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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시기 중국국민정부와 대한민국임시정부 - 1944년 미국 부통령 訪中 前後 임시정부의 對美 접근 시도와 국민정부의 대응 -
裴京漢 역사학회 2023 역사학보 Vol.- No.258
1944년 6월 말에서 7월 초에 걸친 미국 부통령 월레스(Henry A. Wallace)의 重慶 방문은, 1941년 12월 미국의 참전 이래로 태평양전쟁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 미국에 대한 한국임시정부의 접근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임시정부 측의 월레스 면담 요청은 빡빡한 訪中 일정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러나 임시정부 측에서는 영문 성명서와 비망록을 작성하여 重慶 주재 미국대사관 측에 전달하였고 영국 프랑스 등 重慶 주재 각국 대사관에도 전달함으로써 임시정부에 대한 국제적 승인과 한국광복군의 자주권 회복을 목표로 하는 국제적 선전운동으로 확대하고자 노력하였다. 임시정부의 이러한 대미 접근 노력에 대한 국민정부의 대응은, 월리스 방중을 전후한 시기에 작성된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내부의 정보보고에 잘 드러나듯이 1942년 이래로 임시정부의 최대 요구사항이던 구개준승의 철폐 논의를 급진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정부는 임시정부에 대한 기왕의 “통제” 위주의 정책으로부터 “통제완화” 정책으로 선회하게 되었던 것이다. 국민정부의 이러한 대응은, 전후 한반도가 미국과 소련 주도 아래 들어가게 되었을 때 중국이 경험하게 될 무력감과 함께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립이나 갈등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