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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와 만난 한국의 도교 -이능화 『조선도교사』의 기본입장을 중심으로-

        이종성 한국동서철학회 2010 동서철학연구 Vol.58 No.-

        이 논문은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에 나타난 기본입장을 검토해보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이능화는 역사의 좌절과 절망을 딛고 자신의 책무를 국학연구의 의의에서 확인받고자 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지식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것이 문제가 되어 아직까지 친일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국학관련 저술들은 이능화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를 제기하기에 전연 부족함이 없다. 이능화의 『조선도교사』는 한국도교의 역사를 통사적 관점에서 그 특징과 전개과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저서이다. 그것은 한국도교사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 성과에 해당한다. 이능화는 『조선도교사』를 통해 한국도교 기원설을 주장하는데, 무엇보다도 그 기원을 단군신화에서 찾는다는 점이 주목된다. 단군신화를 역사적 기원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민족의 기원을 단군으로부터 확인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 의의는 매우 크다. 그것은 일제의 조선사에 대한 식민사관을 부정한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이능화는 한국도교 기원설을 통해 주체의식을 발견하고자 하였고, 이를 통해 나라와 민족을 재발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조선도교사』가 민족주의적 성향을 갖게 한 충분조건이었다. 이능화는 소격서 철폐의 사건을 민족주의적 측면에서 비판한다. 그는 소격서 철폐사건이 유교적 사대주의자들에 의한 민족적 자긍심의 포기의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고 비판한다. 본래 천손의 자손이라는 민족적 자부심이 도교의 몰락과 함께 주체를 무력화시켰다는 것이 이능화의 인식이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 이능화는 도교가 근대 지향적 사유의 형성에 이바지하였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그는 중국 또는 중화를 조선과 동열에서 대비하고 `지나’라고 표현할 뿐만 아니라, 유교적 도덕주의를 `악한 도덕’이라고 비판하면서 근대 지향적 도덕으로서의 `선한 도덕’을 제창한다. 빈부·귀천·강약·남녀의 차별을 혁파하는 것이야말로 `선한 도덕’이라고 본 이능화는 근대 지향성과 도덕 지향성을 양립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한다. 本論文是以李能和的《朝鮮道敎史》爲中心,探討其基本思想爲主旨而設計的。李能和是日帝强占期,立足于歷史的挫折和絶望,把國學硏究的意義爲己任的代表學者。他因曾贊加過朝鮮史編修會而自今未能擺脫親日的嫌疑。但是他所留下的相關國學著述,有充分的證据能구再次評价李能和。李能和的《朝鮮道敎史》是一部把韓國道敎的歷史以通史的角度具?闡述其特征和展開過程的著作,算是對韓國道敎史硏究的先驅成果。李能和通過《朝鮮道敎史》主張韓國道敎的起源說,特別是把起源的根据在檀君神話中尋?。把檀君神話當做歷史的起源是意味着把檀君視爲民族的起源之故,其意義甚深。這還意味着否定日本帝國主義對朝鮮的殖民歷史觀。李能和想通過韓國道敎的起源說來尋?主?意識,以此來再次尋?國家和民族。因此,《朝鮮道敎史》具有民族主義性向。李能和從民族主義的側面上批判撤銷昭格署的事件。他遣責說撤銷昭格署的事件就是儒敎事大主義者們放?民族自豪感的宣言。李能和認爲原本的天帝子孫的民族自豪感伴隨着道敎的沒落而被消?,但是道敎却在近代志向性思維的形成做出了貢獻。所以,他把中國或中華看成是同朝鮮相等的位置,故稱其爲‘支那’,幷批判儒敎的道德主義是‘惡的道德’,進而提倡作爲近代志向性道德的‘善的道德’。李能和認爲消除貧富貴賤强·弱·男女等差別才是‘善的道德’,幷主張同時建立近代志向性和道德志向性。

