성을 어그러뜨리거나 사회적 해악을 낳는 요소로서 인간의 본성에 속하지만 부정적이고, 절제되거나 벗어나야만 하는 그런 것으로 사유된다. 그러나 이것은 서양 근대철학적 사유의 영향 아래에서 성립된 견해이다. 나는 서구적 사유와 달리 고대 중국철학에서 만개한 인간 이해의 토대 자체가,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상과 달리 ‘정’(情)이라는 독특한 개념에 있다고 본다. 이 ‘정’은 근본적으로 우주와 인체에 충만한 ‘기’(氣)가 우리 몸에서 울려내는 생명의 리듬이자 표현으로서,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감응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정의 인간학’의 토대에서 형이상학적 사유로 나아간 것이 유가와 도가 및 제자백가의 공유점이었다고 필자는 본다. 그러나 도가와 유가로 대변되는 두 흐름은 도덕적 관점의 개입 여부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바로 이것이 유가와 도가의 자기계발의 차이를 초래했다고 이 글은 논증하고 있다. 유가의 경우 ‘심’(心)을 중심으로 도덕적 자기수양이라 부를 수 있다면, 도가의 경우는 ‘정신’(精神) 중심의 양생론으로 전개되었음을 『논어』, 『맹자』, 『장자』, 『순자』, 『노자』 등의 문헌 분석을 통해 입증하고자 하였다. 유가는 성선과 성악의 주장 여부에 상관 없이 도덕적 심성(心性)의 계발에 초점을 둔다. 이는 심(心)의 사유 능력에 바탕하는 것으로서, 사회적 조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윤리적 계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하며 따라서 이 글에서는 ‘심성수양론’(心性修養論)으로 규정하고자 했다. 이와 달리 『노자』와 『장자』를 위주로 하는 흐름은 ‘심’보다 ‘정신’(精神)의 허정(虛靜)한 경지를 강조하며 양생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 흐름을 ‘정신양생론’(精神養生論)이라 규정하고자 했다. 또한 양생의 이념을 통해 기의 정신론은 한의학이라는 과학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이 글에서 나는 이러한 사유의 사회적 원인을 제시하고자 했다. 유가든 도가든 제자백가의 사상가들은 불평등한 위계적 사회 속에서 생존을 위해, 자기 단련을 위해 이러한 이론들을 치열하게 제시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고자 했다. 이 글은 이러한 구도를 통해 이성과 감정, 정신과 육체라는 이원적이고 서구적인 접근보다 원전들에 충실하며, 고대적 사유의 흐름에 보다 가까운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리라 기대한다.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e-examine the theories of self-improvement in early China. In this paper what I mean the notion of ‘self-improvement’, is a term by which I have explained two visions of the Way as a comprehensive retainer. Some Scholar conceived two ways of self-improvement in classical Chinese thoughts as the concept, ‘self-cultivation’. But I believe that there were two trends of the theory for improving oneself in early China that had branched into two traditions, Confucianism and Taoism. In Confucianism one's endeavors for self-improvement aimed at the attainment of the superior man that was the ideal man in Confucian tradition. According to Confucians, he was not only a leader of his society but also a moral model for contemporary people. His primary tasks were at first to cultivate himself in both morality and literal ability, and later to preceed to guide all person's steps in the path of righteousness and to pacify all things Under Heaven. I will call the efforts of moral improvement in Confucian tradition as the moral self-cultivation. In a different way, Taoism sought after the Way and its power for their own happiness and longivity in the world. The core concept was the longivity in both the religious and the philosophical of Taoism. They developed various methods for their well-being, by which they would be reached the state of political stability and physical health. They made out many prescriptions such as non-activity, tranquility, silence, etc. And also they offered many methods for physical health such as the prevention of ejaculating essence, holding to spirit, etc. I will call the ways and prescriptions in Taoist tradition as the nourishing-life theory. The important differences are their theoretical foundations: the one based on the mimd-and-heart, the other based on the spirit-and-essence. But, the two, the mimd-and-heart and the spirit-and-essence, related to the concept of emotions which was the expression of our inner life and the motion of ch‘i. This Schma will give a light on understanding classical Chinese philosophy, I beli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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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精神)과 유희(遊戱)

