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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의 과학-기(氣), 음양오행(陰陽五行) 그리고 한의학적 신체론

        김시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6 시대와 철학 Vol.17 No.3

        A Science of Imagination -The Ch’i Science and the Yin-Yang and Five Phases in Ancient China- Kim, Si-Cheon In the texts of traditional east-asian medicine, there are many pictures of the human body. The pictures seem to be diffrent so much when comparing with the anatomical view of the body. Neverthless, the distinction between the eastern and the western come not from the differences of the human body, but from the epistemological process. The pictures of the human body in Traditional East-Asian Medicine are the result of the visualization which has been perceived by the sense of touch. In this paper, what I meant by the word ‘imagination’ is the visualization of the sense of touch, and an alternative way to the sciences. 허준의 ꡔ동의보감ꡕ을 비롯하여 한의학 서적에 실린 수많은 인체 그림은 우리가 오늘날 보는 해부도와는 전혀 다르다. 실제 우리 신체를 해부하였을 때, 실제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한의학적 신체 그림은 전혀 엉뚱한 허상이었을까? 우리는 그간 한의학의 신체그림을 시각중심으로만 접근해 왔다. 그러나 실상 한의학은 맥진(脈診)을 통해 신체를 들여다보며, 따라서 이는 촉각적으로 지각된 신체를 시각화한 그림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렇게 해서 그려진 신체그림은 객관적 시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촉각적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것이다. 여기서 상상력이란 허구적 이미지의 생산이 아니라 이미지의 운동이며, 촉각의 시각화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글은 기화론적 세계관과 음양오행론 또한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신체지각을 활용한 자연적 분류체계이자 설명체계라는 점을 논해보고자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의학을 상상력의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 KCI등재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 『장자』의 ‘자유’(遊)에 대한 의철학적 해석

        김시천 한국의철학회 2019 의철학연구 Vol.27 No.-

        고대 중국의 철학적 문헌 가운데 하나인 『장자(莊子)』는 흔히 ‘정신적(精神的) 자유’를 주창했다고 말해진다. 그런데 이때 ‘정신적’ 자유라는 것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는 자세히 설명되고 있지 않다. 이 논문은 『장자』의 자유의 개념을, 새로운 유형의 자유인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stress)를 주창한 것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근대 서구에서 발전한 자유의 개념은 주로, 신앙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성격으로 규정되며 법과 제도를 통해 보장된다는 의미에서 추상적이다. 이에 반해 『장자』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건강한 삶과 관련되며, 이 건강한 삶은 적절한 영양 공급은 물론 정치적, 사회적 삶의 다양한 조건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상태’와 관련됨이 드러난다. 억압이나 간섭, 지배와 굴종이 요구되는 권위주의적 관계 속에서 인간의 ‘정신’은 안정되지 않으며, 이는 건강한 신체는 물론 건강한 삶이 불가능함을 『장자』는 역설한다. 이 논문에서 나는 『장자』의 ‘정신’이 일차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조건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관련되며, 이를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양신’(養神), 건강한 삶의 양식으로서 ‘유’(遊)라는 개념이 제시된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이에 따르면, ‘유’(遊)는 신체적 건강은 물론 정치적, 사회적 삶에서의 건강까지 포괄하는 개념임이 드러난다. 의철학이 단지 의(醫)에 대한 철학적 반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건강한 삶을 위한 철학을 지향한다면, 장자의 자유에 대한 비전인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는 의철학적 자유의 이념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는 의철학이 의학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건전한 학문적 기여를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 될 것이다.

