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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고통에 대한 헤르만 바빙크의 견해

        박재은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2023 조직신학연구 Vol.45 No.-

        온 세상이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전쟁, 전염병, 살인, 자연재해, 대규모 인명사고 등 고통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곧 우리 모두의 현재적 이야기이다. 신자들에게도 고통은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경건하고 신실한 신자들에게도 고통이 찾아온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의심한다. 선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신자들의 고통에 눈을 감으시고 침묵하고 계시는가? 이런 신정론 문제는 교회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의견으로 분출되었다. 본고는 고통의 문제를 19-20세기 네덜란드를 살았던 개혁파 교의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의 빛 아래서 살핀다. 바빙크는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보다 더 본질적이고도 근원적인 접근을 했다. 물론투박한 접근일 수 있지만, 사안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본질 그 자체로’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바빙크의신정론 논조는 고통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에게 큰 신학적귀감이 된다. 이 지점을 드러내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본고의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과 계시 철학 에 나타난 네 가지의 큰 흐름, 즉 고통과 섭리, 고통과 죄, 고통과유익, 고통과 자연과학의 흐름 가운데서 고통에 대한 바빙크의 견해를 요목조목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 후 바빙크의 견해에 근거해 실천적 고찰 및 적용을 한 후 논의를 요약·정리하며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바빙크는 1차 세계 대전이라는 뼈아픈 고통을 겪었다. 전쟁의 치열한 틈바구니에서 고통에 대한 본질적인 신학적 진술을 했던 바빙크의 족적을 살피다 보면 현재적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 모두가 고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궁극적인 방향성 설정을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 The whole world is groaning in pain. Suffering from war, epidemics, murder, natural disasters, and large-scale casualties is no longer a story of a distant country, but a present story of all of us. Pain is not an unfamiliar story to believers either. Suffering comes even to pious and faithful believers. Many people, therefore, doubt the goodness of God. If a good God lives, why does he turn a blind eye to the suffering of believers and remain silent? There were various opinions on this issue of theodicy throughout church history. This paper examines the problem of suffering under the light of Herman Bavinck (1854-1921), a Reformed theologian who lived in the Netherlands in the 19th and 20th centuries. Bavinck took a more essential and fundamental approach to the problem of pain. Of course, it may be a crude approach, but Bavinck’s theodicy serves as a great theological example because the more complex the issue, the more effective it is to solve the tangled problems ‘by nature itself.’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pose this point. The order of progress of this paper is as follows. First, the paper will look at Bavinck’s views on pain among the four major trends in Bavinck’s Reformed Dogmatics and Philosophy of Revelation: suffering and providence, suffering and sin, suffering and benefit, suffering and natural science. After that, the study will summarize and organize the discussion and conclude the article after practical consideration and application based on Bavinck’s view. Bavinck experienced the painful suffering of the World War I. The study asserts that if we look at Bavinck’s traces of making essential theological statements about suffering amidst the fierceness of war, we will realize the ultimate direction for how all of us who are currently suffering should view suffering.

