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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十七年”時期北韓文學譯介研究

        손제,노정은 중국문화연구학회 2019 중국문화연구 Vol.0 No.46

        The "17-Years" period after foundin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s a very important period in the history of Chinese contemporary literature and even the translation of foreign literature. The foreign literature translation activities during this period are not as blank as most scholars think, but can be regarded as the golden age in the history of Chinese translation literature. During the "17-Years" period of translation, there were a large number of Korean literary works. Studying these works is of great significance for understanding China’s perception of Korea at the time. But due to the special historical environment of this period, the translation and translation of these literary works was seriously affected by the national ideology. On the one hand, North Korea literary works in the same ideological camp were translated into large numbers. On the contrary, South Korea literary works in the hostile ideological camp were completely banned. In addition, compared with the phenomenon of a large number of translations in the Korean literature translation activities before the foundin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during this period, the translator can directly translate the Korean texts, which undoubtedly greatly improved the accuracy of translation and avoided Influenced by literary discourse in other translation countries. But under such strong ideological intervention, what kind of tendency does the translator have in translating Korean literary works, and how this translational tendency will affect the translation of literary works. This article will reorganize the status of translation of Korean literary works during the "17-Years" period, and attempt to analyze the specific ways of translation and translation activities during this period. ‘17년’시기(1949~1966) 중국의 외국 문학 번역 활동은 대부분의 학자가 ‘공백기’라 여겼던 것과 달리 외국 문학 번역사의 ‘황금시대’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중화인민공화국(1949)건립 이후, ‘17년’시기 동안의 외국 문학 작품들은 중화민국 초기보다 더 많이 번역되었지만, 중국과 외국 학술계는 이 시기 번역 활동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이유는 중국 ‘17년’시기의 외국 문학 번역 활동이 상대적 특수한 정치 이데올로기에 의해 진행되었고, 외국 문학의 번역 활동은 주로 정치적 관계로 구체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 중국에서의 한국문학 번역 작업은 주로 3, 40년대와 한중수교(1992)이후 활동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한중수교 이후의 한국문학 번역 연구는 번역된 텍스트뿐만 아니라, 번역 후원자에 대한 논의까지 다루고 있는 실정이지만, ‘17년’시기의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이 시기 중국에서의 한국문학은 ‘남조선문학南朝鮮文學’이라 불렸는데, 이는 ‘조선문학朝鮮文學’이라고 불린 북한문학을 근거로 그 명칭을 정한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1949년 이전까지는 한국문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신중국 건립 이후부터 1992년 한중수교 이전까지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진영인 북한의 문학을 ‘조선문학’으로, 남한 진영의 문학을 ‘남조선문학’으로 그 명칭을 각각 구분하여 사용했으며, 이후 이 둘을 다시 한국문학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했다. 1948년 이후 한반도에서는 냉전 이데올로기가 강제되어 남,북한 두 정권이 각각 설립되었지만, 이를 단순히 두 나라의 문학으로 볼 수 없다. 문학은 언제나 통일된 주체이고, 문학적 대립은 이념적 대립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는 ‘17년’시기 중국에서의 북한문학 번역 활동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분단 초기 한국문학의 일부로써 북한문학의 발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으며, 기존 한국문학 번역 연구의 격차를 해소하고, 20세기 중국의 한국문학 번역 연구의 전체적 맥락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17년’시기 정치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기조로 한국문학의 번역 활동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선 번역 당시의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이 시기의 중국과 한국의 문학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 담론과 중국의 번역 동향을 파악하고자 한다. 번역은 시대의 사회적 배경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문화 교류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문화간 의사소통으로써 번역에 대한 연구는 번역 수용 국가의 문학적 배경뿐 아니라 원작 국가의 문학적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된다. 다음, 당시의 번역 상황과 경로를 정리하고, 관련 연구 자료를 보완하며, 구체적인 분석에 필요한 자료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당시 작품들의 번역 상황을 정리하고, 이들 작품과 당시 북한 문화 정책과의 관계를 알아본다. 더불어 이 시기 번역된 작품들을 ‘전쟁’, ‘찬양’, ‘투쟁’이라는 세 주제로 세분화하여 중국 내 문학 주제와의 상관성을 분석한다. 또한 3, 40년대의 번역 상황과 비교해, ‘17년’시기 중국 내 문학 번역에 도움이 된 출판계의 여러 배경과 번역 경로를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의 국가 담론에서 형성된 번역 경향을 분석하고, 이러한 경향들이 번역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중국의 한국문학 번역 활동을 ‘좌경문예左傾文藝’와 ‘약세민족문학弱勢民族文學’의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누고 이러한 경향이 번역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았다.