        김시천(Kim, Sicheon) 한국도교문화학회 2012 道敎文化硏究 Vol.37 No.-

        ‘놀이’와 축제는 오늘날 일종의 문화적 장치이자 인간 본성의 일부로서 다루어진다. 그리고 동양 철학에서 이와 관련되어 단골로 다루어지는 텍스트는 『장자』이다. 이 점에서는 이 논문 또한 이러한 상식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유’에 관한 분석을 통해 놀이에 관한 기존의 논의와는 다른 차원의 요소를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장자』의 ‘유’(遊)’의 개념, 즉 ‘노닐다’는 말은 ‘놀다’와 ‘놀이’와는 일정한 의미상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분명 놀이의 요소를 포함하지만 그와는 삶의 차원과 더 가까운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장자?의 ‘유’(遊)’를 ‘놀이 정신’ 혹은 ‘유희 정신’이라 하며 그 자체로 놀이에 관한 담론이라고 접근하는 것은 제고될 필요가 있다. 둘째, 『장자』의 ‘유’(遊)의 개념은 정신적 요소와 관련된다는 점이다. ‘유’는 초월적이거나 종교적인 차원의 것과 관련되기보다 오히려 정치적인 것과 관련되며, 이로부터 기인하는 어떤 ‘정신적 초월’(心遊)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 ‘유’는 일정하게 무엇으로부터 ‘떠남’ 혹은 ‘거리두기’를 의미하지만, 정신적 과정으로서 마치 여행처럼 나갔다가 되돌아옴이며, 결국에는 ‘일상성으로 회귀’(世遊)한다. 셋째, 이러한 논의를 통해 『장자』에게서 드러나는 태도는 삶 자체가 ‘유’(遊)가 된다는 생각이다. 『장자』의 ‘유’(遊)의 정신은 현실이나 세속을 떠나려는 탈속적(脫俗的) 태도가 아니고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거나 변화시키려는 변혁적(變革的) 실천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의지가 아니라 한 개체가 겪는 갈등과 억압의 승화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자』의 ‘유’는 소극적이며 한계가 있다. 나는 이러한 ‘유’(遊)가 놀이로서 예술적 영감이나 창조적 활력을 가져온다는 평가에 동의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예술처럼 그러한 힘의 범위는 개체적이며 제한적이다. 따라서 그것이 우리 삶의 변혁, 삶의 조건의 개선, 삶의 향유의 가능성을 가져올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Play and fest have been studied for their characteristics such as a cultural tool or a part of human nature. Zhuangzi has been the most favorable text in this aspect in Asian philosophy studies. This paper is to articulate a new element of ‘play’ never examined in analogous researches, by analyzing a concept of you[遊], carefree wandering. The concept of ‘carefree wandering’ not only encompasses usual concepts standing for ‘play’. It can even embrace a life in whole. Thus the concept of carefree wandering needs to be studied further, diverging from a frame of play spirit alone. The new frame I suggest is carefree wandering as a spiritual transcendence. However I do not mean religions by putting ‘transcendence’, but politics. Carefree wandering can stand for leaving or keeping a distance from something, but also for going back to quotidian lives. To Zhuangzi, life is filled with carefree wanderings. You遊 does not tell you to leave from the world nor does it command to criticize or change the world. You遊 only asks a sublimation of conflicts and oppressions which are political events. This paper examines certain limits of Zhuangzi’s you遊 in this aspect. I am positive on the you遊 filling the role of bringing artistic inspirations and vitalities. However, this paper will shed light on the negative aspects of you遊 in bringing changes into ou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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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중국에서 ‘동물’(動物) 표상의 철학적 함의 ―동양철학 동물연구 서설 (1)

        김시천 ( Sicheon Kim ) 한국공자학회 2021 공자학 Vol.44 No.-

        이 논문은 매우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즉 고전 한자어 ‘動物’은 ‘animal’과 같은 말일까? 상식적으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動物’은 ‘animal’에 대한 번역어로서 본격적으로 사용되는 현대적 개념이란 점은 잘 지적되지 않는다. 실제 고전 문헌을 찾아보면 ‘動物’보다는 ‘禽獸’나 ‘蟲’ 등의 다양한 한자어들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설적 연구의 성격을 지닌 이 논문은 고대 중국의 고전 속에서 동물에 대한 표상과 그 철학적 함의를 다루고 있다. 이 글은 먼저 한국 학계에서 다루어 온 동물 관련 연구 논의들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면서, 보다 체계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아울러 고대 중국의 고전에서 동물에 대한 대표 분류어가 부재함은 물론 신과 인간 그리고 동물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묵자』, 『맹자』, 『순자』와 『장자』의 동물에 대한 표상과 그 맥락을 살펴봄으로써, 동물에 대한 인식 또한 문헌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살피고 있다. 현대생물학이라는 과학적 시각에서 자연과 동물의 세계를 일의적으로 바라보는 현대인과 달리, 고대 중국의 고전이 보여주는 동물에 대한 관점은 훨씬 다양하고 독특한 성격을 드러낸다. 오늘날 인간은 자연과 기계, 심지어 동물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커다란 인식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고대 중국의 고전에 등장하는 동물 표상을 연구함으로써, 고대의 철학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논문은 동아시아 전통에서 ‘동물’이 어떻게 이해되고 사유되어 왔는가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제안하고자 한다. 어쩌면 그런 성과 속에서, 과거의 세계관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함은 물론 나아가 21세기의 다양한 문제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This thesis begins with a very simple question. Is the classical Chinese word ‘animal’ the same as ‘dongwu’(動物)? Common sense might think so, but it was not pointed out that ‘animal’ is a modern concept that has started to be used in earnest as a translation for ‘animal’. If you look at the classical literature, you can see that various Chinese characters such as ‘chin-shou’(禽獸) and ‘chong’(蟲) were used rather than 'animal'. This thesis, with the character of an introductory study, deals with the representation of animals in ancient Chinese classics and their philosophical implications. This article outlines animal-related research discussions that have been dealt with in Korean academic circles, and raises the need for more systematic research. In addition, I pointed out that there is no representative taxonomy for animals in ancient Chinese classics, and that the boundaries between gods, humans, and animals are ambiguous. Lastly, by examining the representations and contexts of animals in 『Mozi』, 『Mengzi』, 『Xunzi』, and 『Zhuangzi』, we are examining that the perceptions of animals are also different. Unlike modern people who view nature and the animal world unilaterally from the scientific point of view of modern biology, the viewpoints on animals shown in ancient Chinese classics are much more diverse and unique. Today, humans are facing a major shift in how they relate to nature, machines, and even animals. We can understand ancient philosophy more concretely by studying animal representations in ancient Chinese classics. This paper intends to suggest that more active interest and research is needed on how ‘animals’ have been understood and thought in East Asian traditions. Perhaps through such achievements, we can not only understand the worldview of the past more concretely, but also gain a new perspective on the various issues of the 21st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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