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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당 이혜구와 일본음악학계-인적 교류와 학회 활동을 중심으로-

        이지선 한국국악학회 2020 한국음악연구 Vol.67 No.-

        이 글은 만당(晩堂) 이혜구(李惠求)의 일본음악학계에서의 행적을 인적 교류와 학회 활동을 통해 살펴보았다. 만당은 1940년대 초부터 일본음악계와 학술 교류를 시작하는데 이는 그가 실천한 최초의 해외음악계와의 교류였다. 친밀하게 소통한 일본음악학자는 기시베 시게오(岸邊成雄)와 하야시 겐조(林謙三)이다. 만당은 기시베와 1941년에 처음 대면한 이후 그의 주선으로 일본음악학계에 첫 논문 「양금신보의 사조에 관하여」를 발표하고, 1970년대 중반 함께 고려악연구회를 발족하며 1980년대 중반까지 친교를 나누었다. 또한 만당과 하야시는 학문의 관심 분야와 고악보를 통한 음악분석이라는 연구방법에서 공통점이 많아 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기시베와 하야시는 만당을 위해 그의 송수기념논문집(1969)에 글을 헌정하며 학술적 교류를 이어갔다. 만당은 1943년 이전에 일본 동양음악학회에 가입하여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특별강연회(1959)를 갖고 동 학회 학술지에 일본 고려악 <나소리>를 한국 “구나의 소리”로 해석한 논문(1965)을 게재했다. 또한 조선학회 학술지에 한국의 좌․우방악과 일본의 좌․우방악을 비교한 논문(1961)을 수록하고, 기악과 산대극의 비교 연구를 구두 발표(1968)와 논문(1969)으로 집필하는 등 1950년대 말부터 일본학계에 한국음악학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일본음악계에서 만당의 명성은 1970년대 초에 이미 널리 알려져 한국 음악학자로는 최초로 일본의 표준음악사전에 등재되었다. 그가 추구했던 국제 교류는 한국국악학회와 고려악연구회의 활동을 통해서도 구현되었다. 1959년부터 해외 학자들을 한국국악학회에 소개하여 연구와 정보를 교환하는 장을 만들어나갔고, 1976년부터 한일음악의 공동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고려악연구회를 이끌어갔다. 이러한 만당의 행보는 일본에서 한국음악학이 전개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만당은 일본음악학계의 제1세대부터 제3세대에 이르기까지 학문적 소통을 이어간 살아있는 한일음악교류의 역사 그 자체였다. 그의 해외교류 활동은 한국음악학이 국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음에 틀림없다. This article examined the activities of Mandang Lee Hye-gu in the Japanese music academy through personal exchanges and academic activities. Mandang began interacting with Japanese music academia in 1941 after meeting with Kishibe Shigeo. Mandang and Hayashi Kenzo had many things in common in academic interests and research methods. Kishibe and Hayashi dedicated their articles to Mandang’s 60th Anniversary book and continued academic exchange. Mandang was the first Korean to speak at the Society for Research in Asiatic Music. He published papers comparing Japanese music with Korean music in the journal and introduced Korean musicology to the Japanese academic community since the late 1950s. He introduced foreign scholars to the Korean Musicological Society from 1959, and from 1976 he led the Komagaku Research Society for the purpose of joint research of Korean-Japanese music. This movement of Mandang had a considerable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Korean musicology in Japan. Mandang was the history of the exchange of living Korean-Japanese music that continued communication from the first generation to the third generation of the Japanese music academy. His overseas exchange activities were the driving force for Korean musicology to grow internation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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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교육사에 관한 연구 현황 분석