      • KCI등재

        中國 사례로 본 朱子廟의 文化産業적 활성화 방안 연구

        여병창 중국문화연구학회 2023 중국문화연구 Vol.- No.59

        Due to their geographical proximity, human and material exchanges have been very frequent since ancient times. As a result, many traces of mutual exchange remain throughout the two countries. Zhuzi Shrine(朱子廟), located in Hwasun-gun(和順郡), Jeollanam-do(全羅南道), is a relic created during such exchanges between Korea and China. As part of a study on the cultural and industrial use of historical relics formed in the process of Korea-China exchange, this paper sought ways to revitalize the cultural industry of Zhuzi Shrine through the development of tourism resources related to Zhuzi in China. To this end, Chapter 2 of this paper introduced the development situation of tourism resources such as the ‘Zhuzi Cultural Center(朱子文化園)’ located in Youxi(尤溪), Sanming City(三明市), Fujian Province(福建省); the ‘Wuyi Mountain Zhuxi Memorial Hall(武夷山朱熹紀念館)’ in Wuyi Mountain, Nanping City(南平市), Fujian Province; The ‘Shangrao Zhuxi Memorial Hall(上饒朱熹紀念館)’ in Wuyuan(婺源), Shangrao City(上饒市), Jiangxi Province(江西省), where the Zhuzi’s old house is located; ‘Lushan Zhuzi Shrine(廬山朱子祠)’ in Lushan, Jiujiang City(九江市), Jiangxi Province(江西省); ‘Changbing Shrine(長柄朱子祠)’ located in Changbing Village, Fuzhou City(福州市), Fujian Province; ‘Danyang Zhuzi Shrine(丹陽朱子祠)’ located in Danyang Street, Fuzhou City(福州市), Fujian Province etc. Chapter 3 then examined cultural industries such as Activities to commemorate the 888th anniversary of Zhuzi’s birth in Nanping City, Fujian Province.; the ‘Zhuxi festival’ in youxi, Sanming City, Fujian Province; Construction of Zhuxi Cultural Brand in Fujian Province, etc. Finally, in the conclusion of Chapter 4, the implications that can be obtained from the development of tourism resources related to Zhuzi in China and the use of the cultural industry in order to revitalize the cultural industry of Zhuzi Shrine were presented. It is hoped that this article will serve as a foundation for constructive discussions on the development of tourism resources and revitalization of the cultural industry of cultural heritage formed in the process of exchanges between Korea and China in the future. 한국과 중국은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인적, 물적 교류가 매우 빈번하였다. 그 결과 양국의 곳곳에 상호 교류의 흔적이 다수 남아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주자묘(朱子廟)는 이 같은 한․중 교류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유적이다. 본고는 한․중 교류의 과정에서 형성된 역사 유적의 문화산업적 활용 연구의 일환으로 중국의 주자 관련 관광자원 개발 및 문화산업 활용 사례를 통해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주자묘의 문화산업적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를 위하여 본고의 제2장에서는 복건(福建)성 삼명(三明)시 우계(尤溪)현에 위치한 ‘주자문화원(朱子文化園)’, 복건성 남평(南平)시 무이산(武夷山)에 있는 ‘무이산 주희기념관’, 주자의 고택이 있는 강서(江西)성 상요(上饒)시 무원(婺源)현에 있는 ‘상요 주희기념관’, 강서(江西)성 구강(九江)시 여산(廬山)에 있는 ‘여산주자사’, 복건성 복주(福州)시 장병(長柄)촌에 위치한 ‘장병주자사’, 복건성 복주시 단양가(丹陽街)에 위치한 ‘단양주자사’ 등 관광자원 개발 상황을 소개하였다. 이어 제3장에서는 복건성 남평(南平)시 주자 탄신 888주년 기념 활동, 복건성 삼명(三明)시 우계현 주희제전(朱熹祭典), 복건성 남평시 주자문화 보호 건설 사업, 복건성 주자문화 브랜드 구축 사업 등 중국의 주자 관련 문화산업 추진 사례를 살펴보았다. 끝으로 제 4장 맺음말에서는 화순 주자묘의 문화산업적 활성화를 위해 중국의 주자 관련 관광자원 개발과 문화산업 활용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들을 제시하였다. 이 글이 향후 한․중 교류 과정에서 형성된 문화유산의 관광자원 개발 및 문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건설적인 논의에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KCI등재