      • KCI등재

        괴로움의 병리학 : 자아, 경계, 체계 ― 불교 번뇌론의 체계적 재해석

        이기흥 대동철학회 2015 大同哲學 Vol.71 No.-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은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을 종종 자신의 외부에서 찾는다. 불교는 이와 달리 고통의 원인을 인간의 마음 안, 특히 아상의 관념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 아상이 말나식에서 유래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통의 극복을 위해서는 말나식이 만들어내는 아상과 같은 관념이 허상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불교의 <자아-무아론>을 켄 윌버는 <경계-무경계론>으로 재구성한다. 그는 진화의 순차적 단계를 따라 구성되는 다섯 수준의 의식의 스펙트럼을 상정하고, 각 수준에서 구성되는 ‘나’와 ‘나가 아닌 것’ 간의 경계들로 인해 고통이 생겨나오는 것으로 보면서, 고통치유는 경계지우기, 즉 무경계를 통해서 실현된다고 본다. 이에 반해 필자는 진화론 및 체계론적으로 재해석된 자아론의 기반 위에서 역기능적 체계구조로부터 고통이 생겨나고, 순기능적 체계구조로부터 고통치유가 실현된다고 보는 가운데, 체계론적 혹은 구조기능론적 고통이론을 제시한다. 즉 불교의 <자아-무아> 고통이론, 윌버의 <경계-무경계> 고통이론에 대해 필자는 (기능 관련) <체계구조-체계재구조화>의 고통이론을 제시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체계는 인간 삶의 평화 내지 행복을 위해 요구되는 <자아-이상(가치)-실재>의 공존을 보장할 수 있는 속성을 체화하고 있어야 하는 바, 그러한 속성은 자연과학적, 심리학적, 심리치료적, 인문학적, 철학적 설명, 유불도 전통의 지혜 등 광범위한 논의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이로부터 고통치유이론 및 실천들이 구성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People in everyday life usually seek the causes of suffering outside of oneself. Buddhism, on the other hand, proposes us to seek the causes of sufferings in our own minds, especially in the ego-image that is supposed to be produced by the Manas-vijnana. Buddhism goes on to say then, we need to go beyond the ego-centrism in order to let us be free from suffering. Ken Wilbur reconstructed this Buddhist theory of <self-selflessness> in a theory form of <boundary-no boundary>. He assumes a spectrum of consciousness of five stages that are configured in accordance with the successive stages of evolution, and then says that sufferings are caused through boundaries between 'ego'(inside) and 'non-ego'(outside) at every each level. He goes on to say that suffering can be cured by clearing such boundaries. In contrast to this new interpretative version of the Buddhist theory of suffering, the author of this article proposes, maybe supposed to be a synthesis of those two theories, a structural-functional theory of suffering that takes into account the theory of evolution and system-theory. This <(function-unsensitive) structure-(function-sensitive) restructuring> model might be viewed as a rival, on the one hand, to the Buddhist <self-selflessness> model and, on the other hand, to the Wilber's <boundary-no boundary> model.

      • KCI등재

        고통의 전체론적 이해에 근거한 변신론의 구상

        최규하 ( Choi Gyuha ) 한국가톨릭철학회 2020 가톨릭철학 Vol.0 No.35

        만연한 고통과 악의 현실에 직면하여 유신론 측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능하고 전선한 신의 존재를 옹호하고자 하였는데, 그 주요한 방식 중의 하나는 고통이 그보다 더 큰 어떤 탁월한 선을 위해 허용되는 것임을 밝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통을 상쇄하는 어떤 선을 제시함으로써 신의 선함을 변호하려는 변신론은 내적인 한계에 직면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곧 고통이 지니는 본질적 악함이 그 고통이 상쇄된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고통을 상쇄하는 어떤 선을 제시하기보다, 고통의 부정적 가치가 신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 어떻게 무산될 수 있을지를 밝히는 변신론을 구상하고자 하였다. 유기적 전체를 이루는 각 부분들은 전체와의 관계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됨을 주장하는 댄시의 조건주의에 따르면, 유기체적인 삶의 부분들은 독립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삶과의 관계 하에서 그 최종적인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며, 삶의 전반적인 온전성에 대한 위협이나 훼손으로 촉발되는 고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특정시점에서 겪고 있는 고통의 최종적인 가치는 내세를 포함하는 전체 삶과의 관계 하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한 개인의 전체 삶은 ‘신과의 완전한 일치’라는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짜여져 있을 때 탁월한 긍정적 가치를 지니게 되며, 이러한 가치로운 전체의 부분이 됨으로써 고통은 그 부정적 가치가 최종적으로 무산된다. 또한 인간은 신과의 완전한 일치를 통해 신의 영원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영원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전체를 한꺼번에 전반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되고, 결국 고통을 포함한 삶의 각 부분이 자신의 소중한 삶의 제거 불가한 부분을 구성함을 깨닫고 이들을 인정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하여 본 논문은, 고통 앞에서 전지하고 전선한 신의 존재를 변호하기 위한 변신론이 아니라, 인간이 고통의 경험과 마주하고도 신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는 것이 비합리적이지 않으며 나름의 종교적 경험 위에서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음을 논증하는 변신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Facing suffering and evil prevalent in the world, many theists have tried to defend the existence of an omnipotent and perfectly good God in various ways; and one of the favored ways is to suggest that suffering be allowed for the sake of some greater good that is to be brought about on account of that suffering. However, this attempt does not seem to be successful enough: the intrinsic badness of suffering still remains even after suffering has been balanced off by some greater good. Therefore, rather than proposing some candidates of good by which suffering is supposed to be balanced off, this paper aims to develop a defense that shows how the badness of suffering can be defeated in the sufferer’s life as a whole. According to Dancy’s conditionalism, the value of each part of an organic whole is determined by its relationship with the whole; likewise, parts of one’s life come to have their final value not independently but in accordance with their relationships with the life as an organic whole. Thus, in the case of suffering, which is elicited by the damage or threat to one’s integrity in general, its final value needs to be considered in terms of its relationship with the whole life including the afterlife. One’s life acquires excellent value when its parts are organically interwoven around her perfect personal union with God; and when suffering makes a part of this valuable whole, its negative value is finally defeated. Also, when one participates in God’s eternity through her union with God in the afterlife, since she is now capable of looking through every part of her whole life all at once from the perspective of eternity, she fully understands that each part including suffering makes an indispensable part of her precious life and gratefully accepts it. Dealing with this issue, in this paper I do not intend to propose a theory to defend the existence of an omnipotent and perfectly good God in front of suffering; rather, I aim to show that keeping one’s belief in God while experiencing suffering is not irrational at all but sufficiently justifiable on the basis of one’s own religious experience.