      • KCI등재후보

        도교와 중국의 현대화

        서대원(徐大源) 한국도교문화학회 2005 道敎文化硏究 Vol.22 No.-

        본 연구는 ‘도교와 중국 현대화의 상호 영향 관계’를 고찰하고 예측함을 목적으로 한다. 단 본 연구에서 말하는 ‘도교’는 도교에 종사하는 도사와 그 신도들 그리고 그들의 교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널리 퍼져 있는 ‘도교적 사유’를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도교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분석을 하기 위해 도교를 道敎의 道와 道敎의 術로 나누어 살펴보았고 ‘현대화’는 ‘민주’ ‘과학’ ‘시장’이란 세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본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① 도교와 민주 : 도교는 출세간의 사상이 아니면서 상대적으로 정치의식이 약하다. 이런 이유로 ‘민주화’에 적극적인 기여는 없을지 몰라도 커다란 장애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② 도교와 과학 : 도교의 양생은 본래 과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도교는 서양의 과학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리라 예상된다. ③ 도교와 시장 : 도교와 시장은 모두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는 기반 위에 성립된다. 이런 이유로 중국이 개혁개방한 이래 시장이 점차로 발전하고 인간의 욕망이 점점 긍정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도교의 기본적인 사유방식도 시장 발전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도교의 術은 현대화에 장애요소로 작용하는 면이 많은 반면 도교의 도는 일정기간 현대화에 긍정적 기여를 하리라 생각한다. 단 도교와 현대화의 관계는 쌍방간의 관계로 이루어질 것이며 상호간에 변화를 유도하리가 생각된다.

      • KCI등재

        道敎勸善書의 후대에의 영향과 그 의의

        윤찬원(尹燦遠) 한국도교문화학회 2017 道敎文化硏究 Vol.47 No.-

        일반적으로 선서는 선행을 권장하고 악행을 징벌하는 윤리도덕적인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도교권선서라 함은 전통의 도교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꾸준한 선행을 쌓게 하고 그렇게 하여 神仙이 될 수 있다는 이상형을 제시한다. 도교권선서는 11~2세기경 중국 宋 나라 때 통치자의 옹호 아래 번성한 것으로, 철두철미 勸善懲惡으로 積善成仙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도교권선서의 원형은 1~2세기 後漢時代 『太平經』이다. 최초로 『太平經』에 형상화되었던 권선서의 형식이 정형화된 것은 宋나라 때이다. 이 시대의 권선서라는 이름을 가진 도교권선서의 성행은 한편으로 도교권선서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간주되었던 도교가 세속화・민간화하는 현상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積善成仙과 유교・불교・도교간의 三敎合一이라는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도교권선서를 표방하는 경전들은 매우 많지만, 여러 시대에 걸쳐 간행된 『太上感應篇』, 『…陰騭文』, 『…功過格』 등이 그 실례이다. 이러한 권선서들은 시대별로 다양하게 출간된 것이었다. 도교권선서는 일차적으로는 도교라는 종교신학적 금기나 종교적 계율의 형태로 나타난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사상으로 표현되는 윤리도덕이었던 것이다. 宋 나라 이후 元・明・淸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권선서의 형식으로 나타난 것들은 선행을 권장하거나 악행을 경계한다는 면에서, 자체적으로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지니고 있다. 권선서마다 시대별로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권선서들은 그러한 선악관을 제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행위를 하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권선서는 당시의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각종의 환경파괴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러한 문제들을 극복하도록 인도하는 윤리도덕적 지향을 가짐으로써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강력한 도덕지침서가 될 수 있다. 전통의 도교권선서는 후대인들에게 선악관념 등에 영향을 끼쳤으며, 선한 행위를 쌓으면 보상을 받고, 악한 행위를 쌓게 되면 자신뿐 아니라 후손들까지도 응분의 징벌을 받는다는 도덕관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다.