        중국 역사⋅문화유산 활용 사례 및 시사점 — 고전 명저를 활용한 ‘문화관광’ 자원 개발 사례를 중심으로

        여병창,최인호 중국문화연구학회 2022 중국문화연구 Vol.- No.55

        Since the 1980s, as the perception that tourism is also a kind of cultural phenomenon has spread, so-called “cultural tourism,” including “literary heritage” tourism, has become popular worldwide and has become the preferred target of the market. literary tourism generally means visiting famous places related to writers or works. Regarding literary tourism, Herbert, D. argued that “literary places gain meaning in connection with writers and in the background of novels, and these places attract tourists and form part of the cultural heritage tourism landscape,” and that people visit places related to literature for various reasons. As interest in literature increases and people’s visits increase, various measures are provided to attract literary tourists in places with literature-related resources. The quality of literary tourist attractions is created by combining the requirements of tourist attractions, such as attractive environments, convenient facilities and services, travel schedules, relevance to writers, composition of story backgrounds, values, nostalgia, memories, and symbols. It is necessary to closely examine these points at the policy level, develop or preserve literary relevance, and strive to improve general tourism attraction and accessibility. In response, this paper examined how the historical and cultural origins and background areas of China’s four major historical novels, such as Romance of Three Kingdoms, The Water Margin and The Journey to the West are developed and used as high-quality “cultural tourism” resources. 1980년대부터 관광도 '일종의 문화현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문학유산(文學遺産)’ 관광을 포함한 이른바 ‘문화관광’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었고 시장이 선호하는 대상이 되었다. 경제 발전과 사회 진보에 따라 관광상품에 대한 욕구는 전통적인 대중관광이 아니라 문화적 함의와 품격을 부여받은 관광상품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었다. 최근 국제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문화관광객으로 간주되는 등 전통적인 관광 대신 ‘문화관광’이 관광의 패션 용어가 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문학관광은 일반적으로 작가나 작품과 관계된 유명한 곳을 방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허버트(Herbert, D.)는 문학관광과 관련하여 “문학 장소는 작가와의 연계성과 소설의 배경에서 의미를 얻게 되고 이러한 장소는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문화유산관광 경관의 일부를 형성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문학과 관련된 장소를 방문한다고 하였다. 이렇듯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사람들의 방문이 늘어나면서 문학관련 자원을 보유한 곳에서는 문학관광객을 유인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을 제공하고 있다. 문학관광지의 질은 매력적인 환경, 편리한 시설과 서비스, 여행일정 등 일반적으로 관광지가 갖추어야 할 요건과 작가와의 관련성, 이야기 배경의 구성, 가치·향수·기억·기호 등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문학관광지만의 특별한 요건이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이러한 점들을 정책적인 차원에서 면밀히 검토하고 문학적 관련성을 개발 또는 보전하고 관광매력과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고는 상대적으로 ‘역사․문화유산’을 활용한 문화관광 자원의 개발이 활발한 중국의 사례들을 통해 중국에서 중국 4大 고전 역사소설 중 三國演義 , 水滸傳 , 西遊記 등 세 작품의 역사 문화적 발원 및 배경 지역을 어떻게 양질의 ‘문화관광’ 자원으로 개발, 활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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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후보