      • KCI등재

        감성의 형성 : 고통, 말할 수 없는 것: 역사적 기억에 대해 문학은 말할 수 있는가

        한순미 ( Soon Mi Han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09 호남학 Vol.0 No.45

        근대 이후 인간의 고통은 20세기 역사의 배면에 자리한 전체주의 적인 폭력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것은 역사 속에서 “우리” 자체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고통이다. 인간의 고통은 정치적, 윤리적, 인간적인 측면에서 조명되어야 할 복잡한 문제인 것이다. 이 글에서는 “역사적 기억에 대해 문학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60년대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김승옥, 서정인, 이 청준의 소설에 들어있는 역사적 기억과 고통에 관한 단상(斷想)을 읽어 보았다. 이들의 소설은 각기 다른 빛깔과 목소리로 제주4·3항쟁, 여순사건, 한국전쟁,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 유신체제 등 역사적 경험에 관한 기억을 쓰고 있다. 이들의 문학은 역사적 기억 속의 인간존재의 고통을 말함으로써 역사 속의 고통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도대체 왜 우리는 거기에서 고통을 느껴야 했으며, 나아가 그것은 왜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지속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다. 이들의 소설은 역사적 기억 중에서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천착하면서,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 있는 자 혹은 죽어가는 자와 같은 반(半)인간들, 시체 혹은 유골상자와 같은 비(非)인간들을 통해 역사가 남긴 고통을 말한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 그 자체보다 역사적 경험 이후에 “남겨진 것”을 재해석하면서 “인간적인 것”을 둘러싼 모든 개념들에 대해 검토한다. 이들의 소설에서, 역사적 고통의 정점에 있는 70년대 유신체제의 상황은, 인간적인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살아야 했던 사회, 현실인지 환상인지 가늠할 수 없는 “가위눌림”의 상태, 한번 들어가면 결코 살아 돌아오지 못한 “감옥”, 오직 죽은 자로서 살다가 시체로만 회수될 수 있는 “수용소”로 묘사된다. 즉 우리가 살아온 역사는 전체주의의 논리를 지배이념으로 체계화함으로써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시키고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강요해온 곳, 유토피아의 건설을 목표로 인간의 본성 자체를 바꾸어 결국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수용소와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이 구별될 수 없었고, 오직 “인간 이라는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을 안겨주었다. 이들의 문학이 우울한 어조로 역사를 말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해서 결코 허무적이거나 패배적인 것은 아니다. 이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무력한 주인공들은 기본적인 요구조차도 허락되지 않은 역사적 상황 속에서 쓸모없어진 존재들이다[無用]. 그러나 이 무용한 존재가 할 수 있는 선택 중의 하나는 자기 안의 열정을 제거한 채 의도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면서[無爲] 부정적인 역사의 흐름과 거리를 두고 그 이면의 어둠을 기록하는 일이다. 그것은 숱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역사의 어두운 손길에 대한 “방법으로서의 거절”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 소설가의 시선은 실증주의자의 눈이 아니라 해석학자의 눈에 가깝다. 그들의 눈은 과거의 역사적 기억과 비판적인 거리를 둔 채, 그것을 지금 여기에 놓인 세계의 현상과 끊임없이 겹쳐 읽음으로써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모색하고자 한다. 역사의 부정적 물결을 거슬러 나아가는 방법으로서의 무용(無用)과 무위(無爲) 사이에서, 이들의 문학은 역사적인 고통이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언제나 되살아날 수 있다는 묵시적인 예언을 들려준다. 가장 약한 자의 시선과 가장 수동적인 몸짓으로 역사적 기억을 말하는 문학의 자리에서, 역사의 잔혹함과 인간의 고통이 점점 드러나고, 역사 바깥에서 아직도 머문 채 서성대는 익명의 사람들의 죽음이 되새겨진다. 바로 여기에 “약함”의 문학적 정치성이 들어 있다. 이들의 문학에서 역사적 기억을 말한다는 것은 구멍 뚫린 역사적 기록의 빈 곳을 채우면서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적인 폭력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미래의 과제를 제시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즉 역사적 고통에 대해 이들의 문학이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고통의 해결이나 제거가 아니라 고통을 주었던 부정적 역사와의 간격을 지탱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변질되지 않도록 애쓰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반복해서 겪지 않으려는 눈뜬 성찰이다. 