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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흥국 취약성과 한국 위험노출도 점검

        김수형 현대경제연구원 2017 한국경제주평 Vol.746 No.-

        □ 신흥국 취약성과 한국 위험노출도 점검 ■개 요 2016년까지 침체되어 있던 글로벌 경기는 2017년을 기점으로 반등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신흥국에 대한 하방리스크 요인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신흥국 위기발생 시 한국의 실물 및 금융시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본 보고서에서는 신흥국의 위기발생 가능성 및 한국의 위험노출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한다. ■신흥국 하방리스크 요인 우선 정치적 리스크의 확대 및 테러로 인한 불안 등으로 국제 금융시장의 안전자산 선호가 확대될 경우 펀더멘털이 취약한 신흥국은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 또한 미국, 유로지역 등 주요국 통화정책이 긴축기조로 전환되면서 신흥국은 통화가치 급락 및 자본급유출 등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리고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예상에 비해 부진할 경우 원자재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신흥국 취약성과 한국 위험노출도 점검 ① 점검 방법 (점검대상 국가) MSCI 신흥국 지수에 편입된 국가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점검대상 국가는 인도, 인도네시아,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대만, 베트남, 미얀마, 체코, 헝가리, 폴란드, 러시아, 터키, 그리스, 우크라이나,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멕시코, 페루, 아르헨티나, 남아공,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로 26개국이다. (점검 방법) IMF 위기판단지표를 기준으로 분석한다. 물가상승률, 재정적자 비율, 공공부채 비율, 경상수지 적자 비율, 단기부채/외환보유액의 5개 지표와 IMF 거시경제부문 위기판단지표상의 기준치와 비교하여 기준치를 초과하면 해당 항목이 취약한 것으로 판단한다. IMF 기준치를 초과한 항목의 개수가 3개 이상이면 `고위험군`, 2개면 `중위험군`, 1개면 `저위험군`, 없으면 `안전군`으로 분류하고 각 위험군 국가에 대한 한국의 위험노출을 파악한다. ② 취약성 판단 결과 대만, 태국, 체코, 한국, 필리핀 등의 국가는 안전군으로 분류된 반면 우쿠라이나, 브라질, 남아공, 이집트, 미얀마, 아르헨티나 등의 국가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주로 재정적자 및 정부부채 과다가 주요한 위험 요인으로 작용했다. 과거 Fragile-5로 분류되었던 인도, 터키, 인도네시아 등의 신흥국은 2013년에 비해 취약요인이 개선을 보였으나 브라질, 남아공 등의 국가는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 주요 신흥국의 위기점검 결과(2016) > 자료 : IMF 자료를 이용하여 현대경제연구원 자체정리. 주 : 위기판단지표상 IMF 기준치를 초과한 항목의 개수가 3개 이상이면 `고위험군`, 2개면 `중위험군`, 1개면 `저위험군`, 없으면 `안전군`으로 분류. ③ 한국의 위험노출 고위험군 및 중위험군에 대한 신흥국에 대한 수출 및 해외투자가 많아 실물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위험에 크게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부문에 있어서는 실물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에 대한 노출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시사점 첫째, 취약 신흥국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발생가능한 위험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둘째, 세계경제 및 신흥국의 회복세를 기회요인으로 하여 수출시장 다변화와 수출확대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셋째, 신흥국 투자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넷째, 대외적 충격으로부터 완충 작용을 할 수 있도록 내수의 기초체력을 강화해야 한다.

      • KCI등재

        가톨릭 성지에 있어서 외부를 포함한 미사 전례 공간에 대한 연구

        김수형,민현준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 2015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논문집 Vol.- No.51

        This study aimed to find a prototype of Cathedral for pilgrimage after analyzing the quantity of the visitor change in liturgical place of catholic pilgrimage site. It selects four pilgrimage sites in Daejeon diocese which became part of cultural heritage. While the local cathedral has a certain scale service, scale of Catholic pilgrims to the Shrine has a significant change monthly. Thus cathedral in the Shrine is to be capable of absorbing changes in the visitor. As a result, the planning of the shrine have to be able to adapt the changing in the pilgrim by securing a large external variable worship space in addition to small cathedral for constant visitors. More progressive idea is to develop the cathedral type which integrated internal and external liturgical space.