      • KCI등재후보

        齋醮文의 절대자 관념을 통해 본 조선 초의 道敎思想

        윤찬원(Yun Chan-Won) 한국도교문화학회 2003 道敎文化硏究 Vol.18 No.-

        이 글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科儀道敎라 일컬어지는 한국의 도교에서 사용된 齋醮文에 나타나는 절대자 관념들을 분석하여 거기에 참여하였던 그 시대의 지식인, 곧 儒敎的 讀書人들이 도교나 도교적 세계관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거기에서 드러나는 도교사상사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齋醮는 禳災祈福의 일을 당사자를 대신하여 도사가 여러 신에게 빌어주는 도교 제례인데, 거기에 사용된 재초문은 중국 六朝時代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재초를 통하여 국가적으로는 천재지변이나 전란 등의 재앙을 막아 나라가 평안하고, 조화로운 기운이 충만하여 백성들이 풍요롭고 기쁘게 살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것이었다. 이 글은 먼저 청사들에 보이는 공통적 형식을 살펴보고, 거기에 나타나는 도교적 절대자 관념들의 성격을 분석한다. 도교적 절대자 관념은 그 자체 도교적 세계관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 도교 재초문에 나타난 그러한 관념들은 중국적 도교의 세계관 뿐 아니라 한국화된 도교적 세계관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재초문, 특히 조선시대 도교적 의식에서 주로 사용된 청사(靑詞)에 나타난 절대자 관념들은 「道」, 「三淸」, 「太一」, 「上帝」, 「上天」, 「昊天」, 「天」, 「北斗」, 「南斗」, 「紫微」, 「玄武」 등인데, 이러한 개념들 모두는 중국 도교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 측면을 갖는다. 그 중 「道」, 「三淸」, 「太一」 등은 조선시대 재초문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었던 관념들로서, 이런 측면에서는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일견 도교적 전통을 거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당시의 집권층이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종교적 관행인 「도」 등에 대한 제사를 통하여 개국으로 인한 끊임없는 전쟁과 재앙, 기근의 발생을 종식시키고 종묘사직의 공고화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조선시대 중기 소격서 등이 공식적으로 혁파되기 이전까지, 바꾸어 말하면 성리학적 세계관 또는 그 이데올로기가 국가적 지도이념으로 공고화하기 이전까지, 왕의 명령으로 재초문을 작성해야 하였던 성리학적 지식인들은 이중적 자세를 보여준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재초문이라는 도교의 의례형식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도교적 절대자 관념과 성리학적 관념을 절충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도교적 절대자 관념을 성리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재초문에 나타나는 절대자 관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道」 관념이다. 그런데 성리학자들은 도를 제사의 대상으로 신성시하면서도, 성리학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정착되어 가던 조선조 초기가 되면 도교적 「도」관념을 성리학적으로 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강렬하게 인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 초기 도교적인 「도」관념과 성리학적 「도」관념이 융합 또는 혼합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성리학자들은 도교?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관학화하는 분위기에서 도를 철두철미 성리학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적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도교적 세계관내에서의 「도」관념 또한 성리학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원래부터 마련되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노력은 조선조 초기 성리학자인 權近, 尹淮, 李承召 등의 재초문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 KCI등재

        백제문화의 도교적 요소

        김영심(Kim Young-Shim) 한국고대사학회 2011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64

        본고에서는 문헌을 통해 백제의 도교 성립 문제를 간단히 언급한 후, 물질자료를 중심으로 백제의 도교문화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도교와 관련되는 새로운 자료인 苑池유적, 醫藥, 목간자료 등을 분석하고, 무령왕릉, 금동대향로에 대해서도 새롭게 해석을 해보았다. 백제의 宮苑은 연못을 만들고, 三山의 형상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중국의 도교적 정원과 맥락이 닿는다. 궁궐의 원지유적 이외에 귀족의 苑池유적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백제에서는 도교의 치병?양생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本草學이 발달하였고, 단약의 제조도 이루어졌다. 일부 귀족 사이에서 ‘五石’이 복용될 가능성은 있으나 광범위한 현상은 아니었다. 부여 능산리나 나주 복암리 출토 목간 중에는 도교의례나 음양오행과 관련된 것도 보인다. 買地券, 鎭墓獸, 銅鏡을 중심으로 한 무령왕릉 출토 유물은 ?邪만이 아니라 昇仙을 위한 장치였다. 금동대향로도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이룬 세계, 자연과 하나된 신선의 세계에 대한 지향이 형상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백제 도교의 성립 문제가 더욱 분명해지게 되었으며, 백제 도교문화의 특징까지 일별할 수 있게 되었다. 苑池유적이나 本草學 등은 한성 시기부터 나타나지만, 한성시기에는 도교적 요소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웅진?사비시기를 거치면서 무령왕릉이나 금동대향로에서 보듯이 도교적 세계관이 명확히 드러나게 되었다. This paper briefly over-viewed the establishment of the Taoism in Baekje through an analysis of literature, and examined the Taoist culture in Baekje through the analysis of various physical materials. This paper reviewed the new evidences for the Taoism of Baekje such as the relics associated with the palace gardens and ponds, herbal medicines, and wooden tablets. This paper also tried a new interpretation on the evidences for the existence of Taoist culture in Baekje such as the tomb of King Muryeong, the Great Gilt-bronze Incense Burner. In the palace of Baekje were artificially constructed gardens. The palace garden was decorated with strange rocks and bizarre stones, strange birds and flowers were raised. Even the Taoist’s three mountains were realized in this garden. These facts showed us that the palace gardens and ponds of the Baekje were connected with China’s Taoist garden. On the other hand, in Baekje, a pharmacology which was closely related to the Taoist treatment of diseases and lengthening of life was advanced, and the elixir of life was manufactured. Some aristocrats may have used the elixir of life, and it was not a widespread phenomenon. On the ruins of Neungsan-ri temple in Buyeo and Bokam-ri in Naju, a few of wooden tablets which were associated with the Taoist ritual and Yin-Yang Five Elements were discovered. Artifacts such as land purchase record, guarding animal in tomb, bronze mirrors which were excavated from the tomb of KingMuryeong were the devices for avoiding the bad things as well as the devices to become a Taoist hermit. The Great Gilt-bronze Incense Burner was made to express the aim for the world harmonized with the order of the universe. Judging from the above evidences, this paper can clarified the question of the establishment of the Taoism more clearly, and ascertain the characteristics of Taoist culture in Baekje.