문학은 고통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역사적 기억에 대해 말하는 것을 지속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갖는다. 이것이 가장 “사실”적이지 못한 문학(문학적 상상력)이 역사적 기억과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음에도 말해온 것이며, 앞으로도 말해야 할 것이다. Ever since the modern era, pain of humankind has sustained undetachable tie with totalitarian violence which is spread over the background of the history overwhelmingly. The pain itself represents the agony which is derived from the acceptance of “ourselves” destructed thoroughly. For this reason the pain of humankind requires complicated consideration including political, ethical and human aspect in itself. In this study, the question regarding whether literature holds the capacity for historical memory leads profound examination on the historical memory and pain in the novels of those who represent modernism literature of 1960s, like Kim Seung-ok, Seo Jung-in and Lee Chung-jun. Their novels deal with the memory on historical sphere of the 4ㆍ3 Resistance in Jeju-Do, Yeo-sun incident, Korean war, April 19th revolution, May 16th coup d`etat and Yushin system. By describing the humankind``s pain within historical memory, their works ponder the issues on the origin and prevalent tendency and the reason why it is duplicated and persistent. Clinging to one`s death as a historical memory, the novels delineate the pain left behind the history, the dying and living, the half-being on the procedure of dying, or the non-being such as a dead body or one in an urn of funeral ashes. The remains rather than historic event itself is mainly the object of reinterpretation and all surroundings of human being as well. In these novels whole condition under Yushin system of 1970s, the apex of historical pain, is a mara experience which allows no distinction between reality and illusion and deprives all kind of humanness, a prison of no life time return and a camp which provides dead-alive condition and dead coming out eventually. In other words, the history we have gone through is a period that made us be ashamed of our human being by establishing totalitarian logic as a domineering notion which causes destruction of physical and mental status. Furthermore, it was like a camp that transforms human nature into useless existence in order to construct utopian society, where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human and non-human available but shame at our being human. The pessimistic tone toward the future collapse does not necessarily incline to nihilism or defeatism though. The writers consistently meditate on history with indifferent stand point without any interest, desire and passion, as a method for an existence who is no longer useful in any aspect to survive the atmosphere where there is no human demand get accommodated. Located between the useless and the inert, these novels reveal the cruelty of history and reflect anonymous pain and death lied on the outside of historical territory. Here is the vulnerability as a literary politics. Successors of literature naturally inherit the reason of continuing to tell the historical memory as the pain get exacerbated. Though limited as the most unrealistic genre in debt of imagination, literature has kept saying about the pain and historical pain and should go on accordingly.