        정모희 한국국악교육학회 2020 국악교육 Vol.49 No.49

        본 연구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왔을 국악교육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에 앞서 그와 관련된 기존의 연구를 영역별로 분류하여 검토한 것이다. 먼저 교육학 영역 안에서 국악교육사를 살펴보고자, 한국교육사, 음악교육학, 국악교육학 안에서의 국악교육사와 관련된 내용을 검토하고 음악사 영역인 한국음악사 안에서의 국악교육사를 살펴보았다. 이후 음악교육의 기능을 담당했을 국가음악기관 관련 연구와 교육학적 관점에서의 연구논저들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한국교육사에서는 음악교육에 관한 언급 자체가 소략하여 국악교육사에 대한 세세한 기술은 기대하기 어렵고, 음악교육학과 국악교육학에서도 국악교육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단행본은 찾기 어려웠으며, 국악교육을 위한 한국음악사라는 간단 서술 정도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한국음악사의 여러 논저들은 국악교육사에 관한 직접적이고 체계적인 내용을 기술하고 있지는 않아 아쉬움이 있지만, 국악교육사 연구를 위한 훌륭한 지침이 될 것이라 기대된다. 연구논저들 중 국가음악기관에 관해 음악사적으로 연구한 글들은 다수 보이지만 국악교육의 관점에서 연구한 논저들은 많지 않다. 그중, 교육학적 관점에서의 연구를 간추려보면 6편이 대표적인데, 전인 교육적 관점에서의 연구, 국가음악기관의 교육관련 연구, 현대 교육적 관점에서의 전통음악 교육방법에 대한 연구 등 세 가지 관점의 논저들로 정리할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이제까지 한국음악 분야에 있어 전통음악 전승의 역사를 음악교육의 역사로 보는 시각이 미미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한국음악사와는 별개로 교육학적 시각에서 국악교육사가 하나의 학문영역으로 정립될 필요성이 있다. 이를 위해 교육학적 관점에서 각 시대별로 전승된 음악적 형태들을 찾고 그에 따른 교육 이념과 사상, 교육 목적과 내용, 방법 등을 정리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음악사를 통해 각 시대별 음악의 수용자, 향유계층을 밝히고 그 음악의 전승 형태에 대한 연구가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This research reviews literatures on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to confirm the history of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which must have been passed through ancient times. First, I looked at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history in Korean education literatures. Then I reviewed Music history literatures and literatures on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history. Finally, explored literatures on Korean music history related to Korean education history. As a result, in Korean education literatures, music education is rarely mentioned, so detailed mentioning of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was not expected. Also, in a lot of music history Music history literatures and Korean music history books, books that systematically summarized Korean music education history were difficult to find. It was only briefly mentioned as ‘Korean Music History for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History’. Research literatures on Korean Music History for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History does not directly include contents about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History, but they will provide great guidelines for research on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History. Among the research, many of them studied national music institute from the perspective of music history, but little research has been don from the perspective of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There are 6 research articles from the perspective of pedagogy, and they can be put into three categories: research from the perspective of All-round education, research of national music institute about educ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a Korean music scholar, and research about Traditional Music Education Method from the perspective of Modern education. This research found that how Korean traditional music has been passed down the generation was not typically considered a part of history of music education. Therefore, this paper argues that History of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must be established as a separate academic field from history of Korean music. To achieve this, from the perspective of history of Korean music, we must find the forms of music that were performed in each generation, and must organize educational philosophy, thought, purpose, and methodology accordingly. We must also identify the class which played and enjoyed music in each generation through exploring Korean Music History and systemize research on how each music has been passed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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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한국음악사 연구의 현황과 전망