        激进与保守:两个“世纪末”的对望与想象——“八十年代”的“五四”之一章

        루어깡 중국문화연구학회 2011 중국문화연구 Vol.0 No.19

        본 논문은 리저후(李泽厚)의 <계몽과 구국의 이중 변주启蒙与救亡的双重变揍>와 위잉스(余英时)의 <중국근대사상사 속의 진보와 보수中国近代思想史上的激进与保守> 문장을 주목하며, 두 글이 1980년대와 90년대 중국 사상계에 일으켰던 영향을 탐색하였다. 중국 사회에서의 계몽과 구국, 진보와 보수의 개념으로 5.4신문화운동에서 “89”역사까지의 문화정치현상을 정리 논술하였는데, 특히 위잉스가 1988년 9월에 강연 발표했던 <중국근대사상사 속의 진보와 보수>를 중심으로 중국 사상계에서 일었던 진보와 보수 논쟁을 분석 하였다. <하상>을 둘러싼 중국 국내외 문화 정체성 논의는 고도의 정치성을 담보하고 있으며, 이런 문화사조의 발흥과 동시에 정치사조로서의 “신권위주의新权威主义”가 출현하였으며, 이는 경제발전과 결합해 신자유주의, 전지구화 현상을 가져왔고, 전지구화에 따른 문화부흥을 지향하며 초기 현대화 담론 중의 유럽중심주의 가설에 도전하였다. <하상>과 신권위주의의 각기 다른 문화와 정치 경향은 “진보와 보수” 논제와 공모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89년 이후 실어증 상태에 빠져 있었던 중국 지식계는 1992년 덩사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신좌파와 자유주의 논쟁을 진행했고, 이는 지식인의 분화를 초래했다. 이를 배경으로 중국 사상학술계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토론이 전개되었다. 논문은 위잉스가 논술하는 청말에서 89년에 이르기까지 중국 정치문화계의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중국 사회현실과 그에 대한 태도를 설명하며, 중국역사 속 “두 차례의 순환”과 그의 문화정치성, 89년 이후의 사상계 특징과 사회정치현실을 분석하였다.

      • KCI등재후보

        中国现当代诗歌研究在韩国

        趙得昌(Cho Deuk-Chang) 중국문화연구학회 2007 중국문화연구 Vol.0 No.11

        한국에서 최초로 중국현대시를 연구한 것은 1956년에 발표된 金鍾觀의 석사학위논문 〈中國新詩論考〉이다. 이로부터 셈한다면 한국에서 중국현대시를 연구한 것이 이미 50년이나 되었다. 비록 50년간의 연구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정식적인 연구가 진행된 것은 1980년대 이후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50년간의 연구역사를 3시기로 나누어 시기별 현황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첫 번째 시기는 1990년 이전으로 이 시기는 연구의 개척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특징으로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특징은 연구대상의 시기와 연구지역의 제한으로 학위논문과 소논문 모두 1949년 이전의 시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어 있고, 1949년 이후의 시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둘째 특징은 연구대상의 범위가 넓지 않은 것으로 郭沫若, 徐志摩, 聞一多, 艾靑, 新月派, 現代派, 九葉派 등 문학사에서 비교적 유명한 시인이나 시파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셋째 특징은 홍콩과 대만시에 관한 연구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두 번째 시기는 1991년에서 2000년으로 이 시기는 연구의 발전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특징 역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특징은 연구대상의 시기와 범위가 이전 시기에 비해 상당히 넓어졌다. 물론 여전히 1949년 이전의 시에 관한 논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1949년 이후의 시에 관한논문이 점점 많이 발표되었고, 대만시 연구논문이 4편 발표되어 앞 시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특징은 연구대상의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앞 시기에 다루었던 대상뿐만 아니라 앞 시기에 다루지 않았던 北島, 牛漢, 舒? 등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셋째 특징은 박사학위논문이 이 시기에 와서 상당히 많이 발표된 것이다. 앞 시기에는 2편 밖에 발표되지 않았지만, 이 시기에는 9편이나 발표되어 앞 시기에 비해 4.5배가 증가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시기는 2001년에서 2007년으로 이 시기는 연구의 성숙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특징으로는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특징은 편리한 연구환경의 조성이다. 이 시기는 앞 시기에 이루어진 한중수교로 중국에 자유롭게 가서 책을 살 수도 자료를 구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CNKI라는 사이트를 통해 중국자료를 국내에서도 볼 수 있게 되어, 자료조사에 대한 경비와 시간을 절감할 수 있게 되어 편리한 연구환경의 조성이 이루어졌다. 둘째 특징은 연구대상의 시기와 지역이 확대가 된 것으로 앞 시기에 비해 1949년 이후의 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대만시에 대한 연구 뿐만 아니라 홍콩시에 대한 연구가 처음으로 진행되었다. 셋째 특징은 연구대상의 범위가 다원화되고 다양화되었다. 이 시기에는 앞 시기에 연구되었던 대상 외에 文革시기의 시, 郭路生, 顧城, 海子, 余光中, 西西 등에 관한 연구도 진행되어 연구대상의 범위가 훨씬 확대되었음을 볼 수 있다. 넷째 특징은 한중시 비교논문이 증가한 것인데, 한중시 비교논문은 1979년에 1편 발표되고 이 시기에 와서 4편이 발표되었다. 연구자들의 관심이 한국시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결론에서는 앞으로의 한국에서의 중국현대시 연구 전망에 대해 서술하였다. 첫째는 연구방법에 대한 모색이 일정한 성과를 거둘 것이며, 둘째는 연구대상 및 연구대상의 시기가 점점 확대될 것이며, 셋째는 한중시 비교연구의 성과가 증대할 것이며, 넷째는 한중학자의 교류가 점점 빈번해지고 공동연구가 진행될 것임을 전망하였다.