      • KCI등재후보

        고통의 철학과 심리학

        석봉래(Seok, Bongrae) 인제대학교 인간환경미래연구원 2015 인간 · 환경 · 미래 Vol.- No.15

        이 논문에서 필자는 고통의 철학적 (존재론적) 본성과 심리학적 특징들을 논한다. 필자는 고통을 현상적 속성으로 규정하고 그 인지심리적 그리고 신경과학적 특징들이 어떤 철학적 함축을 가지는 지를 이 논문에서 고찰해 보았다. 첫째, 고통은 현상적 속성이다. 그 본질과 현상이 분명히 구분되는 물의 경우와 다르게 고통은 현상(고통의 지각이나 경험)이 그 본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속성이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고통의 심리학이 고통에 관한 철학적 (존재론적 혹은 본성적) 논의에서 중요하게 된다. 둘째, 고통에는 통증과 아픔이라는 부분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전혀 다른 과정들이 있다. 셋째, 타인의 고통을 지각하는 방식은 계산적 정보 처리의 지각과정이 아니라 체화된 공감의 시뮬레이션 과정이다. 이러한 공감 과정은 사회적 인지와 도덕적 동기화(공감과 배려의 동기)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 논문의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고통의 본성과 고통의 지각에 관한 철학적, 인지과학적 논의를 바탕으로 두 가지 실천적 함의가 논의된다. 첫째, 타인의 고통에 대한 체화된 공감 과정은 도덕 발달과 도덕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둘째, 고통의 본성을 잘 이해하는 것은 고통에 관한 사회 문화적 특징들이나 형법이나 배상적 정의에 관련된 정책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In this paper, I will discuss pain’s ontological nature and psychological features. First, pain is a phenomenological property. Pain experience or pain perception is intrinsically related to the essential nature of pain. For this reason, psychology of pain is critically linked to philosophical discussion of pain. Second, pain has two dimensions: feeling pain (pain sensation) and having pain (pain emotion) are two overlapping and interacting yet psychologically distinct and dissociable processes. Third, perception of others’ pain, according many studies in psychology and neuroscience, includes the embodied empathic processes of social and moral cognition. Pain is not a simple sensory process of bodily injury or damage: experience and perception of pain include embodied simulation, social and moral cognition. Based on my philosophical and psychological analysis of pain, I will also discuss the two following points. Embodied and empathic processes of pain play important roles in moral development and moral education. Understanding psychological and phenomenological nature of pain can help us develop or modify legal and social policies, particularly policies regarding punishment and criminal justice.

      • KCI등재

        ‘고통’의 무대화에 대한 재고(再考) -연극 <장기자랑> 분석을 중심으로

        서나영 ( Suh¸ Nayoung ) 한국연극학회 2021 한국연극학 Vol.1 No.78

        타자의 고통을 무대화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자신의 고통 혹은 타자의 고통에 대한 무대화는 고통의 순간을 무대로 소환하여 슬픔, 분노, 절망과 같은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로 ‘스토리텔링’을 담당하는 영화나 연극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전격적으로 작품의 소재나 주제로 잡는 일이 빈번하다. 전쟁, 학살, 폭력, 사회적 재난 등 역사에 실재했던 비극적 사건이 무대화 되는 것은 결국 무대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관람하는 사람들 모두가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서로 소통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애도의 몸짓이든 정치적 구호이든 치유의 장치이든 사회적 사건에 대한 고통을 사적영역에서 꺼내와 공적 영역에서 함께 다루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고통을 무대화 한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다양한 방식의 증언을 통해 어떠한 사건을 기억하고, 또한 그 무대를 경험한 관객들에게 감정, 정서, 사고(思考), 행동 등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전제된다. 이 글에서는 모든 위험과 불안함을 끌어안고도 증언 불가능, 재현 불가능의 사건을 굳이 무대에 올리는 시도들이 이뤄내는 소통의 형식들을 살펴봄으로 인해 고통을 무대화하는 과정을 재고하고자 한다. 특히 세월호 사건이라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 경험과 연결된 무대를 통해 타인의 고통 혹은 사회 구성원의 비극적 기억을 무대화하는 것에 대한 의미-그런 무대화들이 이뤄낸 것들, 혹은 그렇지 못한 것들-를 고찰하는 것은 연극이 타인의 고통을 다룰 때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 그리고 해서는 안 될 것들까지 정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장기자랑>은 유가족 배우들을 통해 그들이 고통과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의 고통을 섬세하고 안전하게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을 살펴보며 고통을 다루는 연극이 관객과 할 수 있는, 혹은 해야만 하는 소통의 전략을 살펴본다. What does it mean to stage the suffering of others? The stageing of one’s own pain or other's pain summons the moment of suffering to the stage, rekindling emotions such as sadness, anger, and despair. Tragic events that have existed in history, such as war, slaughter, violence, and social disasters, will be staged because everyone who makes the stage and everyone who watches it wants to communicate with each other through tragic situations. Therefore, most stage is based on the intention of remembering an event through testimony in various ways from various people, and also causing emotions, thoughts, and actions to audiences who have experienced the stage. In this article, I would like to reconsider the process of staging suffering by analyzing the forms of communication made by attempts to staging suffering of others. Especially, I will focus on the strategies of communication through < Talent Show > that a play dealing with suffering.

