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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권(CHO KWANG KWEUN)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5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4 No.1
조선시대에 개천이라고 불리웠던 지금의 청계천은 태종ㆍ세종대의 정도전ㆍ하륜ㆍ정진 등에 의해 왕도건설과 수재로부터 민생을 보호하기 위항 개척되었다. 그 추진 배경에는 조선초기를 주도한 현실적 경세사상가들의 민본정치사상과 풍수지리설 등이 깔려있다. 그러나 세종 26년 개천에 대한 명당수논쟁(풍수학자 이선로와 유학자 어효첨)에서 세종이 결국 어효첨의 손을 들어, 개천 주변의 민생 침해를 이유로 개천을 명당수로서 깨끗이 유지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이후 약 300여년간 개천을 그대로 방치하였다. 그러나 도성주변 산에 대한 남벌과 이로 인한 토사 유출로 개천이 메워지자, 비가 조금만 와도 개천의 범람으로 민의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로 인해 영조는 재위36년(1760년), 20여만명(한성부민15만명, 고정5만명)을 동원하여 두달여(2월18일~4월15일)만에 준천대역사를 마무리하였다. 영조의 준천을 주도한 세력은 홍봉한, 홍계회 등 도시유통경제에 밝은 실용적 관료들이었고 이들은 이미 실학사상가들과 경세관을 공유하였다. 조선왕조의 민본정치사상은 시대적상황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 발전되어온 고유의 정치사상으로 현재 민주주의 정치행정체제의 문제를 보완할 사상체제로 발전될 수 있다고 본다. 또 현재 추진중인 청계천복원사업의 성공적 완수를 위해서도 조선왕조 위정자들의 위민정신은 지금도 재음미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