      • KCI등재

        " 거울 " 과 " 프리즘 " : 서양인의 「 노자 」 읽기 Western Readings of the Lao Tzu in Transition

        김시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1 시대와 철학 Vol.12 No.2

        서구 사회에서는 낮선 이국의 고전 『노자』를 어떻게 읽었을까? 우리와는 전혀 다른 문화와 역사를 지닌 서구인들에게 『노자』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을까? 등등의 물음에 대해 대답을 시도해 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취지이다. 더욱이 서양인의『노자』읽기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들의 『노자』 읽기, 더 나아가 고전 읽기를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 말 이래『노자』에 관심을 가졌던 서양 사람들의 독해에서 우리는 두 가지 주요한 시각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주된 논지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시각을 '거울'과 '프리즘'이라는 다소 은유적인 용어로 묘사해 보고자 하였다. 여기서 '거울'이란 은유는 18세기말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노자』를 해석하고 번역한 서구인들의 시각에서 드러나는 한 가지 시각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노자』속에서 기독교 교리를 발견함으로써 선교의 목적에 부응하고자 하는 거만한 시선과,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 근대 문명의 몰락 속에서 수치심으로 가득한 눈으로 신비스러운 삶의 지혜를 찾고자 했던 야누스적인 이중성이 바로 이'거울'에 해당한다. 즉, 『노자』가 위치하는 본래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은 상관없이 서구인 자신들의 얼굴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로 『노자』가 작동하였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결국 이것은 오리엔탈리즘의 흔적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이와는 다른 또 하나의 시각이 있는데 그것을 나는 '프리즘'이라는 은유적 언어로 형상화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70년대이래 그간의 학술적 축적 위에서 등장하는 시각으로써, 『노자』를 본래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진지한 접근을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방법이나 도구에 있어서는 종교학, 신화학, 신비주의, 철학 등 다양한 학제적인 노력이 수반되지만 그 근저에는 『노자』라는 텍스트 자체의 역사적 의미 구조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새로 발굴된 텍스트들에 따라 편집 자체가 자유로운 것은 물론 해석과 번역이 자유롭게 교직된다 그 결과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의 『노자』 읽기는 오히려 우리들의 『노자』읽기보다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 '프리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일정한 의미가 있는 도구가 아닐까 싶다. There ale two phases that have been occurred to all persons in western society interested in the Chinese text, Lao Tzu. In other words, Western leadings of the Lao Tzu or Tao Te Ching can be divided into two metaphrical categories: mirrors and prisms. The metaphor 'mirrors' excesses well an Janus-faced mingling of arrogances with shames among Westerners who read the Lao Tzu from late eighteenth century to early twentieth century. Some missionaries tried to find Christian doctrines in the teachings of Lao Tzu. Here, Lao Tzu was seen only as an distorted speaker of Yahweh, the Christian God. But other people seemed to make effects to use it as a therapeutic alternatives to Western thought and values. Nevertheless, both all were as the self-images of themselves, not as a reception of the other. In such sense, the text Lao Tzu. was simply mirrors for Western Society. There are another visions that have strived to investigate the text in the light of Chinese history and culture. We can make a sketch of the trials as an metaphorical word 'prisms'. Here, scholars take it as a text that must be interpreted in the context of ancient Chinese history, And they attentively listen to the voices of sayings resonated out of the teat. It was this phase that the shift from 'a scripture' to 'a text' occurred. Accordingly, there are different approaches, various concerns, and free readings and translations. As a result, the text is in tran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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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과 철학 ― 동아시아 고전 번역과 삶의 중첩성

        김시천 대동철학회 2009 大同哲學 Vol.49 No.-

        이 논문은 번역과 동아시아 고전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어떤 구체적인 고전의 번역 사례를 다루기보다, 동아시아 고전 일반이 20세기 한국 사회에서 이해되었던 일반적인 방식으로서 ‘번역’을 다루고 있으며 그러한 번역의 과정을 통해 사유가 굴절된 측면을 다루고 있다. 그러한 굴절의 첫째 이유는, 이미 한문 고전이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언어이며 늘 번역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 번역되는 우리말 자체가 이른바 ‘근대화’ 즉 서구적 개념의 번역과정에서 생긴 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모든 번역은 그 자체가 ‘근대화’에 해당한다. 철학의 영역에서 이러한 굴절을 어느 정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철학자’와 ‘군자’, 언어의 문제, 그리고 철학적 문제의식의 핵심을 이루는 ‘진리’와 ‘다스림’을 대비시킴으로써 배경적인 논의를 해 보고자 하였다. 특히 동아시아 고전이 ‘철학’이라는 학문 영역, 그리고 근대적 학파나 이론으로 이해되는 ‘제자백가’보다는 천하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던 이론적 실천적 지식인 집단을 뜻하는 ‘호모 임페리얼리스’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해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번역의 토대는 바로 유전적으로 동일한 우리의 몸이 빚어내는 ‘삶의 중첩성’에 있으며, 이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제안해 보고자 하였다. This paper is focus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philosophy’ and translation in 20th Korea. Our translated classics in 20th century were all the products of modernized minds. Because our words and lives in themselves were changed by the domnant hegemony of Western powers. Modern Korean philosophies and terms were formed by the process of westernization. I think that the standards of scholarship orignated from the Western modernity. ‘Translation’ was the core process of the westernization. In a sense, Traditional ‘thoughts’ are different to that of Chosun society. But the concepts of the old and the new are in ‘with-together-ness’ in the our lives. And it is the ‘philosophy’ of ours.