      • KCI등재

        고통의 종교적 의미 형성을 위한 전환학습

        백은미(Paik, Eun-Mi) 한신대학교 신학사상연구소 2016 신학사상 Vol.0 No.174

        한국 사회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대형참사, 테러, 전쟁 등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 현실은 동시대인들의 반성과 책임 있는 행동을 요청한다. 사회구조적 악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의 문제에 무감각하고 무관심하면 비극적인 사건들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고통을 하나님의 정당성과 인간의 불가해성으로 설명해 온 전통적인 신정론과는 달리 정치신학, 해방신학, 과정신학, 세월호 이후 한국신학은 사회악으로 인해 무고하게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 고통당하고 불의한 고통에 저항하며 함께 싸우는 정의와 연민의 하나님을 강조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신학적 성찰을 토대로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고통의 실체를 정직하게 대면하고, 그 고통의 의미를 주체적으로 형성하고, 고통의 원인이 되는 사회악을 극복하기 위해 개인과 사회적 차원에서 삶의 전환이 일어나도록 돕는 전환학습(transformative learning)을 제시하고 있다. 전환학습은 네 과정으로 나뉘는데, 먼저 고통에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의 의식을 깨워 사회에 내재 되어 있는 고통의 실체에 대해 주체적으로 인식하도록 한다. 두 번째는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해온 전통적인 종교적 해석의 내용과 그 의미가 형성된 과정과 신학적 전제에 대한 질문들을 통해 기존의 의미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도 록 한다. 세 번째는 비판적 성찰로 해체된 의미를 공동체 안에서 합리적 담화의 과정을 통해 재형성하고, 고통 받는 이들과의 공감적 연대를 형성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고통의 종교적 의미관점을 재형성하고 그 의미의 행위주체로서 미래의 행동을 전환하도록 한다. Tragic incidents, terrors and wars involving many innocent victims underline the need for Christians to reflect upon their moral responsibilities and take action. If people continue to be apathetic and numb to the human suffering caused by systemic evil, similar tragedies can continue to occur and any individual in this society can be a potential victim or apathetic accomplice. Unlike traditional theodicy that has stressed God’s legitimacy and inability of the humans to understand suffering, political theology, liberation theology, process theology, and Korean theology after the tragedy of ferry Sewol have developed the idea of a ‘suffering God’ with human and a ‘liberating God’ who wants to liberate suffering people. Based on these theological understandings, this article explores a transformative learning method that helps Christians become more aware of the reality of suffering caused by social evil, critically reflect the multi-layered structure of it and previous understandings of suffering, and transform suffering situation through new meaning-making and action. Transformative learning starts from confronting the reality of suffering, by awakening from apathy or numbness. Secondly, for mature transformation to occur, there must be a conscious and critical reflection on previous religious assumptions and interpretations about suffering. Critical reflection begins with critical questioning about pre-existing beliefs, values, assumptions, and perspectives. Thirdly, learners may reconstruct the meaning of suffering through rational discourse in a trusted community of faith and build empathic solidarity with those who suffer. Finally, meaning-making process of suffering should not end in hermeneutic work, but should force people to make a commitment to take action to eliminate suffering. The Christian meaning-making process demands the realization of vocation and practical action.