        임미선 한국국악학회 2008 한국음악연구 Vol.43 No.-

        본고는 한국국악학회 창립 60주년을 맞이하여 개최되는 특별한 의미를 되새기며 그간 한국음악사와 관련된 연구성과를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7,80여 년간의 한국음악사학의 연구성과에 대한 경향을 살피고 이를 평가함에 있어 일정한 관점과 기준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본고에서는 고악보에 근거한 음악의 변화과정에 대한 연구가 일단락되었다고 판단하고 ‘87년에 출간된 이혜구 박사의 정간보의 정간 대강 및 장단을 기준으로 2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87년 전후로 한 시기 내 연구사의 흐름을 편의상 10년 주기의 시대별로 서술하였다. 연구성과는 주제별로 나누되, 악곡과 관련된 영역은 몇 개의 층위로 구별하여 살펴보았다.한국음악사학은 40~50년대에 이혜구, 장사훈 두 선구자들이 개척한 이래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다. ‘48년 한국국악학회가 창설됨으로써 조직적 학술활동이 공고해졌고, 그에 힘입어 한국음악사학이 학술분야로서 확고하게 정착하게 되었다. ‘59년 이후로 신설된 국악과에서 연구와 교육 실시 이후, 70년대에 이르러 국악이론 분야의 석사가 배출되면서 한국음악사학의 성장기로 진입하였다.80년대에는 석사학위 배출로 연구자가 늘어나고 학술지 간행 등 국악학의 전반적인 연구 여건이 향상되었다. 그리하여 저술과 논문이 앞 시대에 비해 증가하였고, 수준 있는 개설서와 시대사가 저술되었고 학술연구 저서가 등장하였다. 이 시기의 연구주제는 대부분이 영산회상, 가곡의 형성 및 발전과정에 관련된 것이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조로 넘어가는 시대에 많은 관심도 높아졌고, 원사료 검토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음악사학은 점차 전문화되고 본격화되는 경향을 띠게 되는데 박사학위 논문에서 연구경향에 변화가 서서히 나타났고, 악기연구나 문화사적 연구로의 영역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고대유물, 사료 발굴로 연구가 활성화되고 연구 영역도 점차 확대된 양상을 보인다. 음악집단에 대한 새로운 인식, 음악과 여성사연구, 음악사상사 연구, 음악 사회사적 연구, 음악도상과 미술사적 연구 등에서의 학제간 연구에서 신진 연구자들의 역량이 돋보였다. 최근에는 음악과 여성사연구음악사상사 연구음악 사회사적 연구음악도상과 미술사적 연구 등에서의 학제간 연구에서 신진 연구자들의 역량이 돋보였다. 연구 분야의 분화와 다양화-조선시대의 경우 세부 시기의 세부 사건에 대한 연구, 불모지였던 근대사 연구에도 큰 진전이 있었다. 악기연구에 있어서는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한 음악사 연구에 대한 해석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문헌 자료의 지속적인 발굴 및 해제-조선시대 의궤류, 문집류는 물론 20세기 신문 잡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헌 자료를 발굴, 북한자료의 입수로 고구려 지역의 음악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열렸다. This paper examines previous studies on Korean historical musicology and presented earlier at the Korean Musicological Society’s 60th anniversary conference. Researches on Korean Musicological Society have been accumulated last eight decades and theses studies can be discussed according to periods, topics, and viewpoints. With two pioneers, Lee Hye-ku and Chang Sa-hun, the field of Korean historical musicology has been developed since the late 1940s. Korean Musicological Society was established in 1948 and helps to legitimate the field. Korean music departments in universities since 1959 promoted research and education on Korean traditional music. Following establishment of both society and college education, researchers who holds master degree have been increased since the 1970s and the field opened a new era. The field expanded during the 1980s by increasing numbers of masters theses and academic journals on Korean music. Introductory textbooks, history of Korean music and academic books on specific topics have been published. The major topics of the 1980s include formation and developmental process of “Yeongsanhoesang” and gagok, long lyric song. Transitional period from Goryeo to Joseon and primary sources have been examined during this period. Since the late 1980s, topics have been diversified and specialized and these began with few Ph.D. dissertations. New topics including organology and cultural history have been initiated. With discoveries of ancient relics and historical documents and sources triggers new researches. Interdisciplinary studies on musician’s groups, music and gender, music and philosophy, sociology of music and music and paintings and art history are new approaches done by young researc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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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음악학의 국제적 전개와 연구 성과 고찰-영문 국악 전문서의 주제와 출판 동향을 중심으로-