      • KCI등재

        韓国戦争と日・朝党際関係: 内在化した不安定性の形成

        김수형,中戸祐夫 한일군사문화학회 2024 한일군사문화연구 Vol.40 No.-

        본 연구는 한국전쟁을, 북한의 중립화실현전략의 연관 속에서 규명하고, 이를 통해 북한과 일본 혁신정당 간의 관계에서 나타난 내재화된 불안정성이 북일정당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과 일본공산당은 프롤레탈리아 국제주의로 이뤄진 당제관계(党際関係)로서 북한에 적극적으로 호응했으며, 이에 더 나아가 일본혁명을 이루고자 하였다. 이러한 일본혁명은 일본 중립화라는 전략으로 표현되었으며, 북한도 이에 대해 강하게 호응하였다. 즉 북한은 민전(재일조선인 민주통일전선)을 포함한 일본공산당과 의견이 일치되어 공동투쟁에 대해 수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일본 중립화 실현을 위한 허용범위내에 포함된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공산당이 민전을 포함한 조선인들을 노동혁명, 전위투쟁에 전면으로 내세워 민전과의 갈등이 시작되었으며, 결국 내재화된 불안정성이 표면화되어 일본공산당으로부터 결별하게 되는 수순에 이르게 된다. 한편 일본사회당은 한국전쟁에 맞추어, 당의 태도를 통해 북한남침론을 강하게 주장하였고, 일본의 안보 및 세계평화라는 구조적인 요인내에서 국제연합의 지지, 평화론이라는 현실적 혁신정당의 역할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역할은 북일 당제관계(党際関係)에서 우호당으로서의 위치가 실추되더라도 당내파벌을 잠식시키기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진일보하지 못하는 장애요인(내재화된 불안정성)을 동반하게 된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복원이라는 측면에서 좌파사회당은 지속적으로 정전이후에 한반도 비무장화와 평화적해결 역할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 북한과 일본공산당과 일본사회당의 당제관계(党際関係)의 기본틀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대일관계에 관한 남일(南日) 북한 외무상의 성명이 발표되자, 프롤레탈리아 국제주의를 바탕으로 기민하게 당제관계(党際関係)가 성립되고, 형제당, 파트너쉽관계를 확고하게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북・일당제관계(党際関係)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This study examines the Korean War in the context of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strategy for realizing neutralization and reveals how the embedded instability in the relationship between North Korea and Japanese political parties affected it. At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the DPRK and the Japanese Communist Party had an established relationship based on proletarian internationalism and the goal of a Japanese revolution, which was expressed as a strategy of Japanese neutralization. North Korea responded strongly to this idea, and, along with many of the minjeon (ethnic Koreans living in Japan), supported the Japanese Communist Party and worked toward a Japanese revolution as a joint struggle. However, this alignment of goals was fairly narrowly focused on the realization of Japanese neutralization. Conflict with the minjeon began when the Japanese Communist Party put the Koreans, including the minjeon, at the forefront of the labor revolution and revolutionary struggle. This exposed the inherent instability and led to a fracturing of the relationship between North Korea and the Japanese Communist Party. The Japanese Socialist Party, in contrast, strongly insisted on the DPRK invasion theory of the Korean War’s origin and sought the role of a rational political party, supporting the United Nations and peace efforts. While this stance risked damaging relations with North Korea and had to overcome some internal resistance, it sought to align with Japan’s security interests and global peace initiatives. This approach presented obstacles—significantly, embedded instability—that hindered rebuilding ties with the DPRK. Following the armistice, the left-wing Socialist Party continued to seek a role in demilitarizing the Korean Peninsula and officially ending the war. These efforts sought to build on the existing framework of party relations between DPRK and the Japanese Communist and Socialist parties. North Korea’s relationship with Japanese political groups during the Korean War was significant in that, initially, shared communist ideology fostered a strong connection; however, the party relationship ultimately dissolved due to conflicting agend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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