      • KCI등재

        삼국시대의 중국 唐ㆍ五代 道敎 전래에 관한 연구

        신진식(申?植) 한국도교문화학회 2008 道敎文化硏究 Vol.29 No.-

        당오대도교가 한반도에 들어온 이후 한국도교는 과의, 수련, 민간신앙의 삼대 유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중국의 도교는 이러한 전래과정을 통해 한반도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던 것이다. 본고는 당나라에서 유학을 했던 신라의 김가기와 최치원을 중심으로 한반도에 도교가 전래되는 과정과 영향관계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그들의 수도 과정과 그 족적 그리고 그들이 쓴 도교사상 관련 저작과 도교문학 작품 등을 분석한다. 고구려 사람들이 도교인 五斗米道를 널리 신앙하고 있었는데, 이는 중국도교가 일찍이 한반도에 전파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기록에 따르면 김가기는 종리권의 단공을 전수받고 다년간 수련하여 드디어 도사가 되고 신선이 되었는데 그 과정은 매우 짙은 전기적인 색채를 띤다. 최치원은 우리나라 단학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서 당나라에 유학하여 단도를 수련하고 신라에 돌아온 후 여러 道書들을 지었다. 그는 우리나라 도교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당학인들을 통해서 들어온 당오대시기에 도교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사실은 동아시아 문화권의 문화전파의 전형적이 사례로 이해될 수 있다.

      • KCI등재

        `희생제의(Sacrifice)`의 관점에서 본 도교의례: 제물(祭物, sacrifice)과 사제(司祭, sacrificer)의 기능과 의미를 중심으로

        최수빈 ( Choi Soo Been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2017 종교문화비평 Vol.31 No.31