      • KCI등재

        이단에서 전통으로장자, 진유가 된 한 사이비의 역사

        김시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5 시대와 철학 Vol.16 No.2

        Though it may seem curious to us today, there was a tradition, shared by a number of traditional Confucian scholars, which considered Chuang-tzu to have been an heir to the teachings of Confucius. The challenge I have set myself is to show that there are two aspects of a Chuang-tzu to be found in the Records of a Grand Historian, and yet are strikingly at odds with the image of Chuang-Tzu depicted in the Chuang-Tzu itself and conceived in the spirit of some Neo-Confucian scholars in Sung-Ming periods. If we accept the traditional view which regarded Chuang-tzu as the other heir to the teachings of Confucius, then we have some reason to explore the puzzles in the history of interpretations of the Chuang-Tzu. Whether Chuang-tzu was an anti-Confucian or not? Why did some Confucian such as Su Shih and Wang An-shih, say that Chuang-tzu had been not a condemner but a supporter to Confucius? How can we understand the recent trends in which the re-evaluations of Chuang-tzu’s thoughts have ranged from a reactionary conservative in China to a critical-thinker in Korea? In this paper I wish to show how the interpretive difficulties associated with the Chuang-Tzu tradition can be resolved by considering more closely the historical and textual contexts of the Chuang-Tzu itself. I have argued on the basis of the Chuang-Tzu text that Chuang-tzu was not an anti-Confucian, that the oldest version of Chuang-Tzu compiled by Kuo Hsiang was on the Confucian side, and that the main trend understanding on the Chuang-Tzu was the Confucian approachs to it by the literati in both China and Korea after the rise of Neo-Confucianism. 일반적으로 ꡔ장자ꡕ는 도가(道家)로서 ꡔ노자ꡕ와 더불어 노장(老莊)으로 병칭되며 송대(宋代) 이후 이른바 이단(異端)으로 지목되어 왔다. 그리고 20세기에는 지역에 따라, 상황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해석되어 왔다. 아Q정신의 원조나 유물론자로 보는 대륙 중국의 장자 이해와 비판 철학의 전형으로 보는 한국의 장자 이해는 거의 정반대에 속한다. 특히 조선유학계에서 이단으로 지목받았던 ꡔ장자ꡕ가 이른바 독재 비판의 수단이자 강력한 비판 철학으로 해석되는 현상은 특이하다. 이 글은 이러한 ꡔ장자ꡕ 해석의 다양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를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ꡔ장자ꡕ는 도가이며, 유가에 반대했다는 오늘날의 상식적 이해는 늘 타당한 것일까? 역사적으로 볼 때, ꡔ장자ꡕ는 한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위진(魏晉) 시대에 이르러 유행하게 되면서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읽히게 된다. 현재 우리가 보는 ꡔ장자ꡕ가 편집된 것도 이 때이고, 최초의 주석이 이루어진 것 또한 이 때이다. 그런데 현존 최고본(最古本)인 곽상(郭象)의 ꡔ장자ꡕ에서 송명 도학자들의 장자 이해에 이르기까지, 장자가 공문(孔門) 출신이라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이 논문은 이 주장을 ꡔ사기ꡕ의 장자 서술의 이중성, ꡔ장자ꡕ 속의 장자에 관한 일화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몇 가지 가설들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장자라는 인물과 학문적 성격에 관해서는 ꡔ사기ꡕ의 진술보다 ꡔ장자ꡕ 자체의 언급이 장자 이해에 지배적이었으며, ꡔ장자ꡕ를 통해 바라 본 장자는 반유가적이기보다 유가에 친근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곽상의 ꡔ장자ꡕ의 편제는 적어도 이렇게 보도록 부추기는 구성을 보이며, 나중에 이어지는 ꡔ장자ꡕ의 일부 편에 대한 위작설 또한 그 연장에 있다. 재미있게도 송대에 도학파의 인물인 임희일(林希逸)은 ꡔ장자ꡕ가 공자의 정신을 이해한 저술로 평가한다. 그리고 임희일의 ꡔ장자권재구의ꡕ는 조선조 유학자들이 가장 널리 이용한 ꡔ장자ꡕ였다. 이 때문에 조선 유학자 가운데 ꡔ장자ꡕ 주석서를 낸 박세당과 한원진의 ꡔ장자ꡕ 이해는 장자를 반유가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현대 한국의 유영모나 함석헌에까지 이르는 하나의 전통을 이룬다. 이 논문은 이러한 논의를 통해 ꡔ장자ꡕ가 이단에서 전통으로 긍정되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ꡔ장자ꡕ에 대한 유가적 이해가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중요한 이해 방식임을 논증하고자 하였다. ꡔ장자ꡕ는 이단으로 지목되었기에 해석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고, 타학문과의 소통 수단으로서의 역할 또한 쉬웠다. 대륙 중국에서 유물론, 한국에서 기독교와 자유주의, 과학과의 대화가 ꡔ노자ꡕ나 ꡔ장자ꡕ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ꡔ장자ꡕ가 이단에서 전통으로 긍정되는 20세기의 학문적 과정과 같은 궤도를 달려 온 것이다. 이러한 ꡔ장자ꡕ 이해야말로 우리는 역사 속에서 운동해 온 ꡔ장자ꡕ, 살아 움직이는 ꡔ장자ꡕ와 만날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라 본다.