      • KCI등재

        激進與保守 : 兩個"世紀末"的對望與想象 : "八十年代"的"五四"之一章

        羅崗(Luo Gang) 중국문화연구학회 2011 중국문화연구 Vol.0 No.19

        본 논문은 리저후(李澤厚)의 <계몽과 구국의 이중 변주啓蒙與救亡的雙重變揍>와 위잉스(余英時)의 <중국근대사상사 속의 진보와 보수中國近代思想史上的激進與保守> 문장을 주목하며, 두 글이 1980년대와 90년대 중국 사상계에 일으켰던 영향을 탐색하였다. 중국 사회에서의 계몽과 구국, 진보와 보수의 개념으로 6.4신문화운동에서 "89"역사까지의 문화정치현상을 정리 논술하였는데, 특히 위잉스가 1988년 9월에 강연 발표했던 <중국근대사상사 속의 진보와 보수>를 중심으로 중국 사상계에서 일었던 진보와 보수 논쟁을 분석하였다. <하상>을 둘러싼 중국 국내외 문화 정체성 논의는 고도의 정치성을 담보하고 있으며, 이런 문화사조의 발흥과 동시에 정치사조로서의 "신권위주의新權威主義"가 출현하였으며, 이는 경제발전과 결합해 신자유주의, 전지구화 현상을 가져왔고, 전지구화에 따른 문화부흥을 지향하며 초기 현대화 담론 중의 유럽중심주의 가설에 도전하였다. <하상>과 신권위주의의 각기 다른 문화와 정치 경향은 "진보와 보수" 논제와 공모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89년 이후 실어증 상태에 빠져 있었던 중국 지식계는 1992년 덩사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신좌파와 자유주의 논쟁을 진행했고, 이는 지식인의 분회를 초래했다. 이를 배경으로 중국 사상학술계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토론이 전개되었다. 논문은 위잉스가 논술하는 청말에서 89년에 이르기까지 중국 정치문화계의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중국 사회현실과 그에 대한 태도를 설명하며, 중국역사 속 "두 차례의 순환"과 그의 문화정치성, 89년 이후의 사상계 특징과 사회정치현실을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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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宗白華的美學實踐和人生觀

        趙正來(Jo Jeong-rae) 중국문화연구학회 2004 중국문화연구 Vol.0 No.5

        종백화는 중국 현대미학의 개척자이다. 현대미학사에 있어 그의 지위는 본인의 학술여정과 예술관에 잘 체현되어 있다. 그의 뛰어난 점은 중국 전통미학과 예술의 심층적 연구와 현대문화의 자성을 통한 진일보적 발전에 대한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종백화는 중국철학과 예술에 대한 독특한 체험과 연구뿐만 아니라 동서미학의 비교연구를 통해 서양미학의 본질은 물론 중국전통예술의 생명정신을 새로이 발현시켰으며, 특히 심령적 체감을 통한 중국전통의 미의식을 찾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 중심사상은 예술의경(藝術意境)에 잘 드러나 있으며, 道, 舞, 虛實, 空間, 空白 등의 범주를 통해 명확하게 설명하였다. 종백화의 미학실천은 대략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10년대 말에서 1920년대는 그의 청년시기로 5.4신문화운동과 함께 "少年中國"에서 활동하면서 철학과 미학을 연구한 시기로 전통사상의 비판과 반성을 통해 현대적 정신위기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예술을 통한 자아 인격의 함양을 강조하였으며, "超世入世"적 인생관을 지녔었다. 1930년대에서 1950년대는 풍부한 학술경험과 체험을 통해 학문적 발전을 구가하던 중년시기였다. 학문의 중심이 서양에서 중국전통학문으로 전환하였으며, 중서미학의 비교연구와 체험을 통해 중국예술의 생명정신을 발견하고 체계화하여 예술의경이론을 정립시켰다. 이는 "예술적 인생관"의 실천이며 완성이다. 1950년대 말에서 1980년대까지는 종백화의 만년시기이며, “散步美學”의 황혼기로 인생 哲理의 感悟를 담고 있다. 즉 예술적 인격의 자유스러운 逍遙를 추구하였으며, 그 실제는 "인생의 예술화"였다. 비록 종백화의 학술적 연구가 중국전통예술과 미학이 중심이었지만, 그가 정립한 이론은 결코 고대의 답습이아니라 현대 중국인의 미의식과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의 미학실천과 인생관을 통해 남긴 것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학문을 위한 자기인격의 함양이며 우리는 여기서 종백화 미학사상의 진정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KCI등재