        장윤희 한국국악학회 2017 한국음악연구 Vol.62 No.-

        This paper explores English books on Korean traditional music (gugak), dance, and theater. They can provide additional information as they are written by not only Korean scholars but also scholars from different nationality and backgrounds, targeting wider range of readers in the world. By sorting and analysing themes, authors, and publishers of the publications, the research not only lists up the bibliographic data, but also examines history, trends, and academic development of the Korean music scholarship. The multi faceted perspectives on these writings help to self-inspect the history of scholarship, while at the same time harden the ground for future research on Korean music. The books in early stage are introductory and informative as they were simply aimed at introducing the scholarship to the Western world. In the 21st century, however, increasing number of scholars, including foreign ethnomusicologists such as Andrew Killick, Simon Mills, and Nathan Hesselink, published books and thus the Korean traditional musicology proceeded and developed in a cooperative procedure. The works, for example Korean Musicology Series, well reflect the collaboration of the scholars in Korea and overseas, and show more professionally and academically woven articles. Recently, from the 2010s, scholars discuss gugak as one of global cultural contents, for example in relation to the UNESCO's World Heritage of Human Culture or music festivals. Representative musicians like Yi Ji-young and Kim Joon Young publish books on Korean music instruments for their practical use among composers and performers worldwide. The books intend to help composers and performers outside Korea collaborating with Korean traditional music. 본 논문은 한국전통음악, 즉 국악을 주 내용으로 하는 영문 학술서적의 현황과 의미를 출판지와 출판 시기, 저자와 연구주제 등의 분석을 통해 파악하고, 한국음악학의 역사적 전개와 학문적 발전 방향을 논의하여, 학계의 성장을 살피고 후속연구의 기반을 다지는 데에 목적이 있다. 국악영문서는 국악학초기(1970~1989)의 개론서 및 국악사학 서적으로 시작하여, 세부 음악갈래의 연구가 진행되고 다변화된 민속악 연구 서적이 출판되면서 해외연구기반조성시기(1990~2001)를 맞이한다. 이후 국내외 협업연구와 영문서적 활성화(2001~2010) 시기는 백과사전과 국악학 전문 총서의 발간으로 이어진다. 이는 해외 민족음악학도들이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책으로 펴내는 시점과 맞물리며 이용식, 김희선, 변계원, 헤세링크와 킬릭, 박찬응, 엄혜경, 사이먼 밀스와 같은 당시 신진학자의 책이 지문당, 민속원, Routledge, Ashgate, University of Chicago, University of Hawaii, UC berkeley와 같은 국내외 유수 출판사의 총서 일부로 출판된다. 학자 양성과 학술협업은 국악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최초의 국악학 영문 전문 총서 Korean Musicology Series의 발간으로 이어진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 유네스코 인류문화 등재물, 국악 공연, 국악창작과 작곡 작업, 국악기 연주방식 습득을 다루는 영문서적이 출판된다. 윤중강과 사이먼 바커가 현장 중심의 음악활동을, 앤드류 킬릭은 물론 이지영과 성심온은 가야금과 창작음악을, 가민과 김준영의 피리와 거문고 책은 해외 작곡자와 세계 각지에서의 연주를 위한 실질적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전통무용과 관련한 영문서적도 현대 한국무용과 창작 전통무용의 차이와 같은 현 세대 한국문화요소를 실질적으로 다루고 있다. 해외 학계를 인식한 이후 시작된 국악학의 국제적 진출과 도전, 학문적 기반 확립과 후속세대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은 초기 영문국악서적의 목적이자 공헌이며, 이를 통해 양성된 신진국악학자들의 활약과 국내외 학자간의 협업 또한 국악학의 일부 분야를 민족음악학의 범주로 확장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국가의 문화를 세계적 콘텐츠로 개발하려는 접근이 출판물에서도 드러나며 이는 국악의 저변확대를 해외 시장으로 넓히고자하는 가능성의 타진과 탐색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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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한국음악학의 전개양상과 성과 - 로버트 프로바인(Robert Provine)의 연구활동을 중심으로-