      • KCI등재

        도덕 형이상학'(心性論)에서 '과학'(物論)으로 : 개념 친화성 모델을 통해 본 조선 후기 '기론'(氣論)의 변화

        김시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3 시대와 철학 Vol.14 No.1

        조선 후기 사상의 대표적 조류는 실학이다. 실학은 대체로 탈성리학적이고 근대 지향적 성격의 사상으로 특징지워지는데 실제로 이러한 실학의 개념은 조선 후기 사상가들에게 적용될 때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실학자 들 사이의 철학적 공통성을 확보하고자 할 때 더욱 그러하다. 대표적 실학자로 꼽 히는 정약용, 홍대용, 최한기 사이에 공통적으로 ‘실학자’라 지칭할 수 있는 철학적 근거는 희박해 보인다. 나는 이러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서 개념 친화성이란 방법적 모델을 통해 홍대용과 최한기 사이의 철학적 공통성을 확보할 수는 있으나 정약용과는 그러한 공통성의 확보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개념 친화성이란 동아시아 전통 철학적 사유에서 핵심이 되는 용어들 사이에서 친근한 결합 관계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 개념 친화성이란 개념을 조선 시대 철학자들의 기 개념에 적용 하게 될 때, 최한기와 홍대용 사이에서는 공통성이 확보되지만, 정약용이나 그 이 전의 성리학자들에게서는 공통성의 확보가 어렵다. 그 이유는 기의 개념이 형성하는 의미의 계열화와 관계가 있다. 기는 다양한 개념을 갖는 용어로서 두 가지 의미 맥락을 갖는데, 그 하나가 인간의 도덕성의 근거를 리기론적으로 정초하고자 하였던 심성론 혹은 도덕 형이상학이라면 다른 하나 는 인간의 생명 현상과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였던 물론(物論) 또는 자연 철학 적 개념이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심성론적 기의 의미 계열화와 물론적 기의 의미 계열화라고 규정해 보았다. 조선 시대 철학 논쟁의 전개는 이 두 가지 계열화가 주희의 철학 체계에서 착종되어 있던 것을 해소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심성론적 계열화에서 물론적 계열화로의 전환을 이룬다. 이러한 전환을 대표하는 사상가가 최한기와 홍대용이다. 나는 이러한 개념 친화성이란 방법적 모델을 통해 실학의 철학 적 공통성을 정초하고자 하였고, 기존의 성리학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의미가 무엇 인가를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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