        본 논문은 육조시대를 중심으로 중국의 도교의 의례를 희생제의의 일반적 구조의 시각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특별히 이 글은 희생제의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들-제주(祭主, sacrifier, 희생제의 주체), 제물(祭物, sacrifice, 희생제물), 사제(司祭, sacrificer, 희생제의 집도자)-가운데 제물과 사제에 주목하여 도교의 제사(sacrifice, 희생제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간단히 말해 도교제사에서 제물과 사제의 성격과 역할의 변화는 바로 정체성 문제, 곧 도교인들의 자기이해나 자기규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성스러운 세계와 세속세계의 관계에 대한 도교인들의 사고를 보여준다. 도교전통에서 `제물(공물, offerings)`은 비교적 초기에 도교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과 결부되어 매우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경전과 의례서들이 작성되기 시작한 육조시대 초기에 동물희생이나 혈제(血祭, blood sacrifice)를 바치는 행위를 세속적이며 비정통적인 제사행위로 규정하면서 도교의 정통(orthopraxis)적 제의와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여러 도교 경전이나 의례서, 계율 등에 반영되어 적어도 송대 이전까지는 기본적으로 동물희생과 혈제를 금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물희생이나 혈제를 대신하는 제물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오편진문(五篇眞文)>과 같은 문서나 경전들이다. 경전은 가장 핵심적인 제물로 간주된다. 본 논문에서는 경전이나 문서를 중심으로 도교의례에서 사용되는 제물(공물)의 기능과 변용,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들 제물의 기능과 성격은 성(聖)스러운 신들의 세계와 세속 세계, 그리고 이들 양자 사이의 관계 맺음에 대한 도교인들의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 도교 희생제의에서 가장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역시 사제(sacrificer), 곧 도사이다. 도교 제사가 유교 제사와 가장 다른 점은 도교 제사에서는 사제(sacrificer)의 역할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유교의 제사의 경우 제주와 사제가 거의 일치되는 것에 비해 도교의 경우는 의례의 주체(sacrifier)가 되는 신자와 의례를 집도하는 사제(sacrificer)로서의 도사의 역할이 확실히 구분되며 도사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도사는 기본적으로 중개자의 기능을 담당하는 인물로서 도단(道壇)이라고 하는 희생제의의 중심 공간에서 제사의 대상인 신(神)적 세계와 제의에 참여하는 대중들 사이에서 소통을 이루어낸다. 이러한 소통과 매개는 기본적으로 도사 자신의 `변신(變身)`, 곧 자기변화(self- metamorphosis)`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변신`을 구현하는 방법으로서 존사(存思)라고 하는 특수한 시각적 명상법을 사용한다. 제사 중에 도사의 육체와 정신은 신적 세계와 이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도사의 참된 참회와 정신적 육체적 변화를 통해서만 대중들의 죄를 없애고 그들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다. 제의 과정 중에 도사는 세속적 자아소멸과 성화(聖化, consecration)를 달성함으로써 제의의 이타적 목적, 곧 대중들의 복락이나 사자구제와 같은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자기희생적 사제의 역할은 결국 제물의 기능을 대신하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This paper is for examining the Daoist rituals in terms of the general structure of sacrifice in Six Dynasty period. Especially this paper is focused on the functions and meaning of sacrifices(祭物/供物, offerings) and sacrificer(Daoist, 道士) that are said to be pivotal elements of the structure of sacrifice. Basically Daoist tradition has prohibited the blood sacrifice. Daoism consistently had distinguished itself from popular cults by formally refusing the blood sacrifice until the Southern Song Dynasty, at least. The development of the distinctive of Daoist rituals centered on the anti-animal sacrifice evidently shows the self- understanding and self-identification of Daoist people in middle age, when Daoism began to establish the basic religious structures, distinguished from Confucianism and Buddhism. Daoist tradition developed various offerings-scriptures, writings, incense and so on- as the substitutes for animal sacrifices. Especially, it developed a unique role for the sacrifice of scriptures or documents like as the Five True Talismanic Writings(五篇眞文). Recitation of several scriptures within the re-created universe of Sacred Space(actually Daoist altar) established by the placement of the Five True Talismanic Writings, followed by the burning of these talismans represents an realization of removing the guilts of people as well as Daoist masters themselves and the harmonious recovering of the universal order. This paper also attempts to clarify the functions and significances of Daoist Masters who play pivotal roles as priests in Daoist ritual The roles of priests (Daoist Masters) are regarded to be indispensable to perform the ritual effectively unlike the Confucian sacrifices, in which the sacrifier(祭主) plays the role of sacrificer(司祭) at the same time. The Daoist masters as mediators between the divine world and participants in ritual perform various symbolic actions to communicate with gods and recover cosmic order and harmony on the principle of `self-metamorphosis`, using the originative method of Daoist meditation, which is called Cunsi(存思, Visualization). The Daoist as masters can achieve the altruistic purpose of ritual both for welfare of the living and relief of the dead by accomplishing the annihilation of secular self and self-consecration. Daoist masters in ritual can be interpreted as symbolic substitutes for sacrifices(offerings) in terms of functions and meanings.