        장윤희 한국국악학회 2014 한국음악연구 Vol.55 No.-

        이 글은 196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활동하고 있는 미국인 음악학자 로버트 프로바인의 연구물과 학술활동의 내용을 살펴보고 이러한 자료들이 해외에서 이루어진 국악과 관련된 학문, 즉 한국음악학의 발전과 성립 과정에서 어떠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프로바인의 연구방향, 출판물, 주도적 활동을 통해서 해외 한국음악학이 전개된 양상과 그 내재된 의미를 국악사학의 맥락 속에서 상호 연관성을 찾아내어 이해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생존해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의 연구물을 다룬다는 점이 여러 견해의 차이와 시기적인 문제점을 야기할 수도 있기에, 프로바인의 인생사나 공로를 부각하는 관점에서 논지를 펼치기보다는 해외 한국음악학의 전개과정을 국악학 전체의 역사적 맥락 속의 일부분으로 연관 지어보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프로바인이 한국에서 연구를 시작할 당시는 해외에서의 한국음악 연구는 학문으로의 성립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의 등장은 국제성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싹트고 있는 1970년대 국악학계에 나타난 미래 해외 학문 활동을 위한 인력의 확보라는 점에서, 이 시기를 해외 한국음악학 성립의 배경과 가능성이 나타나는 시점으로 정의할 수 있다. 1980년대 프로바인의 영문 단행본과 번역서는 국악을 한국음악학이라는 학문으로 해외에 알리고 발전시키고자 한 프로바인의 목적의식에 큰 의미를 두어야 하며, 동시에 이 시기는 해외 한국음악의 자료 접근성 향상과 참고자료의 초기 기반이 확립되는 시점이다. 프로바인이 한국음악연구회(AKMR) 회장으로 재임한 1996년부터는 해외 한국음악학의 발전에 가속도가 붙은 활성화 단계였고, 이 시기는 국내의 연구전형이 해외 한국음악학계로 답습되고 반영되었다기보다는 해외 학자들의 주도하에 발전된 새로운 연구 분야가 있음이 분명해 진다. 2000년대에 들어서 갈런드 세계음악 백과사전에 한국음악편이 실리게 되면서 해외에서의 한국음악학 입지가 민족음악학계에서도 관심을 받는 학술적 영역의 하나로 확립되기 시작하는데, 이 당시의 해외 한국음악학의 성장은 국내 국악학계와의 긴밀한 관계나 의존이 아니라 해외학자들의 독자적 행보와 모임이 주가 되었다고 하겠다. 프로바인의 연구와 활동을 통해서 살펴본 해외 한국음악학의 성립과 발전과정은 그 시기별로 뚜렷한 전개 양상과 변화의 단계가 있었으며 이것은 국악학계와도 연관되어 있었다. 한국음악학의 발전과 전개가 국내와 해외라는 이분법으로 구분되기보다는 국악학의 발전 맥락 속에서 학문과 학자 간의 상호관계를 보여주며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This research is a historical overview of Korean music scholarship, hanguk eumakhak, especially focusing on its development outside of Korea. By looking at the materials written by a Western scholar, Robert Provine, this paper scrutinizes the key aspects in the development and new phases of the scholarship. Also, the ideas of research is in relation to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scholarship, so called “gugakhak,” discussing both scholarships in the context of their history. Provine devoted himself in the study of Korean traditional music for more than forty years as a scholar, editor, researcher, educator, and administrator. His achievements are shown in various areas, including publications, translations, and academic associations. The first appearance of Provine in the field of gugakhak in 1970s showed a possibility of future establishment of the scholarship overseas. His publications in 1980s made contribution in introducing earlier paradigm of Korean music research to foreign scholars, while at the same time adding materials to the body of bibliographical or Western writings in Korean traditional music. In the mid 1990s, he led membership in the Association of Korean Music Research as a president. He built network among the scholars worldwide by publishing newspaper, opening website, and organizing meeting. This made it possible for the scholars to communicate and to collaborate with, producing noticeable outcomes, such as Korean music section in Garland Encyclopedia of World Music series. These steps were in some ways deeply related to gugakhak in Korea, while at the same time generating issues of arguments. Scholars in Korean musicology, ethnomusicology as well as East Asian studies can understand some historical contexts and scholarly development of Korean traditional music through Provine-involved publications and activities. Korean music scholarship established and developed outside of Korea is not always away from gugakhak. Instead, they are related, mutually interacting and sometimes independently processing. This is an aspect on and a way of the expansion of Korean music scholarship overs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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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국악원 고악기 복원현황 및 성과 연구