        서양 선교사 조슈아 마시맨(Joshua Marshman)의 중국어 연구와 번역에 대한 기초적 고찰

        김혜영 중국문화연구학회 2022 중국문화연구 Vol.- No.55

        This study aimed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 British Protestant missionary Joshua Marshman’s research on Chinese written language, his English translation of Chinese classics, and his Chinese translation of the Bible. By focusing on the accomplishments of Western missionaries, who were mediators of Sino-western cultural exchanges in the modern era, this study identified patterns of bibliographical exchanges between China and the West, as well as the foundation of Chinese studies in the Western hemisphere. Marshman put a great effort into missionary work in China while being based in Bengal, India. First, Marshman’s The Works of Confucius(1809) is a translation of the Analects, which differed from existing translations in that Marshman explained the meaning and the principle behind the creation of each Chinese character from the original work. He anticipated that the readers of his translation learn not only Confucius’s philosophy but also the Chinese language. Afterward, he published a book on Chinese grammar, A Grammar of the Chinese Language(1815), which included a translation of Great Learning as an appendix. This book concerns the Chinese characters, the spoken language, and the Chinese syntax, and its syntactical explanations are primarily based on the written language. Marshman focused on the fact that the Chinese written language was used in neighboring countries that used different spoken languages, such as Japan and Vietnam, and that even people with different dialects from China were able to communicate with each other through written language. Marshman argued that the Chinese written language was the origin of Sanskrit, which was why he translated the Bible into the Chinese written language. Acknowledging its significance in Chinese society, Marshman perceived the written language to be the universal and original language. 본 논문은 영국 개신교 선교사 조슈아 마시맨(Joshua Marshman)의 중국어 문어(文語) 연구, 중국 고전 영역(英譯), 성경 중역(中譯) 업적을 고찰하고 그 특징과 의의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근대 시기 중서 문화 교류의 매개체로 활약한 서양 선교사의 업적을 통하여 중서 문화 교류의 양상과 서양 중국학 형성의 기반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마시맨은 인도에서 활동하며 중국에서의 일상 생활, 선교 활동에 필요한 구어의 실용성보다 중국 밖에서 한자와 한문 텍스트가 동아시아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에 주목하였다. 그는 중국 경전의 문장을 중국어 전범으로 간주하고 이를 통하여 한자, 중국어를 습득해야 한다고 여겼다. 따라서 그의 고전 번역서는 선대 예수회 선교사들이 적응주의, 색은주의 선교노선을 택하여 유가 경전을 종교적으로 해석하려 한 것과 달리, 역대 주석가의 주석을 소개하고, 한자를 분석하는 등 중국 경전을 문헌학적, 언어학적으로 고찰한 점이 특징이다. 둘째, 마시맨은 고대 중국어를 주요 대상으로, 중국어 품사, 통사를 분석하였으며, 이 역시 중국 경전의 문장을 표준으로 삼아 그 문법적 특징을 밝히고, 이와 같은 형식의 글을 짓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한다. 실제 마시맨의 중국 경전 번역, 한자, 고대 중국어 연구의 궁극적 목표는 한문 성서를 위한 기초작업으로, 그는 중국 경전의 언어형식을 모방하여 고아한 문어체로 성경을 번역하였으며 이는 최초 중국어 한문 성서로 중국어 성경 번역사에서 의의가 있다. 셋째, 마시맨은 시기상 예수회 해산 이후, 그리고 개신교 선교사가 본격적으로 중국에서 활동을 시작할 무렵에 활동하며 중국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상 중간 연결고리의 기능을 한다. 마시맨의 연구는 이후 에드킨스, 제임스 레게, 등 선교사에게 영향을 미치며 결과적으로 예수회 선교사의 원시 중국학 연구에서 서양 중국학 성립으로의 발전 과정의 주춧돌이 된다는 점에서도 연구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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