      • KCI등재

        四川, 道敎 그리고 西王母에 대한 한 연구 –漢代 四川 지역의 西王母 圖像을 중심으로

        유강하 한국도교문화학회 2009 道敎文化硏究 Vol.30 No.-

        이 논문은 중국의 여신 西王母의 神格을 도교 안에서 탐색하기 위한 연구이다. 중국의 전통 시기, 서왕모는 이미 오랜 시간동안 道敎의 여신으로 광범위하게 숭배되어 왔지만, 서왕모에 대한 圖像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漢代, 도교 속의 서왕모에 대한 연구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 논문에서는 도교 발생의 초기인 後漢, 도교의 발상지라고도 할 수 있는 四川 지역에서 출토된 서왕모 도상에 표현된 도교적 모티프를 고찰함으로써 서왕모와 도교의 관계에 대해 밝히고자 하였다. 서왕모가 사천, 도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서왕모 도상의 출토 지역과 五斗米道의 활동지역이 일부 겹친다는 점, 『太平經』 등 도교 경전에 서왕모가 不死와 관련되어 언급된다는 점 등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기존의 연구에 따르면, ‘服食(丹藥ㆍ鍊丹術)ㆍ房中ㆍ符籙ㆍ尸解ㆍ方士’의 모티프는 도교적 요소로 파악되는데, 흥미롭게도 이런 도교적 모티프는 西王母 圖像의 주요한 모티프와 중복되거나 서왕모 도상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天門ㆍ道士(方士)ㆍ龍虎座ㆍ房中術 등의 표현이 그것인데, 이 논문에서는 기존의 연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두 요소, 즉 道士(方士)와 鼎 모티프를 도교적 요소로 파악하고 분석하였다. 도사는 승선을 돕는 도교적 존재이며, 鼎은 丹藥을 만들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이러한 모티프를 통해, 후한 시기 사천 지역의 특수성과 도교 속에서 인식된 서왕모의 神格을 탐색할 수 있었다.

      • KCI등재

        동아시아 도교학의 지평과 전병훈

        김성환 한국도교문화학회 2018 道敎文化硏究 Vol.48 No.-

        본고는 해석학적 지평융합의 문맥에서 20세기 전반 동아시아 도교학의 추세를 살피고, 그 연장에서 전병훈의 독특한 도교연구 지평을 논구한다. 학자들이 도교를 연구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하나의 해답을 구한다기보다, 저마다의 지평에서 ‘도교’를 이해하는 여러 해석들을 낳는 상이한 과정이다. 20세기 초 도교학은 비유럽 세계의 종교에 대한 서구적 편견, 그리고 도교를 통해 중국사회를 분석하려는 일본학자들의 타자적 시각이 주를 이뤘다. 중국학자들도 대개 그런 시각을 내면화했다. 비록 도교를 ‘자기의 것’으로 인식했지만, 또한 도교를 민간의 통속적 종교로 바라보는 시선이 우세했다. 그런데 전병훈은 도교를 ‘타자의 것’인 동시에 ‘자기의 것’으로 인식했고, 도교의 경계 안으로 들어와 고봉으로 오르고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지평융합을 일으켰다. 거기서 전병훈은 도교에서 신비하게 은유된 모호한 기호들의 장막을 걷어내고, 이를 납득가능한 철학체계로 전환하고자 시도했다. 또한 내단 수련의 비전이 사적으로 은밀하게 전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류가 공유하는 공공의 학술로 개조할 것을 주창했다. 그것은 타자화 물화된 시선에서 ‘바라보기’와 정반대편에 있으며, 바로 그 지점에서 전병훈 도교 해석학의 남다른 지평이 열렸다. 本稿在解釋學地坪融合的視野中, 對20世紀前半東亞道敎學以及全秉薰的道敎哲學去考察。學者們對道敎的硏究, 與其說是客觀考察以求唯一解答, 不如說是從不同角度來産生衆多解釋的不同的過程。在20世紀初, 西方學界對東方宗敎持有較狹隘的認識, 日本學界也暗中迎合人們對道敎的偏見來爲日本的政治目的服務。這都在道敎硏究中起不到平衡的作用, 甚至反映了那個年代深埋在中國學者心中的種種想法, 道敎雖然被做爲組成中國文化的因素之一, 還被貶低到了下裏巴人的通俗宗敎。全秉薰把道敎卻看做中韓兩國共同擁有的文化精髓, 而直接攀登內丹學修煉高峰, 實現了站在山頂向遠處瞭望的地坪融合。就在此地, 他走了與衆不同的道敎解釋學道路, 對被神祕化的道敎傳承作嚴厲的抨擊, 撕開道敎的神秘面紗, 再次使之改頭換面, 成爲人們共同擁有的精神哲學。

      • KCI등재

        도교 음악의 초국가적 형성: 맥락 만들기와 정체성 형성

        고은강 ( Eun Kang Koh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1 동아시아 문화연구 Vol.49 No.-