      • KCI등재

        몸의 고통, 통증과 신비 사이에서

        최정화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2014 철학논집 Vol.39 No.-

        몸의 고통이 없는 것을 행복이라고 여기는 우리 시대의 행복관을 비판적 으로 보고 상대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본고는 서구 종교사상과 철학에서 몸의 고통 담론이 변화하는 것을 사상사적으로 추적해 보고자 한다. 서구 사상의 뿌리인 그리 스도교 사상과, 그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현대 철학에서 몸의 고통에 대한 의미 의 변화지점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고통 담론들을 다루어 본다. 구약 성경의 욥기와 중세 신비주의 사상가 하인리히 소이세(Heinrich Seuse)를 통 해서 그리스도교 전통 내에서 중세기에 들어가면서 고통이 종교적으로 긍정되는 현 상을 살펴보겠다. 그러한 그리스도교적 고통 담론에 대한 유보적 비판자로서의 프 리드리히 니체의 금욕주의적 고행에 대한 비판지점을 검토해 본다. 마지막으로 한 스 게오르그 가다머를 통해서 현대의 지성적인 고통 이해 방식을 모색해 본다. 고 통에 대한 정신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는, 몸을 미적이고 물질적인 대상으로 축소시 키는 현대의 몸 이해를 비판할 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가 된다. 이러한 사고는 고통 의 치유 문제를 다룸에 있어 의학과 더불어 종교적 통찰과 철학적 사고가 어우러 져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몸의 고통을 치유할 때 단순히 통증을 없애는 것을 넘 어서서, 고통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문화적이나 실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인간학 적 틀에서 접근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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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고통과 치유의 하느님

        김선희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2013 철학논집 Vol.35 No.-

        이 논문은 무고한 자의 고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구약의 &lceil;욥기&rceil; 텍스트를 토대로 하여 인간의 고통의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논의한다. 욥처럼 죄 없는 무고한 자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인간의 고통이나 악의 문제에 대한 물음은 달리 제기되어야 한다. 그것은 고통이나 악의 존재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한 물음이 아니라, 고통 받는 자를 진정으로 위로하거나 치유하기 위한 물음이어야 한다. 이는 인간의 고통과 악을 정당화 하거나 설명하려는 이론적 물음으로부터 인간의 고통과 상처에 대하여 어떻게 공감하고 위로하며 치유할 것인지 하는 실천적 물음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나아가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하여 고통 안에서 새로운 하느님의 상을 묵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인간의 고통을 단죄하는 윤리적 신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위로하는 치유자로서의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요청된다. 필자는 구약의 욥기에서 시작하여 성서 안에서 치유자로서의 하느님의 모습을 추적하면서 고통의 치유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성서에 나타나 있는 위로와 치유의 하느님 모습을 통하여, 오늘날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는 프랙티스 과정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고 실천해야 하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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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 주체성 그리고 덕

        박혜순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2005 철학논집 Vol.11 No.-

        레비나스에 따르면 고통은 완전한 수동성의 상태를 말한다. 고통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으며 삶의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완벽한 수동성에 놓여 있음을 뜻한다. 때문에 우리의 감각은 고통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성은 고통을 기꺼이 수용한다. 과실이 익기 위해서는 비바람을 맞고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견뎌야 하듯 고통이 따르지 않으면 인간의 정신세계도 높은 경지로 승화되기 어렵다. 위대한 덕의 소유자는 크나큰 고통을 통해서 키워진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정신적인 깊이는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맹자에 의하면 모든 현인들이 때를 만나 등용되기 전에는 참담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 고통의 시간은 그들을 성숙시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고통없이 성숙되는 인간은 없다. 위대한 인물은 모두 고통으로 단련된다. 그들은 '마음'의 괴로움과 '근육과 뼈'의 '수고로움'을 견뎌야 하며, '육신의 굶주림'마저 겪어야 한다. 그들은 그런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큰 인물로 성숙되어 간다. 고난은 인간을 강건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주체성을 확보한다. 고통이 없었다면 아마도 도덕적 문제는 전혀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고통은 주체성을 확보하게 하는 하나의 단초이다. 고통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라면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삶 역시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한다. 고통이 없었다면 덕을 키워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고통은 덕을 쌓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하나의 도구이다. 고통의 본질은 덕을 쌓고 진정한 의미의 주체로 완성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공자는 군자의 고통이 외적 조건에 있지 않고 도를 잃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마음에 있다고 했다. 따라서 유가적(儒家的) 세계관에서 고통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내적으로 성숙시켜주는 하나의 과정이며 단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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