        이윤주(Lee, Yoon-joo) 한국국악교육학회 2015 국악교육 Vol.40 No.40

        국립국악원은 국악의 정통성 확립과 전승을 위하여 국악기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초기 1960년대에는 현악기의 음량을 키우거나 악기의 조현을 편리하게 하는 등의 개량과 철제․목제․합성수지 등 관악기의 재료를 다양화하여 대량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등의 현대화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는 개량제작이 아닌 연구로 사업방향을 전환하고 징, 꽹과리 등 타악기의 음고 측정과 가야금, 비파, 월금 등 현악기의 음향특성과 방사패턴을 조사하였다. 이후 국악이 고유의 정체성과 원형질을 보존하고 문화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국악기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2006년 악기연구소를 신설하고 국악기 음고․음량․음색 등의 음향연구와 구조․재료 등의 세분화된 기초 연구를 진행하였다. 나아가 국악기의 제작과정, 고악기 복원 및 재현, 신악기 개발 등의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 중 국악기의 복원과 재현은 고악보의 연구와 함께 과거의 음악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데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 고악기 복원사업은 첫째, 출토된 유물 편(片)을 근거로 유실된 부분을 복원하는 방법, 둘째, 문헌 등에 나타난 근거를 가지고 복원하는 방법, 셋째, 도상자료를 근거로 복원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국악원의 연도별 국악기 복원현황을 살펴보면 2005년에는 광주 신창동의 유적 현악기 편을 가지고 각각 가야금식과 거문고식으로 복원한 현악기, 대전 월평동(月坪洞)에서 발견된 8개의 구멍이 뚫어져 있는 몸통이 없는 양이두(羊耳頭)를 근거로 복원한 8현 가야금, 하남(河南) 이성산성(二聖山城)의 유적을 복원한 요고(腰鼓)가 있다. 2008년에는 『악학궤범』에 근거하여 15세기의 삼현삼죽(三絃三竹)을 고증하였으며, 2009년과 2010년에는 『세종실록』과 『악학궤범』에 근거하여 세종조 편종과 편경을 복원하였다. 또한 2010년에는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에 조각된 다섯 악사의 도상을 근거로 백제시대의 오악기를 재현하였다. 또한 국악원은 악기의 복원에 그치지 않고 그에 맞는 곡을 새롭게 작곡하여 네 차례의 ‘고악기연주회’를 개최하였다. 이는 과거의 것에 현재의 것을 더함으로써 실제 연주가 가능하도록 하고 과거의 음악을 짐작할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나아가 2010년과 11년에는 한국의 연구 성과와 기술력으로 베트남의 편종․편경을 제작하고 기증했다. 이를 계기로 베트남은 전승이 단절된 궁중음악 나냑[雅樂]을 복원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편종․편경 제작과 제례음악을 전승하고 있는 한국은 고악기 복원 기술을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문화지원국으로의 입지를 넓히게 되었다. 2015년에는 중국 하남박물원 소속 화하고악단을 초청하여 중국 고대음악 복원음악의 현황과 성과를 공유하는 세미나와 연주회를 개최하였다. 중국 낙양(洛陽)인근에 자리한 하남박물원과 국립국악원의 연주단이 함께 고려 때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온 낙양춘(洛陽春)을 연주하는 등 한․중간의 전통예술분야 교류 및 소통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향후 국악원은 과거에 발견된 문헌과 앞으로 발견될 유물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복원과 함께 다양성이 공존하는 악기를 재현할 것이며 그 평가는 후대의 과제로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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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개정 유치원 교육과정에 따른 국악교육 내용 연구