        본 연구는 "도교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일반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도교 음악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다. 2002년부터 2003년 사이에 중국 북경, 홍콩, 싱가포르의 도교 사원 및 지역 축제 그리고 주로 서양 음악 공연을 위한 전문 음악공연장에서 열린 다섯 개의 공연을 중심으로 도교 음악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2009년 발표한 "We Define Music, Music Defines Us"와 관련이 있지만 논문의 내용과 시각은 전혀 다르다. 2009년의 논문이 도교 사원 및 그에 속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논문이라면 본 논문은 "도교"를 통한 음악의 정체성 만들기이다. 본 논문은 그야말로 "도교음악"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이 논문에서 소개되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공연을 보면 "무엇이 도교 음악인가" 나아가 "도교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도교라는 종교를 연구하다 보면, 단지 도교 음악뿐만이 아니라 도교 의식, 도교 사원, 도교와 관련된 다양한 실천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교라는 종교 그 자체의 정체성을 만들고 드러내는 방식이 시대와 지역, 국가의 경계를 넘어 다양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다양한 도교의 정체성 만들기에 특히 두드러지는 점은 초국가적 성격이다. 중국, 한국, 일본에 걸친 동아시아 사회에서 관찰되는 도교는 역사적으로도 한 국가의 경계를 넘어 초국가적으로 형성되어 왔다. 본 연구의 연구 자료인 다섯 개의 공연도 서로 다른 국가, 서로 다른 지역에 걸쳐 있다. 이 다섯 개의 공연을 통해서 도교 음악의 정체성을 생각해 본다면 도교 음악의 정체성은 단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국제적으로(internationally)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둘 이상의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초국가적 호혜성(transnational reciprocity)을 통해 형성된다는 점이다. 초국가성(transnationality)과 관련하여 본 연구의 연구 자료에서 주목할 점은 국가 내 종족성(ethnicity)과 초국가성의 관계다. 다섯 개의 공연은 서로 다른 국가, 서로 다른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모두 중국 민족(Chinese nation)과 관련이 있다. 국가의 경계 안에서 형성되는 종족성이 곧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초국가성으로 나타나고 한 국가의 경계 내에서 종족성의 형성 과정에 초국가적 호혜성이 개입되는 현상은 비단 도교음악의 정체성 연구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닐 것이다. 도교의 정체성 만들기에서 초국가적 호혜성의 중요성은 음악 이외에 도교와 관련된 다른 연구 주제를 통해 이후에 밝혀 나갈 것이다. This article is about Daoist music. If one broadly defines Daoist music as music related to Daoism, then this study can simply be perceived as an introduction to various forms of Daoist music. However, if one approaches Daoist music as music that constitutes an integral part of the ritualistic worship of Daoist deities, as most ethnomusicologists do, then this study paints a more holistic picture of Daoist music. Strictly speaking, this study focuses on five scenes of performances taken from different regions of Asia in which Daoist elements are involved. However, as the meaning of the music derived from Daoistic ingredients differs in each scene, the following question can be posed: What is Daoist music? The present study does not seek to define Daoist music, or propose objective standards for Daoist music. Rather, it seeks to foster a review of the issue of the construction of musical identity. In short, this study argues that context should be regarded as being as crucial as text when reading "music-as-text." The meaning of music and musical identity is dependent on the context in which the music is located, as well as elements of the musical texts such as style and lyrics. The music analyzed in this study illustrates the range of the Daoist identity today. In addition to Daoist music, various other methods can be used to create and expose the characteristics of Daoism. These include Daoist ceremonies, Daoist temples, Daoism related martial arts, various Daoist customs, and Daoism as a religion. However, the transnational aspect constitutes the most outstanding element when it comes to creating the Daoist identity. Historically, the Daoism that can be found in East Asian society today, a region which encompasses China, Korea and Japan, was trans-nationally formed beyond the borders of the state. The five performances introduced in this study also take place in different countries and regions. The analysis of the identity of Daoist music conducted herein in conjunction with these five performances reveals that this identity was not formed and then internationally spread from one country to another, but rather took shape through a transnational reciprocity which saw countries influence each other in a manner that expanded beyond boundaries. The importance of transnational reciprocity in establishing the Daoist identity will become more evident through a focus on themes related to Daoism other than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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