        모형오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 2009 국악교육연구 Vol.3 No.2

        2007년 개정 유치원 교육과정은 유치원의 교육내용에 대한 전국 공통의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 한 것으로 유치원 교육을 문서로 계획한 교육설계도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건강생활ㆍ사회생활ㆍ표현생활ㆍ언어생활ㆍ탐구생 활 등 다섯 개의 생활영역을 두고 있으며, 이 중에서 표현생활영역은 국악교육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생 활영역이다. 아울러 교사용 지도서에 제시된 생활주제는 유치원 교육활동의 기본이 됨과 아울러 유아의 생활을 이루고 있는 요소이다. 유치원 교육과정의 표현생활내용과 생활주제에 따른 국악교육의 내용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유아를 위한 국악교육의 체계를 마련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유치원 교육과정의 표현생활영역에 제시된 내용체계별 국악교육의 내용체계를 마련하고, 각 생활주제별 국악교육 내용을 모색하였다. 표현생활영역은 ‘자연과 생활에서 아름다움 찾아보기’, ‘예술적 표현 즐기기’, ‘감상하기’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과 생활에서 아름다움 찾아보기’에서는 주변의 소리를 관심 있게 듣고 이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과정 과 여러 국악기의 음색을 비교하여 들어보고 표현하는 과정, 그리고 기본적 리듬을 듣고 연주하는 과정이 국악 교육 내용으로 마련될 수 있다. ‘예술적 표현 즐기기’에서는 전래동요ㆍ국악동요를 부르고 이를 통합적으로 표 현하는 과정,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활동, 음악극과 같은 통합적인 표현활동이 이뤄질 수 있다 . ‘감상하기’는 예술적 표현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활동이 중심을 이루며, 음악ㆍ춤 등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창의적으로 표현 하는 과정이 국악교육 내용으로 마련될 수 있다. 이어 11가지의 생활주제별 국악교육의 내용을 모색하였다. 각각의 생활주제는 월별로 이뤄지기도 하고, 여러 생 활주제가 교사에 의해 분리ㆍ재조직되어 유치원의 특성과 연령 등에 따라 적용되는데, 이에 따른 국악교육은 유 아의 생활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각 생활주제에 따라 ‘악기연주’, ‘노래 부르기’, ‘움직임과 춤’, ‘감상’, ‘음악극’ 등의 국악 교육 내용을 모색해 보았으며, 이를 통해 유아기부터 생활 속 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음악적 모국어를 익히며, 유아의 예술적 표현력을 신장시키고 언어ㆍ신체ㆍ정서ㆍ사회 성 등 전인적 발달을 도울 수 있는 유아국악교육의 내용을 체계화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The goal of this research is to explore the Korean music education as laid out in the 2007 revised kindergarten curriculum. Since musical aptitude is developed in early childhood and highly valued in Korean society, exposure to Korean music in the early years of schooling is critical. This study seeks to reinforce the belief that early music education advances the whole person artistically, linguistically, emotionally and culturally and must therefore be considered a key component of the Korean educational system.

      • KCI등재

        사회예술교육을 통한 장애인들의 ‘국악하기’ 연구

        장윤희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 2019 국악교육연구 Vol.13 No.2

        My research explores a kind of traditional music education which focuses on disabled people, and discusses not their technical learning but the healing and feeling gained from the experience of traditional music. The paper explores current status of sociocultural traditional music education for disable people answering the questions about how has the research o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for the disabled people been conducted, What has happened among the disabled people with the traditional music learning? What is its meaning as in the sociocultural context? The sociocutural traditional music education for disabled people is complicated combining ideas of musical learning, social interaction, and human nature. In this regard some data is collected through ethnography. The research figured out that the traditional music education for disable people raised their sense of belonging in the society, while at the same time helped them gain a sense of achievement and self-confidence because the traditional music gave them a sense of unity and ways to communicate with not only class mates but also people outside the classroom. In order to achieve the goal or aim of the education, its program should be designed carefully by policy among the professionals in governments, social welfare sector, and music teachers, so that it can support disabled people’s continuous sociocultural and musical activities. 국악교육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는 시도와 노력 중 하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악교육의 증대이다. 본 연구는 사회문화예술교육으로의 국악분야가 장애인들에게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 이유와 개념, 의미를 논의하는 질적연구이다. 사회문화예술 국악교육을 통한 장애인들의 사회적 참여와 정서공유의 과정에 관해 살펴 무엇이 어떻게 장애인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하며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 삶을 함께 구현하도록 돕는지를 논의한다. 사회문화예술교육으로 제공되는 여러 국악 프로그램은 규칙적인 국악수업을 제공하면서 국악을 음악치료를 위한 부수 요소로 활용하거나 학습 전후의 변화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국립국악원, 한국메세나협회 등 정부기관이 교육을 계획하고 후원하여 제공하던 주최였다면, 최근에는 장애인들이 주체가 되는 문화예술단체들이 결성되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추세이다. 선행연구들은 특수학교 교육내용 분석, 교육안 개발, 음악치료 활용수단 등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대부분 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들을 우리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회문화예술교육으로 연구 필요성을 제기한다. 사회문화예술교육으로의 장애인 국악교육은 장애인이 국악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사회구성원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사회적 성숙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사회적 존재로 인식하는 기회이다. 나아가 성취감과 행복감을 경험하는 총체적 과정이다. 음악적 기능연마, 공동체 구성원으로의 소통, 일상과 사회의 적응 등을 바탕으로 생겨난 자아발현의 기회가 성취로 이어져 자발적 공연참여를 갈망하고 순환적으로 학습욕구로 되돌아오는 점이 여타 사회문화예술교육과 차별성을 만든다. 궁극적으로는 국악교육은 장애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잠재력을 발굴하고 향상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이들이 주체적으로 예술적 활동을 지속하고 예술가로의 삶을 살아가는 ‘국악하기’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 국가적 지원정책은 물론, 다양한 교육안의 체계적 취합과 교구의 개발, 장애인 전담 국악교육자들의 양성에 필요한 구체적 교육프로그램개발이 필요하다. 장애인 교육 선진국의 자국문화 이용사례를 분석연구하는 것도 요구된다.

      • KCI등재후보

        박동진 명창의 국립국악원 활동 업적 연구

        주재근 한국국악교육학회 2020 국악교육 Vol.49 No.49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ummarize the artistic activities of the National Gugak Center and examine what Park Dong-jin, who has made great achievements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of Korean pansori, left to the National Gugak Center. After the opening of the National Gugak Center in 1951, Park Dong-jin, who succeeded the Pansori Myeongchang Gang Jang-won, performed not only pansori, but also Sanjo accompaniment of Kim Byeong-ho and other folk musicians, as well as the left and right pieces of court music. Park Dong-jin's entry into the National Gugak Center was a turning point for the expansion of the pansori area in the field of folk music at the National Gugak Center, and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National Gugak Center's folk music troupe, it has been evaluated as laying the foundation for the reversal of folk music. In addition, he was appointed as a Pansori teacher at the Gugak Center affiliated with the National Gugak Center and taught Pansori subjects. After learning pansori from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Center, those from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Center later entered the National Gugak Center and various art organizations to play a major role in boosting pansori. Park Dong-jin's unrivaled Pansori activities and activities at the National Gugak Center also contribut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National Gugak Center's folk band in 1980. Park Dong-jin received direct or indirect help in the recognition and status of Park Dong-jin's great singers in the budget of the National Gugak Center and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members, and Park Dong-jin himself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event. The role of the first senior master in the folk music scene at the National Gugak Center was a great help to the stable development of the folk music group. In conclusion, Park Dong-jin's achievements at the National Gugak Center made it possible to stand as the center of the succession of folk music in name and reality along with pansori in the development of the succession of court music. 본 연구의 목적은 근현대 한국판소리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박동진 명창이 국립국악원의 단원과 지도위원을 거치며 남긴 예술 활동을 정리해 보고 국립국악원에 남긴 업적이 무엇이었는지 고찰해 보는 것이다. 1951년 국립국악원 개원 이후 판소리명창 강장원의 뒤를 이은 박동진은 판소리뿐만 아니라 초기 김병호 등 민속악인들의 산조 반주와 궁중음악에서 좌고까지 연주도 하였다. 박동진의 국립국악원 입단은 국립국악원에서 민속악 분야 중 판소리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전환기가 되었으며 이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창단 이후 민속악 반전까지 이루는데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 할 수 있다. 또한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에서 1972년 판소리 교사로 발령받은 최초의 소리꾼으로 판소리 과목을 전수하였다. 국악사양성소에서 판소리를 전수받은 국악사양성소 출신들은 이후 국립국악원 및 여러 예술단체 등으로 진출하여 판소리를 진작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게 하였다. 박동진 명창의 국립국악원에서의 독보적인 판소리 활동과 활약은 1980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창단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국립국악원의 예산이나 단원 증원 등에 박동진 명창의 대외인지도와 위상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았으며 박동진 명창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국립국악원에서 민속악계에서 처음으로 맡은 원로사범의 역할은 민속악단의 안정적 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하여 박동진 명창이 국립국악원에 남긴 업적은 궁중음악의 계승 발전에서 판소리와 더불어 명실공히 민속악 계승의 중심지로 우뚝 설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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